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46화 (46/185)

#46화 시간의 지배자2

첫 번째 시간 역행.

9서클이 되면서 발산한 힘의 파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다.

두 번째 시간 역행.

드래곤은 실제로 존재하며 사막 너머에 터전을 잡고 있다고 한다. 역시나 드렉시아의 엘프 종족을 핍박하는 존재의 정체는 드래곤이었다.

세 번째 시간 역행.

조르주는 오랫동안 인간들의 신 노릇을 하고 있어서인지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드래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다.

그사이 놈이 사용하는 빛의 속성에 대한 연구를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마나를 투과하는 능력이었다.

조르주의 비밀이 서서히 풀렸다.

네 번째 시간 역행.

조르주가 찾아온 목적은 루터가 9서클 마법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루터가 제 권속이 되어 언젠가 닥쳐올 드래곤과의 결전에서 활약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개꿈에서나 가능 할 법한 소리였다.

다섯 번째 시간 역행.

조르주와 같은 권능자들은 총 열 명이었다. 모두 교단에서 신 노릇을 하며 전쟁을 부추긴다고 한다. 교단이 어째서 전쟁을 부추기냐고 묻는데 조르주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강제로 대답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놈에게 겁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섯 번째 시간 역행.

마나를 투과하는 조르주의 탈출 능력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권능이었다.

권능이 발현되어 조르주가 무사히 마나에서 달아나게 도왔다.

악령이 말하길, 권능자를 권속으로 부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밖에 없다고 한다.

루터는 조르주를 심문했다.

과연 놈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경고하며 을러댔으나 놈은 꼿꼿했다.

경고를 무시하면 화를 당한다.

보란 듯이 권능을 해제했다.

그러자 조르주의 외형이 변화하며 숨겨진 비밀이 진실을 드러냈다.

빛 속에서 신의 권능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허나 루터의 눈은 본질을 꿰뚫는다.

마법진으로 빛 속성을 지우고 권능을 탐색하자 작은 하얀 점이 보였다.

작아 보여도 신의 권능이 분명하다. 루터는 조르주의 권능을 찾아 제거했다.

신나게 공격을 펼치던 조르주가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그의 눈에 불신이 담겼다.

“어, 어떻게! 어떻게!”

루터는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려는데, 조르주가 부르짖었다.

“드래곤도 아니면서 어떻게!”

경악과 충격이 담긴 외침은 이내 찢어지는 단말마로 이어졌다.

“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조르주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루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르주를 구성하던 황금 갑옷이 사라졌다.

빛의 검과 신성 방패도 차례차례 없어졌는데, 갑자기 누군가 촛불을 끈 것처럼 광휘로 일렁이던 신체가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새카맣게 탄 몸이 촛농처럼 흘러 내렸다.

비명을 지르던 조르주가 루터를 향해 허우적거렸다.

“끄아아악! 돌려놔! 원래대로 돌려놔라!”

루터는 어깨를 으쓱였다.

“할 줄 모른다.”

알아도 해줄 생각이 없었다.

“너! 너!”

시뻘건 눈동자에 분노와 원통함이 가득하다.

허나 남을 원망할 때가 아니었다.

몸이 급속도로 녹아내렸다.

마치 시커먼 슬라임을 보는 것 같았는데, 끝내는 조르주의 얼굴도 사라졌다.

검은 슬라임은 이내 응고하여 딱딱해졌다.

루터는 바위처럼 굳은 조르주의 흔적을 바라봤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기가 막혔다.

“신이라고 떠들 때는 언제고 비참하게 죽는군.”

심지어 일부러 찾아와서 저 모양이 되었다.

루터가 악령을 들어 올렸다.

“신의 권능을 해제하면 저렇게 되는 거냐?”

[어, 어떻게 제거한 거냐?]

악령은 조르주와 같이 경악했다. 신의 권능은 아무나 해제할 수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눈앞의 권능자는 그 일을 해냈다.

두려움에 전신이 떨렸다.

악령의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 지 루터가 무심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많은 대화가 필요해 보이는구나.”

조르주의 비참한 죽음은 많은 해명이 필요해 보였다.

악령은 해명을 하라는 무언의 압력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악령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태초에 평화롭던 세상에 갑자기 대붕괴가 일어났다.

대붕괴가 무엇인지는 악령도 몰랐다. 놈은 박학다식한 존재가 아니었다.

원래는 일개 악령이었는데, 다른 악령을 잡아먹으면서 자아가 생기고 권능자가 되었다.

권능자는 무언가를 지배하는 존재를 통칭하는 이름이었다.

악령은 권능자가 되면서 자아를 형성했고, 원래 그랬던 대로 악령이든 생명체든 잡아먹으며 살려 했다.

허나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거칠었다. 거대한 마물과 악마들의 텃세가 너무 심해 그들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부서진 세계로 넘어갔다고 한다.

설명을 듣던 루터의 눈이 흔들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륙이 사실은 일개 섬이라고?”

[수백,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이 부서진 세계이다. 알기론 원래 하나의 대륙이었는데, 대붕괴가 일어나면서 잘게 쪼개졌다고 한다.]

부서진 세계란 조각난 섬이라 뜻이었다.

루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대륙은 결코 작지 않았다. 괜히 대륙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헌데 악령은 조각난 섬 중에서 그나마 큰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본토는 얼마나 크단 말인가.

“알고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군.”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사해가 문제였다.

탐험을 막아놓은 사해의 존재 때문에 인간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외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했다.

루터는 여러모로 애석했다.

“조르주란 녀석은 텅 빈 그릇처럼 실익이 없었는데 네놈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쓸모없는 조르주는 죽었다.

눈치 빠른 악령이 다급히 말했다.

[내 능력을 간과하지 말라. 나의 진정한 힘은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합?”

[그렇다. 육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쉽사리 당해준 것이지 육체를 얻으면 나는 그 무엇보다도 강해진다.]

“흠.”

악령이 쥐어짠 자신감은 루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악령의 근거 없는 자신감보다 다른 점에 주목했다.

“원래 네가 존재했던 세계에 가는 방법을 기억하느냐?”

[그건 왜 알려고 하냐?]

“널 살려주마. 대신 지도를 만들어야겠다.”

[지도? 설마 내가 있던 세계로 갈 생각인가? 그렇다면 관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곳은 통제되지 않는 마물과 악마들로 들끓는 곳이다. 악령조차 잡아먹히는 곳이다.]

“그래서 가는 것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 영역이 궁금했었다.

현재는 자신의 권능으로 몬스터를 이종족으로 만들 정도가 되었다.

관심사가 슬슬 떨어졌다.

악령이 원래 있던 새로운 세계는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을 역행해 조르주를 대면할 생각이 없었다.

조르주는 빚 좋은 개살구였다.

자신의 관심을 이끈 마나를 투과하는 능력은 신의 권능이었고, 빛의 속성을 발현하는 방법은 진즉에 깨우쳤다.

이용할 가치가 없으니, 더는 볼 일이 없다.

만약 조르주의 죽음에 의혹을 품은 존재들이 나타나도 상관없었다.

귀찮게 하거나 거슬리면 조르주에게 그랬듯이 죽이면 그만이다.

곰곰이 곱씹던 루터가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멍청한 놈이었어.”

[그러게 말이다. 차라리 나처럼 눈치껏 굴었어야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말이다.]

루터는 맞장구치는 악령을 삼엄한 눈으로 쳐다봤다.

“네놈에게 한 말이 아니다.”

힘의 격차를 깨달은 악령은 자신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치근대지 말라는 루터의 경고에 악령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앞으로 지도를 열심히 만들겠다.]

쓸모 있으니 죽이지 말아달라는 나름의 표현이었다.

루터는 생각에 잠겼다.

‘내 존재를 알았다고 했지. 이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고.’

시간을 역행해 자신의 족적을 지우고 싶었지만 9서클이 되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막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위험에 노출된 채, 경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방비를 해야겠어.’

그는 설산을 바라봤다.

요새로 사용하기 더없이 견고했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돌연 루터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사해와 드넓은 육지가 보였다.

‘설산으로 만족할 수 없다.’

좀 더 영역을 넓혀야 했다.

실체를 드러낸 적들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드래곤의 존재는 루터의 경계심을 가득 끌어 올렸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일어난 이종족들은 저마다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루터의 소집이 내려지자 모두가 한자리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공동의 중앙이었다. 공동의 중앙은 발전을 거듭하여 이루고 있었다.

이종족들은 공동의 중심을 루터를 기준으로 잡았다.

그리고 루터의 거처는 공동 중앙이었으니 이곳에서 기틀을 닦고 발전이 시작되리라.

모인 이종족들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루터를 바라봤다.

한없이 순수하고 신뢰 어린 눈빛이었다.

축조를 위해 가져 놓은 석재 위에 오른 루터가 이종족을 둘러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적이 나타났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흠칫했다.

루터는 놀란 그들에게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강한 존재들이다. 이제껏 너희들을 권속으로 만든 존재도 있고,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존재도 있다. 물론 그들이 위협하면 맞서 싸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당부하마.”

이종족들을 차례로 쓸어본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너희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지만, 세상은 뜻대로 살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그 장애물을 이겨내려면 최소한의 호신은 필수다. 그러니 현재 진행하는 수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이종족들이 눈을 빛냈다.

루터가 말을 맺었다.

“자유는 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적에 대비하려는 이종족들에게 강한 동기 부여가 되는 순간이었다.

루터는 악령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공동 내의 종족들은 나의 권속이다. 만일 하나라도 손댔다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루터의 경고에 악령이 곧장 대답했다.

[물론이다.]

악령은 루터가 강력한 존재임을 알았기에 당분간은 따라다니며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다.

공동은 나날이 변했다.

이종족들은 글과 숫자를 깨우쳤고, 철기를 다루면서 건축을 늘렸다.

루터는 이종족들이 만드는 것들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일단 종족별로 주거 환경이 달랐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트롤 종족은 땅굴에 거주지를 만들었고, 뙤약볕을 좋아하는 오우거는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 집을 지었다.

고블린과 오크는 집단 주거를 선택했는데, 서로가 맞는 생활양식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종족별로 주거 지역도 나뉘었다.

주거 지역이 나뉘었으니 삶의 패턴도 점점 달라졌다.

루터는 이대로 가다가 서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이들은 천성이 순수했다.

다르다는 걸 틀리다고 하는 이도 없었고, 마음도 넉넉했다.

다만 훈련할 때는 달랐다.

적이 나타났다고 했으니 의욕도 전보다 남달랐다.

모두가 훈련에 매진했는데, 그때만큼은 어느 누구도 상대에게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법을 가르치던 루터는 오우거 종족 샤넨의 질문을 받았다.

“루터. 마나를 얼마나 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게 무슨 소리냐?”

“감으로는 알고 있지만 막연한 것 같아. 숫자처럼 정확하게 표시하면 내 수준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괜찮은 방법이다.”

체내의 마나량을 정확히 표시할 수 있으면 스스로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마.”

“응.”

루터는 검술 훈련소로 향했다. 부지런히 육체 단련에 힘쓰는 이종족들의 자세를 교정해주던 루터는 씨름을 마치고 다가온 펠로그의 질문을 받았다.

“루터.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한 거냐?”

“씨름을 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얼마나 실력이 늘어났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

“쌓은 마나로 확인하면 되잖느냐?”

“너무 적고 미비해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

“그래?”

루터는 문득 샤넨의 요청을 떠올렸다.

‘자신의 능력을 숫자로 나타내면 어떻게 될까?’

이제껏 막연한 측정과 경지의 구분으로 실력을 확신했지만, 공통 숫자로 똑같이 표시하면 괜찮을 듯 했다.

루터는 샤넨과 펠로그가 요청한 이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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