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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28화 (128/217)

00128 세계석 =========================

세계석 - 8

슬러스는 한참동안 정보를 털어놓고서는 돌아갔다. 아크는 멍한 상태로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무한의 서고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들은 정보를 낱낱이 기록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외계인이라는 거군.’

칸나이족은 성인이 되면 방주를 타고 우주를 방랑하는 종족이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어 갈란테 행성에 불시착했고, 방주는 박살이 났다. 대부분의 칸나이족은 그 사건을 계기로 몽땅 죽어 영혼으로 승천했다. 칸나이족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를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발리노어 대륙의 문명을 발전시키겠다 이거지.’

그들은 영혼이기에 세계석, 즉 방주의 월드 엔진을 완전히 컨트롤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신을 자청하고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존재를 데리고 와 힘을 주어 세상을 이끌도록 한다. 스탯창이나 스킬 등의 시스템을 준 것은 모든 것을 수치화해서 쉽게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월드 엔진은 방주의 에너지원이자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것의 존재로 인해 마나가 만들어졌고 마법과 마법공학이 탄생했다. 아크는 거기까지 기록한 후 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칸나이족의 최종목적은 둘, 하나는 문명의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과 육체의 통합이다.’

영혼과 육체를 통합해 마침내 월드 엔진을 완전히 다룰 수 있는 진정한 칸나이, 그러니까 전능신을 만든다. 전능신만 만들 수 있다면 발리노어 대륙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시켜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하필 왜 아크였을까. 대륙의 아인종으로는 불가능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들이 창조한 피조물의 육체 안에 들어간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라만툴과 아크를 다른 차원에서 데려왔다. 아크는 이 대목에서 칸나이족들의 유치함에 웃을 수 있었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형을 선택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당연하게도 아크는 말 잘 듣는 인형이 아니다. 인간성은 거의 버렸지만 답답하면 가끔 짜증을 내기도 한다.

종합하면, 유지하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외계인들 때문에 갈란테 행성으로 소환되었다. 최종적으로 초월 3단계를 달성하고 신, 그러니까 칸나이족으로 인정받아 세계석을 장악한다. 마지막으로 여러 신들과 영혼과 몸이 하나 되어 전능신이 된다. 그 후로는 해피엔딩. 대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니까 세계석을 만나는 시점이 중요하다는 거군.’

3단계 초월을 이루고 완전한 신이 된 상태에서 세계석, 월드 엔진을 만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AI프로그램은 아크를 칸나이족으로 인식하고 미리 준비된 대로 통합 의식에 시동을 건다.

그러나 반신인 상태에서 만난다면 AI프로그램은 칸나이족이 멸망했다고 생각하고 그 후예로 여겨지는 아크를 주인으로 인식하고 제어권한을 넘긴다.

칸나이족이 멸망했다는 것을 가정하므로 모든 제어권한을 넘긴다는 게 특징이다. 그들의 노예종족이었던 마왕들은 시스템을 다룰 수 없고 세계석 근처의 온갖 방어 시스템을 뚫기가 어렵기에 다가갈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막는 거였구만.’

3단계 초월 달성률이 급속도로 오르는 것도 칸나이족의 계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추종자에게 계시를 내렸다. 주신 아크의 이름을 밝히고 그를 믿도록 말이다. 20년 동안 겨우 차올랐던 추종자 숫자와 영향력 포인트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행동이 아크의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라비리스까지의 거리는 약 1,300km…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놈들의 반항이 심해지겠지.’

아크는 칸나이족과 통합되어 전능신이 되고픈 생각이 전혀 없다. 그의 육체 안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다? 소름이 끼치는 일이고 펄쩍 뛸 일이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기 전에는 칸나이족들이 마음대로 하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최선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한의 서고에서 나가자마자 달리는 거지.’

그냥 달려서 3단계 초월이 달성되기 전 세계석과 접촉하면 된다. 물론 중간에 수많은 몬스터와 케테르, 너그리스 등의 방해물과 만나야 할 것이다. 세계석의 방어 시스템도 조금 신경 쓰인다.

아크는 신격을 가졌으나 쓸 수 없기에 지금은 약간 전투력이 하향되어 있다. 죽어도 마왕들처럼 다시 부활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3단계 초월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까 빠르게 세계석과 접촉하는 게 최우선이다.’

너그리스가 질병을 퍼트리건 말건, 몬스터와 바르마 제국의 군대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건 말건 상관없다. 아크는 달려야 한다.

‘좋아.’

무한의 서고에 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다. 아크는 준비를 끝마친 후 현실세계로 나왔다. 그리고 총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대륙이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역병은 더더욱 기세를 더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사도들에게 지배당한 마르틴 3세는 바르마 제국군을 더욱 가혹하게 전장으로 내몰았다. 대륙의 절반이 역병과 전쟁에 휘말렸다.

거기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8마왕 중 둘이 사도의 꾐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탐욕의 마왕 오제로스, 배신의 마왕 요그로토스가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사도로부터 신들이 처벌하지 않을 거라는 확답을 받고 미궁을 뛰쳐나왔다. 수많은 케테르가 중앙호수 근처에 배치되었다. 바야흐로 대륙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대병력이 세계석 주위에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외곽에 바르마 제국군이 도착했다. 그 숫자는 물경 15만을 넘는 대병력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아크 하나를 위해 준비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아크가 세계석을 찾는 것을 방해한다. 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아크는 세계석에 접근하려면 놈들을 반드시 뚫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사태를 심상찮게 생각하는 것은 아크 하나만이 아니었다.

바르마 제국군과 마왕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던 드래곤들이 하나둘씩 참전했고, 곧바로 D링크를 통해 소식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일치감치 세계석 주위에서 도망 나왔던 드워프도, 자이언트, 스노우 엘프, 실버드가 이 거대한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아크가 세계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너그리스를 집어삼킨 사도는 즉각 역병을 중단시키고 케테르 통제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다른 두 마왕도 수만에 달하는 휘하 병력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4%…’

아크와 세계석까지의 거리는 약 700km. 콜로서스와 온갖 거대한 골렘이 동원되어 그의 앞을 치운다. 바르마 제국군은 마법이 통하지도 않는 거대한 골렘을 보고는 순수하게 경악했다. 그것들은 제국군의 힘이 통하지 않는 신적인 무엇이었다.

“물러서라! 놈의 공격권에 말려들지 마라!”

‘87%…’

공간이 확보되면 즉시 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력 포인트와 추종자 숫자가 오르고 있었다. 카밀라는 리치몬드 상단의 정보를 아크에게 알려주고 케테르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러 떠났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모든 신들이 일제히 성녀와 사제에게 계시를 내려 주신 아크를 찬미하라고 했다고 한다.

‘환장할 일이군.’

지금까지 그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던 영향력 포인트와 추종자 시스템이 이렇게 짐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마침내 부작용이 끝나고 신력이 되돌아오자 기도 듣기 스킬이 반짝거렸다. 옆에는 엄청난 숫자의 기도가 아크가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이걸 열어봤다간 끝도 없겠군.’

언젠가 완전한 신이 되면 사람들의 기도를 듣기로 하고 지금은 봉인한다. 아크는 빠르게, 멈춤 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그의 주위에서는 쉴 새 없이 전투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드래곤을 제외한 이종족들은 자신들의 전투영역을 아크가 벗어나면 재빨리 물러섰다. 어차피 수십만에 달하는 적을 모두 물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아크가 공간을 파고들면 전열을 대비해 즉각 후퇴했다. 역병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아크…조심해요.’

다루사는 텔루리안과 함께 초월기사들을 통솔해 케테르족과의 전투에서 벗어났다. 아크가 방금 이 전장을 빠져나갔으므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북진하는 한줄기 하얀 빛을 보았다. 밤, 라이트 구체를 켜고 빠르게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아둔다. 왜인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블랙 드래곤 카밀라는 이종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들리는 주신 아크라는 존재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크와 같다고 말이다. 즉 이종족들은 지금까지 신의 본체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했다.

특히 40년 동안 아크와 관계를 맺어온 실버드족은 놀라움이 더했다. 아크가 신이라니, 그것도 주신이라니 누가 그걸 믿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카밀라는 농담 따위를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크가 이름 없는 주신이라고 선언했다.

어쩌면 이 모든 사태가 끝난 다음에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한 마음이 다루사를 지배하고 있었다.

디보라는 실버드와 엘프들에게, 아스텔라가 자이언트와 드워프에게 계시를 내렸다. 즉각 아크를 찬미하고 전투에 참가하라고 말이다. 사태가 워낙 커져서 그들의 전투참가는 상황을 뒤집지 못한다. 아크의 추종자가 되어 영향력 포인트를 급속도로 쌓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하여 아크가 세계석이 있는 라비리스 입구에 도달했을 때, 3단계 초월 달성률은 무려 95%에 달하고 있었다.

‘헤일로…멋대로 생겨나는군.’

아크의 머리 위에 헤일로가 생겨났다. 3단계 신이 되기 일보직전이다. 아크는 재빨리 마족들의 방어선을 뚫고 지하도시 라비리스로 진입했다. 엄청난 대병력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기다려라! 나의 주인 오제로스께서 너를 막으라고 하셨…”

오제로스의 그랜드 챔피언이 크로노 트리거 스킬로 사라졌다. 주변에 있던 수백의 마족들은 아크의 마법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허물어졌다. 그들도 엄연히 생명체이므로 승산 없는 싸움은 되도록 피한다.

무엇보다 두 마왕은 신들의 편을 들기는 했으나 전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간을 보고 있었다. 아크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도망가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기다려라. 네놈들도 모두 처리해주마.’

여기까지 오면서 아크는 온갖 마족들의 사탕발림을 들었다. 색욕의 마왕 슬러스는 휘하 서큐버스들을 보내 아크가 자신들과 협력한다면 수백 명의 첩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선언했다. 파괴의 마왕 디아보로스는 아크가 만약 공존을 선언한다면 대륙 전체를 그에게 바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 외의 마왕도 아크의 환심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발버둥 쳤다.

―우리는 언제나 아크 그대가 휘두르는 폭력을 묵묵히 감내해 왔다. 우리를 받아들여다오. 우리는 공존을 원한다. 지상에 내리쬐고 있는 빛을 원한다.

―우리는 아크 그대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자극은 대륙에도 도움이 된다. 문명의 발전은 신들 뿐만 아니라 아크 그대도 원하는 바가 아닌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케테르는 풍부한 마나석을 대륙에 제공할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시오, 주신이여. 칸나이족의 횡포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시오. 세계석을 지배해 진정한 신이 되어주시오.

물론 그들의 사정은 아크에게 개소리로 취급되었다. 적당한 자극은 아인종끼리의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일만 끝나고 세계석을 장악한다면 아크는 칸나이족의 모든 흔적을 갈란테 행성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그들의 노예종족이었다는 마왕들까지 포함해서.

신의 발걸음이 라비리스를 뚫고 세계석으로 향했다. 아스텔라는 드워프들로 하여금 세계석을 숨기라는 계시를 내렸지만 이미 그들은 드래곤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대충 전해들은 상태였다. 그들은 자이언트족과 함께 아스텔라의 계시를 저버렸다.

―세계석은 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한다, 세계석은 숨기지 않는다.

드워프들이 왜 아스텔라의 계시를 저버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들은 라비리스를 폐쇄하고 아크의 발걸음을 방해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비리스의 입구를 연 단 한 명의 드워프 가룸은 호탕하게 웃으며 아크를 들여보냈다.

―어서 빨리 들어가시오! 문을 폐쇄할 거요!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에도 그렇긴 하지만, 아스텔라의 계시가 내려졌지 않습니까?

―흐으, 물론 그렇긴 한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보다는 보이는 신을 중요시하는 족속들이라.

가룸의 두툼한 손가락이 아크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헤일로, 그것이 사방으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가룸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어수룩한 청년이 진짜 신임은 가슴의 떨림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크는 그의 잘려나간 팔뚝 하나를 어루만져주고 떠났다.

―치유될지어다.

―오오, 세상에!

그르르릉!

라비리스의 문이 닫혔다. 지하미궁 곳곳에 라이트 구체가 떠올랐다. 아크는 라비리스에 처음 와본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저 멀리 투명한 알껍질에 감싸인 존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아크의 시야에 하나의 메세지가 떠올랐다.

「초월 시스템 작동 : 세계석 장악」

「초월 3단계 달성까지 98%(100만 명의 추종자와 영향력 포인트 300만이 필요합니다)」

============================ 작품 후기 ============================

흐음 제가 분명 뭔가를 약속한 것 같은데 드릴 말씀이 크흑...

22일부터 진짜 하루 2연재에 들어가겠습니다!

추석이 지나고부터는 가끔 3연재도 해서 그간의 게으름을 벌충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추천의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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