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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81화 (181/217)

00181 우주시대 =========================

우주시대 - 2

과거, 그러니까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겐 신앙이 있었다. 주신 아크. 그의 존재가 주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수많은 기록이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 한 때는 신도수가 1억을 넘었다는 증언까지 있다. 당시에 어린아이였던 사람들은 지금은 거의 죽었지만 살아남은 사람까지 있어 그 증언을 뒷바침했다.

신은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언제일까…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대륙을 통일했다. 종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신이 아니라 주신의 화신이 대륙을 통일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꽤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주신이나 주신의 화신이나 어차피 인류와는 동떨어진 존재였으므로 별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어쨌건 주신의 화신이 대륙을 통일하고 신황제에 올랐다. 그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었다. 기본법인 코덱스를 시작으로 해서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사법제도를 혁신했다. 대륙을 30개의 주로 나누어 자치권을 주었고 과도한 군사력을 억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정말 신황제라고 칭송받을 만했다. 평범한 인간들에겐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신황제는 타락했다. 왜인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그는 주신을 부정하며 주신교를 폐쇄했고 수많은 반발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그가 타락한 이면에 마왕들이 개입했다는 신빙성 있는 소문이 떠돌았다.

신황제의 타락을 종결한 것은 호레스라는 이름 없는 용사였다. 그는 신황제를 죽인 후 근위대장직에서 물러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존재는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이 즈음이다. 용사 호레스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법사도 마찬가지. 몬스터와 용사와 마법사의 시대는 갔고 이제 합리적인 이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륙이 30개국으로 분리되고 난장판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주신이란 존재는 사라졌다. 그들은 생각했다. 주신 안 믿어도 사는데 지장 없잖아.

신화와 몬스터, 마법 대신 경제가 발전했다.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이 생겨났고 대학을 나와 취직하는 경로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 되었다.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은 많다. 인구는 폭증하고 있으며 수많은 땅이 개간되었다. 바야흐로 경제 발전의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대륙의 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국가 엘트라움의 땅은 과거에 글라칸 사막으로 불렸다. 사막이 초원으로 변하고 국가가 들어서기까지는 불과 수십 년에 불과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엘트라움의 국경선은 해발 400-500m 정도로 솟아 있는 고원지대다. 즉 이 국가는 천연의 성벽을 갖고 있는 셈이다. 초원은 풍요로웠고 많은 식량을 생산해냈다.

심지어 국가 소유의 어떤 농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작물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거 파티야 부족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주신이 며칠 밤 묵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인구수는 2,500만 정도로 적당한 편이고 농업국으로서 주변 국가에 막대한 양의 식량을 수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농업이 번창하진 않았는데 분리 독립 후 선출된 지도부가 국가의 방향을 농업으로 틀었다. 지금의 엘트라움은 식량 자급률이 무려 1,000%를 넘는다.

이처럼 풍요로운 나라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돈은 부족하지 않지만 기반이 없다는 편이 맞겠다. 해발 500m에 가까운 드넓은 고원이 원흉 중 하나였다.

그나마 식량 수출에 국가의 목숨이 달려있어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선로를 깐 덕분에 주변 국가와 그럭저럭 교류는 이뤄지고 있었다.

이런 농업국가 엘트라움의 수도 근교에 최근 한 집단이 회사를 등록했다. 이 회사는 A&A 일렉트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주변의 공업이 발전된 국가가 아니라 엘트라움 같은 농업국가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정부 관료들은 AA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가지면서도 일단 그들이 요청한 것은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무시해서야 바보 같은 일이다.

부지를 매입하고, 관련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건물을 세운다. 종합전자회사인 만큼 많은 고용이 예상되었다. 회사 주위로 상당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숙소로 아파트가 세워질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회사 하나에 이런 반응이 일어난 것은 역시 자금력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A&A 일렉트릭의 모체는 부동산 업체였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는지 개발붐을 타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고 한다.

회장인 아크는 그 돈으로 평소의 꿈이었던 전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게르드 출신의 외국인인데 소싯적에는 탐험가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도저히 30대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지만 요즘에는 젊게 사는 사람도 많다.

―A&A 일렉트릭의 정체성은 일개 종합전자회사에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A&A는 엘트라움의 공업력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자 합니다. 그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돈 많고 말끔해 보이는 사업가가 와서 언론에 호소하는데 혹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혹시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그렇게 걱정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가 쓴 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엘트라움 정부와 협력하면서도 철저히 코덱스를 지켰기에 차후 막나가지 않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그리하여 수도 근교에 마련된 A&A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세워지고, 생산설비가 깔렸다.

A&A의 성장을 지켜보던 정치·경제 관계자들은 꽤 선진적인 생산설비가 깔리자 놀랐다. 대륙 북부에서 공업력으로 이름 높은 국가에서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는 자동 레일이 깔린 것에 충격은 먹은 사람도 있었다.

일개 기업이 잘 해봐야 수백 명 정도의 인력을 고용하리라 생각했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A&A에서 만드는 라디오와 무전기, 소형 마기 엔진 등의 제품은 좋은 디자인과 내구성으로 품질을 인정받아 대륙 전역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관세가 별로 붙지 않아서인지 장벽도 없었다.

A&A는 설립 3년도 되지 않아 무식한 크기로 성장했다. 부지는 거의 15배로 넓혀졌고 자본금은 재계 관계자들이 기겁할 정도로 늘었다. 무엇보다 정식으로 고용한 근로자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이들은 수도가 아니라 회사 근처에 따로 집을 구했고, 새로운 도시가 형성될 정도였다. 상권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번은 엘트라움 정부에서 세무국을 동원했다. A&A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정례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무국은 허탕만 치고 세무조사를 끝내야 했다.

세무조사에서는 케테르 군주도 팬티까지 털린다는 말이 있는데 A&A는 지독하게 정공법을 고수했다. 진짜 털려고 마음먹으면 트집을 잡을 수야 있겠지만 정부는 그쯤에서 물러났다.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은 A&A를 탈탈 털어봐야 바보짓이다.

그리하여 A&A는 신생 종합전자회사로 데뷔했다. 대륙에서 이름 높은 회사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다들 A&A에 대해 큰 라이벌 의식은 갖고 있지 않았다. 확실히 그들이 만드는 제품은 괜찮았지만 플래그쉽급은 생산하고 있지 않았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엘트라움의 언론들도 A&A의 약진에 호평을 내리면서도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A&A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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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녀올게.”

스코달은 현관에서 아내에게 키스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4살배기 딸이 아빠 가지 말라고 엉엉 우는데 마음이 측은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

그와 가족이 지내고 있는 곳은 A&A 일렉트릭에서 자금을 대어 만들어진 아파트다. 미혼자들에겐 따로 원룸이 임대되고 기혼자들은 가족의 수에 따라 아파트를 지급받는다. 임대료는 직급에 상관없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한 달에 1,000리블만 지급하면 된다.

관리비 포함해서 1,000리블이란 임대료는 절대 비싼 것이 아니었다. 주변 물가를 생각하면 헐값이나 다름없기에 A&A의 직원들은 대부분 회사가 제공하는 아파트에 들어온 상태다.

출입도 자유롭지만 소란을 일으키면 즉시 경고가 날아가고 두 번째에는 퇴거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좋은 곳에서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들 얌전하게 지냈다.

스코달은 주차장으로 내려와 서류가방을 조수석에 던져놓고 시동을 걸었다. 그의 자동차는 84년 만들어졌는데 시속 80km까지 가속할 수 있는 4인승 2도어 세단이다.

자동차란 물건이 등장한지도 꽤 지났지만 비싼 녀석이라 아직까지 각 가정에 완전한 보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스코달은 회사가 지급한 이 자동차에 만족했다.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한다. A&A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엘트라움 정부에선 넓고 튼튼한 도로를 깔았다. 애초에 토지가 공공에 귀속된 국가라서 큰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도로를 깔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직까지 오가는 자동차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직원은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출근하고 최근에는 노면열차의 선로가 깔리고 있었다. 돈이 워낙 넘쳐나니 가능한 일이다.

A&A 본사 빌딩의 좌측에는 연구소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종합전자회사의 연구소치고는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방대하다. 보통 근로자의 2-3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수백 명이나 몰려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 분야도 대단히 폭넓어서 수학 연구소나 물리학 연구소까지 떡하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라면 모를까 일개 기업이 기초과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희한한 일이지만 회장인 아크가 워낙 특이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연구소로 들어온 스코달은 동료 연구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추진엔진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다. 살림을 맡는 매니저를 포함해서 연구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다. 연구소장은 따로 있지만 그녀는 연구에 종사하지는 않는다. 연구소를 어떻게 지원해줄 것인가 본사와 의논하고 지켜볼 뿐.

“수석님, 수석님.”

누군가가 문을 통통 두드렸다. 스코달은 예, 하고 대답했다. 어지러운 책상 위를 정리하려니 특이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흔치 않은 드라켄이었다.

드라켄은 흔히 드래곤의 후예들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들의 외모는 인간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이마에 공통적으로 나 있는 몇 개의 돌기가 드라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코달의 방에 들어온 이 젊은 아가씨는 외모는 가냘프지만 성인 남성을 팔 하나로 패대기칠 수 있는 괴력을 자랑한다. 드라켄들은 다들 엄청난 신체능력을 자랑하는데,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에바.”

에바라고 불린 드라켄 아가씨는 누가 들을까봐 조용히 책상으로 다가오더니 낮게 말했다. 그녀는 이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그 소식 들으셨어요? 연구소 하나가 또 생긴데요.”

“허 참…이번에는 또 무슨 연구손지…”

스코달은 허탈하게 웃었다. A&A가 운영하는 연구소가 너무 많다는 말은 진작부터 나오고 있었다. 다른 전자회사의 연구소에 비해 거의 10배 이상이나 큰데, 놀랍게도 보안은 시원찮았다.

스코달도 연구소의 보안이 형편없어서 회사에 항의하기도 하고 회장에게 직접 얘기를 해봤지만 무소용이었다. 귀중품이 가득한 창고를 밤새도록 열어놓는 격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아크 회장의 생각은 희한했다. 에바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천문학 연구소라고 다들 그래요.”

“천문학…? 그걸 대체 왜?”

“우리야 모르죠. 위에서 추진하는 거니까 다들 그러려니 할 뿐.”

에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드라켄답게 늘씬한 몸매에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를 가진 귀여운 아가씨다. 그녀는 대학 졸업반을 다니다가 스카웃을 당했다고 한다. 드라켄은 보통 운동선수로 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마기 엔진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수학이나 물리학 연구소가 설립될 때에도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미래전략실에선 뭐랍니까? 회장이라지만 아닌 것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될 텐데.”

스코달은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다. 대학 부설연구소에서 마나 관련해서 기초과학을 연구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A&A의 연구소에서 마나추진 엔진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입장에선 사기업에 불과한 A&A가 돈을 투자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회장의 독단일까? A&A는 주식회사가 아니고 개인회사다. 즉 회장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선 돈을 빌려야 하므로 법인을 만들어 이사회를 구성하는 편이 신용도 상승에 좋다. 게다가 세금 측면에서도 혜택이 있어 개인기업은 손해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A는 여전히 개인회사로 남아 있었다.

“미래전략실에서 추진했다고 하는데요. 비밀이라지만 다들 알고 있어요.”

“…”

A&A의 치명적인 단점 하나가 바로 보안을 코 푼 휴지만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밖의 도로로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크 회장의 전용차인데 놀랍게도 운전석 뒤에 누가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바가 반쯤 열린 블라인드를 젖혔다.

“전에 대학 행사에서 봤는데. 닐스 박사님이던가요? 천문학계의 권위자죠.”

“아예 광고를 하고 다니는군.”

스코달은 허탈하게 웃었다. 늘 이런 식이다. 아크 회장은 닐스 박사와 만나는 장소를 아마 회사의 카페로 잡았을 것이다. 거기에서 둘이 쑥덕거리니 비밀이 유지될 리가 있나.

아무튼 천문학 연구소가 새로이 설립된다는 비밀 아닌 비밀은 여러 직원들의 관심을 잠깐 끌다가 사그라졌다. 아크는 회장실로 닐스 박사를 데리고 왔다. 그는 회장실의 한쪽 벽에 투사되고 있는 태양계의 구조를 보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회장님, 이것은…”

“닐스 박사님께서 주장하신 태양계 구조입니다. 우리의 하늘에서 보이는 달이…여기 있군요.”

달이 크게 확대되었다. 닐스 박사의 연구주제는 다양하지만 주로 달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고 이런 준비를 한 것이리라. 희끗한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가진 노인은 감격에 찬 시선을 아크 회장에게 던졌다.

“이런 걸 제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유는 많지만 제가 밝힐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닐스 박사님, 달에 가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

============================ 작품 후기 ============================

케테르를 저그족으로 만들기는 좀...저는 기계를 좋아하는지라 그쪽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네요. 규소 기반 생명체도 괜찮을듯

전회의 물가에서 1리블은 오타였습니다; 10리블로 정정....

1리블은 그냥 100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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