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6 10클래스 마법 =========================
10클래스 마법 - 2
대륙의 잊혀진 역사.
그것은 700년 전의 신화시대를 이야기한다.
신과 마왕의 전쟁, 대전쟁이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잠브로의 선조는 파티야 왕국의 서기관 비슷한 직책을 맡고 있었고, 따라서 대전쟁에 대해 기록한 문자를 알고 있었다.
아크가 기둥에서 발견한 그 문자는 파티야의 왕족이자 마왕들이 쓰던 잊혀진 룬어라는 것이다. 아크는 밤새 잠브로의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로 룬어의 해석본과 파티야 왕국의 유물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유물을 믿지 말라고 했다.
―룬어로 써진 것은 어디까지나 신화요. 그것도 마왕들에 의해 써진 신화지…믿지 않는 게 좋을 거외다.
‘마왕들의 입장에서 써진 일대기라.’
제법 흥미가 동하는 구석이 아닐 수 없다. 아크는 낡은 양피지에 빼곡히 적힌 글자를 해석했다.
‘흐음…’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다. 누가 썼는지조차 짐작되지 않는다. 이 신화의 화자는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대단한 억하심정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반드시 탈취해야 한다. 절멸해야 한다. 그리고 반역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반역을?’
그 대상이 곧바로 드러났다. 7대신. 주신을 제외한 7대신을 화자는 반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이 이상하다. 애초에 서로 적일진대 어떻게 반역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대전쟁의 단초를 7대신이 제공했다라.’
대전쟁 이전의 대륙은 케테르와 아인종이 공존하던 곳이었다. 그것도 꽤나 긴 시간동안 공존이 지속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신들은 마왕들을 증오했다. 증오하다 못해 영원히 격리시킬 방안을 꾸몄다.
대전쟁을 일으켜 마왕을 어비스에 격리하고 신의 육체로 하여금 지상과 어비스를 영원히 분리하게끔 하는 것이다. 아크는 여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신들이 꿍꿍이속을 갖고 있는 건 일단 그렇다 치고…라만툴은 이걸 몰랐나?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전대 주신이었던 라만툴은 아크에게 많은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마왕들이 마신을 부활시킨다는 것만 말해주었다. 이 유물의 해석본을 믿는다면 모순이 생긴다. 라만툴은 아무것도 모르고 주신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멍청이었단 말인가?
‘흠, 믿기 힘든 얘긴데. 그래서 노인장이 이걸 믿지 말라고 한 건가.’
아크는 계속 유물을 해석해 나갔다. 이제 그는 화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혼돈의 마왕인 에피칼로스다. 그가 묘사하는 낙원은 아크가 경험한 에피칼로스의 어비스와 지나치게 닮아 있다.
‘하긴 똥개도 자기 집이 최고라고 여기지.’
그리고 아크는 끝자락에서 10클래스 마법의 단서를 찾아냈다. 대전쟁의 시초가 된 일렉트라의 마법 미티어 스웜. 그 절멸마법이 에피칼로스의 왕국에 퍼부어졌다.
에피칼로스는 일렉트라를 저주하며 소멸되었고, 휘하 마족과 마물 또한 증발했다. 일렉트라는 자신의 마법으로 대전쟁의 개전을 알렸다. 신과 마왕이 지상에서 전쟁을 벌였다.
다만 에피칼로스가 소멸되었다고는 해도 그 역시 권능을 가진 마왕이다. 10클래스 마법을 얻어맞은 그는 부활한 다음 마법의 연구에 들어갔다.
혼돈과 변화 중 긍정적인 속성인 변화가 일렉트라의 변화와 잘 맞아 떨어진 덕분일까. 그는 미티어 스웜이라는 마법을 결국 복제해 낼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라면 마왕이 그걸 못 쓴다는 점이다.
―원통하도다. 미티어 스웜은 10클래스의 마법…신격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된 마법이다. 이 세계 자체가 우리를 거부하고 있다. 케테르의 앞날은 어둡다.
‘10클래스 마법을 쓸 수 있다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 후로는 비관에 가득 찬 저주였다. 신들이 왜 갑자기 마왕들을 공격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여튼 에피칼로스의 기록에 따르자면 신들은 잘 공존하고 있었던 케테르족의 뒤통수를 쳤다는 말이 된다.
‘반역…반역이라.’
어쩌면 마왕과 케테르족 자체가 신의 추종자일 수도 있었다. 감히 반역 운운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판단의 재료로 삼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혼돈의 마왕 에피칼로스의 유물 아닌가? 읽는 사람을 혼돈에 빠트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아크는 유물 양피지를 덮었다.
‘중요한 건 10클래스 마법의 마기 로직이 미궁에 숨겨져 있다는 점이지.’
미궁은 새로 만들어진 곳이 많긴 하지만 기존 어비스에 있던 공간을 입구만 바꿔서 재활용한 곳도 적지 않다. 폐허 북쪽에 위치한 미궁도 아마 그런 공간일 것이다.
어쩌면 불쌍한 희생자들을 부르기 위한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아크는 함정 자체를 깨부술 힘을 갖고 있다. 그는 무한의 서고에서 나왔다.
“하아암.”
아크가 있는 천막은 파티야 부족원들이 쳐준 것이다. 원래 이런 부족은 공동생활을 하게 되어 있지만 외부인이 눈치를 보는 것이 좀 그랬는지 따로 천막을 쳐주었다. 좁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눕고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이침 일찍 미궁에 나서볼 참이다.
그런데 천막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체형으로 봐서 여성이다.
“누구십니까.”
“탈리아에요.”
탈리아. 잠브로 부족장의 딸이다. 22세인 그녀는 부족의 살림과 외부와의 거래도 맡고 있었다. 아크는 리치몬드 상단이 여기에까지 발을 넓힌 줄은 처음 알았다. 하여튼 그들은 사람과 거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여기 좁은데…들어오십시오.”
좁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보고 그럭저럭 얘기할 정도의 공간은 된다. 허락을 얻은 탈리아가 가리개를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변함없이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어 외모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크는 그녀가 미녀라고 생각했다. 원래 얼굴을 가린 여자는 미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없으면 말고.’
“저녁인데 이렇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아크님.”
“아뇨, 별 말씀을. 그런데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아까 뿔새에게 먹인 과일 말이에요. 어디서 얻으셨나요?”
“그야 브레톤 왕국에서 수확했지요. 거기에 좋은 과일이 많거든요.”
“브레톤요?”
탈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주변의 지리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아크는 손가락으로 대충 지도를 그렸다.
“여기가 일단 글라칸 사막입니다. 근처는 죄다 고원지대고요…브레톤 왕국은 여기에 있습니다.”
3개의 국가와 쓸모없는 고원지대를 지나서야 비로소 브레톤의 국경선을 넘어설 수 있다. 탈리아는 아크가 그렇게 먼 곳에서 온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혼자서 이렇게 올 수 있나요? 바깥세상은 정말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아뇨. 동행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막에 들를 예정이라 헤어졌지만요.”
“그런가요…역시 이 근처에서 얻은 과일은 아니군요.”
“이런 자갈사막에서 뭘 찾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과일이 필요하십니까?”
탈리아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무릎 위에 살짝 얹혀 있는 갈색의 작은 주먹이 꼭 쥐어진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말했다.
“…저희는 가난해요. 아까 드신 고기가 부족원들이 먹을 마지막 고기였어요.”
‘이런.’
부족장의 천막에 들어온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부족장과 아크, 몇 명의 사람들만이 먹었다. 처음에는 그게 예의를 차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순히 고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제가 눈치 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마지막 고기가 사라졌군요. 이런 미안할 데가.”
아크가 뒷머리를 긁었고 탈리아는 말하고도 쑥스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걸 탓하고자 여기를 찾아온 건 아니고…그저 뿔새에게도 과일을 먹였던 것이 기억나서 혹 이 근처에서 과일나무가 자랐나 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어요.”
참으로 딱한 처자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가끔 과일나무의 씨앗이 사막 한구석에 싹을 틔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사막은 척박한 곳이지만 시기를 잘 맞추면 비가 흠뻑 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탈리아는 아크가 그런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했던 것이다. 싱싱한 과일을 구하려면 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크는 그녀에게 차원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이 주머니 안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물건을 넣고, 보관하는 겁니다.”
아크의 손이 들어갔다가 단단한 복숭아를 하나 쥐고 나왔다. 탈리아는 놀라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을 붙들고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드셔보세요. 꽤 달 겁니다.”
“그, 그럼…”
탈리아의 이가 복숭아 과육을 깨문다. 그녀는 느꼈다. 세상은 참으로 파티야 부족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말이다. 바깥은 정말로 이런 과일이 도처에 널려 있을까? 끼니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이처럼 단 음식을 아이들에게도 먹일 수 있을까?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탈리아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복숭아의 달콤함이 그녀의 정신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많이 고달팠나보군.’
없는 살림에 부족원들을 먹여 살리려면 온갖 스트레스를 떠안아야 함은 자명하다. 아크는 그녀를 동정했다. 그의 첫 여인도 전쟁이 훑고 지나간 참화속에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던 사람이었다.
“과일 맛있지요?”
끄덕끄덕.
탈리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복숭아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씨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과육조차도 남김없이 발라먹는 모습에 아크는 조금 감탄했다. 그녀에게 다시 묻었다.
“바깥세상…고원지대를 넘어서면 이런 과일을 늘 먹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풍족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건 감자라고 하는 작물입니다.”
차원주머니에서 감자를 꺼낸다. 그녀의 눈길이 호기심으로 어렸다.
“지금 상태로 먹어도 되지만 주로 삶거나 구워서 먹습니다. 밖에선 아이들이 이 감자를 먹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찌지요. 제가 여기에 온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만, 아이들이 기운이 없더군요.”
“먹을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풀뿌리까지 캐먹어야 하니…”
탈리아는 부족의 치부를 담담히 얘기했다. 남자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크 앞에서 당당해야 하니까. 약점을 보이지 않아야 하니까.
그러나 여인은 다르다. 특히 탈리아는 부족원의 살림을 맡아보고 있기에 뭐가 부족한지 잘 알고 있으며 리치몬드 상단과 간간히 거래도 하기에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아크는 그녀의 손에 감자를 쥐어 주었다.
“이런 땅에서도 감자는 잘 자랄 겁니다.”
“설마요…여기에선 식물이 살기 힘들어요. 근처에 아무 식물도 없는 거 보셨잖아요.”
“물이 없어서 그렇죠. 그리고 이 감자는 양분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탈리아는 아크의 말을 믿지 못했다. 하기야, 처음 보는 남자가 이상한 열매를 쥐어주며 이걸 재배하라고 하는데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바보다. 하지만 탈리아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다. 아크에게 감자를 심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덕분에 아크는 초저녁에 아가씨와 함께 밭을 만들고 고랑을 파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 그의 스킬, 아스텔라의 축복이 활성화되었다.
‘피레네 산맥 북쪽에서도 과일이 자랄 지경인데 이까짓 환경쯤이야.’
신력은 모든 제반사항을 무시한다. 그 원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생명을 창조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황무지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것 정도는 손쉽다. 탈리아는 연신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래도 아크가 열심히 가르쳐 주니 배운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짜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올라올까?’
워낙 장담하듯이 말해서 그게 말이 되냐고 따질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탈리아는 다음날 아침 밭에서 무언가의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 반쯤 기절했다.
“세상에, 세상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나와서 감자의 싹을 구경했다. 아크는 그들에게 옥수수 씨앗도 건네주고 재배법도 가르쳐주었다. 다들 감자의 싹을 보고 옥수수도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졌지만 일부는 아니었다. 남자들 몇몇이 천막 뒤로 아크를 불러냈다.
“외부인이 너무 우리 생활에 간여하는 것은 좋지 않소.”
“무슨 말입니까? 간여라뇨. 먹을 것이 없다기에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는 작물을 권유했을 뿐입니다.”
34세. 그렇게 많지는 않은 나이지만 뜨거운 태양빛과 척박한 환경에서 버텨온 남자의 얼굴은 팍삭 늙어 있었다. 다른 남자들의 얼굴도 거의 비슷했다. 트라움 제국에선 거의 할아버지로 취급받을 것이다.
“괜히 여자들에게 헛바람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묻고 있는 겁니다. 당신,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괜한 희망을 가져 봐야 나중에 허탈할 뿐이니 쓸데 없는 짓 마십시오.”
‘아하…그러니까 자신들이 부족 내에서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건드리지 말란 의미로군.’
아크는 이런 사람을 자주 봐왔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자신의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품에서 떼어내려 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심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없는 남자들이 주로 이런 증상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크는 대륙에서 고집 세기로는 둘째라가면 서러운 놈이다.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계속 재배법을 가르칠 겁니다.”
“…거만한 작자로군. 마법사라고 해서 우리가 겁을 먹을 거라 착각하진 마시오. 당신은 오늘 잘못의 대가를 꼭 치를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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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인공은 그 사건 이후로 먹튀한 적이 없습니다.
실버드가 먹튀했을 뿐이죠!
뭘 먹튀했냐고요?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