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쉽지 않다2
몬스터 영역으로 떠나기로 한 당일 아침.
루터는 여관 2층 방에 머무르며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부터 지켜본 말빈의 거리는 허무함 그 자체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그런 그들을 유혹하는 사창가.
붉은 불야성 속에 고성방가와 싸움이 일어난다.
인사불성에 쓰러진 자들은 좀도둑의 먹잇감이 되었고 재수 없이 걸리면 칼침을 맞았다.
시체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조용히 치웠고 아침이 되면 그 모든 게 꿈인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졌다.
루터는 그 모든 과정을 감흥 없이 바라봤다.
‘여기나 전쟁터나 거기서 거기군.’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과 여자에 의지하는 건 흔하게 보던 모습이다.
죽음을 곁에 두는 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다.
결국 무언가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은 직면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희망을 단단히 쥐었지만 저들은 외면하고 쾌락을 선택했다.
갈린 갈림길의 끝이 지금의 결과다.
‘결국 의지의 차이겠지.’
루터는 단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부숴버렸다.
끈질긴 의지와 간절한 희망 끝에 이룬 결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똑똑!
“마법사님. 케인입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곧 가겠다.”
루터는 조용한 거리를 바라본 뒤, 마나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이제 시작이군.’
두 번째 인생의 서막이 드디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루터는 말 두 필을 팔았다.
말은 기동력에 도움이 되지만 힘은 부족했다.
몬스터의 시체를 실어야 하는 수레는 황소가 아니면 끌 수 없었다.
대체 불가능한 동물이기에 말보다 비쌌지만 용병 길드가 해결했다.
지부장은 루터에게 허리가 닳도록 고개를 숙였다.
용병 하나 잘못 소개시키는 바람에 거래를 틀 수 있는 마법사와 갈등을 빚었다.
말빈의 용병 길드는 상회처럼 몬스터도 다룬다.
마법사가 사냥한 몬스터를 다른 상회나 길드에 팔아버리면 책임의 소재는 모두 지부장에게 있다.
그는 심기 불편한 루터를 달래고자 물심양면으로 사냥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소를 사고 대형 수레를 제공했다.
출혈은 있지만, 고급 몬스터 가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부장이 사과한 후에는 돌켄이 새 용병을 소개했다.
대머리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딱딱한 인상의 사내였다.
“A급 용병 자크입니다.”
자기소개는 그걸로 끝이었다.
과묵하다 생각하는데 돌켄이 옆에서 대신 소개했다.
“말빈에서 가장 힘 좋은 친굽니다. 책임감도 강하고 말썽도 일으킨 적이 없어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될 겁니다.”
“고용하지.”
루터는 선뜻 그를 받아들였다.
경박하고 입 싼 피에르를 겪은지라 과묵한 자크는 합격이었다.
준비를 마친 뒤, 몬스터 영역으로 출발했다.
관문을 지나니 끝없는 수림이 루터를 반겼다.
‘내가 몬스터 영역에 서 있다니.’
이 순간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였다.
“여기는 초입이고 오우거와 같은 고급 몬스터의 영역은 일주일이 걸릴 겁니다.”
케인의 설명에 루터는 마음을 다 잡았다.
그는 마음 편히 놀자고 몬스터 영역에 온 게 아니었다.
“부지런히 가야겠군.”
방심하지 말고 집중하자.
마음을 조인 루터는 일행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케인을 고용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는 몬스터를 피해가는 방법을 알았다.
고블린의 영역에선 오우거의 똥을 이용했고, 오크의 영역에선 그들이 싫어하는 약초의 향을 사용했다.
고블린은 오우거 냄새만 맡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예민해서 얼씬도 안 했다.
반면 오크는 오우거도 피하지 않는 호전적인 몬스터지만, 약향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덕분에 일행은 고급 몬스터의 영역까지 순탄하게 이동했다.
일주일이 되자 마침내 오우거의 영역에 다다랐다.
케인은 무력 충돌 없이 몬스터 영역을 가로지르는 건 여기까지라고 선언했다.
“후각이 발달한 데다 한 번 포착한 먹잇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고블린처럼 교활하고 오크처럼 호전적입니다. 놈들을 잡으려면 정면 대결밖에 없습니다.”
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케인의 안내를 받아 몬스터를 피했지만, 싸우기 싫어 피한 게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 고급 몬스터.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기에 한달음에 그들의 영역까지 도달했다.
“지금부터 사냥 개시다.”
루터는 일행을 모아 계획을 설명했다.
“마법진을 이용해 덫을 만들 것이다. 케인. 오우거의 흔적을 추적해라. 엘레나. 오우거를 발견하면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유인해라. 돌켄과 자크는 덫에 걸린 오우거를 마무리한다. 질문 있나?”
일행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주어진 임무는 알겠는데 계획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돌켄이 손을 들었다.
“마법진으로 덫을 만드는 게 가능합니까?”
루터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마법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지만 마법진으로 덫을 만든다는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다.
루터는 설명해봤자 알아들을 이들이 아니라 간단하게 마무리 지었다.
“실전에서 겪어보면 알게 될 거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루터는 의문을 품은 일행과 함께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
케인은 덫을 놓기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마침 괜찮은 지형이 있었다.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옹달샘이었는데, 습기 먹은 척척한 바닥에 오우거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케인이 장소를 지정하자 루터는 마법진을 그렸다.
일행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루터가 하는 양을 관찰했다.
마법사가 마법진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들이 보는 루터의 모습은 화가 같았다.
원을 그리고 기이한 도형과 처음 보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어찌나 빼곡하게 그리던지 돌켄은 저도 모르게 멀미가 날 정도였다.
마법진을 완성한 루터가 엘레나를 쳐다봤다.
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으니, 유인해야 한다.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던 엘레나는 드디어 때가 되자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그녀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돌켄과 케인은 초조한 얼굴로 엘레나를 기다렸다.
조용하던 와중에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케인이 힘주어 말했다.
“오우겁니다!”
루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쾅! 쾅! 쾅!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수풀을 헤치고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타남과 동시에 마법진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쾅!
그런 그녀의 뒤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루터는 실제로 오우거를 본 적이 없었다.
나타난 오우거는 3미터 크기에 회백색의 피부였으며, 정수리에 뾰족한 뿔이 자랐다.
사람의 체형이되 몸집은 육중했고, 손에는 나무 기둥을 쥐고 있었다.
‘정말 크군.’
루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오우거를 관찰했다.
마주친 붉은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쫓기는 엘레나가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
케인과 돌켄이 그녀를 향해 부르짖었다.
“다 왔어! 조금만 힘내!”
“엘레나! 뛰어!”
응원에 힘이 생겼는지 악착같이 달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옆으로 세차게 밀렸다.
손을 뻗어 그녀를 쥐려던 오우거는 실패하자 더욱 더 흉포해졌다.
마법진에 다다른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힘차게 바닥을 찼다.
쾅!
그녀가 뛴 자리를 나무 기둥으로 내려 친 오우거가 포효했다.
크아아앙!
성난 분노에 초목이 흔들렸다.
마법진을 지난 그녀의 앞에 루터가 섰다.
“수고했다.”
그는 달려오는 오우거를 향해 마법을 전개했다.
“그리스.”
마찰 계수가 0이 되며 바닥이 매끄러워진다.
달리는 힘을 이기지 못한 오우거가 바닥을 굴렀다.
“윈드 웨이브.”
바람이 넘실거리며 오우거를 밀어냈다.
구르던 오우거는 정확히 마법진 위에서 멈추었다.
루터는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했다.
쾅!
성난 오우거가 일어서려다 말고 머리를 흔들었다.
크아아앙!
그리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포효하더니, 갑자기 기절하듯 쓰러졌다.
붉은 광채가 일렁이던 눈동자가 풀어지며 눈꺼풀이 닫혔다.
루터는 아연한 얼굴로 구경하던 돌켄과 자크에게 오우거를 가리켰다.
“죽여라.”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죽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으니 확실하게 끝내라.”
루터는 무기를 뽑고 오우거를 향해 다가가는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몬스터도 별것 없군.’
사람처럼 마법에 당하는 건 똑같다.
심지어 정신계 마법진이었다.
그는 마법진에 환각을 일으키는 룬어를 새겼다.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환영과 환청으로 정신을 흔든 뒤, 충격을 가해 일시적 가사 상태로 만드는 마법진이다.
주로 상대를 고문하거나 고통을 줄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몬스터에게 쓸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게다가 잘 통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주춤거리며 쓰러진 오우거에게 다가선 돌켄과 자크는 각자 양날 도끼와 대검을 들어 올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있는 힘껏 목을 내리쳤다.
퍼억!
세게 후려쳤는지 오우거의 몸이 움찔한다.
그래도 눈꺼풀은 열리지 않았다.
안심이 되니 그 뒤론 수월했다.
나무꾼 장작 패듯 부지런히 오우거의 목을 쳤다.
한참을 치니 결국 목이 잘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죽이고도 기가 막히는지 한동안 멍했다.
지켜보던 케인과 엘레나도 아연한 표정이다.
오우거를 사냥하려면 최소한 A급 용병 30명이 필요하다.
그것도 최상급 무기와 투망 등으로 공략하여 체력을 빼야 하는데, 실수 한 번이면 전멸을 면치 못한다.
그런 오우거를 너무나 쉽게 공략 해버렸다.
일행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루터는 오우거의 죽음을 확인하고 엘레나를 쳐다봤다.
“다시 유인할 수 있겠나?”
그의 질문에 정신을 수습한 그녀는 즉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다리가 풀렸는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전혀 없어 당장은 무리예요.”
루터는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바로 일을 시킬까 걱정되어 가슴 졸이는데, 루터가 입을 열었다.
“엘레나. 바지 벗어라.”
엘레나는 순간 자신이 너무 지쳐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케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상황에 갑자기 바지를 벗으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의도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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