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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80화 (80/217)

00080 재상으로 살아가는 법 =========================

재상으로 살아가는 법 - 2

아크는 2개월 안에 황궁을 재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귀족정의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트라움 제국의 황궁은 제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들어진 건물군이다.

최초 건축하는 데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20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증축을 하면서 현재는 천 명 정도의 인원이 근무하는 거대한 공간이 되었다. 그걸 2개월 안에 재건하겠다고? 말 그대로의 허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황궁 주위에 희한한 장벽이 쳐지더니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해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갔지만 경비병들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아크는 수천 마리의 미니언을 전부 동원했다. 통로 하나로 온갖 자재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미니언들은 목수이자 석공이 되어 아크의 설계대로 황궁을 올렸다.

그들은 쉬지도,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마나석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해서 움직였고 황궁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크가 이렇게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리가 임신했단 말이지…’

마를레네 황제가 임신했다. 아랫배가 약간 튀어나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임신 4개월 차인 것 같다. 그녀는 떨떠름해 했고 아크는 정신을 차렸다. 대관식을 서둘러야 한다.

‘배가 잔뜩 불러서 대관식을 치르기엔 좀…’

국내외의 귀족들에게 황제의 즉위를 알리는 거창한 행사다. 아크가 새로이 만든 티아라와 지팡이를 안젤라가 수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소 천명의 인원이 참가할 것인데 정작 주인공이 되는 마를레네가 만삭이면 조금 곤란해진다. 그래서 아크는 미니언들을 몽땅 투입했다. 커다란 마법적인 장막을 펼치지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었다.

뚝딱뚝딱 쾅쾅쾅.

아크가 미니언들을 지휘해 황궁을 건축하고 시간을 내어 대관식에서 쓸 예복과 티아라, 지팡이를 만드는 동안 제레미아와 안젤라는 주신의 교단 설립절차를 밟고 있었다.

트라움 제극의 성도에는 여러 신의 교단이 있지만 총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국가에 있는데 마침 주신의 챔피언이 나타났으니 총교단을 만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게 제레미아의 판단이었다.

―주신의 교단은 여러 종교의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글로리어스의 성기사들이 보증했고, 황금사자기사단이 충성을 맹세했죠. 다른 사람들이 신도가 되기를 청할 겁니다.

정말로 그 말이 맞았다.

최근 신의 챔피언이란 존재 자체가 가물가물해져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왕의 챔피언은 비교적 자주 들었지만 신의 챔피언은 겪어본 적 없다면서 존재 자체를 의심하곤 했었다.

쉬쉬하고 있어서 그렇지 머리에 헤일로가 나타난 인간이 거의 드문 실정이었다. 그러던 중 마를레네의 머리 위에 그게 나타났다. 주신의 증표로 추정되는 빛의 날개까지 있으니 어찌 의심할 수 있을까.

“됐다.”

높은 스킬 레벨이 힘입어, 아크는 마침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예복과 티아라, 지팡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마를레네는 황제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맡지 않는다. 그녀는 황제로서 위엄을 보이고 귀족들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은 재상인 아크가 모두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그대는 내가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대는 트라움 제국 뿐 아니라 더 넓은 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나와 살을 맞댄 인연으로, 내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20년만 내 곁에 있어다오. 그 뒤에는 그대가 어디로 가던 흔쾌히 보내주겠다.

마를레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아크로서도 당분간은 트라움 제국에 있으면서 여러 일을 추진해야 하고 말이다. 한참 황궁 건축 작업의 마무리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아크는 무한의 서고에 틀어박혔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첫 번째는 실버드들을 만나는 것이다. 신격을 얻었으므로 그렇고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실버드들은 수명이 기니까 조금 시간이 흐르더라도 다루사나 텔루리안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좀 미안한데.’

수명이 긴 실버드에게도 20년이란 시간은 상당히 길다. 아크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두 번째는 마왕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어비스에서 지상으로 튀어나온 놈들을 혼내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본체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놈들이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세 번째는 10클래스 마법을 배우는 것이다. 일렉트라의 변화 스킬 설명엔 분명 10클래스 마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써져 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는지는 알 수 없다.

아크는 미르위치를 샅샅이 뒤진 끝에야 겨우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700년 전의 대전쟁에서 일렉트라가 10클래스 마법을 사막에다 썼고, 그 한 방에 도시 하나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아하, 그 사막 주위 폐허군.’

글라칸 사막과 이름 없는 폐허. 일렉트라가 모든 것을 지워버렸기에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크는 지도책을 꺼내 위치에다 기록해 두었다. 방문해야 할 곳을 따지다 보니 다루사가 생각난다. 특히 그녀의 예쁜 엉덩이가.

‘나도 참…마리가 있는데.’

변명하는 것 같지만 아크는 한 번에 두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 지금은 마리와 지내고 있으므로 다른 여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추종자를 모으고…영향력 포인트를 쌓고…’

그것 외에도 제국에서 해야 될 일이 제법 많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크가 이런 방면에 경험이 많이 쌓여있다는 점이다. 그는 마법책을 덮고 무한의 서고에서 빠져나왔다. 미니언들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

.

새로이 만들어진 황궁은 예전과 비교해서 규모가 약간 작기는 했지만 훨씬 더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를레네 황제의 대관식에 참가한 각국의 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분명 몇 개월 전만 해도 황궁은 폐허였었는데 말이다.

―마를레네 황제의 성향은 어떻습니까? 겉으로 보면 아주 부드러울 것 같은데.

―쉽게 보면 안 될 것 같소이다. 황제는 실질적인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소. 그녀의 뒤에 있는 재상이 모든 일을 떠맡는다고 하오.

―마법사이자 마법공학자가 행정과 정치에도 재능이 있었던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자지?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제국의 그 누구도 마렐레네의 황제 즉위와 아크의 재상 취임에 반대의사를 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 점만으로도 수완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으음, 미리 수를 써뒀어야 하나…

권력자는 주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트라움 제국의 황제쯤 되는 인물이라면, 국내 뿐만이 아니라 여러 동맹국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래서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귀족들은 마를레네 황제에게 미리 선을 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일개 백작가문의 귀족이 황제에 오르리라고 누가 짐작했겠는가.

―모든 일을 그 아크란 재상이 주도했다는 설이 있소이다. 성도에 만들어진 주신의 재단도 그렇고…그에게 선을 대는 것이 낫겠소.

대관식이 치러졌다.

마를레네는 좌우로 도열한 문무백관들 사이를 지나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안젤라에게서 티아라와 지팡이를 받았다. 지팡이는 황제가 가진 군권을 상징하고, 티아라는 모든 귀족의 우두머리임을 천명한다.

황제 마를레네는 제국의 귀족과 장군, 기사들 앞에서 자신이 애쉬포드 황가의 1대 지배자임을 당당히 선포했다. 아크로선 그녀의 배가 불러오기 전에 대관식을 치른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황궁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르마 제국에서 보낸 사절단이 도착한 것이다. 거기에는 리치몬드 상단의 하프만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황제가 사절단을 만나는 동안 아크는 하프만과 실무적인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저는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아크님은 여전하시군요. 하하.”

“언제나 이렇죠. 그보다, 사절단에 리치몬드 상단이 끼어 있다는 건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군요.”

“이런저런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스테피나 백작님께서 쓴 편지를 전달해드려야겠군요.”

“스테피나?”

뜻밖의 이름이 등장했다. 날 따먹으러 오라고 꽥꽥 소리를 질러댔던 그녀가 아크가 여기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프만을 쳐다보자 그는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슬러스의 황궁 침공은 바르마 제국에까지 전해진 커다란 사건이었죠. 거리가 워낙 머니까 온도차가 있긴 합니다만, 어쨌건 스테피나 백작님도 그 사건을 전해 들었을 겁니다. 아크님의 존재도 그렇게 해서 알려졌죠. 비요른 재상께선 조금 화가 나신 듯하더군요.”

“그래요?”

“트라움 제국에서 재상까지 하는 놈이 정체를 숨기고 내 밑에 있었다고…”

“뭐 그럴 수도 있죠.”

아크는 대수롭지 않게 밀봉된 편지를 뜯었다. 거기에는 스테피나의 사나운 글씨가 쓰여 있었다. 단지 글씨일 뿐인데 그녀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휘갈겨 쓴 상황이 짐작된다.

“흠, 스테피나답군요.”

저주의 글귀가 가득하다. 5년 안에 나를 보러 오지 않으면 내가 트라움 제국에 가서 아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폭로할 것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편지를 접었다. 하프만은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묻지 않았다.

“헌데…리치몬드 상단에서 당신을 내게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가주께서 보내신 편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프만이 정중하게 편지를 건넸다. 리치몬드 상단의 봉인을 뜯어 내용을 살펴본다. 역시 상인 집안답게 간략하고 명료하다. 바우선의 설계도를 사고 싶다는 것이다.

“하프만, 이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 바우선에 관련된 게 아닐까 합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 아크는 편지를 엎어놓았다.

“어디, 바다에 나갈 일이 있습니까? 대형 바우선의 설계도가 필요한 걸 보면.”

“아, 역시 그렇군요. 재상께선 혹시 신대륙에 대해서 들어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신대륙?”

하프만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많이 묻은 것이었는데 아크가 직접 작성한 것에 비해서는 지형이 세밀하지 못하다. 발리노어 대륙의 전도가 그려져 있지 않고 엉뚱하게 그려진 곳도 많았다. 아무튼 두터운 손가락이 바르마 제국의 서쪽 바다를 짚는다.

“바르마 제국에서 서쪽 바다를 개척하려 한다는 얘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나가들과 싸우기 위해서 대포를 많이 실어야 했고…아무튼 큰 배가 필요했죠. 비요른 재상께서 대형 바우선 설계도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리치몬드 상단의 인물들은 다들 눈치가 빠르다. 아크가 적당히 수긍해주자 그는 신이 나서 썰을 풀었다.

“대형 바우선이 건조된 후 제국은 바로 나가의 방해를 뚫고 먼바다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주? 20일쯤 지났을까…마침내 땅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건 정말 대발견이었지요!”

“새로운 땅이라.”

“놀랍게도 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황제가 봉인했기에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만…아마 수백 년 전 발리노어 대륙에서 살던 사람들이 건너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문명수준은 대단히 낮아 보인다더군요.”

“그래서, 리치몬드 상단이 바르마 제국의 눈을 피해 거기에 도달하고 싶다는 얘기군요?”

“새로운 땅은 새로운 이익의 원천이 되니까요.”

“대형 바우선 설계도를 거래해주면 향후 이익금의 15%를 주겠다고 쓰여 있는데…”

“15%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거기에서 얻는 많은 정보도 아크님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리치몬드 상단은 바르마 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동향을 아낌없이 전달하겠습니다.”

“…”

어떨까. 적어도 아크에게 손해는 없어 보인다. 대형 바우선 설계도는 별거 아니다. 이미 그는 그보다 더 큰 카락과 갤리온까지의 설계도를 끝내놓았다. 문명이 서서히 발전하는 시점에 적당히 풀면 된다는 얘기다. 리치몬드 상단에 도움을 주어 그들의 지원을 받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봄직하다.

“하프만, 만약 리치몬드 상단에서 돈을 빌린다고 하면 얼마나 빌려줄 수 있습니까?”

“돈을요? 아크님께서도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그건 내 돈이지 트라움 제국의 돈이 아니니까요.”

공금과 사금은 엄격히 구분한다. 거지나 다름없었던 에스테뷰른 백작령보다야 형편이 훨씬 낫긴 하지만 트라움 제국도 안심할 바는 아니었다. 아크가 재상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살핀 것이 장부 기록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실을 비롯해서 제국의 각 기관들이 만성적인 적

자에 빠져 있었다.

“음, 가주께서 결심하시기만 한다면, 섭섭지 않은 돈을 빌려드릴 수 있겠습니다. 대충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지?”

“10억 리블.”

“예?”

엄청난 금액이 튀어나오자 하프만의 눈알도 튀어나왔다. 이 사람, 10억 리블이 어느 정도 돈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가 아크의 수준을 의심할 때 황궁의 밖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비명을 올렸다. 아크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다. 웬 노르스름한 드래곤 한 마리가 정원에 내려앉고 있었다.

“제국의 마법사이자 마법공학자 아크여, 골드 드래곤 에키드나가 왔다! 내가 너를 참교육 시켜주마!”

============================ 작품 후기 ============================

날개 달린 애들은...다음 챕터에 등장할듯 합니당

고로 20년이 후다닥 지나가버린다는 얘기...

슬러스는 뭐 온갖 흉칙한 것들의 집합체라...마왕들이 대부분 다 그렇지만요

너글은 너그리스라고 있어요! 젠취와 코른은...개명했음!

10억 리블은 천억원 정도의 돈입니당...

헤이 에키드나! 돈두댓!

이 뒤에 벌어질 일들은 뭐...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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