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고민할 때는 걱정이 많은 편이어도 한번 결심한 후에는 과감히 행동하는 그였다.
2층 높이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이동훈이 주위를 살폈다. 위에서도 미리 확인했지만 바뀐 시야에도 적응할 겸 고개를 좌우로 돌리곤 재빨리 달려 선생님에게로 향했다. 잔뜩 긴장을 끌어올렸기에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가 나왔다.
이동훈이 바로 앞까지 다가올 즈음에야 최소원이 그를 알아차렸다.
“어……? 너, 3반…….”
“쌤, 일단 지금 저한테 업히세요.”
긴 대화를 나눌 틈이 없다. 처음에는 최소원을 부축해서 건물 앞까지 움직인 후에야 업으려 했는데, 바로 앞에서 본 그녀의 상태가 심각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듯 얼굴 한쪽이 아예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 꼭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이동훈은 더 다급히 움직였다. 얼떨떨해하는 최소원을 거의 강제로 등에 업히고, 빠르게 건물 외벽으로 돌아와 순식간에 벽까지 타올랐다. 벽을 오르는 과정에서 혹시나 선생님이 떨어질까 봐 신경 썼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은 몹시 빠르게 이어져, 위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놀랐다. 새삼 해가준도 감탄하는 눈으로 이동훈을 보았다. 운 좋게 몬스터도 꼬이지 않았다.
물론 2층에 올라오자마자 이동훈은 긴장이 풀렸는지 확 주저앉았다.
“헉, 허억…… 와, 나 어떻게 다녀온 건지 기억이 안 난다.”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가 불안정했다. 몇 분 동안 모든 힘을 끌어썼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고, 벽을 확확 짚으면서 올라왔기에 손끝이 터져 피도 났다.
“고생했다. 고마워, 이동훈.”
해가준의 인사에 이동훈이 씩, 웃었다.
곧 최소원에게로 집중이 옮겨갔다. 그녀가 2층에 도착하자마자 안영아가 상태를 살피고, 연미정도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았다. 피가 말라붙어서 쉬이 닦이지 않았다.
최소원은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된 듯 당황한 눈으로 공간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연미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심각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선생님. 이곳에…… 이문이 열렸어요.”
***
회의실로 돌아왔다.
소강당에 모든 치료 물품이 있지만 최소원을 그곳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선생님이 들어오면 학생들이 놀라다 못해 실의에 빠질 테다. 그러니 연미정은 그녀를 회의실로 부축했고, 김시형이 지시를 받아 재빨리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연미정이 치료하는 동안 일행들은 모두 회의실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안영아와 이동훈, 심도경이 얼빠진 낯으로 눈만 깜빡였다.
이문이 열렸다. 이 한마디가 주는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최소원은 이계의 마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수련원 가까이 올수록 소름이 끼쳤다 했다. 다만 그런 느낌만으론 확신할 수 없기에 이능력자 길드의 정보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수련원 인근의 정보를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다급한 연락이었던 터라 많은 정보는 구하지 못했지만, 산을 오르던 사람이 지진과 같은 울림을 느꼈다는 제보와 산꼭대기 부근의 하늘만 어두컴컴하더란 이야기가 있었다. 실종자도 인근에 다수 발생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뉴스에 실리지 않았다.
‘이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문이 모두 열리면 이계와 연결될 거예요.’
이문,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무조건 이계의 몬스터가 쏟아지진 않는다. 문이 어느 정도 이상 열려야만 ‘이계와 연결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이종족들의 침투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 이계와 연결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문이 열렸단 말 자체가 주는 충격과 공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재앙과 동의어로 취급하니까.
그들은 한참 멍하니 있다가, 침착해 보이는 해가준과 백선우에게 물었다.
“설마 너희는 이미 알고 있었어……?”
“……확신한 건 아닌데, 어느 정도는.”
“그런데 왜 말 안 했냐?”
“너희 이렇게 반응할 테니까.”
“아하…….”
다들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준은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다 이내 회의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예상은 했다지만 막상 그것이 확실시된 상황은 묘한 기분을 안겼다. 후련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진짜로 이곳은 이문이 열린 구역이고, 링크는 그 문을 ‘완전히’ 열기 위해서 예언의 아이를 각성시키려 하고 있다.
대체 이계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기에?
그저 모두를 죽이고 싶다면 테러를 벌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구태여 이문을 열고, 이계와 연결되려 한다. 분명히 원하는 게 그곳에 있으니 이런 복잡한 일을 준비한 걸 텐데.
깊은 생각에 잠기려는 때, 최소원의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미정 선생님, 박인후가 이문을 연 일당이에요. 그 새끼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신해고에 들어온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을 구하는 순간부터 알려지는 게 확정된 정보였다. 연미정은 깜짝 놀랐는지 들고 있던 집게와 솜을 그대로 툭, 떨어뜨렸다. 혼란함과 당황스러움을 가득 담은 눈이 최소원을 향했다. 연미정이 입만 벙긋거렸다.
“가장 먼저 장소를 제안한 사람이 박인후잖아요. 제가 휴게소에서 수련원 인근에 이상한 제보가 있다고, 이문이 열리는 전조와 비슷하다면서 캐물었어요. 게다가 산 인근에 실종자도 많은 이유가 뭐냐고,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이능력 관리청에 신고하겠다 했는데 그대로 저를…….”
생생한 증언에 안영아가 울상을 지었다. 미리 해가준에게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당시 선생님이 얼마나 혼란하고 공포스러웠을지 그대로 느껴지는 눈치였다. 안영아가 울먹울먹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았고, 최소원은 이제 괜찮다며 토닥여 줬다.
최소원은 박인후에게 머리를 가격당한 후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 조금 전, 몬스터가 마기를 흩뿌리며 난동을 부렸을 때 버스가 크게 흔들려 깨어났다 했다. 박인후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쓰러진 그녀를 급히 숨기느라 사망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바닥에 쏟아진 피가 흥건했고 상처도 심각했으니 당연히 죽었으리라 생각했을 테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연미정이 나직이 탄식했다.
“박인후가…….”
입을 가린 채로 시선을 떨군 그녀는 분노한 듯 보였다. ‘어떻게 사람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잇새로 빠져나왔다. 어젯밤에도 학생들과 함께한 박인후를 만나고, 또 오늘 아침까지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던 그녀였다.
한참 그 자세로 있던 연미정이 곧 해가준과 백선우를 돌아보았다.
“혹시, 너희는 알고 있었니?”
이번 수학여행에서 유일하게 낙오된 두 명이다. 박인후가 최소원을 처리하고 급히 움직이는 과정에서 둘이 낙오된 것이다. 그러니 연미정은 혹시 그 광경을 보았느냐 물었고, 가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본 건 아닌데, 선생님 핸드폰 발견해서 알았어요. 피가 잔뜩 묻어 있어서.”
그리고 버스 트렁크에 묻은 핏자국과 그 아래로 삐져나온 옷자락도 보았다 이야기했다. 그에 연미정이 탄식했다. 가준의 답에서 지금까지 의문으로 품고 있었던 것이 이해된 듯, 입을 벌린 채로 끄덕거렸다.
“왠지, 선생님을 싫어하는 것 같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휴게소에서 인후 쌤이 이상하단 걸 알았다면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경계할 만했고.”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총을 쏘려 했을 뿐이지 싫어하진 않았다. 가준이 조금 어색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 태도를 연미정이 눈치채고 있었다니 약간 당황스러웠다. 자신보다 두 배는 넘게 산 어른이고, 또 교사 생활을 하며 학생들을 수천 명은 겪어 왔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연미정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 잘했어.”
똑똑하게 대처했다는 칭찬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해가준은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침묵했다.
곧 최소원의 치료가 모두 끝났다.
그녀는 치료받는 동안 어제오늘 수련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물었다. 연미정은 머리의 부상이 심하니 고생하면 안 된다고 만류했으나 최소원의 입장은 강경했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자마자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을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이문을 대체 어떻게 열었는지 알아내야-.”
“소원 쌤, 이 몸으로 대체 어떻게 움직이겠다는 거야. 쉬어야 해.”
“미친놈들 때문에 애들이 갇혀 있는데, 제가 어떻게 쉬겠어요.”
최소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보통 수학여행 장소는 선생님들 몇이 모여 사전 답사를 거치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모두 생략된 점에서 진작 의심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말이 이어졌다.
일련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조용히 있던 해가준이 이내 최소원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그러면, 이 석판이 뭔지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