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37)

56화.

이전부터 가준은 내내 김시형이 지적한 부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 지하에서 사람들의 수를 확인할 때부터 전면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그였다. 따라서 수련원에서 겪은 온갖 소란 중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되짚었고, 마침내 떠올렸다.

3층의 복도에서 몬스터와 싸우던 중, 학생 한 명이 꼬리에 붙잡혀 날아가다가 폭발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근처에 있던 해가준을 백선우가 다급히 끌어안아 구하는 과정에서 허무하게 죽었다.

그때 가준은 그것이 폭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몬스터의 공격이라고만 여겼는데, 곰곰이 소란을 되짚어 보니 그건 몬스터의 스킬이 아니었다.

건물에 폭탄 내지는 폭발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는 게 틀림없다.

“수, 수련원에 폭탄이 있다고?!”

“몬스터도 벅찬데 폭탄까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아이들이 혼란한 얼굴로 가준을 돌아보았다. 지금껏 함께 수련원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폭탄을 이야기한 적은 없지 않느냔 의문이 가득했다. 게다가 폭탄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진작 챙겨서 몬스터에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전에, 백선우랑 바깥에 다녀올 때 발견했어.”

당장 백선우의 시선이 해가준에게로 향했다. 살짝 커진 눈동자가 그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입술을 두어 번 달싹거리던 그는 끝내 꾹 입을 다물며 침묵했다.

“…….”

고요히 다가오던 시선이 천천히 거둬지며, 이윽고 백선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준은 그에게 속으로 고맙단 인사를 전했다. 지금 상황에서 유일하게 들 수 있는 변명이었다. 나중에 백선우에게 따로 할 거짓말도 준비해 두어야겠지만, 그건 일이 닥치면 생각하기로 했다.

“어째 화장실을 좀 오래 다녀온다 싶더니, 3층 숙소 다녀왔냐?”

“겸사겸사. 아무튼 폭탄이 꽤 많으니까 챙겨올 가방을 준비해야 해.”

정보의 출처에 더 집중시키지 않기 위해 가준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기억 속에서 폭발의 위력이 꽤 높았으니 가방을 여러 개 챙겨가야 한다. 여러 번 나눠서 가져오는 건 위험하니까.

“석판을 완전히 깨우려면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이미 지금 연결돼 있어서, 한 시간이면 되겠어.”

폭우가 내리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비 때문에 공간이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지하로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계산을 끝내자 일이 무척 잘 풀려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로 들어갈 길이 뚫릴 뿐만 아니라 혼란을 초래할 방법도 생겼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잘못되더라도 은신 아티팩트를 이용해 잠깐 위험을 피할 수도 있을 테다.

든든해진 기분으로 가준이 말했다.

“그러면 지금 몇 명은 폭탄 찾으러 가자.”

“나! 이번엔 나도 가도 되지?!”

“……네가 가면 나도 따라갈게.”

이동훈이 냉큼 손을 들고, 백선우도 묘한 표정으로 합류 의사를 밝혔다. 어느덧 바깥이 어두워졌기에 수색의 위험도가 올라갔다. 빠른 움직임이 중요하단 계산에 따라 안영아와 심도경은 회의실에 남기로 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며 이동훈이 신나게 일어났다.

“대체 왜 폭탄을 숨겨뒀대. 잘못되면 다 같이 죽으려고 한 건가? 아니, 지들은 지하에 숨어 있고 학생들만 죽이려고? 그것도 아니면 몬스터가 제어 벗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글쎄…….”

그 부분은 가준도 확신하지 못했다. 발견한 계기는 정말 우연하고 황당한 사고였으니, 건물에 폭탄을 숨겨둔 이유는 링크에게 묻지 않는 한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유가 뭐든 궁금하진 않았다.

이제 훔쳐 올 거니까.

“얼른 나가자! 나 진짜 머리는 못 굴리겠다.”

이동훈이 재촉했다. 자신은 두뇌파가 아니라서 자료 분석이 너무 힘겨웠다고 토로하는 행동에 가준이 잠깐 실소했다. 이제껏 강제로 얌전히 있다가 ‘산책’ 한마디를 듣고 신난 개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러나 함께 회의실을 나서려는 순간.

-쿵!

불길한 울림이 퍼졌다. 커다란 추가 복도 저편에 떨어진 것처럼 바닥까지 진동했다.

삽시간에 회의실이 정적에 빠졌다. 옆의 소강당에선 어수선한 소란이 들렸으나 이곳만큼은 싸한 침묵이 깔렸다.

-쿵!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만들어 내는 묵직한 울림.

몇 시간 전에 들었던 것보다 더욱 둔중해졌으나, 그럼에도 울림을 느끼자마자 ‘그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본능이 가리키는 위험 신호.

문을 막 열려던 이동훈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앉아 있던 아이들도 모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해가준이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문을 노려보았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으나…….

마침내 그것이 해맑게 외쳤다.

[나랑 놀자아!]

꼬마의 해맑은 소리가 찢어질 것처럼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 안에 있던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심도경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안영아는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최소원은 꼬마 몬스터를 만난 적 없지만, 그것의 험악한 마나가 느껴지는 듯 몸을 떨었다. 이미 큰 부상을 입은 그녀는 이런 살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듯했다.

“소원 쌤, 숨 쉬어야 해.”

그런 최소원에게 연미정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해가준은 그들의 뒷모습과 테이블 위의 석판을 바라보았다. 설마 석판의 마나를 깨워서 유인된 걸까. 하지만 대체 왜? 아직 완전히 깨운 상태도 아닌데, 왜 하필 지금!

어느덧 쿵, 쿵, 쿵 소리가 가까이 다가와 인근에서 멈춰 섰다. 모두 이대로 몬스터가 지나가 주기를 바랐으나 그것은 어딘가를 똑똑, 두드렸다.

[여기 누구 없어?]

바로 옆, 소강당이었다.

부상자들이 모인 공간. 몬스터가 그곳에 관심을 보였다. 이동훈은 제발 아이들이 소리를 죽이고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들도 본능적으로 숨어야 한다 느꼈는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똑똑.

-똑똑똑똑.

-똑똑똑똑똑똑똑똑.

[누가 있는 것 같은데에?]

몬스터가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다. 게다가 그것은 수십 명이 함께 이야기하는 듯한 기이한 소리를 내고, 또 살벌한 사기를 풍겨 댔다. 소강당의 옆에 있는 회의실에서도 느껴질 정도이니, 당장 소강당 안은 숨도 쉬기 어려울 터였다.

이동훈이 기겁한 눈으로 해가준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 뭐야. 폐쇄된 공간에 숨으면 괜찮은 거 아니었어?”

“……이제 밤이 돼서 그래.”

밀폐된 공간에 숨어 있으면 몬스터의 관심에서 우선적으로 벗어날 수 있으나, 밤이 되면 공격력이 높아지는 만큼 저것의 ‘집착’도 커졌다. 직접 사냥 대상을 찾으려 드는 것이다. 이미 기척을 느낀 이상 밀폐된 공간의 주위를 쉽게 떠나지 않을 터였다.

“포인팅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거기에만 신경을 쏟긴 하는데…….”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었다. 꼬마 몬스터가 사냥하고 있는 동안 불과 5m 거리를 두고 피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것은 사냥감에만 집중하여 가준을 돌아보지 않았었다.

해가준의 눈동자가 스르륵, 소강당이 있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신해고는 일반인에 가까운 학생들만 가득하니 몬스터의 지독한 부름을 견디기 어려울 테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곧 소강당에서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꼬마 몬스터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면서 외쳤다.

[안에 있잖아. 있는 거 다 알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똑똑똑, 이어지던 것이 어느새 쾅쾅쾅 살벌하게 문을 치는 소리로 바뀌었다.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동훈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해가준을 쳐다보는 동안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강당의 학생들을 미끼로 사용해야 하나?

솔직히 해가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방안이었다. 약 서른 명의 부상자들은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할 테니 오래 시간을 끌어줄 테다.

하지만…….

“…….”

흘끔, 백선우를 쳐다본 해가준은 제 생각을 접었다. ‘사냥 대상에만 집중한다’는 몬스터의 특성을 듣자마자 백선우도 무언가 짐작한 듯했다. 절대로 그가 동의할 리 없는 방안이다. 게다가 사실 스스로도 썩 내키진 않았다.

가준은 고민했다. 이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 이대로 두면 소강당의 학생들이 무조건 죽는다. 그렇다고 전면전으로 저것과 맞닥뜨릴 수도 없는데…….

‘몬스터는 행동에서 욕망이 드러나는 편이라, 간단히 접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불현듯 연미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몬스터의 욕망. 그것에 간단히 접근한다면…….

잠시 가준이 심호흡했다. 그러다 다시금 저편에서 쾅쾅! 소리가 들리는 순간.

들이켠 숨을 짧게 내뱉으며 이윽고 벌컥, 문을 열고 나섰다.

[어라, 뭐야?]

몬스터의 고개가 획, 옆으로 돌아갔다. 완전히 목만 따로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무척 소름 끼쳤으나 가준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섰다. 회의실 스탠드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 더더욱 몬스터의 시야에 정확히 잡혔다.

몬스터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귀까지 올라갔다.

비 오기 직전 특유의 음울한 어둠이 가득한 시각. 복도를 채우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공기가 기도를 억누르는 듯 숨을 쉬기가 까다로웠다. 새벽녘 공동묘지에서 느낄 법한, 특유의 쓸쓸하고 섬뜩한 기운이 공간에 스멀스멀 번졌다.

가준은 몬스터의 마나가 복도에 깔리는 것까지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얕은 숨을 터트리며 말했다. 꼭 조소와 같은 숨결이었다.

“나랑, 숨바꼭질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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