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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21화 (121/217)

00121 세계석 =========================

세계석 - 1

며칠 후, 크로우 용사팟이 먼저 파티야 부족을 떠났다. 아크도 탈리아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준 후 글라칸 사막을 떠났다. 그녀는 아크에게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결국 말하지 못했다. 아크는 그녀에게 인사하고 부족 사람들의 배웅을 받았다.

“으샤. 가자.”

꾸이이익!

새로 만든 뿔새를 타고 사막을 달린다. 모래폭풍이 몰아치면 잠시 천을 덮어 녀석이 쉬게 해 주었다. 물도 충분히 마시게 하고 여러 곳에서 가져온 풀과 과일을 먹여 영양보충을 해주니 힘이 남아도는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막을 질주한다. 아크는 새삼 뿔새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흔들거린다는 점이군.’

말과는 천지차이다. 네 발로 뛰는 짐승과 두 발로 뛰는 짐승은 흔들림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말 위에서는 활도 쏘고 물구나무서기도 한다고 하지만 뿔새 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하여튼 그건 뿔새를 길들여 써먹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글라칸 사막을 넘어 고원지대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바람이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곧 겨울이고 피레네 산맥은 완전히 얼어붙을 때가 온다. 아크는 뿔새와 함께 빠르게 북동쪽으로 향했다. 피레네 산맥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흐음…’

아크는 피레네 산맥의 끝자락 언덕에 올라 밑을 내려다봤다. 수십 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 세력은 아크가 익히 아는 바바리안들이다. 용사 스킬을 가진 이도 둘이나 있고 전체적으로 스탯이 상당히 뛰어났다. 그들은 비록 숫자에서는 밀렸지만 기세에서 우위에 서 있었다. 전술은 없으나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제국군의 압박을 벗어나고 있었다.

“잘 싸우는구나.”

그에 반해 황금사자기사단과 병사들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음에도 처절하게 밀렸다.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몇 안 되고 그들이 용사 바바리안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치명타였다. 두 명의 기사가 양손도끼에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지자 제국군의 사기가 눈에 띠게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래서 모랄빵이 중요한 거지.’

이런 소규모 전투에서는 지휘관의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강한 기사가 앞장서서 싸우는 전근대적인 시스템에선 강한 무력을 가진 자가 얼마나 활약해주느냐가 사기를 좌우한다.

용사 바바리안 중에서 한 명은 여성이었는데 우렁찬 목소리로 동료들을 격려하며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한 병사가 두터운 방태로 도끼를 막아보려 하지만 맥없이 반으로 쪼개진다.

‘스칼렛이라…강하군.’

용사는 반드시 아크의 피를 이은 자가 아니다. 트라움 제국 전역에 거의 50명에 달하는 용사들이 태어났고 지금은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바바리안족의 용사는 거의 100% 아크의 자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저 주황색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저 왈가닥 아가씨도 아크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내 딸…은 아니고 손녀에 가깝겠구나.’

아크가 정을 준 여성 바바리안들은 모두 남자 아기를 낳았다. 그러니까 저 스칼렛은 그들의 후손일 것이다. 섀도우 클록을 뒤집어쓴 망토는 스칼렛의 스탯을 들여다보았다. 용사 스킬이 있긴 있는데 어째 열화되어 있다.

‘피가 옅어져서 그런가.’

보통의 용사 스킬은 성인이 되는 날 스탯이 두 배가 되고 모든 전투스킬이 +5되며 대 케테르 공격력, 방어력도 20%가 증가된다. 그러나 스칼렛은 그보다 약간 열화된 1.5배, +3, 15%에 불과했다. 아크의 피가 옅어져서 생긴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개입할 일도 아니고 해서 한참동안 방관했다. 제국군은 기사들을 지휘에 따라 열심히 방어선을 펼치고는 있었으나 금방 뚫리고 말았다.

치열하게 싸운 결과 바바리안이 대승을 거뒀다. 제국군은 동료의 시체도 찾지 못하고 후퇴했고 바바리안들은 그들의 뒤를 쫓으며 전공을 올렸다. 진한 피비린내가 아크가 숨어 있는 곳까지 풍겨왔다.

‘…이대로 나둬도 괜찮은가.’

아크는 국가 간의 다툼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륙의 파워 밸런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르마 제국과 섀도우 엘프가 손을 잡고 동진한다면 이를 막을 세력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트라움 제국도 분열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강력하다.

‘개입할 것 까지는 없지만 들러서 몇 마디 조언을 해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의 큰 아들인 발로크. 아버지 신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보낸 녀석이다. 지금쯤은 아크보다 더 키가 컸으리라. 턱수염이 가득한 거한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버지라고 외치는 모습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언제고 다시 들러달라고 부탁하던 모습을 잊지 못했다.

‘내 아들치고는 너무 멋진 녀석이란 말이지.’

다루사가 낳은 두 아이는 아직 어리다. 그래도 아장아장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실버드족은 공동육아 개념이 있고 아버지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따라서 만약 아크가 두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도 결사적인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그럴 마음도 없지만.

‘…’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운 과거가 생각난다. 한 아이는 그럭저럭 잘 되었지만 다른 아이는 기억을 잃은 채 그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기억을 되찾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영원히.

아크의 발이 사박사박 눈을 밟는다. 피레네 산맥을 올라서자 산짐승과 몬스터들이 모두 길을 비킨다. 스칼렛과 바바리안들도 승리한 뒤 다른 길을 따라 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아크가 천막을 치고 쉬어가는 중에도 그들은 부지런히 산을 넘었다.

피레네 산맥의 북쪽 바바리안의 거주지는 엄청나게 발전해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천막이 아니라 작은 도시가 세워져 있다. 인구는 5천 명이 넘고 얼음으로 쌓아올린 두터운 성벽 안에 가옥들이 즐비하다.

이런 방어는 오로지 트라움 제국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완성된 것이다. 워낙 춥기 때문에 얼음으로 성벽을 쌓아도 한 여름에도 좀처럼 녹지 않는다.

대족장 발로크, 40세에 가까운 그는 워하우스에서 스칼렛 분견대의 보고를 받았다. 좌우로는 바바리안족 장로들이 바닥에 앉아 있다. 스칼렛이 아버지이자 상관에게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총원 45명! 사망 5명! 부상 7명! 그 외 추가사항 없음! 적을 격멸하고 30명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증거는 있느냐?”

스칼렛은 말없이 수집한 귀를 들어보였다. 장로들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으나 발로크의 표정은 엄격하기만 하다.

“적은 몇 명이었느냐?”

“110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10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고? 적측에 용사가 있었느냐?”

스칼렛이 이를 악물었다. 가까스로 이 사이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없…었습니다…”

“스칼렛, 너는 분명히 아센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비록 피가 옅어졌다고는 하나 너희 둘은 아버지 신의 후예다. 그런데 이 결과는 무엇인가? 소중한 부하를 다섯이나 잃고 7명이나 다치게 하다니!”

“…”

스칼렛은 변명하지 못했다. 보통의 전력과는 격을 달리하는 용사 둘이 동원되었음에도 트라움의 일개 지방군에게 다섯이나 죽었다는 사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의 부하가 섣불리 적을 추격해 피해가 늘어난 탓이지만 스칼렛은 변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 대족장!”

“그렇다면 말 할 것도 없다. 너의 죄를 이 앞에서 고하라!”

“옛!”

장로들이 미처 말릴 틈도 없다. 명령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는 절대 망설이지 않는다. 스칼렛이 바닥에 놓인 도끼를 주워 귀에 가져다대었다. 이미 그녀의 귀 한 짝은 잘려나가고 없다.

이제 남은 귀 하나를 자르게 되면 소리를 듣는 데 있어 꽤나 피곤할 것이지만 스칼렛은 지체하지 않았다. 도끼날이 피부에 파고든 그 순간, 거대한 문이 열렸다.

쿠르릉―

발로크는 굳은 얼굴로 일어섰다. 감히 게르드에서 허락도 없이 대관문을 통과한 자는 누구일까? 간이 단단히 부은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장로들에게서 글로리어스를 건네받아 대전을 걷는다. 스칼렛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대관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왔다.

“어떤 놈이냐.”

“오랜만이구나.”

빛 사이로 그림자가 드러났다. 발로크의 손에서 글로리어스가 떨어진다. 아주 익숙한, 너무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발로크가 벌벌 떨었다. 그는 무릎을 털썩 꿇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20년 만에 보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 신이시여.”

그는 자신을 불카도스가 아닌 아크라 부르라 했다. 발로크는 그가 남긴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명예를 간직하고 싸워라, 용감하게 싸우되 필요하면 물러날 줄 아는 현명함을 깨우쳐라, 아낙네를 건드리지 말고, 남의 재산을 탐하지 말라. 백성들에게 항상 자비롭게 대하라 등이다.

그가 무릎걸음으로 대관문을 연 자에게 다가갔다. 장로들이 벌떡 일어났고 스칼렛은 영문을 모르곤 아버지의 행동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로크가 엎드렸다.

“아버지 신이시여, 발로크는 당신의 명을 지켰습니다.”

“훌륭하다, 발로크. 너는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아버지이자 신의 칭찬에 발로크의 무딘 가슴이 녹아내렸다. 그는 20년 동안 바바리안의 족장을 맡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토록 혹독한 환경에서도 제국군을 막아내며 영토를 넓히고 인구를 부양했다. 성인들에겐 엄격하지만 아이들에겐 자상한 대족장으로 숭앙받았다.

“모든 것이 아버지 신의 뜻대로입니다. 이 발로크는…아버지 신의 아들인 이 발로크는…”

스칼렛은 깜짝 놀라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체격에 검은머리를 한 저 남자가 바바리안족의 신이자 그녀의 선조라고?

‘아, 안 믿기는데…?’

그도 그럴 것이 스탯창이 엉망이다. 마법공학과 연금술은 상당히 높지만 기본 스탯은 형편없다. 그녀는 아크가 가짜 스탯창을 만든 것을 모르기에 아크가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저렇게 무릎을 꿇고 있는데…’

이제는 장로들까지 기어가서 저 남자에게 부복하고 있다. 스칼렛에겐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

“지금까지 잘 해왔다, 발로크. 도시를 건설하고 훌륭하게 부족들을 이끌었구나. 다만 네 부하의 귀를 냉큼 자르라고 한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 어린 아가씨인데.”

“그, 그것은…”

발로크가 당황하는 사이 아크는 성큼성큼 걸어 스칼렛에게 다가갔다. 패할 때마다 귀를 자른다면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예쁜 얼굴에 귀가 한쪽이 없으니 균형이 이상하다. 아크는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스칼렛의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치유될지어다.”

생명 창조 스킬과 정화의 손길 스킬이 동시에 적용되었다. 귓바퀴가 빠르게 재생되며 스칼렛의 옆얼굴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귀부분이 간지러워 살짝 만졌다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직접 자른 귀가 생겨나 있었다.

“마, 맙소사…귀, 귀가…?”

“스칼렛이라고 하는구나. 네 아버지는 누구냐?”

“아, 저…저…”

스칼렛은 너무 놀라 대답을 망설이다가 뒤에서 아버지 발로크가 눈에 불을 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악다물고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빨리 대답 안하고 뭘 망설이느냐는 재촉이다. 그녀는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대, 대족장 발로크의 딸입니다!”

“발로크의? 안 닮았는데.”

아크의 말에 발로크와 스칼렛, 둘 다 벙쪘다. 신에게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뒤늦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말을 수습했다.

“허험. 방금 말은 잊어도 좋다. 하여간에 용사라고는 하나 엄연한 여자 아니더냐? 너무 가혹한 형벌은 내리지 않는 게 좋겠다.”

“그, 그리 하겠습니다!”

발로크가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워낙 단단한 몸이라 어떠한 상처도 없는 대신 애꿎은 바닥만 박살난다. 아크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트라움 제국군과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피해는 얼마나 되느냐?”

“그,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신이시여!”

“전쟁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피해가 커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고로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풀뿌리 민초들이다. 그들을 잘 보살피고 포로를 가혹하게 대하지 말거라. 장차 너의 백성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그, 그렇다면 전쟁을 허가해주시는 겁니까…? 장로들이여, 모두 들어라! 우리들의 아버지 신께서 전쟁을 명하셨다!”

“전쟁! 전쟁!”

“이 전쟁은 주신께서 주관하신다! 제국군을 죽여라!”

“으와아아!”

바바리안 장로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환호했고 발로크와 스칼렛은 전쟁의 함성을 터트렸다. 아크는 속으로 당황했다.

‘뭐야, 지금까지 전쟁을 안 하고 있었어?’

아무래도 예전에 그가 한 말인 가급적이면 선빵을 자제하라는 것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지금 풀렸으니 발로크가 환호할 수밖에. 아크는 입을 다물었다.

============================ 작품 후기 ============================

탈리아와 히로인으로 삼기에는 너무 불쌍해서...그냥 패스!

war never again! never again war!

아니 근데 모바일에선 추...뭐라는 버튼이 다른 곳에 있나요?

못 찾겠다고요?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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