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37)

7화.

가준은 그를 흘끔 쳐다본 후 다시 앞의 상황을 확인했다.

어느새 연단 위의 사내는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지켜보았을 때 사내는 연단 뒤의 커튼 사이로 나갔는데, 그쪽 문도 이제 잠겼단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강당에서 열리는 문은 오직 오른쪽 출입문뿐이다.

인원이 한쪽으로 몰려서 나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러니 모두가 나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성큼성큼 가준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강당 창문가로 걷던 가준이 손을 내뻗었다. 촤르륵, 커튼이 걷히다가 이내 뚜둑, 소리와 함께 뜯어졌다. 팔을 휙휙 휘저으며 빠른 속도로 커튼을 대충 말아쥔 가준이 외쳤다.

“야, 이동훈! 멍 때리지 말고 내 말 똑바로 들어!”

“어, 어어……?”

조금 전, 이동훈은 몬스터가 뛰어들었을 때 가까스로 몸을 피해 살았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몬스터를 맞닥뜨렸단 충격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가준이 그의 이름을 똑바로 부르며 소리치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현재 이동훈은 몬스터와 약 3m에 불과한 거리를 두고 대치하듯 서 있었다. 어느새 주위는 텅 비어 있었고, 홀로 남은 이동훈이 움직이려 들면 곧바로 몬스터가 달려들 기세였다.

“지금 몬스터가 너를 사냥감으로 찍었으니까, 침착히 움직여.”

“뭐?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침착하게-.”

“바닥에 떨어진 파편 중에서, 가장 길쭉한 작대기 주워. 발은 고정하고 상체만 숙여서 천천히.”

가준이 무시하고 말하자 이동훈은 움찔움찔하면서도 결국 그 말을 따랐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말대로 하자 몬스터는 꼬리만 팔랑거릴 뿐 당장 공격하진 않았다. 대상의 공격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여유에서 나온 태도였다.

몸을 낮춘 자세로 파편을 쥔 이동훈이 덜덜 떨며 물었다.

“이다음엔……?”

“그거 들고, 몬스터 유인하면서 강당 중앙까지 뛰어.”

“뭐?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너 그거 잘해.”

“내가?!”

별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이동훈이 경악했다. 하지만 해가준은 무척이나 차분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잘하더라. 그러니까 나 믿고 해. 중앙에서 멈춰야 하는 거 명심하고.”

“너 지금 나랑 처음 대화하는 거 알지……?”

“신호 줄 테니 뛰어. 하나, 둘.”

“아니, 이, 뭐, 미친.”

“셋.”

다짜고짜 숫자를 외는 행동에 이동훈의 낯빛이 실시간으로 변하다, 결국 ‘셋’이 들리는 순간 뜀박질을 시작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처절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가준은 더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갑작스레 도망치는 이동훈을 따라 몬스터가 움직였으나, 이동훈이 본능적으로 파편을 휘두르며 간격을 벌렸다. 이전에도 보았듯 역시 이런 방향으로 재능이 있었다.

이동훈은 체육 계열의 이능력자다. SPI가 낮아서 사실 일반인보다 달리기가 빠른 정도지만, 현 상황에서 그의 이능은 꽤 쓸모가 있었다. 사냥감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몬스터의 흥미는 더 올라간다.

속도를 높여서 따라오는 몬스터의 행동에 이동훈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악, 야, 나 진짜 멈춰? 멈추냐?!”

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훈에겐 그것이 죽으란 소리로 다가간 듯했으나, 결국 강당 중앙에서 주춤거렸다. 도망가고 싶단 본능과 해가준의 말이 충돌하여 그를 멈칫하게 했다. 물론 초면인 해가준의 말은 효과가 짧았다.

결국 다시 이동훈이 도망가려 했으나, 그 순간 몬스터가 뒤에서 높이 도약했다.

“허억!”

몬스터의 새빨간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당장에라도 이동훈의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든 몬스터의 그림자가 그를 덮치는 순간.

휙! 커튼이 날아가며 몬스터의 꼬리에 걸렸다. 가준이 미리 매듭을 묶어서 준비해둔 것이었다.

쿠웅, 갑작스레 꼬리가 묶이며 옆으로 잡아당겨진 탓에 몬스터는 이동훈의 옆으로 떨어졌다. 다시금 바닥에 엎어진 이동훈이 덜덜 떨면서 안도하는 때.

“크르륵!”

몬스터가 거칠게 몸통을 흔들자마자 커튼이 허무하게 그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동훈이 사색이 되어 다시 옆으로 뛰려는 순간, 이번엔 커튼이 완전히 몬스터를 덮었다. 일부러 가준이 커튼을 넓게 펼쳐서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그에 몬스터의 몸부림이 더욱 격해지다가, 기어이 괴성을 지르며 꼬리를 높이 올렸다. 커튼에 덮이지 않은 꼬리가 치솟는 모습에 이동훈이 덜덜 떨며 말했다.

꼬리 끝에서 타닥탁, 불씨가 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저걸로 잡히겠어……?”

“아니, 내가 어떻게 잡아.”

“어?”

덤덤한 가준의 답에 이동훈이 흠칫했다. 하지만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 몬스터의 꼬리에서 불꽃이 치솟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으로 커튼에 불을 붙였다. 커튼이 화르륵 타올랐다.

불 속에서도 고고히 선 몬스터가 한층 분노 어린 눈으로 이곳을 쳐다보았다. 이동훈이 주춤, 주춤, 뒷걸음질하며 절망에 빠진 순간.

-촤아아아.

천장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불길을 인지하여 자동으로 물을 뿜어낸 것이다. 강당의 중앙에서 치솟은 큰 불길이기에 양쪽에서 모두 물이 쏟아졌다.

“크륵…….”

몬스터가 멈칫하며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불 속성의 몬스터인 만큼 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해가준이 이전의 어느 회차에선가 한 번 경험하여 알게 된 정보였다. 처음에 이동훈이 죽은 이후 몬스터는 피를 맛보아 더욱 날뛰었고, 강당 안에서 우왕좌왕하며 미처 도망치지 못한 학생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다 창가에 있는 학생에게 달려들면서 커튼에 불이 붙었는데, 그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자 몬스터가 잠깐 멈칫했다. 당시엔 물이 닿는 범위로부터 금방 멀어졌지만, 가준은 분명히 그것이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해가준은 계획이 통했단 걸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꺼지기 전에 나가자.”

“어, 어어……!”

이동훈이 놀란 눈으로 몬스터와 해가준을 번갈아 쳐다보다, 가준이 먼저 움직이자 급히 그를 따라 뛰었다. 머뭇머뭇 이동훈이 감사를 전했다.

“살려줘서 고맙다. 처음에 왼쪽으로 피하라고 소리친 것도 너지?”

가준의 시선이 흘끔, 그를 향했다. 한참 뛰었을 텐데도 숨소리가 흐트러지지 않는 게 인상적이라 해야 할지.

이동훈. 체육 계열 이능인 만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 얼굴이 잔뜩 그을린 편이었다. 이마가 훤히 보이는 짧은 머리칼이나 살짝 찢어져 위로 올라간 눈매가 모두 활달한 인상을 드러냈다.

가준은 3반인 이동훈과 인연이 없었으나, 점심시간에 그가 운동장에서 신나게 공을 차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몇 번 보았다. 성격이 괜찮은지 쉬는 시간마다 그를 찾는 애들이 꽤 많아서 복도가 시끌시끌했다.

그랬기에, 그가 첫 희생자가 됐을 때 애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

해가준이 이동훈을 살린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시작부터 누군가가 죽어 버리면 그것이 주는 심적 타격이 크다. 심지어 그 대상이 평소 애들과 두루두루 친한 인간이라면 더욱. 모두가 충격을 받고 사기가 떨어져선 몬스터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연쇄작용을 피하고자 이동훈을 살렸다. 정말로 몬스터를 물로 막아낼 수 있는지 실험할 계획도 있었고.

예전에도 그를 몇 번 구하려 든 적은 있었다. 늘 강당을 제대로 벗어나지 못해 죽었지만…….

“어, 그래.”

가준은 대충 답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전 회차에서 죽었던 학생을 구했다는 점에 대한 기쁨이라든가 뿌듯함이라든가 하는 감정은 이제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곧 출입문을 벗어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백선우가 곧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곤 몬스터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문 앞에 온갖 잡동사니를 가져다 놓았다.

그런 후에야 백선우가 한숨을 내쉬며 가준을 돌아보았다.

“가준아, 위험할 뻔했어.”

“넌 다친 데 없고?”

“몬스터랑 대치하고 있다가 온 건 넌데……?”

얼떨떨하게 반응하는 백선우를 붙잡고 가준이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다 손에 작은 생채기가 난 것을 발견하고선 당장 표정을 굳혔다.

“이거 왜 이래.”

“아. 애들이 급하게 빠져나가다가 잠깐 부딪쳤어.”

“누구야. 없애 버릴 거야.”

“으응? 아니, 정확하겐 문에 부딪힌 건데.”

“뭐? 파상풍 걸리면 어떡해.”

“……?”

옆에 있던 이동훈이 떨떠름한 시선을 날렸으나 해가준은 진지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