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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클 영주님-42화 (42/185)

#42화 성장2

루터의 우선 과제가 이종족을 위한 마나 연공서 개발로 바뀌었다.

그는 심신 수련법을 기반으로 한 뒤, 정순한 호흡법을 창안했다.

호흡법은 각 종족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졌다.

검술서를 만든 뒤, 마법서도 만들었다.

검술서와 마법서 모두 자신이 개발한 무속성 마나의 호흡법을 따랐다.

창안을 했으니 이제 가르칠 때다.

연구를 마친 루터가 이종족들을 모두 부르려는데, 어째 공동 내의 분위기가 요상하다.

살랑거리는 봄날과 같이 이종족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반면, 인간 일행들은 어색하거나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돌켄은 아주 죽을상이었다.

루터는 구석지고 그늘진 곳에 음침하게 앉아 있는 돌켄에게 다가갔다.

“왜 똥 씹은 얼굴이냐?”

“아, 아닙니다.”

당황한 돌켄이 표정을 수습한다고 했지만, 루터는 눈치가 빨랐다.

“이종족들이 연애를 하는 것이 부러운 모양이구나.”

누가 보더라도 연인같이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이종족들이 많았다.

루터의 지적에 참지 못한 돌켄이 울상을 지었다.

“루터님. 이거 반칙 아닙니까? 아기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나 자랐다고 벌써 연애를 한답니까? 아주 볼 때마다 좋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눈꼴 시려 죽겠어요.”

돌켄의 앓는 소리에 루터가 혀를 찼다.

“너도 하면 되잖느냐.”

“여자가 있어야 하죠.”

“엘레나가 거절하는 모양이구나.”

“저는 죽어도 싫답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남자로 안 보인대요.”

돌켄은 우울했다.

주변은 꽃이 피어 살랑거리는데, 자신만 비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

자크와 케인은 그런 쪽에서 담을 쌓았는지 덤덤해 보였는데, 돌켄은 유독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욕구가 쌓이면 폭발한다.

루터는 욕구 불만인 돌켄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심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루터가 제의했다.

“연애는 못 해도 성욕은 풀 방법이 있다.”

돌켄이 뜨끔했다.

그가 서둘러 변명했다.

“오해십니다. 저는 성욕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관심 없나?”

“그, 그건…….”

눈을 굴리며 망설이는 그에게 루터가 진솔하게 말했다.

“생명체라면 번식의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니 부끄러워할 것 없다. 만약 생각이 있으면 찾아와라. 기꺼이 도와주마.”

돌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대용을 만들 거다.”

“대용이요?”

“듣는 것보다 겪는 것이 낫지. 어떻게 하겠느냐?”

“그, 그게…….”

고민하던 돌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욕구는 적당히 풀어 주는 게 심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자크랑 케인도 같이 데려가도 될까요?”

“그래라.”

돌켄의 고민을 해결한 루터는 이종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신장에 맞게 바닥의 마법진을 그린 뒤, 그들에게 손짓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마법진 위에 서거라. 너희들의 재능을 보겠다.”

그의 지시에 이종족들이 군말 없이 마법진 위에 섰다.

루터가 만든 마법진은 이종족들의 재능을 파악하는 판독기의 역할이었다.

검술과 마법의 재능은 미묘하게 달라 어느 방향에 치우치면 색깔을 띠게 된다.

가장 먼저 선 트롤 이종족이 하얀색을 띠었다.

“너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갖췄구나. 왼쪽으로 이동해라.”

검사의 재능이 있으면 푸른색을 띠었고 오른쪽에 치우쳤다.

총 340명의 이종족이 반으로 나뉘었다. 마법사는 140명이었고, 나머지는 검사였다.

“지금부터 각자 내가 가르치는 호흡법을 따라해라.”

일단 호흡법을 가르친 뒤, 이론 수업은 나중에 병행할 생각이었다.

저마다 지향하는 능력의 방향을 정했으니 공동의 수련실이 필요했다.

이종족들이 건설 중이긴 하나 아직 어설퍼 사용할 순 없었다.

차차 만들어 가자 생각하고 임시방편으로 울타리를 쳐놓고 마나 흡수율을 돕는 수련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종족들은 의심이 없었다.

루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하자는 대로 그대로 따라했다.

수련 마법진 위에 올라선 이종족들이 명상에 돌입했다.

아직은 호흡법만 알고 있는 상태지만, 차차 이론도 가르쳐주며 마도학에 대해 알려줄 생각이었다.

검술서를 다루는 이종족들은 호흡법을 가다듬기보다는 격한 신체의 움직임이 필요했다.

한 번이라도 무기를 더 휘둘러 신체의 감각을 끌어 올려야 병행하는 호흡법으로 인해 끌어들이는 마나의 양도 늘어난다.

“여건이 부족한 게 아쉽군.”

아직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 모두가 나무로 만든 목검이나 창을 들었다.

루터는 광산의 필요성을 깨달으며 슬슬 쇠를 제련하는 법을 가르칠 때라고 생각했다.

나중의 일이니 당장은 가능한 여건 속에서 수련을 병행해야 한다.

루터는 이종족에게 나무로 만든 어설픈 무기 사용을 중지시키고 신체 훈련을 시켰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다.

달리고, 뛰고 균형 잡기 운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힘과 균형을 시험하는 대련이 이어졌는데, 그린 원 안에서 상대방을 밀어내는 대련이었다.

그 동안 서로를 위하던 이종족들의 본격적인 승부가 시작되었다.

원 속에서 밀어내기 씨름을 하다 패자가 나오면 무척이나 아쉬워했고, 승자는 뿌듯해했다.

경쟁이 붙으니 너도 나도 열심히 대련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열띤 수련 속에 시간이 흘렀다.

루터는 일전에 구입한 미스릴을 마법진 위에 올려두었다.

마나를 주입하고 마법진이 발동을 시작하자 중앙에 놓인 미스릴이 빛을 발산했다.

루터는 이동하며 지면에 미스릴을 비추었다. 마법진은 중앙의 미스릴과 같은 성분의 재료를 찾는 방향계의 역할을 겸했다.

마나석을 찾을 때와 유사한 경우였는데, 이번에는 지진 지대가 아닌 공동 내부에서 탐색을 시작했다.

허공을 맴돌던 미스릴의 빛이 갑자기 바닥을 깊숙이 가리켰다.

루터는 바닥을 표시하고 곧장 마법을 뿌렸다.

쾅!

흙기둥이 비산하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대략 40여 미터까지 파고들어가자 큼지막한 암석이 버티고 있었다.

루터는 암석을 벗겼다.

가공하지 않은 미스릴이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암석 몇 개를 더 긁어내니 이번에는 철광석이 나타났다.

미스릴 광산이라고 해서 미스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철광석도 있고 다양한 보석류도 함께 있었다.

“역시나 있었군.”

이 거대한 설산에 매장된 광석이 하나 없을 리가 없었다.

루터는 몇 번 더 수색하며 공동 내의 광산을 세 개를 발견했다.

미스릴 하나, 철광석 하나, 그리고 금광이었다.

매장된 광석의 크기로 보아 생산 가치가 꽤 높아 보였다.

루터는 이종족들과 함께 광산을 만들고 채광을 시작했다.

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제련을 위해 대장간이 만들어졌다.

광물을 추출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광석은 녹여 철기로 다듬었다.

미스릴은 당분간 루터가 다루기로 했다. 철을 제련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종족들에게 미스릴은 까다로운 광물이었다.

제련된 철은 농기구와 실생활에 활용했다. 솥단지와 식기, 그리고 농기구와 같은 용도였다.

이종족은 루터에게서 대장간을 활용하고 쇠를 이용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꼼꼼히 배워두었다.

단단한 쇠는 무기로도 만들 수 있지만, 루터가 엄히 금했다.

이종족은 키아라와 같이 천재들이 아니었다. 숙련도가 낮은 이들이 함부로 살상력이 높은 쇠 무기를 다루다가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신체 단련을 우선시하며 단계적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대장간에서 쇠를 만들고 활용할 방법도 알려주었다.

쇠는 어떻게 녹이고 형태를 갖추느냐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

안전을 강조하며, 만들고 싶은 것을 하게 두자 엉터리 쇠붙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인간 사회 같았으면 귀한 쇠를 가지고 장난 쳤다며 치도곤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루터는 달랐다.

보유한 철광산의 매장량도 높았을 뿐더러, 이들의 상상력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다양한 창의성은 무궁무진한 개발로 이어진다.

지금은 실수투성이여도 나중엔 그 조차 감탄할 만한 물건이 나올 수도 있었다.

대장간이 만들어지자 건축 속도가 빨라졌다.

연장이 있으니 목재를 보기 좋게 다듬었고, 석재도 활용했다.

만들어진 바퀴를 이용해 이동의 편리를 가져왔으니 공동의 발전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었다.

이종족이 발전하는 만큼 루터도 바쁘게 움직였다.

일어나자마자 권능을 통해 권속이 된 아기들을 데려왔고, 아직 서투른 대장간 활용을 가르쳤다.

밤이 되면 이들의 수련을 도왔으니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돌켄이 루터에게 찾아왔다.

안 본 새에 볼이 야윈 그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이 호소했다.

“루터 님. 제발 도와주세요.”

“알았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루터는 바쁜 와중에도 돌켄을 위해 시간을 내기로 했다.

돌켄에게 간접적으로 설명한 대용이란, 여성의 신체 기능을 대신하는 물건이었다.

루터는 이를 성인용 인형이라고 불렀다.

그가 성인용 인형을 만들게 된 계기는 과거의 동료들 때문이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 속에서도 성욕은 꺼지기는커녕 불이 붙었다.

마차촌이라고 하여 전쟁터에 찾아오는 몸 파는 여성 외에는 성욕을 풀 방법이 없으니 서로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남색가가 괜히 증가하는 게 아니었다.

보다 못한 루터는 성인용 인형을 제작했고, 모두가 만족했다.

앞으로 만들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립된 공동에서 딱한 사정에 처한 돌켄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는 일단 돼지를 잡았다.

가죽을 벗기고 털을 제거했다.

단단한 나뭇가지로 뼈의 형태를 잡고, 그 위에 돼지가죽을 덧대었다.

둥글게 말아 접은 뒤, 안에 부드러운 양모를 넣어 푹신하게 만들었다.

그 뒤에 마법으로 형태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얼굴과 가슴 그리고 골반을 만들자 여성의 신체와 닮았다.

허나 그뿐이다.

얼굴이 없어 괴이했는데, 루터는 그 얼굴에 마법진을 그렸다.

이종족들이 엉성하게 만든 초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던 돌켄은 루터가 나타나자 냉큼 물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이리 와라.”

루터는 돌켄의 이마에 마법진을 그리고 그대로 마나를 주입했다.

마법진이 발동했는데도 뚜렷하게 일어나는 일이 없다.

돌켄이 어리둥절했다.

“뭘 하신 겁니까?”

“안으로 들어가 봐라.”

설명이 필요 없었다.

루터에 의해 등 떠밀린 돌켄이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돌켄은 눈을 부릅떴다.

눈부신 반라에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켄의 벌린 입에서 침이 흘렀다.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여인이 양팔을 뻗어왔다.

“내 사랑. 이리 와요.”

고혹적인 목소리가 돌켄의 영혼을 빼앗았다.

“끄어어억!”

괴이한 비명을 지른 돌켄이 금발 여인을 향해 날듯이 뛰었다.

쿠드득! 쿠드득!

초옥이 부서질 듯이 거세게 흔들린다.

손을 턴 루터가 이대로 떠나려 하는데, 무언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던 엘레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루터님. 돌켄 못 보셨나요?”

“못 봤다.”

돌켄의 체면이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줄 수 없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걸 본 적이 없는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루터의 등 뒤의 초옥에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어어억! 으허허헛!”

엘레나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지금 소리 지른 거 돌켄 아닌가요?”

“음.”

루터의 짧은 신음이 확신을 안겨주었다.

돌켄의 신음이 점점 가팔라졌다. 엘레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혹시 돌켄이 많이 아픈가요? 안 그래도 요즘 얼굴이 바짝 말라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돼서요.”

“음.”

루터는 여전히 대답을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돌켄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그때, 이종족들이 어설프게 지은 초옥이 사달을 냈다.

콰다다당!

돌켄의 과격한 움직임을 감당 못 한 초옥이 무너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돌켄!”

놀란 엘레나가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발가벗은 돌켄이 성인용 인형과 엉켜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황한 돌켄과 엘레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날 밤. 취하지도 않은 돌켄이 죽어버리겠다고 난동을 피웠다.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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