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쉽지 않다2
칸델까지 오는 동안 상단 사람들은 루터와 친목을 다지려고 애썼다.
전란의 시대에 강자는 대우받기 마련이다.
강자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 모두가 살가웠다.
유독 한 사람. 제페토만이 퉁명스럽게 루터를 대할 뿐이다.
아무래도 호위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앙금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칸델에 도착하고 헤어질 때 한 번 더 붙잡았다.
“만약 상단 호위에 관심이 가거든 찾아와주게.”
그는 몬스터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냐는 눈치였다.
루터는 그의 태도에 일절 관심 없었다.
어차피 안 볼 사이니, 헤어지면 그만이다.
반면, 바레인 용병대는 루터와의 이별을 유독 아쉬워했다.
용병들에겐 습성이 있다.
도적과의 전투 때에 그 성향이 잘 드러났는데, 강한 사람을 따라 뭉친다는 점이다.
대장인 바레인조차 루터의 뒤에 슬그머니 달라붙었다.
전투 당시에 바레인 용병대의 대장은 루터였다.
바레인은 검신이 매끄러운 장검을 선물하며 신신당부했다.
“혹시나 해서 말일세. 용병 일에 관심이 생기면 반드시 내게 먼저 찾아와주게. 자네가 원한다면 용병대 이름도 루터 용병대로 바꾸겠네.”
바레인의 말은 진담이었다.
알량한 자존심이 목숨보다 귀하지 않다.
강한 대장은 용병대를 튼튼하게 만든다.
바레인은 루터의 그릇을 알아봤다.
그는 일개 용병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될 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루터에게 매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루터는 바레인의 진심을 알았다.
그래서 덕담을 남겼다.
“제페토를 멀리하세요.”
그는 위험하다.
재물에 눈이 멀어 일의 경중을 분간 못 하면 전란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바레인의 눈이 깊어졌다.
“명심하지.”
그 역시 이번 일로 제페토의 이기심을 엿봤다.
만약 그와 계속 동행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바레인 역시 이번 임무 이후로 에넥스 상단과의 인연을 끊을 생각이었다.
칸델은 올슨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모든 관도의 중심지였다.
칸델에서 출발하면 북부를 지나 몬스터 영역까지 금방이다.
이동이 수월하니 상인과 용병들도 칸델에 모여 들었다.
인파가 넘치는 거리에는 활력이 가득했고, 쉼 없는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루터는 수중의 금액을 확인했다.
선수금으로 받은 10골드는 대부분 소진했고, 이제 남은 것은 5골드가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
또 다시 용병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혼자 떠날까.
만약 용병 일이라면 상단이나 귀족 호위다.
그는 이번 호위 임무에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용병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바레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수준이 낮았다.
이유가 있었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귀족들이 마구잡이로 용병을 쓸어 담아서 실력 있는 자들은 귀족과 계약을 맺어버렸다.
그러니 그 외 용병들은 실력이 변변찮았다.
‘편하자고 동행한 용병들이 짐 덩이었어.’
루터는 자리를 털고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넘어지면 코 닿을 데다. 천천히 가자.’
급할 건 없다.
그는 창창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살 날 많은 그가 조급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관도를 따라 거니는 루터의 표정이 부드럽다.
그는 길가의 돌멩이를 관찰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봤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모든 게 새롭고 흥미로웠다.
꽃을 보면 싱숭생숭했고, 산들바람이 지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 그의 여유는 칸델을 떠난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채채채챙!
전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터는 걸음을 멈췄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화를 불러일으키지.’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가 있다.
그는 번거로운 전투에 휘말리기 싫어 방향을 틀어 돌아갔다.
헌데,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피 칠갑을 한 남자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좋지 않은데.’
저자와 꼬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맞았다.
푸른색의 마법이 포물선을 그리더니 말의 엉덩이에 꽂혔다.
말이 넘어지며 튕겨나간 남자가 바닥을 굴러 그의 앞에 다다랐다.
루터는 쓰러진 남자를 물끄러미 내려 봤다.
“쿨럭! 쿨럭! 도, 도와주게!”
피를 게워낸 그가 간절한 눈으로 루터를 바라봤다.
허나 루터의 시선은 무심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구하면 누군가의 적이 된다.
인연은 복수로 이어져 처절한 사투를 일으킨다.
루터는 그의 요청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허나 쓰러진 남자의 적은 그를 얌전히 보내주지 않았다.
쾅!
화염구가 날아와 루터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거리를 벌린 루터가 몸을 틀었다.
어느새 도착한 두 중년인이 말에서 내리며 다가왔다.
하나는 마나 지팡이를 든 마법사였고, 다른 하나는 검사였다.
송충이 눈썹을 한 검사가 이죽거렸다.
“어디 가려고?”
루터는 양손을 들어 싸우기 싫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남의 싸움에 참견하고 싶지 않으니 이대로 못 본 척 보내주시오.”
이번엔 빼빼 마른 마법사가 비웃었다.
“목격자는 모두 죽어야 해. 네놈을 살려줄 수 없다.”
“…….”
루터는 할 말을 잃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딱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듯싶었다.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바람 잘 날 없다.
루터는 짜증을 삼키고 몸을 풀었다.
“하는 수 없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하며 바레인에게 선물 받은 장검을 뽑았다.
검사가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동시에 마법사가 마법을 뿌렸다.
“디그!”
루터가 선 땅이 흔들리고 갈라졌다.
구덩이가 생길 듯하자 루터는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티 스펠.”
마법 무효화. 바닥의 진동이 멈추자 그는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오는 검사를 향해 마법을 걸었다.
“그리스.”
검사는 루터를 흔한 용병으로 착각했다.
단순히 보이는 외관이 그랬으니 오해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마법을 쓸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리라.
목숨을 건 전투에서 방심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으악!”
넘어진 검사가 썰매 타듯 루터의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장검을 역수로 쥔 루터는 바닥을 내리찍었다.
장검이 검사의 사타구니에 박혔다.
콰직!
“끄아아악!”
루터는 목청껏 비명을 지르는 검사의 목을 자른 뒤, 전방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안티 스펠.”
붉은 화염구가 공중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법사가 눈을 부릅떴다.
볼 것 없는 용병인 줄 알았더니 마법사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안티 스펠 마법을 캐스팅 없이 바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마나 지팡이가 없으니 메모라이즈도 아닐 것이다.
마법사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너, 너는 누구냐?”
루터는 장검에 묻은 피를 털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당황한 마법사가 마법을 캐스팅하려 했다.
루터는 마법사에게 여력을 주지 않았다.
“디그.”
“으악!”
갑자기 한쪽 발이 꺼지자 놀란 마법사가 허둥대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다가온 루터가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법사가 다급하게 팔을 흔들었다.
“자, 잠깐만!”
죽은 도적 대장도 그러더니, 이놈도 어떻게든 살려는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
루터는 무심히 검을 내리쳤다.
부드럽게 궤적을 그린 검이 마법사의 목을 깔끔하게 지나갔다.
루터는 마법사의 마나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횡재했군.’
마력석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되었다.
마나 지팡이를 챙긴 루터는 현장에 서성이는 말 두 필을 바라봤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나귀도 10골드를 넘게 부른다.
귀한 이동 수단인데, 이 녀석들은 마력석도 주고 말도 남겼다.
루터는 죽은 둘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부나방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고마운 친구들이네.’
죽은 이들이 들으면 환장할 소리였다.
루터는 말에게 다가갔다.
사람을 원래 잘 따르는 건지 아니면 공용 말이라 따로 훈련을 받은 건지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몇 차례 쓰다듬은 뒤 올라탄 그는 관도가 아닌 샛길 방향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멍한 얼굴로 루터의 전투를 지켜보던 남자가 외쳤다.
“자,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싫어.’
괜히 붙들려 하소연에 시달리다가 결국 도와주는 일은 과거에도 지긋지긋하게 반복했다.
이제는 원치 않는 인연에 얽히지 않으리라.
그는 애타게 부르짖는 남자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말 두 필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남자는 홀연히 떠난 청년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법이다! 분명 마법을 사용했어!’
너무 놀라 다친 부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마법을 사용하는데, 마나 지팡이가 없는 용병 차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흐르고 말 여러 필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아군이었다.
선두에 나타난 중년인이 그를 보며 외쳤다.
“왕자님!”
코스트너와 그의 휘하 기사들이었다.
올슨 왕국의 이왕자 델프스는 달려오는 아군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다.”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고, 옆구리 통증이 있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았다.
다가온 코스트너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마차가 불타고 시체가 널렸다.
느낌이 좋지 않아 미리 마중 나갔더니 이 꼴이다.
이왕자 델프스가 탄식했다.
“파비앙 후작이 배신했네.”
코스트너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 쥐새끼가 기어이 사고를 쳤군요.”
이를 갈던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둘을 바라봤다.
“왕자님이 해치우신 겁니까?”
“다른 사람일세. 그가 날 살렸어.”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델프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냥 떠나버렸네.”
“허어. 잡아두시지 그랬습니까?”
“처음부터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자였어. 그런데 적들이 그를 건드려 죽임을 당했네. 내게는 천운이지.”
“정말 다행입니다. 왕자님을 구했으니 감사의 표시를 할 겸 수소문 해 찾아보겠습니다.”
“꼭 찾아야 하네.”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평범한 용병인 줄 알았는데 마법을 다룬다.
심지어 4서클 마법사와 익스퍼트 검사를 손쉽게 요리했다.
델프스는 전투 장면을 회상하며 반드시 그 청년을 포섭하겠노라고 다짐했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