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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6/137)

16화.

이동훈이 황당하단 듯 반응하는 모습에 안영아가 키득거렸다. 꽤 즐겁게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지만, 그들의 얼굴에 서린 미미한 불안감이 분명히 읽혔다.

이 공간에서 정말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불안, 공포.

해가준은 이미 이곳에서 며칠을 보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지만, 그 시간을 모두 합친다면 족히 보름은 될 터였다.

게다가 가준은 이제 몇 번이나 수학여행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넘기는 일에 익숙해졌다. 이번처럼 몬스터를 거의 맞닥뜨리지 않은 적은 처음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가준은 오늘의 상황이 좋다고 생각했다. 숙소만 잘 찾는다면, 오늘은 주위 사람이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로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쯤 이동훈이 짧게 탄식했다.

“그런데 우리 숙소 열쇠가 없는데.”

“맞네. 반장한테 열쇠 있잖아. 아, 조금 전에 만났을 때 받을걸.”

“달라고 하면 주겠냐…….”

“방에서 필요한 게 있다고 핑계를 대면 주지 않았을까?”

“흐음, 그러게. 그러면 이제 각 반 반장들을 찾아봐야 하는 건가? 해가준, 어떻게 해?”

뒤를 돌아보며 하는 질문에 가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정해진 숙소를 찾을 필요까지는 없고. 어차피 찾을 방법도 없잖아. 그냥 우연히 마주치면 열쇠 얻어보는 거고, 아니면 창고 같은 곳에서 숨어야지.”

실제로 지금까지의 하루 중에서 가준이 숙소에서 제대로 쉬어본 적은 몇 번 없었다. 반장에게 열쇠가 주어졌다지만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들 도망치느라 숙소를 아주 늦게 떠올렸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려 하면 이미 몬스터가 진을 치고 있어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밤은 이동하기가 어려운 시각이다.

잠시 해가준이 멈춰 서서 복도를 훑어보았다. 적요한 공간에 어둠이 드리우는 만큼 한기가 함께 들어차고 있었다.

가을날의 밤. 산속의 건물엔 특유의 쓸쓸한 냉기가 돌았다. 분명히 이 안에 학생들이 몇백 명은 있을 텐데도.

“…….”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공간.

건물이 워낙 큰 탓에 학생들과 뿔뿔이 흩어진 지금은 서로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준에게는 이 정적이 이상하게 다가왔다. 저 앞에서 이동훈과 안영아가 떠들고 있으나 그들의 소리는 한없이 멀게만 들렸다.

매번 겪어온 시간이지만 무언가 다르다.

흐릿한 하늘은 따스한 노을빛 한 줌 보여주지 않고 서서히 무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먹빛 하늘이 공간의 채도를 낮추는 것만 같다.

길어지고 기울어진 그림자가 마침내 복도를 모두 잡아먹는 순간.

돌연 가준이 외쳤다.

“다들 고개 숙여!”

-휘이익!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그들의 위를 사납게 할퀴고 지나갔다. 허공에 저릿저릿 떨리는 울림이 남을 정도로 살벌한 공격의 흔적이었다.

해가준의 외침에 놀라서, 혹은 본능적으로 모두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흐읍……!”

앞에 나타난 것을 확인한 안영아가 소리를 지를 뻔했다가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높은 소리를 내면 몬스터를 더욱 흥분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느새 그들의 눈앞엔 몬스터가 나타나 있었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곧바로 덮치려고 날아든 듯했다. 해가준이 먼저 몬스터의 존재를 알아채고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누구 한 명은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이동훈이 나직이 탄식했다. 어두워서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몬스터라고 인지하자 형태가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으로 빚어낸 듯 새까만 몸체. 성인보다도 훨씬 큰 몸집,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요요히 팔랑이는 다섯 개의 꼬리. 자신만큼은 절대로 잊지 못할 모습.

“강당에 나타났던 몬스터…….”

이동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공포에 짓눌린 사람처럼 가까스로 숨을 토해냈다.

암흑 속에서 어둡게 빛나는 새빨간 눈동자는 마치 피를 뭉쳐놓은 것만 같다.

그러나 몬스터의 시선은 이동훈이 아닌 해가준을 향하고 있었다. 입을 두어 번 들썩거리는 행동에 따라 턱 아래까지 뻗은 송곳니가 살벌하게 움직였다. 그 끝에서 뚝, 뚝 떨어지는 타액을 보며 가준은 짧게 실소했다.

강당에서 물 좀 먹였다고 이젠 자신을 사냥감으로 포인팅했다. 어쩌면 저 몬스터는 별관에서부터 여기까지,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백선우도 그것을 파악한 듯,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가준아. 내가 복종시켜서 붙잡아 둘 테니까 애들이랑 먼저 도망가. 나는 뒤따라 갈….”

“이건 내뱉는 말마다 다 위험 플래그네. 너는 말도 조심해서 해. 다 불길해.”

“……응?”

가준이 질색하며 하는 말에 백선우가 멍해졌다. 말의 내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평온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놀라웠던 탓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안영아와 이동훈이 긴장한 얼굴로 그를 보며 물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저거 사냥할 거야.”

“우리가요?”

“어.”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한 거 아닐지?”

“사족 그만 붙이고 이리와.”

해가준이 허리춤에서 철컥, 총을 꺼내며 하는 말에 둘이 흠칫하며 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물론 총구가 향하는 방향은 몬스터가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한 발 날릴 줄은 몰랐지만…….”

가준이 아깝단 어조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촤르르륵! 푸르른 마나가 빠르게 쏘아졌지만, 몬스터가 그보다 더 기민하게 뒤로 도망쳤다. 몬스터가 지치지도, 부상을 입은 상태도 아니니 맞추지 못하는 일은 당연했다. 그저 이번 한 발은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또한 애초에 가준이 쏜 위치는 바닥이었다. 몬스터가 있던 곳으로 쏘아진 마나는 바닥 위에 잔류하며 스파크를 일으켰고, 몬스터는 섣불리 그 위를 뛰어넘지 못했다. 오래 유지되진 못할 결계였다.

몬스터가 몸을 낮춘 채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이쪽의 위험도를 측정하려는 듯 눈빛이 형형했다.

그사이 가준은 빠르게 작전을 말했다.

“안영아. 저 앞에 화장실 있으니까, 이따 저기 들어가서 호스 있는지 확인해. 있으면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가지고 나오고, 없으면 대야에 물이라도 담아서 들고 와야 해.”

“으, 으응.”

“그러고 나면 내가 신호 줄 때 뿌려.”

“무슨 신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이동훈, 너는 조금 전에 챙긴 로프 있지?”

몇 시간 동안 수련원을 수색하면서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을 미리미리 챙겼었다. 둘은 계속 몬스터를 피해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졌던 눈치였으나 가준은 그것이 불가능하리란 걸 진작 알았다.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몬스터다. 그리고 그걸 사냥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로프로 몬스터의 다리든, 꼬리든 어디 하나를 붙들어야 해.”

“불타지 않겠냐……?”

“튼튼해서 곧바로 불타진 않을 거야. 어차피 오래 붙잡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잠깐의 시간만 벌 수 있으면 돼.”

“그 잠깐으로 어떻게 하려고?”

“총을 얻었으니 곧바로 총을 써야지. 아껴놨다가 뭐 하겠어.”

가준은 침착하게 말했다. 강당의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일은 처음이긴 하지만, 그것의 공격 패턴은 이미 어느 정도 파악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마나 총을 얻었으니 곧바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현재 남은 탄환은 6발. 괜히 아꼈다가 백선우가 잘못되면 큰일이었다. 도구는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백선우가 죽으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간다.

“가준아. 내가 몬스터를 붙잡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 너는…….”

안전히 숨어 있으라고 말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는 잠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토해내듯 말했다. 영 내키지 않는단 기색이 가득한 어조였다.

“너도 이동훈과 함께 몬스터를 붙잡아.”

“……그러면 너는?”

“내가 어그로 끌고, 너희가 붙잡으면 그때 총 쓸 거야.”

“뭐? 아냐, 내가 복종시킬게. 그게 더 간단하잖아. 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왜….”

“야.”

가준의 목소리가 뚝, 말허리를 끊었다. 짜증이 뒤섞인 눈으로 그가 똑바로 백선우를 응시했다.

“너 강한 척하지 마.”

“……응?”

“저거 한 번에 복종시키지 못하는 거 알아. 사람도 아니고 몬스터를, 아직 훈련 1년 차인 네가 어떻게 붙잡아. 최소 2년은 훈련받고 실전 투입되는 게 정상인데. 그리고 몬스터가 어느 정도 지쳐야 복종이 먹힐 텐데, 지칠 때까지 너는? 그냥 몬스터 앞에서 구르려고?”

“…….”

“네가 무슨 계획 세웠는지 다 예상 가니까, 내 앞에서 그거 실행하려 들지 마.”

서늘하게 떨어지는 경고가 퍽 살벌했다.

해가준은 백선우가 지금까지 어떻게 몬스터를 사냥하는지 보았다. 아무리 SPI가 높은 그라고 해도 한 번에 몬스터를 복종시킬 수는 없었다. 아예 무릎 꿇리려면 몬스터가 부상을 입은 후에야 가능했다.

하지만 백선우는 늘 그 사실을 숨기고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두려워하니까, 자신마저 그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단 생각에.

그래서 복종에 저항하는 몬스터와 온갖 대치를 벌인 후에야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때쯤이면 그는 꼭 몸에 상처를 하나씩 입었다.

“그리고 네 복종 능력에 저게 흥분해서 전력으로 달려들면 그게 더 문제야. 차라리 나를 포인팅한 상황이 그나마 방심한 틈을 노릴 수 있으니까.”

몬스터도 공격을 받으면 상대의 전투력과 위험 정도를 측정한다. 그러니 백선우 때문에 몬스터의 경계가 높아져 100%의 공격을 하려 들기 전에 자신이 틈을 노려야 했다.

가준이 백선우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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