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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살아온 남자-54화 (5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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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가진 종족 - 10

드레이크를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물리친 실버드들은 축제를 벌이기로 했다. 비록 그들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에게 힘을 빌린 결과였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드레이크의 습격은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대사건이다. 피해 없이 물리친 것만 해도 기념할 만하다.

‘놀라운데.’

실버드의 축제는 아크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항상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해왔던 그들이 마구 뛰어 논다. 어디에서는 쌈박질이 일어났는지 테이블이 엎어지고 주먹이 오갔다. 주위의 실버드들이 그 꼴을 보곤 말릴 생각도 않고 웃는다.

그러니까 이건 스트레스 해소다.

실버드라고 해서 태생부터 점잖은 종족일리는 없지 않은가. 그건 대를 이어온 교육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다 보면 얼굴에 땀이 차기 마련. 축제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크는 텔루리안과 다루사, 라크러스와 함께 축제를 즐겼다.

어두운 저녁, 밤하늘 높게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장작을 어찌나 태우는지 매캐한 연기가 사방에 가득하다. 낮에 사냥한 짐승들을 도축하여 손질하여 통째로 굽는다. 실버드들이 술을 마시고 익어가는 통구이 주위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라크러스가 참지 못하고 웃통을 벗어던지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아아악!”

“꺄아앗!”

“괴물이야!”

오늘 만큼은 따돌림이고 뭐고 없다. 실버드 아가씨들은 라크러스를 피해 달아나거나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기쁜 날인데 분위기 망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춤을 춘다. 수십 명의 실버드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현란한 발걸음과 도약, 날개를 이용한 실버드의 댄스는 인간과는 많이 다르다. 아크는 옆구리에 꼭 붙어 있는 다루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왼쪽에서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크.”

“예?”

“이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텔루리안이 디보라의 목걸이를 풀어 아크에게 내밀었다. 그가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이건 디보라의 성물인데.”

“디보라께서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약속은 약속이고, 무엇보다…당신이 우리를 구했으니까, 이것을 받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아크는 말없이 목걸이를 받았다.

「초월 시스템 작동 : 성물 6/8」

「초월 1단계 달성까지 37%(8개의 성물과 영향력 포인트 10만이 필요합니다)」

‘2개 남았군.’

2개는 바르마 제국에서 구할 수 있다. 아크는 다음 행선지를 바르마 제국으로 정했다. 텔루리안은 그런 아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런 남자가 또 있을까.

‘강하면서 스스로 드러내지도 않고…’

오만하지 않으며 겸손하다. 언제나 여유롭게 사태를 관찰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텔루리안은 아크에게 가졌던 몇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그의 팔을 건드려본다. 다루사가 도끼눈이 되었다.

“아크…실은…아까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다루사가 아크의 옆구리를 꽉 죄여온다. 아크는 텔루리안의 말에 집중했다.

“당신을 디보라께 소개시키자고요. 실버드를 구원한 존재로서 우리의 창조주에게 인사를 드리는 의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아, 그런 관습이 있나 보군요. 혹시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아뇨, 아뇨, 아닙니다. 별 일이 없으면 금방 끝날 것입니다.

손사래를 치는 게 묘하다. 아크는 실버드에게 이런 관습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하긴 그가 수백 년 동안 살아왔지만 실버드와의 접점은 그다지 없었으니까 모를 만도 하다. 창조주에게 인사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족으로 받아들여 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아크가 그들을 구했으니까.

“좋습니다. 참석하지요.”

목걸이를 갈무리하자 이번에는 다루사가 아크의 팔을 끌었다. 그녀는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느닷없이 아크의 품에 안겼다.

“아크, 텔루리안에겐 마음 주지 말아요.”

“예? 전혀 그런 건…”

텔루리안은 아름답긴 하지만 아크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다. 다루사에게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괜찮아요. 하지만 텔루리안은 안 돼요.”

“다루사.”

아크는 다루사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그녀는 아크가 모르는 텔루리안의 감정을 눈치 챈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나오는 것이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실버드는 당신뿐입니다, 다루사.”

닭살 돋는 말이지만 다루사에겐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다. 그녀는 물끄러미 아크를 올려다보더니 별안간 목에 매달렸다. 그간 많이 먹어서 약간 살이 붙었지만 여전히 날씬하다.

“아크, 여기서 해요.”

그녀가 갑자기 등을 돌리더니 나무에 팔꿈치를 대었다. 커다란 엉덩이를 아크에게 들이대며 살랑살랑 흔든다. 아크는 갑작스런 그녀의 유혹에 당황했다.

“다루사, 여긴…”

다루사가 아크를 돌아보며 샐쭉 웃었다.

“축제가 끝나면 다들 짝을 짓지요. 짝을 지어서 뭐 하게요?”

그야 뻔하다. 열정적으로 축제를 즐긴 실버드들은 파트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인간도 그렇고, 대부분의 아인종들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미리 하는 것뿐이에요, 아크, 어서…”

이렇게까지 유혹하는데 굳이 참을 필요는 없다. 아크는 다루사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늘씬한 다리에 하얀 엉덩이가 드러났다. 엉덩이 사이에 끼인 것은 틀림없이 그가 선물한 속옷이리라. 아크는 그녀의 엉덩이에 키스했다.

.

.

.

‘떡치고 여신의 신전에 오다니.’

축제가 끝난 자정, 아크는 수 명의 실버드와 함께 디보라의 신전으로 안내되었다. 텔루리안이 찾을 때까지 그는 다루사와 풀숲에서 뒤엉켜 있었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니까 뭐.’

미와 사랑은 결국 짝짓기로 결부된다. 아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여기가 디보라님을 모시는 제단입니다, 아크.”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실버드들이 날개를 펼치고 아크를 둘러쌌다. 그는 정면의 제단과 파란색 대리석상을 바라보았다. 미와 사랑의 여신 디보라가 조각되어 있다.

아크가 무릎을 꿇었다. 주위의 실버드들도 손을 깍지 끼고 무릎을 꿇었다. 텔루리안이 웅얼거리며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실버드 여성들이 후창한다. 아크는 그녀들 사이에 있으면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디보라의 대리석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록 날개는 가지지 아니하였으나.”

“비록 날개는 가지지 아니하였으나.”

“당신의 아이들을 도와준 이 존재를.”

“당신의 아이들을 도와준 이 존재를.”

“당신의 품에 안기도록 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품에 안기도록 해 주시옵소서.”

낭랑한 선창과 후창이 이어진다. 아크는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다. 한 신을 모시는 종족의 기도에 참가하는 것도 그로서는 뜻 깊은 일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속눈썹을 내리깐 채 조용히 기도하는 텔루리안의 머리 위에 하얀 고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헤일로.’

신의 역사함의 증명.

지상에 부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마왕과 달리 8대신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계시로서 표현한다. 계시를 받는 자에겐 헤일로가 나타나며, 챔피언들에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텔루리안은 초월기사니까 디보라 교단의 성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디보라의 의지가 닿았다.

‘아…’

텔루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눈부신 광채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너무 눈부셔서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다. 그 가운데 한 장의 천으로 알몸을 가린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나타났다.

네 장의 날개를 가진 미와 사랑의 여신 디보라. 텔루리안은 그녀를 영접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디보라님. 나의 신이시여.”

―나의 아이야.

디보라가 손을 뻗어 텔루리안을 안았다. 그녀는 여신의 품속에서 미소를 띤 채 눈을 내리깔았다. 여신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희 종족의 번영을 위해, 날개 없는 동족에게 약속을 받아 두거라.

‘날개 없는 동족…’

그것은 분명 아크를 일컬음이다. 방금 실버드들이 그를 디보라에게 인사시키지 않았는가? 날개 없는 동족이 왔다고 말이다.

―그가 신격을 가지게 되는 날, 되돌아 올 것이다. 그 때까지 몸을 청결히 하거라.

‘몸을 청결히.’

―그와 너희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너희 종족을 이끌 것이다.

텔루리안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이들이라니.

―그리하여 마침내 너희 종족은 번영으로 나아가리라. 새로운 신과 함께.

‘새로운 신.’

디보라의 빛나는 얼굴과 텔루리안의 이마가 닿았다. 그녀는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해주었다. 광채는 사라지고 다시 디보라의 신전으로 의식이 되돌아왔다. 텔루리안은 입을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여성들의 시선을 느꼈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라니…”

“디보라시여…그 분께서 마침내!”

아니나 다를까 헤일로를 목격한데다 디보라의 계시를 받게 된 실버드들은 난리가 났다. 하나같이 넙죽 엎드려 텔루리안의 말을 기다린다. 아크도 엉겹결에 절을 하게 되었다.

“그…”

텔루리안은 고민했다. 디보라의 계시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신격이라니, 그리고 아이를 갖는다니. 아크가 신격을 가지게 될 날을 기다리고 그가 돌아오면 아이를 가지란 말이 아닌가?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실버드를 이끌 것이라니. 텔루리안의 하얀 얼굴이 복숭아처럼 발개졌다.

“텔루리안. 계시는…”

“그…계시는 이렇습니다.”

불경하지만 헛소리로 느껴지는 이 계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야기를 다 들은 실버드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아크도 놀랐다. 디보라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8대신들은 알고 있었구만.’

초월 시스템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에게 신격을 부여하는 것임은 짐작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신들이 그것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아르테온도 성녀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했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거다.’

아르테온과 디보라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신들이 그의 발자취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계시의 내용을 들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눈앞의 인간이 신격을 얻게 될 때를 기다려 몸을 청결히 하고 아이를 가지라는 내용이니 충격을 먹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헤일로가 나타났잖아요. 디보라님의 계시를 무시할 생각인가요?”

“그건 아니고…그래도…”

몇 명이 아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 돌아올 줄 알고.

다들 그렇게 황당해하는 사이 텔루리안은 마음을 정리했다. 그녀는 직접 디보라를 영접했기에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개인적으로도 그가 싫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7서클의 마법사에다 엄청난 검술실력…거기에 이상한 골렘들을 부리는 마법공학자이기도 해.’

평범한 인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텔루리안은 아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디보라님의 계시로,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크, 하늘정원은 언제고 당신의 방문을 환영할 것입니다, 부디, 들러주시기를.”

“들러주시기를.”

눈치를 보던 다른 여성들도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디보라가 내린 계시인데 거부한다거나 하면 그 후폭풍은 그녀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들과 떡쳐서 임신시키란 소리잖아.’

아크는 속으로 디보라에게 욕을 퍼부었다. 참으로 심보가 고약한 여신이다.

============================ 작품 후기 ============================

헤라클레스가 하룻밤에 50명의 여인과 동침했다고 하던가요?

흠좀...아무튼 영웅이라고 자칭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되는듯

주인공이 외롭지 않게 아무나 불이라는 리플도 보입니다만...

주인공은 외로워야 합니다 쿄쿄

그리고 이 소설에선 아인종들은 엥간하면 다 혼혈이 됩니다.

나중에는 드워프도 나와요!(로리드워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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