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121.새로운 종자
“이야아압!”
“죽어라 이 개X끼!”
쐐액, 퍽!
퍽!
북한 주민들이 마을 광장에 빙 둘러서서, 중앙을 향해 돌팔매질과 몽둥이질을 했다.
“끄어억!”
“컥!”
광장 중앙엔 십자가처럼 생긴 나무에, 보위성 간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굴비두름처럼 묶여 있었다.
“김 돼지의 앞잡이 놈들!”
북한 시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서 인민재판을 실시해나갔다.
본디, 김정은 치하에서 신음할 때는, 보위부 몰래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고 인민재판을 당해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데, 이제 김정은이 몰락하고 북한 군대가 무력화되면서, 당하고만 있던 북한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야야ㅡ! 모두 다 때려 주겨버리갔서!”
그들은 광기에 젖어, 과거 6.25때 인민군들이 했던 것처럼 북한 정부의 간부들을 모조리 끌어내 처형했다.
“후······.”
“무섭다야···.”
리한봉과 김누리는 함경도 청진에서 평양까지 내려와, 그 광경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이미 남한 정부와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은 인민재판을 쉬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될 때인데, 사람들이 살인에 너무 미쳐있어···.’
지금에야 나쁜 간부들을 척결하는 아주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 간부들이 다 죽고 난 후에는 광기가 어디로 튈지 몰랐다.
‘남한 사람들처럼,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한데, 지금 북한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나, 공산·자유민주주의의 정치 이념으로 갈라질 때의 상황과 흡사했다.
저벅저벅.
그때, 리한봉의 뒤로 걸어온 한 남자가.
척!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응?”
어두운 얼굴로 인민재판을 지켜보던 리한봉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
거기엔 이준혁이 서 있었다.
*
‘오랜만이군 리한봉······.’
넌 날 모르겠지만.
‘난 널 아주 잘 안 단다···.’
과거 청진 수용소에 처음 갔을 때, 김누리의 부모님을 구하러 가던 리한봉과 조우했었다.
‘그때 내가 너에게 힘을 부여해 줬었지···.’
이계에서나 있을 법한, 기적적인 마력의 힘을.
“누구십니까?”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리한봉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예?”
내 제안에 리한봉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알겠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써보는 언령 마법이로군.’
나는 당장 리한봉을 설득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리한봉의 옆에 서 있던 김누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봉아. 이 아주버님은 누구야?”
김누리의 물음에 리한봉은, 약간 어벙한 표정으로.
“응, 아는 형님이셔.”
그리곤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갑시다. 어디로든지.”
*
나는 리한봉을 이끌고, 평양의 한 다방에 도착했다.
북한 지역 내에서 가장 발달한 평양답게, 한국의 카페 같은 다방이 이곳에도 존재했다.
후루룩.
나와 리한봉, 김누리.
우리 세 사람은 커피와 디저트를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내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게 많아서 이렇게 사과하러 왔다.”
나는 리한봉·김누리 커플을 쳐다보며 그렇게 운을 띄웠다.
“아닙니다.”
내 말에 김한봉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법사님이 없었다면, 애초에 제가 거기서 탈출하지도 못했겠지요.”
“맞아, 맞아.”
리한봉의 말에 옆에서 디저트를 깨작거리던 김누리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우린 신님을 원망 안 해요.”
나는 다방으로 온 후, 두 사람에게 과거에 내가 지웠던 기억들을 모두 복구해줬다.
내가 그들에게 힘을 줬던 것과, 그 힘으로 청진 수용소를 박살 내게 한 것.
그리고, 그곳에서 힘을 키워 반란을 일으키게 한 것 등등···.
과거엔 내가 그러한 힘을 부여한 게, 실수라고 여겨져서 모두 백지화했었다.
그래서, 혁명을 꿈꿨던 북한 주민들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리한봉과 김누리는 나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군.’
두 사람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김누리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신님 덕분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김누리는 남한의 여자 연예인과 비교해도, 전혀 꿇릴 게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작은 얼굴 안에, 눈코입이 아름답게 자리 잡은 전형적인 한국 미인이었다.
“비록 저희들 손으로 통일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렇게나마 통일이 이루어졌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리한봉 또한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은 귀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가 너희에게 사과만 하러 온 게 아니다.”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을 꺼냈다.
그러자.
“예? 사과만 하러 온 게 아니라니요?”
리한봉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나는 리한봉의 물음에, 이곳에 오면서 생각했던 바를 설명해주었다.
“너희들이 할 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
“음···?”
리한봉과 김누리는 자신들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말에, 순간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이 녀석들도 과거 북한 반란군의 대표로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때의 경험이 어디 가진 않겠지.’
딱 봐도, 내 제안에 마음속이 활활 불타오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달이 난 리한봉이 결국 먼저 물었다.
“저희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나는 흥분한 구 마도공화국 왕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분열된 북한 주민들을 수습할 구심점이 필요하다.”
“구심점이요?”
현재 북한 지역에, 한국 정부의 관리들이 대거 진출한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혼란은 여전했다.
한국 관리들은 광기에 젖은 북한 주민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 채, 눈치만 살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리한봉 같은 북한 사람이 나서서 주민들에게 호도한다면, 이 불안정함이 빠르게 수습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리한봉의 잠재력을 믿었다.
과거에도, 리한봉은 마도공화국의 국왕으로서 혁명군 세력들을 완벽하게 통제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북한 주민들을 규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내, 너에게 다시 힘을 주겠다. 북한 주민을 통제할만한 힘을.”
“아아···!”
리한봉은 과거 마도공화국 시대 때 느꼈던, 그 힘을 다시 준다고 하자 감격한 눈빛으로 입을 쩌억 벌렸다.
-그때의 힘······!
내 머릿속으로 리한봉의 강렬한 사념이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갖고 싶었나? 그때의 힘이?’
리한봉은 어느새 주먹까지 꽉 그러쥔 채, 이마를 탁자에 탕탕 박아 댔다.
“맞겨만 주신다면, 마법사님께서 원하신 대로 그 뜻을 반드시 완수해내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실패 없이.
물론, 과거의 실패도 내 변덕으로 인한 백지화였지, 절대 리한봉이 못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때는 북한 주민들 전체를 각성시키려다가 내가 밸런스 붕괴를 인정하고 포기했었지만, 이제는···.’
리한봉·김누리 정도에게만 힘을 줘서, 현재 혼란한 북한 주민들을 다스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내 재량껏 해도 되겠지···.’
리한봉·김누리가 힘을 얻었다고 아무에게나 해꼬지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둘 다 북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꼬맹이들이었다.
“자, 내게 손을 다오.”
나는 안지민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마법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녀석들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척.
척.
리한봉, 김누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들의 손을 내 손 위로 올렸다.
쏴아아악ㅡ!
나는 그 두 사람에게 마력을 주입시켜주며, 과거 그들이 한 번 경험했었던 ‘각성’을 시켜주었다.
‘이렇게만 해줘도 어디 가서 뚜드려 맞지는 않겠지.’
총기의 위협에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북한 사회에서, 꽤 강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짜 영웅이 아닌, 진짜 영웅이 탄생하는 건가···.’
과거 김정은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고 축지법을 썼다고 구라뻥카를 쳤었지만.
‘리한봉은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마력의 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었다.
“가라. 가서, 광기에 빠진 인민들을 갱생시켜라.”
“예, 마법사님.”
리한봉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일어섰고.
착.
김누리가 보드라운 손을 뻗더니, 내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고마워요, 신님.”
그러면서, 밖으로 나간 리한봉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
“현재 북한 내의 사업상황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남한의 기업들과 정부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올라오긴 했는데, 북한 주민들과 티키타카가 잘 안 돼서 고생 중입니다.”
나는 북한 재건 사업의, 기업 대표를 맡은 유진광과 함께 평양 냉면집에서 대화를 나눴다.
“일단 호구조사부터 꽤 난항을 겪고 있는가 봐요.”
“아무리 같은 한국말이어도, 북한말이 원체 난해하니······.”
나도 과거 북한의 혁명세력에 개입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몇 번 듣다가, 아예 남한어로 모두 교체시켜준 적이 있을 정도로 북한 언어는 난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의 지식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김 씨 부자로부터 사상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남한에 대해 적대적인 주민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군요.”
일단, 북한 주민들이 전부 김정은을 나쁘게 보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김정은을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했고, 그랬기에 김 씨 부자의 독재 체제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게 식량 문제입니다.”
유진광이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 푸드를 만든 것도, 다 통일에 대비해서였잖아요?”
“그렇죠.”
사실, 안지민과 유진광을 엮기 위해 만든 거였지만, 표면적인 명분은 통일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기업들이 북한 현지 주민들을 직원으로 뽑아서 일을 시키고, 돈을 받아가는 체계를 만들어 봅시다.”
“마탑에서요?”
원래 정부가 해야 될 일이었지만,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건 본래 기업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방면에 있어서 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마탑 건설하고, 여러 계열사들이 북한 진출해 있으니 북한 주민들을 통해 공사도 하고, 여러 계열사의 현지 인력으로 차출도 해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북한 인력을 채용하도록 모범을 보입시다.”
“하지만, 현재 북한 주민들 상태가 인민재판이니 뭐니 하며 워낙 뒤숭숭해서···.”
당장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본디, 김정은의 악질적인 치하 아래에서 빙두(히로뽕)에 찌들고, 사유재산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살았다.
아무런 자유도 없이, 반세기 넘게 지독하고 답답하게 억눌리고만 살았다.
그러니, 갑자기 폭발한 북한 주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분노를 잠재울 사람이 있으니, 앞으로 북한의 광기가 잠잠해지면, 그때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세요.”
“그게, 누굽니까?”
유진광의 물음에.
-북한 주민들은 들어라!
밖에서 확성기로, 자신의 목소리를 확장한 한 소년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미친 짓을 그만두고, 본업으로 돌아가라! 다시 한번 말하겠다. 반인륜적인 인민재판을 그만두고, 적법한 심판을 기다려라.
리한봉이 광장의 중앙에서, 광기에 빠진 주민들에게 명령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