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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65화 (6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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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 3

미니언들은 아크의 스킬에 적용받는다. 따라서 아크의 목재 가공 스킬과 건축, 조선 스킬 등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다만 한계는 있어서 섬세한 작업을 하지 못하고 미니언 1기당 스킬 1개밖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 목재 가공 스킬을 가진 미니언을 배 만드는데 투입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쨌건 아크는 그런 미니언을 수백, 수천 기나 보유하고 있다. 조선소와 바우선 몇 척 만드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벽의 서쪽 해안, 아무도 오지 않는 미개척지역에서 아크는 미니언들이 열심히 조선소를 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공학 15레벨에서 만들 수 있는 미니언들은 그간 아크의 충실한 손발이 되어왔다.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불평불만도 없으며 수리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만능일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크에게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라 하나를 통째로 세우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크가 배운 스킬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마법공학이고 그 중에서도 미니언 제작 부분을 선호한다. 귀찮음을 덜 수 있어서 그렇다.

뚝딱뚝딱 슥삭슥삭

백작령과 조선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본다. 아크가 없어도 에스테뷰른 백작령은 무난히 잘 굴러가고 있었다. 단 하나 거슬리는 게 있다면 이웃영지 드나텔로 자작령의 천둥벌거숭이 조나단 드나텔로가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매번 사람을 보내 바우선 재질 시험을 다시 하자느니 떡갈나무 가공소를 보여 달라느니 억지만 부리고 있었다. 스테피나는 조나단을 아주 싫어하는지라 만나주지도 않았고 휘하의 행정관들만 쩔쩔매고 있었다.

‘손을 좀 봐줘야겠군.’

장갑판 시험에서 졌으면 곱게 물러날 것이지 추하게 들러붙는 것도 지겹다. 시비를 걸어오는 것 까지는 아크의 인내심 범위를 간신히 벗어나지 않지만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들어오는 순간 따끔한 맛을 보게 된다.

조나단과 같은 부류의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그로를 끌고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부유하게 살아왔고, 어지간한 것은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렇다.

조선소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일에 불과했다. 미니언들은 쉬지도 않고 비요른 재상에게 보낸 것보다 더 거대한 바우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우선을 건조하는 것을 보면 매우 특이한데, 블럭 단위로 나눠서 먼저 제작하고 나중에 붙이는 방식이다.

아크 정도는 아니지만 미니언들은 상당히 힘이 세다. 20-30톤 정도 나가는 블럭을 수십 기의 미니언들이 번쩍 들고 옮기면 되므로 이런 방식으로 건조하는 게 가능하다. 크레인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걸로 하겠지만 없으니 미니언들이 수고를 좀 해줘야 한다.

“그나저나 잘 하는구만.”

아크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미르위키에 정보를 기입하는 시간에도, 잠을 잘 때에도 미니언들은 계속 움직였다. 활동 에너지라 할 수 있는 마나가 바닥난 녀석이 생겨나자 아크는 미니언을 뒤로 빼고 새로운 녀석을 투입했다. 무한의 창고에 수만 개나 쌓인 것이 마나석이므로 아낄 것은 전혀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2주가 되기 전 조선소 앞 해안에는 네 척의 대형 바우선이 떡하니 바다에 뜨게 되었다. 긴 레일을 깔고 바우선을 밀어 진수시키자 쓰러질듯 휘청거렸으나 복원력에 의해 균형을 회복했다. 고물에는 작은 보트가 마련되어 있다.

아크는 뿌듯한 표정으로 네 척의 대형 바우선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진행하는 데 그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전부 미니언들이 알아서 제작한 것이다.

“멋지군.”

이제 남은 것은 수리용품과 자재 등을 싣고 조선소를 없애는 것이다. 만드는 데 5일 걸린 작은 조선소는 완전히 흔적을 없애는데 2일도 걸리지 않았다. 아크는 미니언들과 함께 바우선에 식량을 잔뜩 싣고 북쪽으로 향했다. 연락을 받은 바바리안들이 떼로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지, 진짜 왔다!”

“배다! 배!”

“우와…정말 크군…”

“세상에…”

하나같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배를 끌고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약속된 2주가 채 지나가기 전 진짜로 식량을 가득 채운 바우선 네 척을 끌고 왔다. 아바로사와 브리건트도 아크의 수완에는 경악할 수밖에.

“읏샤.”

널빤지가 내려오고 아크는 소수의 미니언들과 함께 하선했다. 브리건트를 비롯한 아바로사 등 족장이 그를 맞았다.

“정말 대단하군! 내 말을 하긴 했다만 진짜로 배를 가지고 올 줄은 몰랐는데…선원은 어디에 있는가?”

족장들은 대체 누가 배를 조종하는지 궁금해 죽겠는 표정이었다. 아크는 눈앞의 작은 골렘, 미니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 녀석들이 조종합니다. 제 수하들이죠.”

“골렘? 바르마 제국에서 가끔 선보이는 골렘과 닮은 것 같군.”

“하지만 크기가 너무 작은데…”

“옙. 크기는 작지만 다양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들이 배를 조종하고 여러

분을 새로운 땅으로 인도해드릴 겁니다.“

아크는 족장들을 대형 바우선으로 안내했다. 새로 건조된 것이라 그런지 진한 타르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아바로사는 연신 감탄하며 선장실과 조타실, 선창 등을 두루 훑어보았다.

바바리안들은 큰 배를 모르기는 하지만 북해를 뚫기 위해 별의 별 노력을 아끼지 않은 위인들이라 롱보트를 운용한 경험이 있다. 아바로사의 눈에 이 배는 제국도 가지고 있지 않은 신형이다.

“…확실하군. 미리 약속했듯이, 그대에게 글램을 주겠네.”

브리건트가 등에 멘 전투도끼 글램을 아크에게 내밀었다. 아크는 양날도끼의 자루를 쥐었다.

「글로리어스의 전투도끼 : 글램

아이템 등급 : 신

체력 +1500마나 +500지구력 +50힘 +150

화염저항 +30 빙결저항 +30

화염령친화 +15

패시브 스킬 : 도끼기술 +2 도약 +2

액티브 스킬 : 대학살, 초재생, 격노, 절대방벽. 무기소환, 무기해제

특이사항 : 8대 성물 중의 하나. 신격을 가진 자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초월 시스템 작동 : 성물 8/8」

「초월 1단계 달성까지 85%(8개의 성물과 영향력 포인트 10만이 필요합니다)」

「초월 시스템 작동 실패 : 영향력 포인트 24,000이 부족합니다」

‘이 정도야 뭐 금방이지.’

드디어 성물을 모두 모았다. 영향력 포인트는 바바리안들을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면 상당수를 채울 수 있을 것이고, 에스테뷰른 백작령에서도 비교적 쉽게 충당할 수 있다. 아크는 조나단이 빨리 시비를 걸어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으니까.

한편 족장들은 아크가 글램을 한 손으로 들고 있자 많이 놀랐다. 근육질의 바바리안들도 양손으로도 쓰기 힘들어하는 물건인데 말이다. 특히 아바로사는 아크의 존재 자체를 신성시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래도 글로리어스가 부족에게 보내준 챔피언이 아닐까 싶다.

.

.

.

드나텔로 자작령은 최근 위기에 빠져 있었다.

영지의 주요 수입원인 광산과 목재 중 하나가 완전히 삐끗한 것이다. 드나텔로 자작령에 존재했던 광대한 소나무숲에서는 엄청난 양의 목재를 생산할 수 있었고 이는 바우선의 주요 재질로 채택되어 톡톡히 이득을 누렸다. 드나텔로 자작령은 목재를 판 자금으로 내실을 기하고 중앙정계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변이 생겼다. 북쪽에 위치한 에스테뷰른 백작가에 아크란 놈이 떡 나타나더니 소나무 장갑판 대신 떡갈나무 장갑판을 내놓았다. 네 차례에 걸쳐 대포사격을 했지만 결과는 참패. 소나무는 떡갈나무보다 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비요른 재상의 지휘 아래 놓여 있는 제국의 조선소들은 일제히 소나무 반입을 자제하고 떡갈나무를 들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나가와의 전투로 보다 강력한 배가 요구되는 시점인데 약한 재질을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나텔로 자작을 비롯한 영지의 주요 관료들은 이 사태에 큰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쓰러질 듯하던 에스테뷰른 백작령은 감자와 떡갈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날 모양새를 취하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특히 조나단은 스테피나를 아내로 맞이할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라 충격이 더했다.

그리하여 조나단 드나텔로가 직접 움직였다. 에스테뷰른 백작가가 비록 실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백작이니만큼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 마차에 온갖 호화로운 옷감과 공예품을 싣고 백색성을 방문했다. 그러나 조나단은 스테피나를 만날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도망쳐버린 것이다.

“허허, 세상에. 스테피나 백작께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요?”

“송구스럽습니다, 조나단님. 백작님을 저희가 찾아보겠습니다.”

행정관과 병사들이 동원되어 백색성을 뒤졌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아크가 그녀를 미리 숨겨준 것이다.

“난 저 작자 진짜 싫거든! 그러니까 아크가 좀 숨겨줘, 응?”

“스테피나님은 여기에 숨어 계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크는 스테피나를 자신의 집무실에 숨겼다. 책장을 열고 들어가는 비밀공간에 따뜻한 화염 마법로와 이불, 그리고 읽을거리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가 숨고 아크는 조나단을 맞았다. 그가 만나자마자 빈정거린다.

“이게 누구신가. 우리 영지를 엿먹인 아크가 아니신가. 스테피나 백작께선 어디가시고 자네가 나와?”

“잠시 출타하신 것 같습니다, 조나단님.”

“출타? 출타아? 영주가 출타를 했는데도 밑의 사람들이 행선지를 모른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응?”

부들부들 턱살이 떨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화가 난 것 같다. 하기야, 마차에 싣고 온 선물을 스테피나에게 직접 보여주고 호감도를 올릴 계획이었을 텐데 그녀를 만나지도 못하고 체면상 마차는 놔두어야 하니 속이 좀 쓰릴 것이다.

아크는 그의 시건방진 말투에 대해서는 나중에 교정하기로 하고 비교적 공손하게 대답했다.

“조나단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워낙 천방지축인 분이십니다. 아무튼 사정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군요.”

하지만 아크의 목소리는 전혀 안타깝지 않다는 투다. 조나단은 열불이 뻗쳐 호통을 치려다가 아크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파고든 것을 목격했다.

‘무, 무슨 힘이…’

테이블은 대단히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졌다. 손가락으로 아무리 눌러도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하지만 아크의 손가락은 테이블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가 슬쩍 손을 떼자 부스러기들이 흩어졌다.

조나단은 그제야 이 아크란 수석행정관이 보통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어지간히 힘을 쓰는 자들도 이렇게 하지는 못한다.

‘가만, 그런데 이놈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힘이 이래?’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조나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그는 귀족이다. 눈앞의 준귀족이 자신을 해하리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겨우 목청을 가다듬고 말한다.

“아, 아크 경도 알다시피, 백작령에서 떡갈나무를 생산한다 치더라도 수량에 한계는 있지 않겠소?”

“수량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소나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말이오…기존 배를 운용하던 선원들의 선호도도 있을 것이고…또한 알렉산더 후작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소? 가능하면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당분간은 떡갈나무와 소나무를 번갈아가면서 공급하여 배를 만드는 게 더 좋지 않겠나 해서 물어보는 거요.”

“유감이군요. 저희 영지에서 배를 만드는 게 아니라서요.”

“그게, 비요른 재상께 아크 경이 말씀을 좀 드릴수도 있지 않겠소? 내 뒷사정을 좀 알아보니 아크 경이 재상부에서 일을 좀 했다고 들었는데 알렉산더 후작께서 이를 아시면 재상의 입장이 조금 곤란해지지 않겠나 이 말이오.”

‘이 자는 정치를 하려고 하는군.’

조나단에게 있어 불행한 점이라면 아크는 바르마 제국의 정치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개입할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크게 나서지 않는 것 뿐. 알렉산더 후작에게 드나텔로 자작이 별거 아니란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 조나단은 물론이고 드나텔로 자작조차 그저 자금줄일 뿐이다.

즉, 조나단이 알렉산더 후작을 들먹이는 것은 역효과에 가깝다.

“저는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곤란하군요. 그것은 비요른 재상님께 말씀드리면 되겠습니다. 저희는 발주에 맞춰 목재를 생산할 뿐이라서요.”

“하, 참. 답답한 친구군. 나중에 스테피나 백작께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 말이오! 중앙정계에 적을 늘려서 뭘 어찌할 작정이오? 당신이 스테피나 백작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소? 고작해야 준귀족이?”

조나단이 생각하는 구조가 드러났다. 그는 진심으로 아크가 비요른 재상에게 로비를 했고, 이를 알렉산더 후작이 알아차리면 크게 곤란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드나텔로 자작측에서 걸고 넘어지기 전에 빨리 협상을 하자는 의미이다.

만약 아크가 아니라 스테피나가 여기에 있었다면 그녀는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그렇게 당하기엔 너무 오래 살았다. 그는 눈앞의 조나단을 쏘아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테피나님께선 중앙정계에 진출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쓰, 쓸데없는 걱정? 지금 그걸 말이라고…”

꽈직.

뭔가 더 입을 나불거리려 하던 조나단은 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다물었다. 아크의 손이 테이블의 한 귀퉁이를 완전히 박살낸 것이다. 성인 남성의 팔목 두께의 나무가 부서져 나가는 걸 보며 그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아크는 조용히 축객령을 내렸다.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조나단님께선 돌아가 주셨으면 하는군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는 말이 생략되었다. 아크는 뒤뚱뒤뚱 응접실을 나가는 조나단의 뒷모습에서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눈에서 피눈물 좀 나게 해줘야 할 것 같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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