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러나 하나만 있어도 되는 상황이기에 가준은 적당히 사양하고 뒤로 물러났다. 사실 아무리 SPI가 낮아도 이능력자 자체가 희귀하기에 자신들을 향한 호기심 또한 한층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저기, 얘들아. 그런데 혹시 능력이 어떤….”
“저 다시 전화해 보고 오려고요. 금방 핸드폰 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가준이 아예 건물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가 귀찮게 됐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까이 있으면 능력 보여달라 하시겠네.”
“내가 괜히 말한 걸까……?”
혼잣말에 백선우가 눈치를 봤다. 미안해하는 기색이 가득해 가준이 물끄러미 그를 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다른 단체의 회원증을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아냐, 됐어. 잘했어.”
금방 얼굴이 환해졌다. 조금 전에 풀 죽은 게 언제였냐는 듯 화악 변하는 표정에 가준은 참 신기하단 감상을 가졌다.
대화만 몇 마디 나눠 봐도 착하고 순해 빠진 녀석이란 게 뻔히 보이는데, 다른 애들은 얘를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닌가?
사실 조금 전 아주머니들이 만약 능력을 보여달라 했다면, 누군가는 분명 소리를 지르며 경악할 것이다. 그만큼 백선우의 능력은 아주 독특하고, 신해 고등학교에 소속될 수 없는 수치를 가진 힘이니까.
백선우는 학교에서 규격 외 인물로 유명했다. 1학년 2학기에 이뤄진 재검사에서 ‘각성’을 하여 능력이 재발견을 거쳐 발전되었으며, 그게 꽤 과격한 종류였다.
분명 학년 초까지 백선우는 학교에서 인기인이었다. 이름값을 하는지 선한 성격에 무척 훈훈하게 생겼고, 키도 크고 비율도 좋아 실제로 교지 모델이 된 적도 있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교복 모델을 할 상이라고 했다.
친절한 백선우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애들은 많았고, 잘생긴 그와의 친분으로 으스대려는 애들도 수두룩했다. 능력도 동물과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에 가까워 보였던 터라 다들 그답다고 했다.
하지만 각성을 통해 밝혀진 그의 능력은 ‘복종’이었다.
게다가 이능 수치마저 어마어마해서, 그가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한다면 상대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떨어질 것이다. 이능력자를 복종시키기엔 한계가 있지만, 이능 수치가 낮은 경우엔 해당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애들은 백선우를 무서워했고, 거리를 뒀으며, 가까이만 다가와도 화들짝 놀라서 시선을 피했다. 더 이상 그의 주위엔 애들의 떠드는 목소리조차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가준은 그런 백선우의 눈동자와 눈을 맞추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그의 갈색 눈동자가 연하게 반짝였다.
“진짜 이상하네.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두고 갈 수가 없는데. 존재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 들떠서 깜빡했나 봐…….”
“애들은 그렇다 쳐도 쌤까지 그러면 직무유기 아닌가.”
“선생님은 학교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아, 맞다. 그분 올해 왔지.”
백선우는 다른 학교로 충분히 전학 갈 수 있었고 실제로도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가 쏟아졌다. 하지만 신해 고등학교 또한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두고 싶어 했다. 학교에서 강한 이능력자를 배출할수록 영향력이 높아지니까.
그래서 오직 백선우 한 명을 위해 학교는 강한 이능을 가진 능력자를 초빙했고, 그가 2학년 1반의 담임을 맡았다. 체육 계열의 A급 이능력자로 기세가 꽤 살벌했으나 이런 변화에 불만을 표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오히려 안심했으면 안심했지, 불평할 리가 없다.
“아니, 그래도 직무유기지. 교사 경력 없대? 황당하네.”
“없으시긴 해.”
“…….”
“…….”
“……미안.”
“아냐,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그래도 네 담임 쌤인데.”
“아냐, 별로…… 안 친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따라붙은 소리가 조용했다. 가준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 선생님과 친하지 않은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가준은 다시금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받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슬슬 선생님의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를 몇십 통 띄워 놀라게 하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문득 가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벨소리 들리지 않나?”
“응? 나는 안 들리는데. 대체 어디에서?”
“쉿, 잘 들어 봐.”
백선우의 입을 막을 듯 손을 훅, 가까이 한 가준이 핸드폰의 화면을 보이며 다시 전화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지나가는 누군가의 벨소리인 줄 알았으나 점점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자신이 전화를 걸 때만 벨소리가 들리길 반복했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자 백선우도 벨소리를 들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로 전화하고 끊는 타이밍과 딱 맞게 벨소리가 들렸다가 멈췄다.
곧 가준이 천천히 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라 고속도로의 소음과 구분해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가준은 벨소리가 들리는 곳 앞에 섰다.
“…….”
드넓은 주차장의 구석. 정원을 조성하려 한 듯하나 꽃은 시들었고 잡초만 무성했다. 연석은 더러웠고,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 그림자가 어지럽게 일렁여 시야를 혼란하게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피 묻은 핸드폰.
가준은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진흙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피범벅이 된 흙바닥이란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싸한 정적 속에서 백선우가 먼저 다가가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조금 전 확인한 그의 핸드폰보다 더 산산조각 난 화면이었으나 전화가 온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가준이 전화를 끊자 뚝, 벨소리가 끊겼다.
가준은 제 담임 선생님의 핸드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나, 이것이 그녀의 핸드폰이라고 확신했다.
“어, 어떻게 할까?”
“……일단 줘 봐.”
손을 내밀자 곧바로 백선우가 위로 핸드폰을 올렸다. 가준이 조심조심 화면을 건드려 보았으나 깨진 화면의 사이사이로 피가 가득 고인 탓인지 터치가 먹히지 않았다. 가준이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려 들자 백선우가 다급히 제지했다.
“그러다 손 다쳐.”
한쪽 손이 붙잡힌 가준이 백선우와 핸드폰을 번갈아 쳐다보다, 한숨과 함께 손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 직전, 갑자기 띠링-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반짝였다. 누군가에게서 온 문자가 화면 상단에 떠올랐다.
[부장 쌤이랑 대화하고 오겠다더니, 아직 대화함?]
[수련원 장소가 어딘데 자꾸 이상하다고 그래??] am 10:02
선우와 가준의 시선이 동시에 핸드폰으로 향했다.
부장 쌤. 학생부장, 혹은 학년부장. 학생부장은 현재 비담임으로 이번 수학여행에 따라오지 않았고, 2학년의 학년부장은 바로 2학년 1반의 담임이었다. 박인후. 학교에 올해 처음으로 왔지만 A급 이능력자란 이유로 단숨에 학년부장이 되었다.
그리고 수련원은, 박인후가 제안해서 정해진 곳이라 알고 있다.
실제로 이능 고등학교에선 수학여행에서 진짜 ‘수학(修學)’, 즉 학문을 갈고닦는다는 의미의 커리큘럼을 시행하곤 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련원 내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이능력 활용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신해고는 일반고와 비슷하게 평범한 수학여행만 보냈었다. 그러나 이번엔 박인후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자 제안했고, 교장이 냉큼 동의했다.
이 소식에 2학년 학생들은 들떴었다. SPI가 낮다곤 하나 그래도 희귀한 이능력자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그들도 나름대로 ‘이능력자들을 위한 훈련’을 경험하고픈 눈치였다.
그런데 그 수련원이 이상하다고?
문자를 곱씹고 있는데 갑작스레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순간 선생님의 핸드폰인 줄 알고 흠칫했으나, 휴게소 직원분에게 빌린 핸드폰이었다. 화면에 행정실 번호가 떴다.
[얘들아, 선생님이랑 연락됐고 지금 돌아가고 있대!]
“……혹시 1반 선생님이요?”
[어, 그래. 금방 도착하신다던데? 안 그래도 인원 빠진 거 파악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면서, 그것 때문에 정신없어서 잠깐 연락이 안 됐다네. 하하, 진짜 길이길이 남을 일이다.]
“저기, 여기에-.”
하지만 가준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 전화가 뚝 끊겼다. 마지막에 들린 소리로 추정하기론 아마 행정실에 손님이 찾아온 것 같았다. 가준은 다시 전화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끼이익, 가까이에서 들리는 묵직한 버스의 엔진 소리. 서서히 다가오는 커다란 그림자가 기어이 둘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