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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38화 (138/217)

00138 혁명의 시대 =========================

혁명의 시대 - 7

“혁명이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오던 것을 통째로 뒤엎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란 어떤 건지요?”

“계급제, 국왕과 귀족의 토지 소유, 거대한 부를 가진 상인과 군대…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입니다.”

“뒤엎는다면, 그 모든 것들을 배제한다는 겁니까?”

“모두 다 쳐내고 새로 시작할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혁명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에페드람 왕자는 여린 외모와는 달리 굉장히 과격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유혈혁명. 그는 유혈혁명을 바라고 있었다. 권력을 쥔 자에게 권력을 내놓으라고 해봐야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래서 폭력을 행사에 강제로 권력을 빼앗는다는 것이 그의 사상인 모양이다.

아크는 그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에페드람 왕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이 몇 없었다며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동굴 안에 그녀, 아니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귀족이 귀족일 권리, 왕이 왕으로서 존재해야 할 권리를 누가 주었다는 거지요? 소수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면 능력은 거의 다 비슷할 텐데, 단지 혈통을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 년 동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이 내려주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크님. 신이란 건 말입니다. 사람들의 상상이 만들어 낸 존재일 뿐입니다.”

신을 부정하는 자.

아크는 무신론자를 처음 만나본다. 과거에도 신의 존재에 대해 시큰둥한 사람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계시가 내려오고 온갖 희한한 기적이 일어나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아크가 활동을 중지하면서 점차 에페드람 왕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인격신 같은 존재보다는 마나라는 에너지 자체가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라, 신이 있는가? 있으면서 마왕과 미궁, 그리고 마족의 땅을 방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우리가 무능한 신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 재앙들을 방치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우리가 그를 믿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주신 아크가 우리에게 해준 것은 주경 같은 소설 속에서나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도 있지만 아직은 유신론자가 압도적이다. 줄리아와 같이 식사 전에 기도를 올리고 주신 아크를 믿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에페드람 왕자는 아마 그 분야에서 선구자가 될 것이다.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그래서 아크, 유지하가 진짜 신이냐고 묻는다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지구인이고, 갈란테 행성에 소환되어 왔다. 외계인들의 초과학을 어쩌다가 통째로 이용할 수 있게 된 일반인에 불과하다.

언제쯤이면 인류가 아크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까. 아르마는 갈란테 행성이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약 6천 2백 년 후에는 칸나이족의 본성과 같은 수준의 기술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블랙박스를 조심해야 한다면서 거기까지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에페드람 왕자는 무신론자이며 혁명론자이다. 아크는 이렇게 과격한 사상을 가진 사람을 처음 본다. 부정한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처음 봐서 다소 신기했다.

“권력을 빼앗은 다음에는 무엇을 하느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겁니다. 시민으로써 세금을 낸다면 누구나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런 보통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회를 만들 겁니다. 저는 그것을 바랍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엘리트 계층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의 편중은 어찌하시렵니까? 그들은 돈이 많기에 모든 면에서 기회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그들이 엘리트로 성장하고, 사람들의 지지를 모으겠죠.”

“그건…음…”

거기까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에페드람 왕자는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권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중에는 결국 부가 권력이 된다. 거기에 대한 해답이 있냐고 묻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아크도 딱히 해답이 있는 건 아니다.

‘후대의 일은 후대의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개입할 필요는 없다. 의식은 하나뿐이라서 모든 일에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

한편 아크는 에페드람 왕자와의 대화에서 적지 않은 것을 느꼈다. 드디어 이런 사람이 나타났구나, 하는 신선함이랄까. 사실 줄리아처럼 무작정 신을 찬양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보다는 에페드람 왕자 쪽이 보는 재미가 있다.

약간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에페드람 왕자가 은근히 아크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저…아크님.”

“예.”

“굳이 아크님이 마법사라고 하셔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저는 이런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말이 통한다고나 할까요? 이제야 제 짝을 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위험하다. 에페드람 왕자는 볼을 붉히곤 한차례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서 말입니다만…혹시…”

“아, 저는 바르마 제국으로 건너갈 예정입니다.”

미리 선수를 치자 왕자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시무룩해진다. 아크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당분간은 출항이 어렵다고 하니까, 좀 도와드릴 수도 있겠죠.”

왕자의 얼굴이 다시 환해진다. 마법사란 존재는 현시대에 대단히 희귀한 존재였다. 분명 역사에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렇게 희귀하진 않았다고 하는데 어느 새인가 마기 로직을 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희귀종이 되어버렸다. 에페드람 왕자도 마법사는 처음 본다.

아무튼 그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뜬다.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아크님께서 도와주신다면, 혁명을 반드시 완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혁명의 대상이…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골란 왕국의 국왕이신데.”

아들이 아버지를 친다. 패륜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왕자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욕을 먹어도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선 그간 너무 많은 것을 탐하셨죠. 우린 바르마 제국에서 독립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를 도와줄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아크님을 포함해서요.”

너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것도 부담스럽다. 아크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나저나 에페드람 왕자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다. 일종의 공화정을 만들겠다는 계획 말이다. 이게 칼리노어 대륙 동해안의 국가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용납하느냐, 아니면 진압하느냐.

.

.

.

히드라 용병대의 타겟은 장갑함이 아니었다. 대담무쌍하게도 그들은 왕궁을 점령하겠다고 나섰다. 골란 왕국은 바르마 제국의 입김으로 왕국기병대를 포함해 최소한의 군사력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장갑함 호위작전을 펼치는 사이 왕궁에 들이닥치겠다는 계산이다.

차기 계승권자인 에페드람 왕자가 왕궁을 점령하기만 하면 그 호위병력들은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을 것이라는 게 용병대의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민간에 퍼진 장갑함 운운은 미끼인 셈이다.

다만 부두 쪽에 행동이 없으면 의심을 하게 되므로 양동부대를 파견해 최대한 소란을 피우도록 계획을 짰다. 여차하면 바로 도주해야 하기에 특히 발이 빠른 뿔새를 배치하고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서 용병들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계획에는 에페드람 왕자를 지지하는 꽤 많은 세력의 도움이 있었다. 그 중에서 리치몬드 상단의 문양이 눈에 띤다.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니.’

이제 리치몬드 상단이 아니라 무역회사로 불리고 있었다. 하여튼 징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아크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한 200년 뒤에는 리치몬드 콘체른이라 불릴지도 모르겠어.’

이번 계획에서 아크의 역할은 장갑함을 탈취하려는 타칭 불순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스토머는 아크가 전면에 나서기를 원치 않았고, 후퇴하는 것을 측면에서 지원해주는 선이 알맞다고 판단했다.

왕자는 은근히 왕궁공략에 동행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건 아크가 거절했다. 그의 속셈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장갑함이 먼 바다에서 해안가로 접근해 들어왔다. 히드라 용병대에게 협력하는 수많은 용병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크는 줄리아가 이끄는 기병대와 함께 부두 인근의 야산에 숨어 있었다. 장갑함이 입항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끄는 것입니다. 장갑함을 호위하는 병력이 왕궁으로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가 우리의 숫자가 드러나면 안 되겠지요. 각자, 사전에 계획한 대로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예.”

용병들이 조용히 대답한다. 간단히 말해서 치고 빠지면서 호위병력을 혼란시킨다는 계획인데 타이탄이 최대의 변수였다. 만약 놈을 작동시킨다면 그때부터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야 한다. 줄리아는 아크에게 혹시 타이탄의 이목을 가릴 수 없냐고 물었다.

“음…지금 말 할 수는 없는데 하여튼 타이탄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해 주지.”

“어떻게? 워치프급 타이탄의 공격력은 장난이 아닌데.”

“그냥 그런 줄 알고 계획 진행해. 절대 피해 입지 않도록 해줄 테니까.”

“알았어.”

아크는 장갑함에 실려 온 타이탄을 몰래 빼낼 생각이었다. 인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떤 기술로 타이탄을 만들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심각한 단점이 존재한다면 수정해서 돌려줄 의향이었다.

‘참, 나한테도 마기 엔진으로 쓸 만한 녀석이 하나 있었지.’

화이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가 있다. 원래는 타락했던 녀석이지만 정화해서 이제는 마기 엔진의 대용품으로 쓸 수 있다. 그 출력은 인류가 만든 센추리온급은 물론이고 콜로서스와 비교해서도 엄청날 것이다. 그걸 이용해서 신형 타이탄을 만들면 상당히 멋진 녀석이 나올 것 같았다.

부우우욱―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서히 해안가로 들어오는 장갑함과 등대에서 빛이 번쩍였다. 어디로 들어오라고 신호를 하는 것이다. 야산 뒤에 숨어 있던 뿔새를 탄 용병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리아도 아크에게 재차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아크는 하늘로 올라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아르마가 친절하게도 모든 인원의 움직임을 화면으로 나타내준다.

‘호위병력 약 238명의 위치를 표시하겠습니다.’

‘무장 수준은 어떻게 되지?’

‘권총과 장총이 대부분입니다. 마력포는 접안시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갑함 빼고 마나의 흐름 전부 차단해. 히드라 용병대와 지원부대도 빼고.’

‘차단하겠습니다.’

아르마가 통제하는 월드 엔진의 기능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나의 흐름을 차단하는 기능이 특히 쓸 만하다. 안티 매직 쉘 마법과 거의 비슷한데 이쪽은 마나의 흐름 자체를 완전히 차단해 버리므로 타이탄이나 마력포조차 고철덩어리가 된다.

장갑함 호위병력의 공격력을 거세했으므로 히드라 용병대가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아크는 그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유유히 타이탄을 훔쳐 도망가면 된다.

이윽고 장갑함이 부두에 들어왔다. 불빛이 여기저기에서 켜지며 소란이 일었다. 일단의 무리들이 장갑함 위에 덮여 있던 두꺼운 천을 벗겨내었다. 총소리가 들리자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크는 그들의 외침을 들었다.

“놈들이다! 타이탄 작동시켜!”

“주, 중위님! 마기 엔진이 꿈쩍도 않습니다!”

“뭐? 대체 무슨 소리냐? 다시 시도해! 점화석을 확실히 꽂으란 말이야!”

“안 됩니다! 먹히지 않습니다!”

“비켜! 내가 할 테니까!”

탕탕탕!

호로로로로로로―!

히드라 용병대는 일제히 총을 쏘며 뿔새를 몰았다. 그에 대응해 부두에 나가 있던 호위병력이 총을 쏴댔으나 어찌된 일인지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대혼란이 일어났다.

장갑함 위에서는 장교 두 명이 타이탄과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병사들은 황급히 무장을 갖추고 갑판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혹시라도 적이 승선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에라이! 하여튼 고물딱지는 어쩔 수 없다니까!”

급기야 두 장교는 움직이지 않는 타이탄에게 발길질을 하며 갑판에서 내려갔다. 긴 장갑함을 운용하는 선장 휘하 선원들은 아마 선실에 숨어 있을 것이다. 아크는 그제야 조용히 밑으로 내려갔다. 워치프급 타이탄이 누워 있었다.

“흐음…작동시간이 짧을 것 같은데.”

‘바로 보셨습니다. 마나석과 마기 엔진을 연결하는 로직이 비효율적입니다.’

“마력포도 위력이 어째…”

‘센추리온급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마기 엔진에 대한 개선점은 거의 없으며 마나석을 늘려 출력을 증강시킨 모델입니다.’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다니.”

아크에겐 타이탄에 새겨진 마기 로직이 바로 보인다. 수백 년 동안 마기 로직을 다뤄왔기에 어디가 잘못되었고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참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도와주는 수밖에.”

무기 부분은 제외하고 마기 엔진만 좀 고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크는 힘으로 타이탄을 들어 올려 차원에 집어넣었다. 20톤이 넘어가는 타이탄이 장갑함 갑판 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음 뭔가 리플이 많이 달리긴 했는데

지금 와서 제가 뭐 이러쿵 저러쿵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고...

하여튼 그만들 싸우셈...

떡씬에 관한 것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재능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더 끈적끈적하게 하고 싶긴 한데 주인공놈을 덤덤충으로 만들어 놔서...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적했듯이 여캐들이 전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몰입도 잘 안되죠...저로서는 또 분량을 생각해야 하는지라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해 버리면 글의 전개가 개판이 되니...

그냥 이 글의 특징이 이런 걸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은 신의 일대기, 혹은 일기장에 가깝습니다. 주인공이

천 년 이상을 살면서 겪을 사건을 풀어가는 거죠.

하여튼 이 챕터도 끝났고 다음은 마왕들의 얘기가 좀 나오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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