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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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풀숲 너머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삼인방이 얼어붙어 있는 동안 해가준과 백선우는 평온한 낯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다가오는 기척부터가 위협적이지 않았다.

“우와, 얘들아. 여기에 있었구나.”

“어? 가준이랑 선우도…….”

풀숲에서 나타난 이들은 바로 김주완과 김시형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장이었던 김주완과, 과거 수학여행 때 잠깐 함께 다녔었던 김시형은 졸업식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가준도 그들이 조금 반갑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재회할 줄은 몰랐고, 또 저들마저 이 황당한 담력 테스트를 하고 있단 점에 속으로 탄식했다.

그사이 둘은 드디어 일행을 마주쳤다고 반가워하면서도 또 백선우와 해가준의 존재에 놀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삼인방에게서 설명을 듣고서야 감탄하며 인사했다.

가준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일행끼리 만났으니까 길 안내는 더 안 해도 되지?”

“그러게. 둘이서 우리 데리러 온 거구나.”

“아, 그게…… 사실 우리도 길을 잃었어.”

“뭐야, 반장! 운명이야!”

“……이런 운명은 없어도 됐을 텐데.”

조금 피곤하단 낯으로 가준이 미간을 꾹꾹 누르는 동안 김시형이 민망한 어조로 해명했다.

“분명히 지도대로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길이 이상해져서…….”

“끼야악, 귀신이야!”

“보통 그런 건 그냥 길을 잘못 들었다고 보지 않나.”

이동훈의 말에 백선우가 작게 웃으면서도, 슬쩍 해가준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는 어렵지 않게 해석되었다.

이들 다섯을 두고 가면 그대로 길을 잃을 것 같단 걱정이었다.

가준은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분명 그들은 낮에도 산책 겸 사전 조사를 위해 산을 돌아다녔다고 했는데, 똑같은 경로로 움직이면서도 길을 잃다니. 밤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까지 크게 영향을 끼치나?

가준은 경험하지 못할 어려움이라 결국 한숨을 내쉬며 끝까지 도와주기로 했다.

“후, 그래. 그냥 너희 별장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와아, 그러면 혹시 너희도 담력 테스트 참여하는 거야?”

“같이 하면 재밌긴 하겠다.”

“아니. 참여 안 해.”

다시금 쏟아지는 김주완과 김시형의 제안에 해가준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담력 테스트 루트를 그대로 밟고 있긴 하지만, 절대로 참석하지는 않았다고 꿋꿋이 믿는 그였다.

그래도 다섯 명이 헤맨 시간의 총합보다는 훨씬 빠르게 시작 지점에 다다랐다. 저 멀리 별장의 불빛을 찾아낸 가준이 안영아를 툭 건들자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돌아왔다는 감격으로 눈동자가 빛났다.

“뭐야! 너희 왜 이렇게 늦었어!”

때마침 옆길에서 남형욱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앞에 있는 아이들만 먼저 발견하고선 ‘너희랑 연락이 안 돼서 다른 애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다그치듯 말했다.

하지만 그가 여기까지 친구들을 찾으러 올라왔다는 것을 아는 이동훈이 피식, 웃으며 장난스레 답했다.

“어두워서 좀 고생했다. 길 자체가 위험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네 명씩 묶어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팀을 짰는데 무슨…… 어어, 뭐야. 해가준이랑 백선우가 왜 여기에 있어.”

뒤늦게 남형욱이 둘을 발견하고서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저 혼자만의 추론을 했는지, 곧 들뜬 어조로 물었다.

“너희 둘도 담력 테스트 하러 온 거냐?”

“아니라고.”

진심으로 해가준이 질색했다. 남형욱이 왜 쟤는 다짜고짜 신경질을 내냐며 억울해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형욱이가 잘못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있어 해가준은 길 잃은 다섯 양을 구해 준 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간략하게 배경을 들은 남형욱이 황당하다는 듯 탄식했다.

“너희 다 길을 잃어서 마침 우연히 만난 해가준이랑 백선우의 도움을 받았다고?”

“어. 나랑 백선우는 이제 돌아갈 거야. 담력 테스트 할 생각 없어.”

“알겠다니까. 아무튼…… 뭐, 애들 데려와 줘서 고맙다. 너희 네 명은 일단 들어가자. 다른 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순순히 고마움을 표하는 남형욱에게 가준이 눈짓으로만 끄덕였다가, 문득 이상한 지점을 짚어냈다.

“네 명?”

분명히 처음에 셋을 만나고, 그다음에 두 명이 합류해서 함께 왔다고 했는데 왜 네 명이라고 하지? 해가준의 반응에 남형욱도 의아하단 낯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네 명 맞잖아? 안영아, 이동훈, 심도경, 그리고 김시형까지.”

잠깐의 싸한 침묵 후, 안영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새된 목소리가 산을 울렸다.

“반장이 없어!”

“뭐야, 뭔데?”

“어, 어어, 분, 분명 직전까지 함께 있었는데.”

순식간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특히나 다섯 명이 되면서 심도경이 김주완과 계속 함께 걸었기에, 그가 가장 사색이 된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낯빛이었다.

백선우가 차분하게 그를 붙잡고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주완이를 본 위치가 어디야? 거기까지 갈 수 있겠어?”

“으, 으응…… 분명, 저곳에서…….”

덜덜 떨면서 심도경이 위치를 안내하는 동안 남형욱도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장 앞의 아이들이 패닉에 빠져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진 않지만, 그들의 반응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는 답이 있었다.

김주완이 사라졌다.

때마침 남형욱에게 전화가 왔다. 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의 전화였고, 그는 상황을 간략히 전달했다. 목소리가 떨려서 몇 번이고 더듬어가며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사이 이동훈은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며 김주완을 찾았다.

“야, 김주완! 들리면 대답해!”

혹시라도 그가 굴러떨어졌을까 봐 산 아래까지 살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주위가 어수선한 동안 내내 창백하게 굳어 있던 김시형이 더듬더듬 말했다.

“마침 우리가 다녀온 곳이 정자랑 가장 가까웠는데…….”

“뭐? 설마 진짜 귀신이라도 있단 소리야?”

“그,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주완이가 어디선가 소,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

남형욱이 황당하다는 듯 반응했다가, 심도경의 울먹임에 우뚝 굳었다. 심도경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계속 뒤를 돌아보더란 이야기까지 하고서 결국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 나는 그냥… 애들이 다 함께 떠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별장의 불빛을 발견하고서 완전히 긴장의 끈을 놓아버려, 김주완이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며 그가 자책했다. 안영아는 ‘히익, 귀신….’이라며 반사적으로 귀신에 대한 공포를 드러냈다가, 뒤이어 반장을 납치하다니 구마해 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러나 일련의 소란이 이어지는 동안, 백선우와 해가준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심도경이 마지막으로 김주완을 보았단 위치 인근을 침착히 돌아다녔고, 나무를 매만지고 바닥을 쓸어보는 등 주위를 탐색했다.

그리고 그 끝에, 둘은 조금 굳은 시선을 교환했다.

현재 이곳의 아이들은 김주완이 산에서 굴러떨어진 건 아닐지, 혹은 괴담 속의 귀신이 실재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아무래도, 몬스터의 소행인 것 같은데.”

주위에서 이계의 마나를 희미하게 발견했다.

***

잠시 후.

별장 앞에 모든 인원이 나왔다. 오늘의 모임에 참석한 신해고 졸업생의 수는 오십 명을 훌쩍 넘겨, 김주완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별장 전체가 소란해졌다.

하지만 그 어수선한 분위기는 해가준과 백선우가 나타나면서 진정되었다. 몇 개월 만의 재회에 반갑게 인사할 상황은 아니라지만, 둘의 등장만으로도 혼란과 불안이 일부 가라앉았다.

2년 전 신해 고등학교의 끔찍했던 수학여행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활약으로 모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건에서 비롯된 믿음이 아직 건재했고, 또한 현재 둘은 한국 최고의 이능력자 단체 H.N 소속이었다.

아이들이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동안 해가준과 백선우는 진지하게 대화했다. 주위에서 읽힌 것이 이계의 마나라고 파악한 순간부터 눈빛이 달라진 그들이었다.

“실장님이 알아봤는데, 이곳에서 감지되는 마나 파동은 없다고 해.”

“그러면 일단 이문이 열리는 건 아니란 소리인데…….”

H.N 내부에는 단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팀이 따로 존재했다. 언제 어디에서 벌어질지 모를 이문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상시 운영되는 팀으로, 백선우가 곧바로 그곳에 연락해서 정보를 얻었다.

“추측하기로는 몇 달 전에 이 산에서 B급 이문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때 하급 몬스터가 살아남아서 숨은 걸 수도 있다고 하셔.”

“……하. 진짜 별, 미친.”

뚝뚝 끊어지는 말에 깊은 짜증이 묻었다. 당장 이문이 열릴 만큼 심각한 사태는 아니라니 다행이다만, 휴가까지 와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 상황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실제로 이문 토벌에서 도망친 몬스터들이 살아남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적잖이 있었다. 하지만 H.N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러한 실수를 벌인 적이 없기에, 다른 단체의 부주의함에 대한 분노가 솟았다.

하지만 당장은 김주완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가준은 조용히 화를 삼켰다.

“후…… 아무튼, 처음부터 강한 개체는 아니었겠지. 그랬다면 진작 들켜서 소탕됐을 테니까.”

가준의 추론에 백선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가준은 산을 둘러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산에서 이문 사태가 일어났었던 건 약 4개월 전. 괴담의 시작 시기와 비슷하다. 이계의 몬스터는 본래 세계의 기운이 없으면, 즉 이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에선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힘이 소진되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몬스터는 숨어 지내면서, 사람들을 놀래는 방식으로 기력을 얻은 건가?”

“그 확률이 가장 높아 보여. 그게 아니라면 굳이 산속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다가 이제는 그 정도로 힘이 채워지지 않으니 아예 납치 사건을 벌인 거고.”

“음, 어쩌면 주완이가 이능력자라 건드렸을 수도 있어.”

백선우의 말에 해가준이 나직이 탄식했다. 피해자로만 인식해 이능력자란 점을 잊고 있었는데, 그것을 고려하면 앞선 기현상이 이해가 되었다. 몬스터는 마나가 필요하니까, 지금껏 정자에만 숨어 있다가 이능력자의 등장에 본격적인 행동을 벌인 것이다.

“정자랑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애들이 마침 우리가 주웠던 다섯 명이니까, 애초에 걔네도 몬스터한테 홀려서 길을 헤맸던 걸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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