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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107화 (107/217)

00107 마왕과 용사의 시대 =========================

마왕과 용사의 시대 - 5

미궁 탐험은 지나치게 순조로웠다. 선행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케테르의 출현을 알려왔고 후미는 모든 이상현상을 차단했다. 거기에 본대는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고 빠르게 선행을 뒤쫓아 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요그로토스의 미궁이 이렇게 쉬운 곳이었던가?’

거친 땅을 걸으며 크로우는 주변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에겐 탐색 스킬이 있다. 남보다 더 빨리 적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용사이니만큼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보다 더 눈치를 빨리 채는 저 아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탐색 스킬은 나보다 낮은데.’

평범한 사람도 당연히 스킬이 있다. 한평생 농업에 종사한 소작농들은 재배스킬이 높다. 하지만 용사들은 스킬의 성장에 있어 압도적으로 빠르다. 30년간 수련한 기사라고 해도 검술 스킬이 이제 갓 성인이 된 용사보다 낮을 수 있으니 오죽할까.

‘상처 하나 입은 사람도 없으니, 이거 원.’

벌서 3층까지 내려왔다. 저벅저벅 걷는 일행 중에서 힘겨워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긴장하기는 했지만 얼굴이 편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궁의 3층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땡땡땡―

또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후미다. 이제 사람들은 전투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선행이 걸음을 멈추고 반전하여 복귀하고 본대가 바로 방향을 튼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뒤엉켜 혼란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크로우는 아크가 골렘을 군데군데 배치해 사람들이 비켜서 이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격했다.

‘저래서 뒤엉키지 않는 거였구만.’

장비를 많이 짊어진 사람들이 좁은 길목에서 움직이려면 꽤나 뒤엉키기 마련이다. 아크의 골렘은 사람들이 잘 다닐 수 있게 길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든 골렘과 충돌하면 자기 손해라는 걸 아니까 미리 비켜가고, 결과적으로 방향의 전환이 빨리 되는 것이다.

“진형 정렬! 탱커진 방패!”

“방패!”

탁탁!

크로우가 소리치자마자 전사들이 방패의 끝을 바닥에 찍었다. 그 뒤로 마법사와 궁수가 배치되었다. 종소리가 울린치 10초도 되지 않아 진형 정렬이 끝난 것이다. 크로우는 용사팟 일원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에 만족했다.

“아주 좋습니다! 이대로만 갑시다!”

사람 주먹만 한 덩치를 가진 공포의 파리, 블러드 플라이가 윙윙거리며 몰려왔다. 하지만 사냥은 금방 끝났다. 마법사들이 화염계열 마법을 집어던지고, 궁수들이 볼트를 쏘아댔다.

크로우가 스크롤로 탱커진에게 배리어 마법을 씌워주자 놈들은 주둥이로 배리어를 쪼아대다가 전부 죽어나갔다. 작은 마나석이 하나씩 떨어진다. 크로우가 그걸 수거하는 사이 사람들이 웅성댔다.

“와,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3층이 원래 이렇게 쉬웠었나?”

“사람들이 할 일을 다 알아서 하니까 그렇지. 특히 마법사들이 잘했어.”

“블러드 플라이는 화염계열 마법에 약하다고 듣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에이레네, 놈들 저항이 얼마였어요?”

“다 0이었는데요?”

“예?”

에이레네의 대답에 사람들은 놀랐다. 중년의 마법사가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이상하구만. 아무리 내성이 낮아도 0일리가 있나. 케테르인데.”

“그렇죠? 뭔가 좀 이상해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렸다. 크로우는 조용히 에이레네에게 귓속말을 했다.

“에이레네, 혹시 다른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는 않았어?”

“모르겠는데. 전투에만 신경 썼던 터라. 그런데 왜?”

“혹시 누가 위큰 레지스트 마법을 쓰지 않았나 해서 말이야. 예를 들면 저쪽…아크가.”

둘의 시선이 아크에게 향한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풀을 뜯고 있었다. 죄다 독이 있어 손대기가 꺼려지는데 그는 장갑을 끼고 쑥쑥 뽑아낸다. 에이레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요. 마법스킬도 없잖아요. 마법목록도 깨끗한데.”

“그렇지? 내 착각이겠지?”

“스탯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크로우는 고개를 끄덕거리곤 아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확실히 착각인가보다. 지나치게 일이 잘 풀려서 혹시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안배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가정을 세웠는데 아니었다.

‘만약 아크가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면.’

그렇다면 실력을 숨기고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 실력을 숨긴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니까. 무엇보다 스탯창이 의심할 필요도 없이 깔끔했다. 크로우는 아크의 발을 걸거나 해서 스탯을 시험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미움 받으면 나중에 곤란해지지.’

크로우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자, 다시 진형 갖춥시다! 선행 앞으로! 후미는 잘했습니다! 방금처럼 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용사팟은 순조롭게 만티코어가 있는 4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미궁의 층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제 흙바닥이 아니라 버려진 신전 같은 공간이 용사팟을 반겼다. 크로우는 손을 들고 피리를 불어 선행과 후미를 모았다.

“오늘 강행군을 했는데 다들 수고했습니다. 휴식하죠.”

다들 소리 없이 손뼉을 쳤다. 여기부터는 만티코어의 영역이다 혹시 놈의 어그로를 끌면 곤란하다.

.

.

.

“…그래서 데스나이트를 잡을 때에는 비전 마법을 준비해서 와야 합니다. 놈은 대부분의 마법에 강력한 내성이 있고, 심지어 물리내성까지 높습니다. 다만 비전마법에는 약하죠. 그리고 데스나이트와 같이 나타나는 언데드가 있는데…”

사람들은 아크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들었다. 언데드, 그 중에서도 상위종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없다. 미궁에 대한 모든 것은 돈이다. 쓸만한 정보는 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데스나이트와 하수인에 대한 얘기라면 반드시 외워야 한다. 심지어 어떤 궁수는 종이와 펜을 꺼내 기록하고 있었다.

“좀비와 구울의 차이에 대해서 아시는 분?”

“…어…뭔 차이가 있죠? 그냥 같은 언데드 아닌가요?”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케테르 중에서도 언데드는 어비스 게이트에서만 가끔 나타나는 놈들이라 경험이 많지 않다. 중앙호수 근처의 자이언트 거주지에서 볼 수 있다고는 하는데 거기까지 가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좀비는 시체가 움직이는 거고…구울도 시체 아닙니까? 뭔 차인지 모르겠네.”

“좀비는 시체가 맞습니다.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을 가지고 무작정 물어뜯으려는 언데드죠. 놈에게 물리면 언데드가 됩니다. 여기까진 다 아시죠?”

끄덕끄덕. 이제 구울에 대한 설명이 나올 차례다.

“구울은 저주마법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시체짜깁기입니다. 완전한 시체가 아니라도 상관없죠. 여러분들이 6층에 내려가면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 겁니다. 팔과, 다리…입 등이 엉망으로 뒤섞여서 움직이는 구울을 볼 수 있죠.”

“으아…그게 엉망으로 뒤섞여 있다고요?”

“상상하지 마, 상상하지 마.”

에실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레를 쳤다. 아크는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예, 이런 식으로요. 바르마나 트라움 제국에서 지원하는 용사팟은 구울을 봤을 겁니다. 스탯창이 보이니까 바로 알 수 있겠죠. 하여튼 이놈들은 느리게 움직이지만 수로 밀어붙이는 좀비애 비해 비교적 빠릅니다. 팔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여서 펄쩍 뛰기도 하죠. 입은 하나씩 다 있으니까, 혹시 안 물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안하셔도 됩니다.”

“아유,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한 여성이 앉아 있는 아크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자 다들 웃는다. 아크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구울은 제법 날렵하게 움직이긴 하지만 처리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걷어차는 거죠.”

“걷어찬다고? 그 시체를 말이오?”

터커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다들 여기에 구울이 있기라도 하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 감촉을 상상한 것일까.

“맞습니다. 굴러다니기 때문에 무기를 밑으로 하면 좀비에게 당하기 쉽죠. 녀석들은 항상 좀비와 같이 다닙니다. 움직임이 비교적 빠르기 때문에 좀비보다 앞서 달려올 때가 많습니다. 밑을 공격하지 말고, 발로 차버리면 됩니다. 앞의 탱커진이요.”

“흐음, 그렇군. 이해했소이다.”

다들 머릿속으로 전투를 그려본다. 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좁은 미궁에서 어떻게 전투가 이뤄지는지 꿰뚫고 있다.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는 좀비와 기괴한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구울은 처리법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절대 놈을 보고 겁먹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구울은 이렇게 생겼는데…”

아크가 구울의 그림을 완성했다. 전장에서 수많은 시신을 본 기사들도 입을 딱 벌릴 정도로 흉측한 모습이었다. 인간의 팔다리를 몇 개씩 뽑아 제멋대로 섞고 턱과 입을 가운데에 박으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저게 굴러다닌다고? 에이레네는 끔찍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보시다시피 너무 끔찍하죠. 따라서 탱커진이 절대 뚫리면 안 됩니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서 대열에 난입하기만 하면 끝장입니다. 이걸 제대로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

다들 침묵했다. 언데드가 이렇게 무서운 놈일 줄은 몰랐다. 스탯이나 공격의 다채로움은 부차적이다. 크로우는 왜 어지간한 용사팟에서 6층으로 내려가길 꺼려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은 거군.’

낯선 것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5층까지는 대륙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몬스터다. 간간히 나타나는 케테르도 크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어서 탱커진만 정신을 차린다면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다. 하지만 6층부터는 저주마법을 거는 데스나이트가 등장하고 온갖 위협적인 언데드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아크는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지?’

그리고 왜 이런 귀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일까. 크로우는 아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으므로 참기로 했다. 대신 그는 시계를 들여다본다. 트라움 제국에서 만들어진 손 안에 쏙 들어가는 소형 시계다.

“저녁이 됐군요. 다들 식사 준비합시다.”

식사라고 해봐야 건량과 육포, 물이 전부다. 차원주머니가 있긴 하지만 냄새를 잘 맡는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면 곤란하다. 아크는 대충 육포로 때우고 무한의 서고에 들어갔다. 머리에 얹혀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던 딩고가 그제야 주둥이를 열었다.

“우와, 아크! 나 정말 지루해서 죽을 뻔했어!”

“그러게 왜 따라왔어. 집에 있을 것이지.”

“거기 있으면 답답해 죽었을 걸!”

딩고가 펄쩍펄쩍 뛴다. 아크는 녀석을 무시하고 조개를 손질했다.

“흠흠, 오늘은 조개요리를 먹어볼까.”

세이렌들이 가져다 준 심해조개. 쫄깃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껍질을 까고 내장을 빼내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차원주머니에 던졌다. 딩고는 뒷발로 일어서서 마치 미어캣처럼 아크가 조개를 손질하는 걸 보고 있었다.

“구울 거야?”

“살짝만 구워서 먹어볼까 생각중이야. 초장에 버터를 곁들여서.”

“아…탁월한 선택이야, 아크.”

잘게 썰어서 접시에 담아 딩고 앞에 가져다주었다. 녀석은 오제로스의 저주라도 받은 듯 허겁지겁 접시에 주둥이를 처박고 먹기 시작했다. 아크는 작은 조개껍질을 가지고 와서 위에 살덩이를 올리고 양념을 뿌렸다. 버터의 고소한 향이 확 번진다.

“흐흐흐.”

“아크, 너무 징그럽게 웃지 마. 그보다 아까 크로우가 계속 보고 있던데 혹시 고백하는 거 아닐까?”

“나를 의심하는 거겠지. 아크는 왜 저런 것까지 알고 있지? 이상한데? 정도로.”

“파티에 위험이 가는 행동은 안 했잖아.”

“그래서 더 수상한 거야. 왜 이런 정보까지 알려줄까? 확실한 걸까? 저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만약 사실이라면 영입하고 싶은데.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좀 그런데.”

아크가 크로우 흉내를 내자 딩고가 머리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 녀석은 땅도 못 파는 두더지 주제에 의외로 감정표현이 확실하다.

“킥킥킥. 진짜 그렇게 생각했겠네.”

“다 그런 거지.”

조개가 다 익자 아크는 숟가락으로 살을 떠서 입에 넣었다. 초장의 새콤한 맛이 버터의 느끼한 맛을 확 잡으니 맛이 끝내준다. 아크는 눈물을 좍좍 흘리며 조개살을 씹었다.

“크…죽인다. 술이 필요해.”

“나도, 나도!”

딩고가 아크의 팔뚝에 달라붙었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조개살을 먹여주는 창조주라. 아크는 문득 웃음이 나서 피식피식 웃었다.

‘딩고 말고 다른 녀석도 만들어 볼까.’

아크는 딩고를 만들면서 생명 창조 스킬에 익숙해졌다. 지금 만든다면 더욱 효율적인 동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대륙에 도움이 되는 동물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숲이 많으니까…숲에서 잘 뛰는 동물?’

타조와 드레이크를 반쯤 섞은 생명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크는 벌써 녀석의 종족명까지 지었다. 뿔이 나 있는 새, 뿔조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 작품 후기 ============================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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