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37)

18화.

“크륵, 끅…….”

몬스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리를 떨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머리가 수그러들며 다리가 접히려 했다. 어떻게든 이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 치느라 자연스레 해가준으로부터 몇 발자국 멀어졌다.

마침내 몬스터가 괴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키에에엑!”

기세는 상당했으나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일순 모두의 마음속에 복종 능력이 통했단 환희가 차올랐다. 해가준도 어서 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딸랑…….

아스라이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몬스터의 꼬리가 살랑, 살랑 흔들리는 것에 맞춰 나는 소리였다.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일순 의식이 몽롱해지며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꼬리 끝에서 타닥탁 불씨가 튀었는데, 그것은 분명 붉은 불씨의 형태였으나 그것들이 뭉쳐 불길을 만들어 낼 때는 전혀 다른 색을 띠었다. 마치 새까만 불덩어리처럼.

“마기……?”

백선우가 가까스로 중얼거렸다. 이계에서 넘어온 몬스터들 중 특히나 강한 것들은 지금과 비슷한 ‘마기’를 뿜어내곤 했다. 그도 직접 몬스터를 상대한 적은 없지만 영상으로 몇 번이나 보았다.

그가 당황하는 사이 암흑 같은 불길은 빠르게 공간을 메웠다. 서서히 몬스터가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어? 몬스터가, 사라졌…….”

“갑자기 엄청 어두운데……?”

안영아와 이동훈이 더듬더듬 말했다. 몬스터가 사라지기에 도망가는 줄 알았는데, 서서히 덮쳐 오는 검은색 불길을 뒤늦게 눈치챘다. 몬스터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몸을 숨긴 것이었다.

벽면에 새까만 기운이 일렁이며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은 분명히 불길의 그것과 닮았다. 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다.

어두운 불길.

모순적인 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암흑이 섬뜩하게 그들을 덮쳐왔다. 공포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인식을 흐린다. 어느새 그들은 서로의 위치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찾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공허하게 흩어졌다.

암흑은 늪처럼 엉겨 붙어 그들을 공포 속으로 끌어내렸다.

-딸랑…….

간간이 방울 소리가 들리며 상황의 기괴함을 더했다.

그러나 그 사이로, 누군가의 차분한 발걸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현재 상황에서 이질적인 만큼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그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해가준.

어둠 속에서 잘 보인다는 능력은 단순한 시간상의 어둠, 밤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앞을 읽어내며.

앞을 본다는 것은 곧 길을 찾아낸다는 뜻일지니.

-확! 로프가 잡아당겨지며 몬스터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목이 붙잡힌 몬스터가 발버둥 쳤다. 바닥에서 로프를 찾아낸 가준이 곧장 그것을 잡아당겨, 백선우에게 다가가려는 몬스터를 막아낸 것이다.

“감히 누구를 건드리려고.”

서늘한 목소리에 짜증과 분노가 뒤섞였다. 어둠 속에서 똑바로 몬스터를 바라보는 해가준의 눈동자가 일순 푸르게 빛났다.

새벽녘에 조용히 내린 서리처럼, 그렇게 고요하고도 싸늘히.

“크라아악!”

몬스터가 가준에게 달려들며 입을 벌렸다. 일전과 같이 불길을 뿜어냈으나, 그것이 새까만 사기의 형태란 것은 달랐다. 더욱 깊고 짙은 어둠이 찐득하게 공간에 퍼졌다.

가준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하며 다시금 줄을 잡아당겼다. 거센 불길이 쏟아져 하마터면 줄을 놓칠 뻔했다. 새까만 불에 닿은 듯도 하나, 찰나 손끝에서 시원한 물기가 느껴졌다. 이질감 속에서 그는 조금 더 힘주어 몬스터를 붙잡아 끌었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도 가준은 앞을 읽어냈다.

-쿠웅!

기어이 몬스터가 가준의 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그가 이끈 방향대로긴 하나 반동이 거세어 뒤로 넘어졌다. 곧바로 몬스터가 그의 위로 올라탔다.

섬뜩하도록 새빨간 눈동자가 바로 앞에서 그를 직시했다.

‘아가. 어느 순간, 눈을 떠야 될 때가 올 거야.’

찰나,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나 깊이 묻어두어 되새긴 적도 없는 그날의 말이, 그 목소리가, 제 눈을 덮어주던 손길이. 모두 한순간에 떠올라 이상한 기시감을 안겼다.

……이런 식으로 눈을 뜨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어이 몬스터가 입을 확 벌렸다. 하지만 외려 그곳을 향해 가준의 손이 가까이 다가갔다. 몬스터는 당장 그것을 물려 했으나.

철컥, 불길한 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촤르르륵-! 마나 탄이 쏘아졌다.

활짝 벌려진 입 속으로 푸르른 마나가 사정없이 내달렸다. 목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간 스파크가 번지고, 또 번지다가. 기어이 온몸이 푸르게 빛나면서.

“……!”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몬스터가 온몸을 떨며 쓰러졌다. 스파크로 꿰뚫린 목구멍 사이사이로 빠져나오는 쉭쉭대는 바람 소리만이 현재 상황의 유일한 소음이었다.

서서히 공간을 점령했던 암흑이 거둬지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죽으면서 주술처럼, 최면처럼 퍼졌던 암흑이 함께 없어지고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뭐, 뭐야. 죽, 죽인, 정말 죽인 거야? 해낸 거야?”

더듬거리며 안영아가 놀라움을 표하고, 이동훈도 충격받은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선우만이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가준은 몬스터가 죽었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삼단봉으로 툭툭, 쳐본 후에야 짧게 한숨을 터트렸다. 정말로 죽었다. 누구 하나 큰 상처 없이 넘어갔으니, 이 정도면 무난하게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묘한 짜증은 치솟았다. 지금까지 이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행동한 적은 없는데. 갑자기 새까만 불길을 뿜어내며 시야를 어둡게 하다니…….

“가준아.”

“어어, 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가 다쳤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백선우가 조심히 손을 내뻗었다. 그의 엄지 끝에 목덜미가 닿을 즈음에야 해가준은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전 몬스터의 송곳니에 살짝 긁힌 듯했다.

가준은 백선우의 손끝에 묻은 붉은 피를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어차피 깊은 상처도 아니고, 이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이었다. 특히나 백선우가 다치지 않았으니까, 가준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미안해. 내가 제대로 복종시켰어야 하는데.”

“무슨 헛소리야. 너는 충분히 했어.”

백선우가 복종 능력을 걸 때마다 몬스터의 포인팅이 이동하려고 해서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끝난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잠깐의 틈이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가준은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넌 툭하면 자책하던데 그 버릇 좀 버려야 해. 도움 됐어, 백선우.”

상처만 바라보던 백선우의 눈동자가 천천히 옮겨 와 가준과 빤히 눈을 맞췄다. 얼굴에 남은 죄책감의 위로 어렴풋하게 웃음이 스몄다.

그렇게 한쪽에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안영아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그 커다랗고 무서운 몬스터를 잡아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해가준의 모습을 보니 단박에 든 확신이 있었다.

“단서를 찾는 게 어렵든 말든, 나는 해가준 편에 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강렬하게.”

“……나도 갑자기 열심히 수색하고 싶어졌어.”

처음엔 몬스터를 사냥하겠다는 말에 기함했었는데, 그의 단호한 태도 덕분에 오히려 믿음이 생겨 성공한 작전이었다.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괜히 뛰다가 힘을 뺀 후에 사냥하면 더 까다로웠을 테다.

이동훈이 탄식했다.

“어떻게 쟤가 지금까지 눈에 안 띄었지…….”

학교에서 해가준의 존재감은 매우 희박했다.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어하는 티가 팍팍 났고 전 학년 통합 훈련 때도 그는 가장 먼저 빠졌다. 애초에 공격 계열이 아닌 이능력자들은 훈련할 일이 적다지만, 다른 애들은 아쉬워하는 티라도 났다면 그는 열외되는 상황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눈치였다.

몇 번 마주쳤던 해가준이지만, 그때 받았던 인상과 오늘의 느낌을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이동훈은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으나 안영아도 비슷해 보였다.

문득 이동훈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어, 해가준. 네 안경 여기까지 날아왔다.”

조금 전, 몬스터와 싸우는 과정에서 해가준의 안경이 떨어졌었다. 동그란 안경의 오른쪽에 살짝 금이 갔으나 다행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동훈은 그에게 가져다주려고 걸음을 옮기면서 슬쩍, 제 눈앞으로 안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앓는 소리를 냈다.

“윽. 뭐야, 도수 진짜 높아. 너 지금 앞은 보이는 거냐?”

가까이 하자마자 현기증이 돌 정도로 도수가 높은 안경이었다. 이동훈의 시력은 양쪽 1.0으로, 엄청나게 특출난 편은 아니라지만 이런 안경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단순히 도수가 높아서 시야가 흐려진다기보단 무언가 억지로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이동훈이 으으, 소리 내며 안경을 든 손을 멀리했다. 이렇게 눈이 안 좋은데, 어떻게 조금 전에 몬스터를 잡았지? 이 정도면 안경이 없는 상황에선 움직이는 게 어렵지 않나?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동훈은 조금 더 빨리 걸어 해가준에게 다가갔다. 눈이 먼 해가준을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하지만 안경을 받아든 해가준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앞을 본다는 기쁨이나, 안경이 안전하다는 안도도 없었다. 그러나 안경을 쓴 이후에 반응이 왔는데…….

“으…….”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대로 안경을 확, 벗으며 벽에 기대 짜증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이동훈이 당황하며 물었다.

“왜 그래?”

“눈 아파…….”

“……안경을 안 쓰다가 다시 쓰면, 원래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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