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37)

67화.

갑작스러운 2반 선생님의 등장에 모두 경악했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이들도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선생님이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도 충격적이고, 또한 그녀가 이곳에 있단 점도 당황스러웠다. 최소원은 분명 휴게소에서 돌아갔다 들었는데…….

“저 인간이 링크, 그러니까 이곳에 몬스터를 푼 일당이야.”

게다가 그 선생님이 박인후를 가리키며 말하는 내용도 가히 놀라웠다. 아이들끼리 혼란한 시선을 주고받았고, 복도에 모인 선생님들도 당황한 낯으로 눈만 깜빡였다. 단순히 최소원의 고발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그들은 현재 고발의 진위를 의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최소원이 수련원의 수상한 일당이라고 추측했었다. 수학여행에 보조로 따라온 교사도 아닌, 담임직을 맡은 사람이 갑자기 마땅한 사유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첫날부터 생긴 의심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쭉 이어졌는데…… 갑자기 눈앞에 최소원이 나타났다.

하지만 최소원을 마냥 의심하기엔, 그녀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채로 박인후를 노려보는 행동엔 더없는 ‘진심’이 묻어났다. 때로는 설명하지 않아도 진심이 강렬하게 전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

아이들이 슬그머니 박인후와 멀어지면서 웅성거릴 즈음, 연미정이 복도로 나왔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소강당에서 학생들과 있다가 바깥의 어수선한 상황을 확인하러 나온 눈치였다. 연미정은 최소원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더니, 곧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원 쌤, 왜 일어났어! 안에서 쉬고 있어야-.”

“박인후… 저 새끼가 학생들을… 데리고, 간다잖아요.”

말하기 힘겨운 듯 숨을 몰아쉬며 이어진 이야기였다. 최소원은 제 머리를 가리키며, 이 상처도 박인후 때문에 생겼다고 말했다. 붕대를 감았으나 그 위로 붉은 피가 한껏 배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몰렸다. 박인후가 학년부장이지만, 현재 모인 선생님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신해고에 오래 있었던 사람은 연미정이다. 답을 바라듯 몰린 시선 속, 결국 연미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원 쌤 말이 맞아. 박인후가, 이 사태를 벌인 일당인 것 같아.”

“서, 선생님! 저는……!”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박인후가 항의할 듯 움직였다. 덩치가 큰 그는 한 발자국 나서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고, 그에 곧바로 3반 담임 김성민이 반응했다.

D급 결계 이능력자. 그가 재빨리 박인후의 주위로 결계를 둘러 가둬 버렸다. 천장에서 푸른 막이 텅! 쏟아지듯 내려와 그를 가뒀고, 박인후는 그것을 주먹으로 쿵쿵 쳤다. 막이 투명하게 일렁였다. 박인후가 A급 이능력자기에 오래 버틸 수는 없겠지만 잠깐의 틈은 벌어줄 수 있었다.

4반, 6반 담임들도 주춤 뒤로 물러나며 탄식했다.

“이 장소를 수련원으로 하자고 제일 먼저 추천한 사람이 인후 쌤 아닌가?”

“그러고 보니 수련원 답사도 혼자 다녀왔잖아……!”

순식간에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학생들은 당연히 혼란해하고, 그걸 넘어 공포에 질렸다. 최소원을 의심할 때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존재였기에 거리감이 있었다지만, 당장 박인후는 바로 앞에 있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함께한 존재다.

연미정이 재빨리 복도의 아이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너희는 일단 소강당 안에 들어가 있어!”

혹시라도 박인후가 본격적으로 날뛰면 순식간에 복도가 초토화될 테다. A급 체육 계열의 이능력자, 전공은 격투. 달려오는 버스마저 들어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능력을 개방하면 위험하다. 연미정은 다급히 소강당의 문을 모두 개방하여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일련의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해가준은 가만히 서 있었다.

“…….”

현실감을 잃은 듯 느리게 두 눈이 깜빡였다. 복도에 모인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소강당으로 대피하는 모습이나, 선생님들이 박인후를 경계하는 모습. 그리고 상황을 지휘하는 듯한 연미정. 마치 TV를 통해 이 소란을 지켜보는 것처럼, 이상한 괴리감 속에서 멍하니 숨만 내쉬었다.

그렇게 가준이 굳어 있자 일행들은 서로 당황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가 어떤 지시를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동상처럼 얼어 버렸다.

그리고 그때 김시형이 연미정에게 달려갔다. 그녀 역시 당황스럽고 무섭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눈이 반짝였다. 박인후와 갈등을 빚으며 학생들을 보호하는 연미정을 보니 안심이 들었다. 선생님이 링크일 리가 없다.

“선생님! 폭탄 구해왔어요!”

“……뭐?”

“이 폭탄이면 소강당 주위는 안전히 지킬 거예요. 박인후, 저 사람도 경계할 수 있고! 내일까지만 버티면 학교도, 또 부모님들도 이상하게 여겨서 신고할 거예요! 그러면 이능력 관리청이 움직일 테니까……!”

우르르 말을 쏟아내며 김시형이 제 가방을 보였다. 다만 해가준의 말은 살짝 의식한 듯,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었는지나 유엽화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김시형의 말대로, 현재 수련원은 모든 핸드폰 신호가 차단되었다. 그러니 학교와도 연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도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다. 간혹 이능력 고등학교에선 수학여행 때 시뮬레이션에 몰입하기 위해 이틀 동안 연락을 단절하는 경우가 있다지만, 이때는 사전 안내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안내가 없었을뿐더러, 사흘 차엔 수학여행이 끝나는 때다. 이날까지 연락이 없다면 본격적인 수색이 진행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일 수도 있고.

“그거 괜찮은 소리인데?”

“그래, 일단 지금은 박인후를 쓰러뜨리고 소강당 안에 모두 숨어 있으면…….”

복도의 선생님들이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당연하게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폭탄을 터트리면 모두 휩쓸릴 테니, 박인후를 제압해 멀리 있는 방에 가두어 해치우잔 소리까지 나왔다.

아이들의 얼굴에 차츰 안도감이 떠올랐다. 급작스럽게 흘러간 상황이 놀랍지만 일단 선생님 네 분이 나서서 자신을 보호한단 사실이 든든했다. 몇몇은 뒤늦게 최소원에게 다가가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

하지만 그때까지 가준은 가만히 자리에 있었다. 일행들이 당황하며 소강당 안으로 대피하자고 말하는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였다.

싸한 위화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맞나? 분위기를 따라 소강당에 숨으면 되는 건가? 그러면 정말로 연미정이 링크가 아니라는 가설이 맞아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어긋난 기분이 끝없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박인후와 마주치지 못하도록, 그들을 제 등 뒤로 숨겨 소강당으로 안내하는 모습은 무척 든든한 선생님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저마다 능력을 쓰며 박인후를 붙잡고 있다. 그린 듯 완벽한 보호자의 태도.

그러나 가준은 그것을 보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에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심이 두통을 몰고 왔다. 이런 의심이 버거워서 복도의 현장을 보기가 힘든 건가? 긴장감이 극에 치닫는 순간 특유의 울렁거림이 속을 마구 헤집었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형용하기 어려운 거부감. 아니, 이건…….

불쾌감인가?

마치, 역겨운 것을 맞닥뜨린 것처럼.

“윽…….”

그 순간 가준이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갑작스레 눈에 작열하는 듯한 통증이 덮쳤다. 견디기 벅찰 정도로 눈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가…….

-솨아아아아아.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내리면서 공기가 일순간에 묵직하게 가라앉고, 공간이 확 어두워졌다. 낙하하는 빗방울이 세상의 모든 빛을 잡아먹고 무겁게 추적추적 내려온다.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꼭, 심장 고동 같다.

찰나 가준은 아주 이상한 괴리감 속을 부유했다. 제 눈은 불타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나 주위로는 한없이 싸늘한 냉기가 들어차는 상황에서 느끼는 동떨어진 감각. 선생님들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아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학생들에게 피하라 외치고, 자신들이 지키겠다고 말하는…….

새까만 시야가 마치 잉크를 쏟아부은 것만 같다.

오늘 아침, 링크의 연구실에서 맞닥뜨린 사내가 ‘위대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할 즈음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범위가 어두워졌다. 시야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다 못해 눈이 멀어 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준은 그 순간 기시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익숙하다. 자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어둠을 맞닥뜨린 적이 있는 것만 같다.

제가 눈을 뜬 날부터, 사고하는 순간부터 암흑은 도처에 있었다.

그것을 피해 도망가던 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치던 길에 몇 번이고 넘어지고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단단히 감싸오던, 투박하고도 따뜻했던 손. 제 눈가를 어루만지던 손길.

어렴풋하게 떠오르던 과거가 마침내 형태를 되찾아간다. 그제야 지금껏 빠르게 깜빡이던 눈꺼풀이 서서히 느려지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 같은 눈동자를 감싸 덮고.

‘아가. 어느 순간, 눈을 떠야 될 때가 올 거야.’

비로소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된 순간, 해가준은 눈을 뜨고자 했다.

이 암흑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그를 행하자 의지가 뒤따르고, 서서히 눈동자 위로 복도의 모습이 일렁이듯 맺히기 시작한다.

빛이 종적을 감춘 밤에도 앞을 보는 능력은, 곧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의미이며.

“……선생님, 아니, 당신들.”

올바른 방향을 찾는다는 것은 암흑 속의 악에 홀리지 않고, 마침내 거짓에 가려지지 않는 진실을 구분한다는 의지와 같으니.

유명(幽明)의 기로에 선 해가준이 눈을 떴다.

“모두 거짓말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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