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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35화 (135/217)

00135 혁명의 시대 =========================

혁명의 시대 - 4

며칠이 지났고 줄리아의 아크에 대한 평가는 무해해 보이는 사람에서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남자로 바뀌었다. 아니, 모든 일에 숙련된 솜씨를 보이는 멋진 남자가 맞다. 그가 하는 작업에서 어설픈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는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는데…’

최대의 미스터리는 이것이다. 아크의 나이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20대 중반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뿔새 타기, 낚시, 수영, 기병총 손질, 요리, 가구 만들기, 여기까진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그가 여유분이 있다면서 마나석을 꺼내고 파편을 쪼개 마나약을 제조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황당해졌다. 이런 공방 수준에서 총알을 제조한다고?

물론 총알 제조에 큰 기술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소도시에서도 기술자 한 명이 재료를 모으고 만들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숲에서 사는 사람이 만들 수 있을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방금 만들어진 총알은 꽤 따끈따끈하다.

“나도 기병총이 하나 있지. 기병대 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러면서 차원주머니에서 기병총을 스윽 꺼내는데 이쯤 되면 환장할 지경이다. 줄리아는 아크가 생각보다 더 신비로운 남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단견으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생각했다.

탕탕, 탕!

둘이 사격술을 겨뤄본다. 거기서도 줄리아는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의 사격술은 정말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200보 정도의 거리에서도 탄착군에 흔들림이 없다.

‘군에 있었나?’

기병총은 뿔새에 타고 쏘기 위해 권총을 개량한 것이다. 탄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강선을 팠고 위력을 올리기 위해 실린더를 키워놓았다. 거기에 총열을 상대적으로 길게 해놓았다.

권총에 비해 긴 총열은 다루기가 힘들지만 위력과 명중률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다. 따라서 기병총은 무겁다. 한 손으로 기병총을 다룬다는 것은 어지간히 힘이 센 사람이 아니면 무리다.

이런 식으로 같이 놀고 식사하고 잠을 자다보니 은근히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뭐하는 사람일까? 아크는 절대 촌사람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는 부드러웠고 여성인 줄리아를 배려할 줄 알았다.

어떻게 보면 꽤 많은 여자를 만난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오두막에서 줄리아와 지내면서 훔쳐보거나 흑심 하나 품지 않는다는 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꽤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여자는…많이 만나봤겠지. 이 숲에 들어온 지 오래 되지는 않았다고 하니까.’

무엇보다 그와 있으면 즐겁다. 군에서의 꽉 짜인 스케줄 따라 행동하고 훈련받는 것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줄리아는 호수를 바라보며 긴 의자에 다리를 뻗고 앉아 기지개를 켰다. 온 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아…좋다…”

“뭐가 그리 좋아?”

아크가 그녀의 볼에 따뜻한 음료수를 대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곤 눈을 흘기며 잔을 받았다. 안에는 초콜릿을 우유에 탄 음료가 들어 있다. 이건 대단히 맛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아크,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이 잔 말이야…이거 뭐지? 유리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것 같은데…”

“이거? 특수한 금속이라고 할까. 금속이라고 보기엔 좀 그렇지만 나는 일단 마나스틸이라고 부르고 있어.”

“마나스틸?”

“드워프들이 발명했다고 그러던데.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줄리아는 그런가, 하고 초콜릿 음료를 마셨다. 달고 맛있지만 자주 먹으면 살이 찐다는 아크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하루 한 잔으로 타협을 보았다. 아크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줄리아는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어디에선가 나타난 사냥개 딩고가 둘의 의자 사이에 앉았다.

“여긴 참 평화롭네. 몬스터도 없고.”

“처음에는 좀 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 도망가더라.”

“아크 당신은 그렇게 무섭게 생기진 않은 것 같은데…”

“어흥!”

아크가 갑자기 얼굴을 확 들이대며 위협했다. 줄리아는 놀래서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는 대답하지 않고 태연히 초콜릿을 마셨다. 심통이 난 그녀는 발로 아크의 다리를 슬쩍 건드렸다.

“맨날 심술만 부리고 설명은 제대로 안 해주네.”

“나도 모르니까 그렇지.”

“거봐, 또 모른데. 모르는 게 많으면서 아는 건 또 왜 그렇게 많아?”

우스운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아크는 모르는 게 없었다. 줄리아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아, 그건 이렇고 저렇다고 얘기를 해준다. 몰랐던 내용이 많아 줄리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수밖에.

그러나 자세히 들어가면 그건 잘 모르겠다고 슬쩍 발을 뺀다. 그녀로서는 뭔가 비밀을 파헤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렇듯 한 발을 빼버리니 허무해지는 것이다.

‘진짜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알면서 모른 체 한다는 느낌이 팍팍 풍겼다.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퇴로를 마련한다는 느낌이다. 줄리아는 한동안 아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품을 했다. 이제 겨울이 다가와 제법 기온이 내려갔지만 이글이글 불타는 마법로가 있어 주변은 따스하다.

“…”

줄리아는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아크는 잠든 그녀를 안에 오두막 안에 데려가 방에 뉘였다. 딩고는 자기 집에 알아서 들어갔고 뿔새 두 마리의 보금자리를 정돈해 둔 다음 벽난로 앞에 앉았다.

“술이나 마셔볼까.”

차원문 열기 스킬로 무한의 차원 주방에서 술을 한 병 꺼낸다. 지금은 멸망한 발리노어 대륙의 한 왕국에서 만든 것으로 향과 맛이 대단하다. 어찌나 술이 괜찮았는지 전성기에는 리치몬드 상단의 주력 상품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명맥이 끊긴 지금 제조법을 아는 사람은 아크 한 명 뿐이다.

“좋구만.”

안주로는 얇게 썬 훈제 사슴고기가 괜찮을 것 같다. 술을 홀짝홀짝 들이키면서 고기를 집어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크는 마법책을 꺼내 미르위키에 줄리아와 그 혁명가 왕자에 대한 것을 간략하게 기록해두었다. 한참 동안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줄리아가 방에서 나왔다.

“뭐야…뭐하고 있어?”

“한 잔 하고 있는 중이야.”

“나도 좀 줘.”

같이 생활하면서 느는 것은 뻔뻔함 뿐이다. 줄리아는 아크 옆에 찰싹 붙어서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맑은 술을 받고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향 좋다. 이거 무슨 술이야?”

“아이스와인.”

“보통 와인하고는 다른 거야?”

“다르지. 포도를 다루는 방법이 달라.”

“흐음…”

줄리아는 한참동안 코끝에 향을 머물게 하다가 한 모금 들이켰다.

“우와, 달아…나 술이 이렇게 단거 처음 먹어봐.”

“그래도 맛있지?”

“응.”

둘은 연인처럼 아이스와인을 들이켰다. 그녀는 사슴고기가 술에 잘 안 맞는다고 잔소리를 해댔고 아크는 하는 수 없이 비장의 무기인 치즈 올린 크래커를 가져다주었다.

볼 한가득 안주를 넣고 와삭와삭 씹는 걸 보면 무슨 먹을 것에 한이 맺힌 귀신같다. 그녀는 마구 씹다가 아크를 보고는 헤벌쭉 웃었다.

“아크.”

“응?”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지?”

“계속 있어.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

“근데 사실 난 갈 곳이 없거든. 집도…직장도…다 골란 왕국에 있으니까.”

그녀는 왕자를 빼돌린 반역자다. 골란에 돌아 가봐야 사형을 당할 것이다. 선택지라곤 교수형과 총살형 둘 중의 하나라고 키득거렸다.

“웃기지. 왕자님은 빠져나가고 난 총알 맞고 헤매다가 여기로 왔으니까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여자가 남자에게 목숨을 바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면 가능하다.

“에페드람 왕자를 좋아했던 모양이지?”

“…”

줄리아는 잠시 침묵하고는 술잔을 흔들었다. 아이스와인이 찰랑찰랑 흔들리며 그녀의 눈동자를 비춘다.

“예뻤어. 여자보다 더…진짜 인형 같은 남자였어. 그래서 인기도 많았고…나도 그에게 충성을 바쳤지. 내 임관식 때 와 준 왕족이었으니까.”

“휘유, 그건 대단한데? 초급장교의 임관식에 온 왕자라.”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주위에선 거의 공인된 커플이나 마찬가지였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하지만 왕자님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봐. 날 미끼로 썼으니.”

요컨대 줄리아가 왕자를 탈출시키기 위해 미끼로 쓰인 것은 그녀의 의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급한 상황, 불가항력적인 분위기, 왕자의 애청, 히드라 용병대의 재촉…이 모든 것이 그녀를 사지로 내몬 것이리라. 줄리아는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되어버렸지 뭐야. 집도 갈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

“왜 갈 곳이 없어. 여기 있으면 되지.”

그 말에 줄리아의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 그녀는 아크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잠시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벽난로가 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그녀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바로 세웠다.

“근데 아크 몇 살이야? 말하는 거 하고 생활하는 거 보면 도저히 나랑 같은 20대로는 생각되지 않는데.”

“아마 줄리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많을 거야.”

“음…내가 맞춰볼까? 29살?”

“글쎄?”

“설마 30대야?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예전에 비해 인간의 수명도 많이 늘었다. 40-50대밖에 되지 않던 평균수명도 여러 구황작물과 치료법의 등장으로 인해 10년 가까이 늘었다. 옛날의 30대와 요즘의 30대는 느낌이 다르다. 아크의 얼굴은 아무리 뜯어봐도 20대 청년의 그것이었다.

줄리아는 손을 뻗어 치즈를 집어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농후한 풍미가 그녀의 혀를 흠뻑 적신다. 에페드람 왕자와 같은 왕족들은 이렇게 맛있는 치즈를 즐겼을까?

“아크, 나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지?”

“내가 몇 번이나 말한 거 같은데? 있어도 된다고.”

“알아, 그냥…아크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줄리아의 옆모습은 조금 슬프게 보였다. 믿고 의지했던 왕자에게 버림받고 이제 갈 곳이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으니 오죽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크의 오두막에 도착했다는 점이다. 몸을 추스르고 다시 도시에 나가면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은 남겨둘 테니까 여기서 살아도 돼.”

“남겨둔다고? 아크는 어디로 갈 거야?”

“바르마에 가볼까 생각중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구나…바르마라…하지만 요즘은 힘들 텐데. 바르마 쪽에서 골란 왕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랬거든. 장갑함 입항 숫자도 꽤 줄었고…어쩌면 입국 자체를 제한할지도 모르겠어.”

“나름대로 방법은 있지.”

지금 당장 차원문을 열어 바르마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오랜만의 외출이라 걸으면서 사회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아르마가 전해준 정보만 듣고 세상을 판단했다. 이제 직접 피부로 느껴보고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나 확인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요즘은 과거와 달리 신분 확인을 꽤 열심히 히는 시대다. 예전 같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수상한 자로 체포될지도 모른다. 명확한 국적과 신분, 거주지가 있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아크가 활동하기엔 약간 어렵지만 큰 문제는 없다. 위조하면 되니까.

“그…나도…아크와 같이 가면 안 될까?”

줄리아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녀로선 큰 용기를 내었을 것이다. 짐덩이가 되겠다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크는 그녀에게 물었다.

“히드라 용병대에 왕자가 갔다며? 거긴 안 찾아보고?”

“지금 찾아가봐야 뭘 어쩌겠어. 되려 기병대에 붙잡혀선 정보를 다 분 스파이 취급하겠지…날 받아주지 않을 거야.”

보아하니 히드라 용병대는 골란 왕국에서 활동하는 혁명세력인 모양이다. 뭘 혁명한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라에 좋은 명분은 아닐 테니까. 추적망을 열심히 피할 수밖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줄리아가 그들을 찾아온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결코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아크가 괜찮다는 말을 꺼내기 전, 아르마가 경고를 보내왔다.

‘마스터, 검은 숲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습니다.’

============================ 작품 후기 ============================

세계석에 박는다뇨 흠흠...아르마라는 이름이 있는데...아참 별 상관은 없지만

일단 여성체이긴 합니다. 흠흠...

이미 4단계 조건 3개 중에서 2개를 달성한 상태이므로(인증완료)

인연 만들고 떡치고 해도 상관없습니다아~

운빨x망겜이라고 해도 프로는 있잖아요...

아크는 그냥 평범한 얼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당.

피부는 좋은 편이고, 이목구비가 약간 흐릿하지만 모난 구석은 없음...

응? 이게 훈남인가?

바르마의 모티브는 짬뽕입니다. 지금은 중국+러시아 정도?

마왕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르마가 더 잘 알고 있죠...괜히 정보 캐다가

블랙박스 건드려서 본성에 알려지면 ㅎㄷㄷ

아크의 오두막에 온 자는 떡을 치면 빠져나갈 수 있죠! 여자만...

요즘 연재주기가 들쭉날쭉해서 죄송합니다. 연재 3개월째고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추석도 다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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