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37)

6화.

 #2장: 변주

수련원에는 건물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가득했다.

비가 오려는 듯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가준이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니 슬쩍 박인후가 말을 걸어왔다.

“가준이는 멀미하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네. 버스에서 속이 조금 울렁인다고 했어요.”

“어어…… 그래.”

백선우가 냉큼 끼어들어서 답했다. 머쓱하게 박인후가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흘끔 본 가준이 실소했다. 박인후가 자신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 막는 선우의 행동이 우스웠다. 지금 걸어가는 길에서도 그와 제가 가까워지지 않도록 부러 가운데 자리를 청한 행동도.

눈앞에서 몇 번이나 죽은 존재가 한껏 가시를 세워 봤자 의미 없게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력은 가상해서 백선우의 손등을 토닥였다.

이윽고 강당에 도착했다.

뒤에서 누군가 타다닥, 걸어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가준은 2반 자리로 이동했다. 반별로 학생들이 모두 서 있었다.

가준이 다가가자 2반 반장이 어색한 낯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가준아. 인원 빠졌다는 걸 도착하고서야 알아서……. 1반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 담임 쌤 급한 일 생겨서 돌아갔다고, 내가 이제부터 담임 일 맡아야 한다고 하셔서 정신이 없었어.”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첫 회차에선 긴장이라도 떨쳐낼 겸 임시 담임이 되자마자 직무 유기를 저질렀냐며 장난스레 반응했었는데, 이젠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몇 번 들었더니 다 외울 지경이었다. 같은 반 애들이 ‘탄핵해야 한다, 우우.’ 소리하는 것도 흘려 넘겼다.

해가준이 반응하지 않자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반장과 주변 아이들이 흘끔흘끔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가준의 시선은 오직 연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오직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계획만이 가득했다.

곧 연단 위로 누군가 올라오면서 강당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 존재를 쳐다보는 시선엔 미미한 혼란이 있었다. 수련원이란 공간에서 연단 위로 올라올 사람이라면 선생님이나 조교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의 복장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발끝까지 가리는 치렁치렁한 검은 로브. 심지어 음침하게 후드를 덮어쓰고 있어 얼굴의 하관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드 아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신해 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수련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가 박수했다. 학생들은 서로를 흘끔흘끔 보다가 이내 따라서 손뼉을 쳤다. 혹시 이능 계열 고교는 수학여행이 원래 이러냐, 컨셉 여행인 거냐, 모르는 상태로 와서 겪어야 충격적이니 소문나지 않았던 거냐 등등. 여러 이야기가 박수 소리 사이로 조용히 오갔다.

“우리는 여러분을 아주 오래 기다려 왔습니다.”

해가준은 손조차 들지 않고 가만히 연단을 응시했다. 투명한 안경알 너머 그의 눈동자가 적요한 기운을 담고 사내를 향했다.

사내가 감격한 목소리로 말하며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오래전, 우리에게는 이러한 예언이 내려왔습니다.”

지지직, 일순 공간을 찢을 듯한 소리가 천장의 스피커에서 퍼졌다. 다들 짧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는 동안에도 스피커에선 계속 까드득 긁는 소리가 났다. 아주 기다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했던 소음이 기어이 무언가를 부술 듯 콰직, 격해진 순간.

[뿔이… 가리킨 방향에… 진정한… 개문의 열쇠가… 있을 것이니….]

저 멀리서 속삭이는 것 같다가도 바로 머릿속에서 읊조리는 듯했다. 익숙한 언어처럼 들리나 또 전혀 모르는 언어인 것 같고, 다른 속삭임이나 노이즈가 섞인 듯 혼잡한 소리.

이것은 마나에 담긴 의지였다. 이계에서 넘어온 몬스터들 중 지능이 있는 상위 존재가 마나에 의지를 실어 이야기하면 감응력을 가진 이능력자들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뭐야, 이거……?”

“갑자기 웬 이상한 소리가…….”

학생들끼리 수군거리는 동안 가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강당 뒤편에 서 있던 선생님들이 다른 새까만 로브의 사내에게 안내받아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가준은 그들의 얼굴에도 묘한 혼란이 자리한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백선우의 팔을 붙잡았다.

“백선우. 조금 이따가 내가 소리를 지를 거야.”

“……응? 갑자기 왜?”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소리 지르기 전까지 너는 가만히 있어야 해. 뭘 봐도 절대로 나서려 하지 말고. 그러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그때 곧바로 강당 출입구 오른쪽으로 뛰어가서 문을 열어.”

가준이 친절하게 방향까지 가리키며 하는 말에 백선우가 눈을 깜빡였다. 당황한 눈치였으나 가준은 그의 팔을 조금 더 힘주어 붙잡았다.

“문을 열고서 어디로 움직이지는 마. 그쪽에 있으면 나도 금방 따라갈 테니까.”

“처음부터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야?”

“응. 내가 여기서 뭔가 해야 해.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할 거지?”

“하지만…….”

“내가 믿고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백선우.”

눈을 빤히 바라보며 하는 말에 백선우가 움찔했다. 뒤이어 가준이 가볍게 그의 팔을 흔들기까지 하자 결국 난감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무언가 묻고픈 기색이었으나 가준은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사이 다시 연단 위의 존재가 짝, 손뼉을 쳤다. 이목이 집중됐다.

“예언의 음성을 알아들었다면 모두가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겠지요.”

“…….”

“이 예언이 말한 ‘뿔’은 여러분 사이에 숨어 있다고 해석되었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들 사이에 감춰진 힘. 따라서 우리는 진정하고 진실된 각성을 추구하는 바.”

각성이란 단어에 강당이 술렁였다.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각성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뿐이다. 게다가 눈 깜짝할 새에 연단 위로 나타난 것에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여우처럼 보이는 그것은 사람보다 훨씬 몸집이 컸으며, 새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비늘처럼 빛나는 몸체의 뒤로 꼬리 다섯 개가 풍성하게 자리했다. 그것이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불씨 같은 것이 타닥타닥 피어올랐다.

새빨간 눈동자가 마치 피로 얼룩진 듯했다.

“뭐야, 저거 몬스터야?”

“갑자기 나타났는데 진짜 몬스터겠어?”

“시뮬레이션 아냐?”

“와…….”

학생들이 모두 눈을 반짝였다. 몇몇은 흘끔흘끔 백선우를 쳐다보며 그가 있어서 이런 경험도 한다고 수군거렸다.

또 학생회는 은근히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2학년 학생회의 SPI 평균이 높단 이야기는 유명했다. 그러니 오직 백선우만을 위해 시뮬레이션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도 있을 거란 듯 으스대는 모습이었다.

‘웃기고 있네.’

가준은 학생회의 코가 곧 천장을 찌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백선우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몬스터가 나타나자마자 그가 움찔하며 앞으로 나서려 해서 제지한 손길이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저것이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해가준은 심호흡했다. 모든 학생이 호기심으로 들뜬 이 순간을 주의해야 했다. 저마다 눈을 빛내며 연단을 쳐다보는 지금.

하나, 다시금 연단 위의 사내가 손뼉을 치고.

“혹시나 각성하지 못한다 해도 상심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모두 위대한 문을 위한 제물이 될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우리는 각성의 주인공을 찾을 때까지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둘, 개소리를 지껄이고.

-타앗!

셋, 몬스터가 앞으로 도약하는 순간.

“이동훈, 왼쪽으로 피해!”

해가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앞쪽에서 쿠당탕!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파편이 튀었다.

몬스터가 뛰어들면서 바닥이 움푹 파인 것이다.

“허, 허억…….”

그리고 바로 그 옆, 왼쪽으로 몸을 구른 남학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전신이 덜덜 떨렸다.

충격과 공포에 짓눌린 정적이 공간 전체를 장악할 듯 소름 끼치게 퍼지다가.

한계치까지 당겨진 끈이 뚝, 끊기듯.

“으아악!”

“도, 도망쳐!”

모두가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현실의 공간에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하지만 몬스터가 달려들자 바닥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이 몬스터는 가상이 아니다.

정신없이 학생들이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가야 한다는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몬스터와 멀어져야만 한다는 본능에 따라 뛰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에게 누군가 소리쳤다.

“얘들아, 여기로 나가!”

강당 오른쪽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힌 백선우였다.

조금 전, 가준은 소리를 지르는 순간 곧바로 백선우를 밀쳤다. 백선우는 잠깐 멈칫하는 듯했지만 이내 약속한 대로 움직였고, 그다음엔 가준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들에게 소리쳐 도망칠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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