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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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윽악!”

“끄악!”

다소 충격적인 광경에 아이들이 놀랄 틈도 없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지금껏 자신들을 강하게 잡아당긴 몬스터가 죽으면서 관성의 영향으로 모두 넘어진 것이다.

그들의 옆으로 목 잘린 몬스터도 쿵, 하고 엎어졌다.

“와…….”

아이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감탄했다. 과거 수학여행 때부터 해가준이란 존재가 범인과는 다르단 걸 알았지만, 또 그가 신화급 이능력자이자 H.N 단원이란 점을 몇 번이고 들었지만……. 새삼스레 해가준의 존재가 엄청나게 다가왔다.

한쪽에서 반짝거리는 시선이 오가는 동안, 가준은 쥐고 있던 창만 가볍게 털었다. 산책을 나오면서 혹시 몰라 챙겼던 무기를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이런 경우’를 H.N 단장이 염두에 두고 챙기라고 했던 것이겠지만, 실제로 그 일을 겪으니 기분이 오묘했다.

혹시 창을 챙긴 행위가 오히려 플래그를 꽂은 건 아니겠지…….

괜히 찜찜한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가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챙겨온 덕분에 몬스터 사냥이 쉬워졌으니까. 마나 형상화까지 할 것도 없이 창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었다.

곧 가준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몬스터가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나타났는지 기억나? 그쪽 확인해 봐야겠는데.”

“어, 그게…… 저 오른쪽에서 처음 나타났던 것 같아.”

“맞아. 그쪽으로 팔을 잡아당겨서 기억해.”

흘끔, 졸업생과 눈을 맞춘 가준이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도깨비에게 잡혀 끌려갈 뻔했던 그의 손목은 빨갛게 쓸려 부어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이들의 손목도 모두 끈에 묶인 영향으로 붉었다.

“……너희는 이곳에 있어. 내가 다녀올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처리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미끼로 활용되어 다쳤다. 경미한 부상이라고 한들 내심 신경이 쓰여 가준이 움직이려는 때.

“아아악!”

왼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반사적으로 가준의 고개가 확, 그쪽으로 돌아가자 아이들이 말했다.

“가도 돼. 오른쪽은 우리가 다녀올게.”

“맞아. 네가 합류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우리 모두가 오늘 담력 테스트하다가 잘못됐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이런 건 신경 안 써도 돼.”

“주완이는 우리가 꼭 찾아올게!”

조금 전 가준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 그들이 양손을 내저었다. 이 정도의 부상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일부러 손을 움직여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눌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터라, 결국 가준은 고개만 끄덕인 후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촤악!

그러나 달려간 장소에서 한 마리를 처치하자마자 다른 곳에서 또 비명이 들렸다. 백선우가 향한 위쪽도 한창 소란스러운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도 도깨비가 계속 발견되는 듯했다.

“진짜, 돌아가면, 항의한다.”

해가준이 다소 숨찬 목소리로 짜증을 내뱉었다. 산속의 이문 사태를 담당했던 단체에 반드시 항의해야겠다고, 산에서 잔당을 놓쳤으면 제대로 후처리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졸업생들도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몬스터에게 대응하고 있단 점이었다. 처음에야 코앞에서 맞닥뜨린 도깨비의 모습에 놀랐지만, 금방 적응하여 몬스터를 붙잡아 두었다. 그들끼리 완전히 몬스터를 처치하지는 못해도, 해가준이나 백선우가 올 때까지 붙잡아 둘 수는 있었다.

“아아아-!”

한쪽에서는 심도경이 소리를 질러 도깨비를 착란에 빠뜨리고, 이동훈이 재빨리 뛰어 그것의 오금을 차서 주저앉혔다. 그때쯤이면 안영아가 웬 뿅망치를 휘둘렀다. 그 끝에 돌덩이가 붙어 있었다.

“구마 펀치!”

오늘 여행에서 사용하려고 가져온 물품이라는데, 어쩌다 저런 물건까지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덕분에 분위기는 차츰 바뀌었다. 다들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몬스터를 붙잡는 일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가준 역시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반격한다고 해 봤자 요술을 쓰는 건데, 그건 진실을 꿰뚫는 가준에게 통하지 않는 수였다.

오히려 힘든 점이라면 몬스터가 너무 곳곳에서 나타나, 그것들을 잡으러 뛰어다니다 보니 숨이 찼다. 완만한 산길이라 한들 몇 번이나 오르내리자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정말 사소하지만 은은하게 거슬리는 문제라면…… 허리가 아팠다.

아이들과 처음 마주쳤을 즈음부터 슬슬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발견한 몬스터의 기운에 경계를 세우느라 잠시 통증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뛰어다니자 스믈스믈 뻐근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그것 때문에 사냥에 문제가 생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미미하게 거슬렸다.

몬스터와 쓸데없는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어차피 죽을 테니까 도망가지 마.”

그 때문에, 마지막으로 몬스터를 발견하고서도 해가준은 뛰지 않았다. 어차피 몬스터의 뒤에는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었다. 느슨하게 창을 내리 쥔 채로 가준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끄륵, 끽….]

“못 알아듣는 척은.”

길쭉한 몸체에, 유달리 몸이 종잇장처럼 납작하고 얇은 도깨비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창으로 한 번만 내리그어도 그대로 몸이 갈라질 것처럼 보이는 약한 몬스터였다.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덜덜 떨리고 있어, 가준은 자비를 베풀어 주기로 했다.

“데려간 이능력자,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줄게.”

비록 그 자비는 죽음의 형태에 대한 것이었지만, 가준은 퍽 다정하게 말했다. 절대로 뛰기 싫어서 이런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가준의 말을 이해했는지 몬스터가 도망치려는 것을 멈췄다. 그저 몸을 살짝 뒤로 내뺀 채로 가만히 바라보았고, 가준은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일단 창의 사정거리 안에 둔 채로 다시 친밀히 대화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휙!

갑자기 몬스터가 하늘을 날았다. 뒤로 내뺀 다리를 굽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도약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요술로 불러일으킨 바람을 타고 펄럭펄럭 날아가는 모습에 가준이 ‘연이야, 뭐야.’라고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이제야 저 몬스터가 꽤 강한 요력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숨어든 도깨비들의 우두머리일지도 몰랐다. 너무 허약하게 생겼기에 방심해서 일어난 사고가 황당하긴 했지만, 저 몬스터가 강해 봤자 고작 이 도깨비들 사이에서였다.

게다가 오래 굶주린 탓에 금세 요력이 떨어졌는지 하늘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귀찮지만 이제 쫓아가서 처리하면…….

[저… 녀석을… 떨어뜨려!]

순간, 몬스터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몬스터들끼리 나누는 아주 작은 대화 소리였으나, 기이할 정도로 그 말이 선명하게 해가준의 귀에 꽂혔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과도 같았다.

“……백선우?”

몬스터가 말한 ‘저 녀석’은 분명 백선우였다.

현재 백선우는 북쪽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겨우 하급 도깨비를 상대로 고전할 일은 없지만, 북쪽은 길이 다소 험하고 가팔랐다.

“저 새끼가 감히.”

당장 해가준의 눈동자가 돌았다.

귀찮음과 피곤함으로 찌들었던 눈이 단번에 커지며 살벌한 안광을 풀풀 흘려댔다. 창을 움켜쥔 채로 산을 뛰어오르는 기세가 맹렬했다.

때마침 바로 앞에 있는 존재를 확인한 그가 버럭 외쳤다.

“남형욱, 숙여!”

갑작스러운 고함에 남형욱은 당황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수학여행 때의 강렬한 경험이 해가준의 외침에 무자각적으로 따르게 만들었다.

-타앗! 그대로 가준이 남형욱의 등을 밟고 뛰어올라, 하늘에 있는 몬스터를 쫓았다.

몬스터는 돌연 뒤에서 느껴지는 사나운 기세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와 마주했다. 서늘한 달빛을 받은 눈동자는 자비 없는 집행자의 그것과 닮았다.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창에 푸르른 빛이 상서롭게도 스몄다.

누군가에게는 수호하는 영험한 빛이고, 어느 존재에게는 섬뜩한 심판의 빛이니.

창끝은 무자비하게 도깨비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고, 몬스터는 제 존재 자체가 빛에 스러져 완전히 소멸되는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에서 발버둥 쳤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마지막 오기처럼, 도깨비가 모든 힘을 실어 상대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허공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위험이 많다. 이 상황은 해가준의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지만, 몬스터의 마지막 분노는 그 몸의 중심을 살짝 비트는 데에 성공했다.

“어어, 어, 야!”

“해가준!”

순식간에 해가준이 몬스터와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모두가 경악했다. 깜깜한 산속에서, 손전등의 빛에 비쳤던 해가준이 휙 추락하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가장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본 백선우는, 미동조차 없이 우뚝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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