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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84화 (84/217)

00084 재상으로 살아가는 법 =========================

재상으로 살아가는 법 - 6

수천 기의 미니언들이 움직였다.

묵묵히 일하는 일꾼들이 나무를 베고, 땅을 개간하고 바위를 부숴 길을 내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일단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돈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도로망의 지분은 황궁이 70% 이상을 점유하게 되었다.

모자라는 돈은 리치몬드 상단에서 더 투자하기로 했다. 대륙 전역을 떠도는 그들은 좋은 길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로망 지분을 약간 받는 대신 5억 리블의 자금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이건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이런 돈은 전부 마나석 구입에 들어갔다. 아크는 자신의 재산을 동원해 트라움 제국을 발전시키려는 생각이 없었다. 미니언들이 소비한 마나석은 지금까지 모은 자금으로 구입해 무한의 서고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말하자면 아크는 자신이 모아 온 엄청난 양의 마나석을 모두 돈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가 이걸 알아차린다면 사기라고 하겠지만 아크는 떳떳했다.

‘내 건축 스킬을 공짜로 빌리는 거야. 이 정도면 싸게 먹히지.’

건축 스킬 19레벨은 장난이 아니다. 제국의 황궁 설계도를 혼자서 만들고 미니언들을 동원해 뚝딱 완성시킬 정도인데 도로망을 까는 정도야 손쉽다.

다만 제국의 영토가 워낙 넓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모될 뿐이다. 아크는 황금사자기사단을 비롯한 제국군을 동원해 몬스터의 토벌에 나서는 한편 미니언들을 보충할 수 있는 관리본부를 만들었다. 마나석 용량이 거의 소모될 것 같으면 두 기가 페어가 되어 마나석을 교체한다.

“거 참, 할 말이 없군.”

리치몬드 상단의 주인이자 리치몬드 가문의 가주인 에임벨 리치몬드가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미니언들이 작업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크란 사람과 꽤나 오래 인연을 맺어오긴 했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제국 전열에 도로를 뚫는다니.

“남부 해안가에도 도로를 뚫는다고 하지?”

그의 옆에 서 있던 하프만이 허리를 숙였다.

“예. 무지개 마을부터 도로를 직선으로 뚫고 있습니다. 트라움 제국은 평원이 많아서 산을 관통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산을 관통해?”

“아크님에게서 들은 정보입니다만, 미니언들은 산을 관통해서 도로를 뚫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마나석이 많이 들겠지만요.”

“허어, 거 참…”

에임벨은 물론 아크를 신뢰한다. 이번에 대형 바우선 설계도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줘서가 아니다. 10년, 20년 전부터 그들은 인연을 맺어 왔고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에임벨은 아크의 말이라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너무 일을 크게 벌였다. 리치몬드 상단이 투자한 15억 리블과 귀족 일부에게서 투자받은 자금으로 도로망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프만이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옆에는 황궁의 관료들도 많이 나와 있으므로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다른 상단에서도 지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많은 자금이 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중에라도 자금을 투자받으면 된다는 계산인 듯합니다.”

도로망의 확충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득이 되지만 특히 상인들이 반색할만한 일이다. 그들은 항상 길을 개척해 왔다. 용병을 고용해서 험지를 돌파하고, 대륙 곳곳을 여행하며 길을 만들어간다. 트라움 제국이라고 해도 상인들이 대규모 상행을 할 만한 길은 얼마 없다.

하지만 황궁에서 나서서 길을 만든다면 많은 상단에서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상인들의 특성상 관심은 곧 돈이 된다.

“골렘들을 이용한 공사라…하여튼 대단하긴 하군.”

이 모든 것들은 아크가 운용하는 소형 골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제국 내의 수많은 마법사, 마법공학자들이 아크의 골렘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스톤 골렘과 비슷한 형식인데 손놀림이 매우 정교하다. 심지어 도구를 쥘 수도 있어서 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런 놈을 수천 기나 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크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에임벨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아크에 대해 더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 된다.

‘마를레네 황제도 사람이 곧은 편이란 말이지. 귀족들을 대하는 게 조금 어리숙해 보이긴 하지만 즉위 초기에는 다 그런 법. 재상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별 걱정은 없긴 하다만.’

중요한 건 아크가 얼마나 제국에 머무느냐 하는 점이다. 에임벨은 사람을 고용해 수소문한 결과 시녀들로부터 황제가 임신한 게 아닌가 하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의 입에 미소가 크게 걸렸다.

“황제가 임신했다고? 그게 사실인가?”

“마를레네 황제는 몸이 날씬한 편인데 배만 솟아 있다면 그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게다가 시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 같으면 재상께서 은근히 신경을 써주고 있다 합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에임벨은 그 정보를 얻자마자 고용했던 사람을 멀리 보내버렸다. 황가의 정보를 입수한다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분명 아크님의 아이겠군. 둘이 피레네 산맥에 있을 때부터 친했다지?”

“예. 그게 벌써 14년 전이니까…14년이면 뭐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없는 게 이상하죠.”

에임벨은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의 리치몬드 상단은 바르마 제국과 트라움 제국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바르마 제국은 한창 기세 좋게 확장을 해가고는 있지만 은근히 상단을 압박하며 불합리한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트라움 제국은 거기에 비하면 신사라 부를 만하다. 무엇보다 재상인 아크와 인연이 있다는 게 에임벨의 결정을 부추겼다.

“모든 자원을 성도에 집중하게. 본부를 차려야겠어. 그리고 재상부와 은밀히 접촉해서 투자금을 늘릴 수 있다고 넌지시 우리 의향을 밝히란 말이야, 알겠나? 절대 우리 쪽에서 몸이 달았다는 걸 보이면 안 되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리하여 리치몬드 상단은 본부를 바르마 제국에서 트라움 제국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크의 영향력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

.

.

“저어…주신교에 입교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교단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답니다.”

성도의 서쪽 고요한 공터에 자리 잡은 주신의 교단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슬러스와의 전투에서 마를레네 황제가 주신의 챔피언임을 증명했고, 안젤라 황녀가 직접 성녀가 되기를 자청했다.

교단은 황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조직을 체계적으로 꾸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챔피언이 떡하니 황궁을 지배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안젤라는 총교단의 성녀이자 최고책임자에 해당했다. 아직까지 교세가 미미하니만큼 주교 등의 직위는 없었으나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경전도…위상도…아무것도 없어.’

대저 종교의 교세를 따지기 위해선 추종자의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신의 교단은 이 점에 있어서는 제국 어느 교단보다 우위에 있었다. 마를레네 황제가 바로 주신의 챔피언이니까.

하지만 교단은 그것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른 교단은 오랜 세월동안 신의 계시를 들어 기록하고 대전쟁에서 챔피언들이 썼던 무구와 각종 아이템 등이 넘쳐났다. 쉽게 말해서 추종자들이 보고 오오, 할만한 꺼리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신의 교단에는 이게 없었다. 아크는 휑한 대예배당을 보고는 조금 당황했다.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선조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는 있으나 경전이 없어 다들 망설이고 있습니다.”

“…확실히 휑하군요.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차차 채워 가면 되죠.”

“어떻게…”

아크는 무한의 서고에 들어갔다. 이 광대한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유물급 아이템이 넘쳐나지만 교단에 전시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하나가 과거 소왕국들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녀석들이라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면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창고의 전시대에 각종 유물들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다. 어느 시대의 왕이 쓰던 것, 아르테온의 주교가 쓰던 백옥나무 지팡이, 글로리어스의 챔피언이 쓰던 바스타드 소드 등…하나같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큰일 나는 놈들 투성이다.

“일단은 경전을 짜보기로 하자.”

추종자들은 신을 보고 경배하지 않는다. 경전을 읽고 그들을 인도하는 성직자들의 말을 듣는다. 따라서 경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크는 즉각 자신이 써 온 수천 권 분량의 책들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공간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후루룩 지나간다. 여기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추정은 가능하다. 아크가 겪고 써온 여러 이야기들이 주신의 신화가 된다. 그는 매직펜으로 책을 쓰다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거 이렇게 사기 쳐도 되나?’

신화란 항상 과장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주신이 여러 처녀들을 잉태시켜 영웅들을 태어나게 한다는 대목은 아크가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누가 이걸 검증해 볼 것도 아니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주신 후보잖아? 그러니까 내 일기가 신화가 되는 거지.’

아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낄낄 웃었다. 마를레네가 봤다면 뭔 헛소리냐고 등짝을 때렸을 것이다. 그는 무한의 서고에서 먹고 자고 쓰고를 반복하며 몇 달 동안 처박혀 있었다.

‘경전은 가급적이면 고풍스럽게…종이도 좋은 질로 해서.’

창고에 처박아 놓은 미니언들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경전을 써나간다. 아쉬운 게 있다면 미니언들에게 섬세한 작업이 불가능해 아크가 일일이 다 써야 한다는 점이다. 요리도 못해서 예전에 만들어 놓은 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리고 아크는 김치통을 들여다보곤 비명을 질렀다.

“김치가 없어!”

이건 큰일이다. 슬러스가 황궁을 지배했을 때보다 더한 낭패감이 아크를 짓눌렀다. 김치가 없다는 것은 따끈한 밥과 된장찌개 등을 먹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아크는 의욕을 상실해 서고의 소파에 몸을 던졌다.

“김치…김치…에라이.”

한참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핏발 선 눈으로 경전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만 끝나면 반드시 배추를 비롯한 과일을 재배하고 말리라. 그동안 마를레네를 비롯한 시녀들에게 빼앗긴 과일을 채우고 말리라.

슥슥슥슥.

1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100여 권에 걸친 경전이 완성되었다. 부식 마법을 사용해서 적당히 낡고 무게감이 있다. 어느 누가 봐도 대종교의 경전이라고 감탄할 것이다. 아크는 그제야 무한의 서고에서 나왔다. 안젤라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크님, 이게…?”

안젤라는 갑자기 자기 앞에 산처럼 쌓인 두꺼운 책을 보고는 놀랐다. 차원주머니에서 꺼낸 것일까? 아크가 히죽 웃으며 책 한 권을 쥐어주었다. 워낙 두껍고 무거워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과거 학자들이 주신의 신화에 대해 언급하고 기록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경전으로 하도록 하죠.”

“…”

안젤라는 떨떠름하게 경전을 받았다. 아크는 유물 등은 나중에 보내주겠다며 후다닥 교단을 떠났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 그녀는 아크가 선물해 준 라이트 구체를 켜고 경전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꽤나 낡은 것이 최근 작성된 것 같지는 않다.

“아…”

왜일까. 안젤라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그녀의 눈과 손길이 빨라졌다. 이 경전에는 꽤나 황당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미터법이…주신이 내려준 것이라고?’

대륙 전역에선 미터법을 쓰고 있다. 인간 뿐 아니라 아인종, 심지어는 드래곤들까지 미터법을 사용한다. 왜 그걸 쓰냐고 물어보면 다들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다들 쓰고 있으니까, 이게 편해서 등등.

그런데 경전에 의하면 주신이 계시를 내려 챔피언이 직접 미터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각 지방마다 다른 도량형을 쓰고 있었지만 센티미터, 미터, 킬로미터, 킬로그램 등등 아주 편리하고 직관적인 체계에 다들 넘어갔다. 그리하여 200년 전에 사실상 대륙의 도량형은 통일되었다.

‘와…리블 금화도 주신이 내려준 거였네.’

리블이라는 단위는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바르마 제국에서도 리블 금화를 쓰고, 트라움 제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가장 출입하기 힘든 지하미궁에서 살고 있는 드워프들까지 리블 금화를 쓴다.

리블이라는 단위를 어디에서 처음 사용했는지 여러 학자들이 추정했지만 확실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경전에는 년도와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맞아. 과거에 에스포네 왕국이 있었지.’

안젤라는 책을 가까이 한 편이라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다. 400년 전 대륙 중앙에서 가장 강대했던 국가는 에스포네 왕국이었다. 경전에는 에스포네 왕국의 재상이 리블 금화를 만들었고 금은의 비율과 정확한 규격까지 정했다고 쓰여 있었다.

재상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가 주신의 챔피언이란 사실과 주변 국가의 상세한 서술 등은 안젤라를 푹 빠지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잖아, 이거…’

그리고 현재 대륙 각국에서 즐겨 사용하는 몬스터 분류법도 주신의 챔피언이 바르마 제국에서 만들어 퍼트린 것이라고 한다. 안젤라는 아크가 어디에서 이런 경전을 가지고 왔는지 궁금했다. 그도 주신의 챔피언이라고 하니 역시 다른 챔피언에게서 받은 것일까?

‘주신에게 한계는 없어. 아마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거야.’

안젤라는 대예배당에 과일을 가지고 와서 깎아 먹었다. 아크가 선물해 준 복숭아라는 과일인데 아삭한 과육과 새콤달콤한 맛이 정말로 일품이었다. 그녀는 다음날 새벽까지 경전에 푹 빠져 있었다. 새로이 주신을 경배코자 하는 사람들이 올 때까지.

그리고 몇 달 후, 아크는 추종자 수가 1만 명을 돌파했다는 메세지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만삭인 마를레네의 배에서 스탯창 두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프라이마크 등장!

물론 황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엄마 따위를 지껄이는

아들딸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x루스 따위도 없어요. 주인공이 뚝배기를 깼으면 깻지...

역시 1번이 압도적이군요...일을 저지른 이상 수습은 해야겠지요.

언급하고 묘사하되 그 외의 사건들은 슉슉 넘어가는 식으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오늘까지 포함해서 8편? 정도면 마무리될듯!

요즘에 양이 좀 많지 않습니까? 응? 안 많다고요? 추천을 받지 못한

글쟁이는 흙흙흙 하고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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