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37)

73화.

순간 안영아가 당황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무척 부담스러운 듯 이마에 식은땀까지 맺히고, 이런 상황에선 불확실한 힘보단 확실한 능력이 낫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해가준이 먼저 고개를 돌려 상황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학생이 동시에 한 지점을 공격했다.

“흐아압!”

저마다 기합을 내지르며 세차게 내리쳤다. 인근에서 안영아도 초조하게 대기하다가, 그들의 공격이 내리꽂히자마자 곧바로 아티팩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

-쿠구구구궁…….

“아악!”

“꺄아악!”

몬스터가 몸을 비틀었다. 통증에 몸부림치는 듯 거대한 괴성을 내며 꿈틀거렸고, 그 동작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 불과했으나 내부의 아이들은 모두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마침 이동훈이 손도끼를 박아넣는 순간 벌어진 일이라, 그는 손잡이를 쥔 채로 허공에 붕 떠서 꽥꽥거렸다.

안영아의 행운은 그녀가 아티팩트를 발동하기 직전에 멈추도록 막아주고, 또 그것을 손에서 떨어뜨리는 일도 방지해주었으나…….

“으까아아악!”

그녀가 데굴데굴 소화액의 바다까지 굴러가는 일은 막아주지 못했다. 시야가 뱅글 돌아서 다급히 손으로 바닥을 짚어 보려 했으나 물컹한 내벽에선 주르륵 미끄러졌다. 사정없이 아래로 떨어지며 안영아가 비명을 내지르는 때.

-확!

“자, 잡았다…….”

김시형이 가까스로 안영아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빠른 달리기 실력이 이곳에서 발휘되었다. 일순 정말 죽는 줄 알았던 안영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하다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시, 시형아! 너 팔에 피……!”

복도에서 선생님이 쏜 마나 총에 팔을 맞았던 그녀다. 급히 붙잡는 과정에 힘을 쓴 듯 팔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그러나 김시형은 전혀 개의치 않고 두 팔로 안영아를 끌어올렸다.

“괜찮아. 잠시만, 곧 올려줄… 윽!”

하지만 힘을 주던 김시형이 돌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안영아가 기겁하며 무슨 일이냐고 걱정했지만 김시형은 입술만 꽉 깨물고서 그녀를 올렸다.

이후 겨우겨우 바닥을 짚어 위로 올라온 안영아가 김시형의 상태를 보고 놀랐다.

“너 등에 상처가……!”

안영아를 구하는 과정에서 김시형이 소화액을 맞았다. 옷의 등 부분이 타들어 스러지고, 살가죽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어졌다.

너무 미안하고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안영아에게 김시형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너희가, 이 상황을 가장 잘 알잖아.”

“……어?”

“지금 그 인간 말종들을 막아줄 사람이, 너희밖에 없을 테니까…….”

희미하게 웃으며 전하는 말이었다. 또 조금 전 연미정을 의심한다는 해가준의 말에 가장 크게 반발한 제 행동을 미안해하는 눈치기도 했다. 순간 안영아는 얼이 빠져서 입만 뻐끔거렸다.

때마침 해가준이 위쪽에서 외쳤다.

“야! 둘 다 괜찮으면 빨리 돌아와!”

몬스터가 움직이면서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그곳이 약점이란 게 확실해졌다. 그러니 상처를 집중적으로 회복하려 들기 전에 재빨리 공격해야만 했다.

김시형을 부축해서 돌아온 안영아의 표정은 한층 굳어 있었다. 단순히 놀란 건지, 긴장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위에서 점점 더 많은 소화액이 떨어지고 있고, 저편에서 다가오는 웅덩이의 낌새도 심상치 않았다.

-쿵! 쿵!

다시금 학생들이 힘을 모아 그 지점을 공격했다. 그리고 내벽이 충격을 받아 스르륵, 벌어지는 순간 안영아가 폭발 아티팩트를 가동시켜 넣었다. 이후 다 함께 우르르 뒤로 물러나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삐- 삐- 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가 마침내.

-콰과과과광!

아티팩트가 폭발했다. 내벽에 파묻혀서 일어난 폭발이라 다행히 이쪽까지 폭발의 열기에 휩쓸리진 않았으나 살덩이는 이곳저곳 튀었다. 그러나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폭발한 위치로 향하고, 곧 환호성이 일었다.

지름 약 1m의 구멍이 뚫렸다.

뒤이어 예상했던 대로 몬스터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리 대비해서 내벽에 무기를 박아넣고, 서로 밧줄을 나누어 붙잡아 버텼지만 흔들리는 정도가 심각했다. 몬스터가 몸을 흔들면서 위치가 바뀌어 그들이 조금 전까지 밟고 있던 바닥은 천장이 되었다. 구멍으로 다가가려면 날 듯이 뛰어가야 하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곧이어 나타난 변화가 그들을 경악시켰다.

“너, 너무 빨리 아물고 있어!”

구멍이 뚫린 가죽이 순식간에 스멀스멀 차오르듯 회복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화액도 바로 인근까지 차올라, 출렁거리는 모습이 꼭 그들을 모두 집어삼킬 듯했다.

때마침 부회장의 주머니에서 무전기도 울렸다.

[치직- 칙…… 백, 백선우!]

[야, 너 진짜- 그러다가 잘못… 지직…!]

[끼에에엑! -콰광, 쾅!]

몬스터가 울부짖는 소리와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해가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짓씹고서 말했다.

“이동훈. 너 벽 탈 줄 안다고 했지.”

“그, 그게 몬스터 내벽은 아닐 것 같은-.”

“한번 노력해 봐. 나도 뛰어갈 테니까.”

이동훈이 조금 전 오간 노오력 대화는 오해란 시선을 날렸으나, 해가준은 눈짓으로 응수했다. 닥치고 뛰란 뜻이었다. 유일한 아티팩트로 만든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구멍이 더 아물지 못하도록 상처를 내어 크게 벌려야만 한다.

결국 이동훈이 기합을 외치며 그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흐아아압!”

그가 도끼와 손을 이용해 확확 짚으며 위로 타고 올랐다. 다행히 아래로 떨어질 것 같진 않은 뒷모습을 확인한 후 해가준도 심호흡했다. 제가 따로 쥐고 있는 밧줄을 이용해 천천히 몸에 반동을 주다가, 그대로 휙! 반대편으로 뛰었다.

-타앗, 구멍 인근에 아슬아슬하게 붙었다. 곧바로 창끝으로 내벽을 찍어 다음 지지대로 활용했다. 이동훈도 그쪽까지 도착해서 둘이 함께 올라가 공격하잔 시선을 주고받을 즈음, 뒤편에서 서채경이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얘, 얘들아! 너희 뒤에……!”

촤아아악- 물이 역류하듯 둘이 있는 곳으로 쏟아졌다. 흡사 상처 부위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저마다 욕을 짓씹으며 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따위 염산에 휩쓸려서 죽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더욱이, 백선우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 지금 해가준에겐 당장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보다 백선우의 위험이 더 크게 다가왔다. 화가 났다.

자신이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그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 왜 죽으려 드냐고 다그칠 것이다. 그의 앞에서 대신 죽으려 했던 해가준은 뻔뻔하게도 제 잘못은 모르고 분노심을 키웠다.

내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는데 그걸 까먹어?

-촤악! 그때 바로 뒤에서 위액이 해일처럼 치솟았다. 마치 그들을 덮칠 것처럼 높이 일어났고, 해가준은 몸을 낮춰 아래로 구르듯 피하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씨발, 작작해!”

이곳에서 물싸움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짜증스레 소리치며 곧바로 옆으로 피했는데, 어쩐지 뒤편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니 분명 내벽에 소화액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해가준의 시선이 흘깃, 뒤로 향했다가 위액의 장벽이 흐무러지듯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가준은 의아했으나 일단 당장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동훈도 가까스로 해일을 피해 구멍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덧 구멍의 지름은 50cm 정도로 줄었다. 도착하자마자 이동훈이 재빨리 도끼를 휘두르고, 가준도 봉으로 내벽을 찍었다. 그대로 주욱 찢어 버릴 생각이었다. 아문 지 얼마 안 된 위치는 살이 약했다.

하지만 그들이 구멍을 넓히는 것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동훈이 사색이 된 채로 ‘안 돼, 안 돼!’ 외치며 더 다급하게 도끼로 내리찍고, 가준도 욕을 짓씹었다.

이곳을 나가야만 한다.

백선우를, 지켜야만 한다.

그 생각이, 강박이, 그리고 의지가 마침내 가준의 손을 타고 흘렀다. 일순 그의 주위를 감싼 공기 흐름이 어그러졌다. 마치 새로운 물길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마나가 모이다가, 기어이 소용돌이치듯이 봉 끝에서 휘돌며.

-콰아아악!

상처를 벌리다 못해 가죽을 완전히 꿰뚫었다. 살가죽이 길게 주우욱 찢어지며 몬스터가 괴성을 질렀다.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기면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친절히 경험시켜 주었다.

“으아악!”

몬스터가 몸을 비틀었으나, 이제 학생들이 떨어지는 곳은 위액의 바다가 아니라 바깥이었다.

쿵, 쿠궁. 복도의 딱딱한 바닥에 떨어져서 분명히 무릎도 아프고, 손도 아팠으나 그들의 얼굴에 환희가 들어찼다. 아이들이 환호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잠깐 함께 갇혔을 뿐이건만 유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모두가 환호하는 동안, 이동훈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제 도끼를 내려다보았다. 자신도 함께 공격하긴 했지만…….

그의 시선이 천천히 해가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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