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8 테라 연방 =========================
테라 연방 - 4
군주의 덕목은 백성들을 굶기지 않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엄청나게 머리를 써도 모자란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근로소득과 불로소득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임금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가? 연봉공개의 장단점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아크가 테라 연방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최대한 공정한 사회다. 결코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거기에 가장 비슷한 곳은 드워프족의 라비리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여성 드워프 엔델린과 마주했다.
“저는 테라 연방의 관료가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폐하.”
신의 앞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당당하다. 아크는 왠지 이 든든한 체구의 드워프 여성에게 주눅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허그를 하면 온 몸이 쥐어 짜일 것 같다.
“폐하께서 재정관리부를 맡길 인재를 찾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감히 저를 추천하겠습니다. 저는 라비리스 전체를 경영하고 다른 국가와 대규모의 교역을 추진해 성공시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이 대륙에서 저보다 더 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폐하.”
자기 홍보에 거침이 없다. 아크는 엔델린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재정관리부 장관 후보자를 만나본 결과 어째 전부 다 연약한 학자풍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전체적인 방향성은 폐하의 명령에 따르겠지만 재정관리부의 장관이 되면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한다?”
“그렇습니다. 개량된 M링크를 적극 이용, 은행끼리 묶어 대출을 투명하게 합니다. 모든 회사의 매출과 순익 등을 기록하게 해서 재무상태를 공개하게 합니다. 물론 소규모 기업에까지 이를 적용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중요한 몇 가지는 관공서의 M링크에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모든 근로자의 임금도 투명하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엔델린은 이 시대의 드워프, 사람치고는 대단히 혁신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아크는 이 당찬 여성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정관리부 산하에 세금을 전담하는 기관을 두어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르마 제국과 거래해본 결과, 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은 돈으로 돌아갑니다. 제게 재정관리부를 맡겨주신다면 힘차게 일하겠습니다!”
여장부다운 포부라고 해야 할까. 아크는 엔델린의 태도에 감탄했다. 마음속으로는 거의 그녀로 낙점한 상태였지만 마지막으로 물어보기로 한다.
“외적인 성장과 내적인 복지, 여기에 대한 그대의 의견을 들어보지,”
애플파이를 어느 쪽에 많이 분배할거냐는 자극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크와 성향이 맞아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 준 태도는 합격점이지만 성향이 다르면 안 된다. 엔델린은 주먹을 꾹 쥐더니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저희 라비리스를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하도시 라비리스는 상당히 폐쇄적인 곳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닙니다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래왔습니다. 저희 드워프족은 모든 것을 나눕니다.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재물을 나누지요. 그 가운데 소외되는 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일을 하는 한, 먹고 살 수 있게 배려합니다. 그리고 대외적인 여러 사업에서도 힘을 합하여 일을 추진합니다.”
상당히 사회주의적인 모습을 띠는 것이 드워프족의 라비리스다. 아크는 그녀에게 물었다.
“드워프들은 흔히 말하곤 하지. 일을 하지 않는 드워프는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복지에 중점을 둔다면 그 과실만 기다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지?”
“노동이 없으면, 복지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 더 상세히.”
“노동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복지정책도 쓰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렇게 해버리면 쓸데없는 노동을 양산할 위험성도 있는데? 예를 들면 하루 종일 문을 열어주는 직업 같은 거 말이지. 분명 노동이긴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직업.”
엔델린은 아크의 말이 예상과 다르자 꽤나 당황한 모양새였다. 넙대대한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다.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런…경우는…연방 정부에서 업종을 지정하면 됩니다.”
“이런 일을 할 경우 노동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이야기군. 공무원들이 늘어나겠는데? 정부 지출은 커지겠고.”
“일정 한도까지는 정부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규모를 줄이면 민간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폐하의 연방은 인구수 3억을 넘는 거대한 집단입니다. 이를 어찌 통제하시겠습니까?”
아르마란 치트키가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제외하도록 하자. 아크는 엔델린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가 재정관리부를 맡을 적임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아르마가 동의했다.
‘드워프와 라비리스는 상당히 전체주의적 면모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비리스가 개방된 이상 그런 색채는 옅어질 것이며, 특히 엔델린은 자금에 대한 통찰력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일을 맡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스운 일이다. 아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가 아닌가 말이다. 그는 신황제로 집권함으로써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이로써 대륙은 아크가 제시하는 목표를 향해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달리게 될 것이다. 빠른 발전이야 가능하고 아르마의 조언을 받을 것이므로 올바른 방향일 테지만 개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중에는 독립시킬 거니까.’
그는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지금 대륙을 장악한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라고. 많은 독재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며 권력을 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한의 수명을 지니고 막대한 힘을 지닌 자가, 이렇게 골치 아픈 권력에 몰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보다는 한적한 자연에서 동물들을 벗 삼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한 10년…길어야 20년…’
그 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방의 주를 독립시킬 것이다. 물론 순순히 떨어져 나가려 하지는 않겠지만 나름의 방법이 있다. 아크는 아르마에게 말해 도망친 에페드람 왕자와 주변 인물들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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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증명해야 한다. 수많은 나라의 역대 국왕과 황제들이 민중에게 자신의 치적일 선보일 목적으로 많은 선심성 정책을 쓴 것에 비하면 신생 테라 연방의 신황제 아크는 이런 점에 있어서 조금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 원인은 정치, 사회, 경제 기타 모든 분야를 뿌리부터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연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보다 편해지고, 굶을 걱정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워낙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서 테라 연방은 눈에 확 띄는 치적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이 시대 사람들 기준에서는 그렇다.
50년, 100년 후쯤 역사가들이 테라 연방의 초창기를 분석한다면 대단히 후한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아크는 아르마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마력열차를 개통하기로 했다. 수만 대의 오토마톤이 대륙을 관통하는 선로를 깔기 시작했다.
대륙의 동쪽 왕국에서 개발하고 있는 열차를 본 아크는 탄식했다. 이렇게 끔찍한 물건일 줄이야.
“초창기의 증기기관차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그것이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물건이 형편없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아르마가 바닥에 놓여 있는 열차를 슬쩍 밀었다. 객차에는 사람 몇 명이 앉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아니, 이 물건을 열차라기보다는 마차에 가깝다. 뒤에 모터가 달려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하긴 초창기니까…조종계를 만드는 게 어려웠던 모양이지?”
“조종계를 만드는 데에는 꽤나 수준 높은 기계공학이 필요합니다. 부유석을 쓴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20-30년은 더 흘러야 수송용으로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크는 슬쩍 아르마 곁으로 다가갔다.
“단시간에 자동차 산업을 일으킬 수는 없으니 당분간은 열차가 그 역할을 해줘야겠지. 비공정은 어때?”
“비공정은 확실히 괜찮은 수단입니다. 선로를 깔지 않아도 되니 투자되는 자금이 현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작난이도는 열차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수송량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긴 부유석 용량에도 한계는 있으니까…배는 당분간은 장갑함 정도로 충분할 테고. 일단 쓸 만한 조종계를 만드는 게 먼저겠구만.”
“마력열차와 비공정 제작에 관한 문서를 수송국에 넘기겠습니다. 로드맵에 따라 연구하다 보면 결과물이 나올 것입니다.”
“그보다는 말야…지금 당장 뭔가를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아. 커다랗게 달리는 뭔가가 필요해.”
“지금 당장 말씀이시지요?”
“그래, 1개월 이내에.”
“준비하겠습니다.”
한편 아크는 농림축산진흥부 장관에 크레아스를 임명했다. 그는 자이언트족으로, 농업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제국대학에 진학한 학구파라고 할 수 있다. 자이언트족 자체가 농업에 관심이 많은 종족인데 그는 그것을 크게 발전시켜 대규모 자영농으로 발돋움한 성과를 자랑했다.
아크는 그와 면담한 뒤 연방의 농림축산진흥부 장관을 맡길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땅과 작물을 사랑하지만 외골수는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둘은 몇 명의 행정관들을 데리고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농장을 둘러보았다. 아크는 대륙의 수많은 농장과 양돈장, 양계장 등을 체계화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걸 이뤄낼 적임자는 역시 크레아스밖에 없다. 그는 과감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인재였다.
“일주일 후면 개량된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습니다. 부서 산하에 농업기술국을 만들어 앞으로도 종자 개량에 힘쓸 계획입니다.”
아크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륙의 땅을 개간하는 부서이고 아직까지 사회의 주류인 농업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매우 부담이 클 것이다. 하지만 크레아스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테라 연방의 관료진이 대거 임명되었다. 행정기관 산하 조직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졌고 이들의 정책이 대륙 구석구석에 비로소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인구수 3억이 넘는 덩치에 비하면 의사결정속도가 엄청나게 빠른데, M링크를 대량 생산해서 관계부처에 배부했기 때문이다.
대륙 전체를 지배해야 하는 만큼 각 주와의 통신망은 필수적이다. 아크는 통신망에 대해서만은 아르마가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하여 연방의 관료들은 수천km는 떨어진 대륙 반대쪽과 실시간 회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연방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아크는 바다에 사는 종족, 세이렌과 나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다. 과거 바르마 제국이 외양에 진출하면서 나가들과 치열한 교전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장갑함과 마력포로 무장했고, 나가들의 연약한 전투력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제 경쟁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되어야지.’
나가들은 험상궂고 세이렌들은 교묘하다.
하지만 그게 멸종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크는 두 대륙 사이의 바다로 건너가 월드 엔진과 동기화해 모든 세이렌과 나가를 불러 모아 그들을 칼리노어 대륙 너머의 수많은 섬들로 이주시켰다. 그곳은 아직까지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원시적인 곳으로, 심지어 어선조차 닿지 않은 곳이다. 중간에 무풍지대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타이탄을 구동할 만큼 모터에 대해 기술이 진전되어 있지만 선박에 적용할 정도는 아니라서 대부분의 배는 돛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돛이 없으니 무풍지대를 뚫고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바르마 제국도 몇 척의 배를 잃은 후에는 서쪽 섬들에 대한 탐사를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인류는 아직 갈란테 행성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가 많이 남아 있다. 그것들을 모두 손아귀에 넣느냐는 이제 아크의 의지에 달렸다.
‘칼리노어 대륙 서쪽 미개척지와 수많은 섬들은 후예들을 위해 놔두도록 하자.’
그리고 남극과 북극까지도.
아크는 월드 엔진과 동기화한 김에 대기권을 돌파해 행성 갈란테를 내려다보았다. 두 개의 대륙과 수천 개의 섬, 그리고 남극과 북극이 전부다. 이 모든 자연은 이제 당분간은 아크의 지배하에 있겠지만 점차 인류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아크는 그때까지 이 모든 자연을 잘 보존해야 한다.
‘거기에…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아크는 네 마왕의 의식을 불러서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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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지루한 챕터가 끝났습니다.
드디어 김성철 헤러시를 일으킬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