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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93화 (93/217)

00093 고대의 악 =========================

고대의 악 - 3

아크는 에트라곤을 타고 하늘정원으로 향했다. 이 블루 드래곤과 알게 된지도 어언 20년 넘게 흘렀다. 만날 때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면 에트라곤도 어지간히 아크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역시 하늘을 나는 게 기분 좋구만.’

아크는 에트라곤의 머리 위에 나 있는 뿔 사이에 걸터앉아 지상의 풍경을 만끽했다. 드래곤은 종에 따라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다른데, 대개 육체적인 힘에 좌우된다. 따라서 블루 드래곤은 그렇게 높이 날 수 없다.

“에트라곤, 저기 구름 사이로 들어가자.”

아크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구름지대를 가리켰다. 녀석은 눈알을 뒤루룩 굴리더니 투덜투덜 혼잣말을 했다.

“저기 들어갔다가 형님 떨어지면 또 맞을 텐데. 균형 잡는 게 쉽지 않을 건데.”

“시끄럽고, 빨리 들어가자.”

“옙.”

에트라곤은 주둥이를 다물곤 크게 몸을 비틀어 구름 속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둘은 트라움 제국 남서쪽에서부터 시작해 긴 여행을 이어나갔다.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트라움 제국력 204년의 여름, 아크와 에트라곤은 마침내 하늘정원을 아래에 두게 되었다. 아크는 담담했지만 에트라곤은 꽤나 흥분한 상태였다.

“하늘정원은 처음 보는데…의외로 작은뎁쇼?”

“작지. 도시 한 개 정도 크기밖에 안 되니까. 그래도 저 땅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걸 보면 신기하지 않냐?”

“그건 그래요.”

이사 드래곤 주제에 하늘정원은 와보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주로 활동하는 영역은 구분되어 있다. 레드 드래곤은 사막 주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화이트 드래곤들은 추운 곳에서 활동한다. 블루 드래곤은 바다 근처를 즐긴다. 물론 이런 분류는 꼭 절대적인 것 아니다.

그런데…

밑을 내려다보던 아크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챘다. 하늘정원 주위는 언제나 순찰대가 돌고 있다. 언제 몬스터 등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에트라곤이 하늘정원 주위를 빙빙 도는데도 실버드가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이사 갔나?’

수백 년 동안 하늘정원에서 살았던 실버드가 갑자기 이사간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아크는 빨리 내려가자는 에트라곤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매의 눈 스킬로 밑을 살폈다. 마을에서 실버드들이 지상으로 내려가는 게 보인다.

“지상에 뭔 일이 있는가보군. 무기를 챙겨 가는데.”

“형님 저게 보입니까? 하늘정원에서 실버드들이 움직이는 게요?”

“보인다. 지금 또 내려가고 있군. 아무래도 험한 사건이 발생했나보다. 밑에 내려 가보자.”

“알았슴다.”

애트라곤은 곧장 날개를 접고 곤두박질쳤다. 평범한 인간이 타고 있다면 당장 떨어져 나갔겠지만 아크는 끄덕도 없다. 오히려 이런 스릴을 그가 즐긴다는 걸 알고 있다.

녀석은 지상의 숲에 닿기 직전 날개를 넓게 펴고 호버링을 시도했다. 하지만 비행기술에 미숙한지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바람에 서로 대치하고 있던 두 진영이 놀라서 후퇴했다.

“뭐냐!”

“위에서 뭔가 내리꽂혔어!”

“새로운 적인가!”

푸른 피부가 번들거린다. 보통의 엘프종이 하늘하늘한 몸매를 자랑하는데 비해 이들은 꽤나 육덕지다. 가죽옷에 부츠, 등에는 활을 졌고 허리춤에는 긴 단검을 차고 있다.

세간에선 이들을 섀도우 엘프라 부른다. 얼어붙은 땅과 함께 발리노어 대륙에서 가장 험악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남서부의 늪지대에서 살아가는 종이다.

이들과 대치하다 놀라서 물러난 종족은 실버드였다. 그들은 땅에 처박힌 채 머리를 흔들고 있는 에트라곤을 발견하곤 충격을 먹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하늘에서 드래곤이 떨어졌다!

“브, 블루 드래곤?”

“잠깐, 위에 누가 타고 있어!”

누군가가 블루 드래곤의 머리위에서 뛰어내리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실버드들은 그를 알고 있다. 거의 20년 전, 하늘정원에 올라온 최초의 아인종이자 7클래스의 마법사.

또한 실버드들은 당시 받았던 디보라의 계시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미와 사랑의 여신 디보라의 계시는 절대적이다.

“…아크…!”

검을 쥐고 선두에 서 있던 다루사와 텔루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편지를 보낸지도 몇 년이 지나서 이제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왔다. 텔루리안이 머뭇거리는 사이 다루사가 날개를 저으며 폴짝폴짝 뛰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크는 갑자기 날아드는 실버드 아가씨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은발과 가녀린 체구를 보곤 미소를 지었다.

“다루사, 무사했었군요.”

“아크! 왜 이제서야…!”

다루사가 아크의 가슴에 안겼다. 에트라곤은 여전히 핑핑 도는 머리를 주체하지 못해 땅에 풀썩 쓰러졌고 실버드는 환호를 섀도우 엘프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나타난 저 인간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드래곤은?

“아크, 아크으…”

다루사는 아크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크는 그녀를 안은 채로 실버드들에게 눈인사를 했다.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대다수다. 라크러스는 보이지 않았고 텔루리안이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크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텔루리안.”

“반가습니다, 아크. 당신을 좀 더 환영하고 싶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여전히 딱딱한 말투다. 텔루리안은 조금 더 반갑게 그를 맞이하고 싶었으나 주위의 눈치도 있고 결정적으로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섀도우 엘프와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는 다루사를 다독이며 겨우 땅에 내려가게 했다. 그녀는 아크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섀도우 엘프라, 참 멀리도 원정을 왔군요.”

“말하자면 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저들이 동족을 인질로 해서 우리를 억압하려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질, 억압.”

아크는 정신을 집중해 무한의 서고에 들어갔다. 그는 트라움 제국에 있으면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그 모든 것을 미르위키에 낱낱이 기록했으니 섀도우 엘프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까닭도 적혀 있을 것이다. 서고에 들어가 마법책을 뒤적거린다.

‘섀도우 엘프…아쉬탈 늪지대에 사는 종족.’

키가 크고 몸매도 꽤나 훌륭하다. 다른 엘프종들에 비하면 살이 찌기 쉽다고 할 수 있다. 최대의 차이점은 혀다. 엘프들의 혀는 아인종과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섀도우 엘프는 혀가 굉장히 길다. 거의 20cm를 넘을 정도인데 그래서 뱀엘프라는 멸칭이 존재한다.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다른 엘프종과 달리 그들은 적극적으로 나무를 베고 밭을 개간한다. 하지만 마법과 마법공학에 별 재주가 없어서 문명을 발전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반면 육탄전에서는 아인종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늪지대에서 섀도우 엘프와 1:1로 맞붙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로 알려져 있다.

‘맞아…바르마 제국과 연관되어 있었지.’

바르마 제국이 신대륙을 찾아 병력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병력이 전멸했고, 바르마 제국은 추가 병력을 또 보냈다. 보내는 족족 전멸하다 보니 마르틴 황제가 진노해 대병력을 보낸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다.

‘돈 엄청 썼겠구만.’

무려 3만 명을 신대륙에 보냈는데 이는 바르마 제국군으로서도 엄청난 출혈이었다. 다른 땅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 신대륙이다. 바르마 제국군은 막대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방의 제국군 규모를 축소하게 되었다.

바르마 제국 남부와 맞닿아 있던 아쉬탈 늪지대에 살던 섀도우 엘프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들은 적극적인 확장을 노리고 있었으나 제국의 땅덩이에 막혀 있던 터였다.

제국군이 철수하고 빈 땅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땅을 늘려나가고자 하지만 섀도우 엘프만으로 그 땅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정원에 인원을 파견해 실버드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여기까지가 아크가 기록한 내용이다. 이후의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간다. 땅을 획득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섀도우 엘프는 끝내 실버드를 납치하는 사건을 터트렸고, 그 후로는 두 종족간의 사이가 악화일로를 걸었을 것이다. 아크는 서고에서 나왔다.

“당신은 누구지…? 설마 이번 일에 끼어들 셈인가?”

섀도우 엘프들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던 한 여성이 소리쳤다. 아크는 그녀의 이름이 크로이츠인걸 알아보았다. 섀도우 엘프답게 키가 아크만큼 크고 몸매도 대단히 육감적이다. 온 몸을 가죽옷으로 감싸고 있어 가슴의 융기가 더욱 도드라진다. 하지만 아크는 그녀의 몸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섀도우 엘프의 여왕입니까?”

“…뭐라고?”

아크가 던진 한마디에 섀도우 엘프 진영이 술렁거렸다. 대체 어떻게 여왕인줄 알았냐는 황당함이 오간다.

스탯창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아크는 그녀의 스탯이 다른 섀도우 엘프에 비해 우월한 점과 먼저 질문을 던졌다는 점, 그리고 섀도우 엘프의 지도자가 여왕이라 불린다는 점에서 크로이츠의 정체를 파악했다. 확실히 스탯창을 볼 수 있으니 이런 추측도 손쉽다.

“당신은 누군가. 왜 우리 일에 끼어드는 건가. 저 드래곤은 또 누구고?”

이번에는 남자가 나섰지만 아크는 그를 무시했다. 섀도우 엘프 사회에서 남자의 존재란 후대를 잇기 위해 정액을 제공하는 동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섀도우 엘프의 사회는 남성에게 매우 불리하다. 같은 죄를 지어도 여성에겐 관대하며 남성에겐 가혹하다. 따라서 전사도 여성만 될 수 있다. 저 남자는 크로이츠 여왕의 애첩에 가깝다.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에트라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엉금엉금 아크의 곁으로 기어왔다. 실버드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득여 길을 열어주었다. 섀도우 엘프들의 파란 피부가 창백해졌다. 실버드도 비교적 어려운 상대인데 정체불명의 인간에다 블루 드래곤이라니.

‘승산이 없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최악의 가정을 한다면 블루 드래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크로이츠 여왕은 도톰한 입술을 깨물었다.

“…철수한다.”

“여왕님!”

“시끄럽다! 닥쳐라!”

나서려고 했던 섀도우 엘프들이 여왕의 호통에 즉시 찌그러졌다. 이들의 문화를 잘 아는 아크는 씁쓸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섀도우 엘프들은 여왕이 빠지자 실버드와 에트라곤은 번갈아가며 노려보곤 자리를 떴다. 인질이 될 뻔했던 실버드가 뒤늦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이야…정말 다행이야…”

몇몇이 그녀를 위로했다. 다루사가 다가가서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크는 에트라곤에게 말했다.

“목 아프니까 폴리모프해라.”

“옙. 그러죠.”

블루 드래곤이 인간형으로 변신한다. 텔루리안을 비롯한 실버드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확실히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미남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입만 열지 않는다면 괜찮은 평가를 받을 테지만 에트라곤은 워낙 방정맞은 드래곤이다.

“이야기는 위에 올라가서 하죠, 텔루리안. 일단 하늘정원에 올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텔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스럽게도 아크가 와준 덕분에 피해는 없다. 섀도우 엘프는 블루 드래곤을 적대하기는 부담스러웠는지 물러가 버렸다. 정찰을 나간 몇 명이 그들의 후퇴를 보고했다. 빠르게 숲을 빠져나가는 걸 보아 블루 드래곤이 덮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

“철수합니다. 모두 정원으로 올라갑시다.”

텔루리안의 지시에 실버드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아크는 에트라곤에게 말했다.

“따라가라. 아마 대접은 섭섭지 않게 해줄 거다.”

“형님은요?”

“나는 조금 있다가.”

“아하.”

에트라곤은 아크의 옆에 매미처럼 찰싹 붙어있는 다루사를 바라보았다. 음흉한 표정을 짓는 모양이 얄밉다.

“흐흐, 뭔지 알겠슴다, 형님. 역시 형님은 여자가…꾸엑!”

뭐가 지껄이려 했던 에트라곤은 아크의 주먹을 맞고 나뒹굴었다. 그가 허겁지겁 도망가고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루사가 아크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왜 이제 왔어요.”

“미안합니다, 다루사. 나름대로 할 일이 있어서.”

“기다렸는데. 아크가 거기 있다는 거 알고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아크는 다루사의 턱을 손바닥으로 쥐고 들어올렸다. 예전의 다루사가 아니다. 비쩍 마르고 상처 입은 실버드는 사라지고 이제는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실버드가 눈을 감고 있었다. 몸매는 예전과 같이 훌륭하다. 특히 한 팔에 들어올 정도로 잘록한 허리가 인상적이다.

아크는 다루사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떼려고 하는데 그녀가 목을 감아왔다. 상체를 아크에게 기대며 아크의 허벅지에 올라앉는다. 다루사는 그가 도망가는 것을 잡겠다는 듯 목을 강하게 졸랐다. 아크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부드럽게 키스해주었다.

============================ 작품 후기 ============================

흐음...거기 님 주머니에 뭔가가 보입니다...

그것은 분명 추천과 쿠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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