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118.통일(3)
“기업들의 북한 진출이 아주 활발합니다, 각하.”
유진광의 말에.
“이게 다 마탑과 이 실장 덕분이오.”
최종환 대통령이 그렇게 겸양하며, 차를 마셨다.
과거 이준혁만 들락날락하던 관저에, 오늘은 유진광과 박태진, 유하은 장관이 쭈르륵 같이 앉았다.
“합동TF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북한 지역을 재건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 보오.”
최종환은 현재 북한 상태가 말도 안 되게 낙후되었지만, 그래도 희망찬 미래를 구상하며, 청사진을 그려나갔다.
유진광은 그런 대통령을 향해.
“요즘, 최저 임금제가 차등적으로 변해서 영세업자들이 다시 장사할 맛이 나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동안 많은 불만을 야기했던 게 바로, 무작정 높은 시급이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최근 대통령과 국회가 합의해, 한국의 최저시급을 차등 시급제로 바꿨다.
과거엔 무슨 일을 하든 일괄적으로 최저시급을 받았다면, 지금은 하는 업종에 따라 시급이 정해진 것이다.
단순 노무에까지 비싼 임금을 주기엔, 부담스러운 사업장들이 대환영할만한 정책이었다.
“인건비가 싸야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도 많이 건설하고, 기업이 활성화되지요.”
유진광은 마탑 그룹을 경영하면서 느꼈던 바를 술술 풀어내며 아는 척을 했다.
사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 가장 부담되는 게 바로 인건비였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만.
그것도 회사 사정상, 높은 임금을 줄 여력이 안 되면 현실에 맞춰서 지급하는 게 맞았다.
임금이 너무 높으면, 사업자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져 버렸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시급은, 원래 능력상 받을 만큼 받아가는 게 정상이었다.
유진광의 말에 최종환은.
“사실 노동자들의 시급은 나라에서 정할 게 아니라, 시장 자체 적으로 결정해야 옳은 법이지요.”
기업이나 가게들이 자율적으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책정하는 게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렇게 바꿔줬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시급을 제대로 안 줄 시엔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겠지요.”
최종환은 그동안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최저시급을 잘 안 지켜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진, 시급이 말도 안 되게 높아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제부터는 업종별로 차등적으로 책정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대통령의 말에 유진광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줬는데도 제대로 안 주면 진짜 개X끼들이지요.”
최종환은 사업 얘기는 거기까지로 하고, 이번엔 박태진을 돌아보았다.
“박 사장님. 이번에 진출한 병원들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많은 병원들이 북한 진출을 아직 꺼려하고 있습니다.”
“왜요?”
“아직 제대로 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지, 과연 장사가 제대로 될까 싶은 생각이겠지요.”
“음···.”
박태진은 일단 공공 보건소부터 빠르게 진출해, 공공기관에서 북한의 환자들을 긴급히 진단·치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이 마탑에서 안드로이드 닥터, ‘닥쨩’을 보급해줘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오오··· 닥쨩!”
최종환은 ‘닥쨩’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탑에서 만든 안드로이드라면, 실력은 확실히 보장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의학 논문과 교과서 등을 1700만 페이지 이상 공부했다는 IBN의 왓튼보다, 10배가 더 넘는 빅데이터를 쌓았습니다.”
“오오. 그 10배라면, 1억7천만!”
“그렇습니다.”
최종환은 역시, 마탑이 만든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엄지를 척, 하고 추켜올렸다.
“한데, 인공지능 로봇이 그렇게 똑똑해져 버리면 나중에 사람이 할 일이 전부 사라질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오.”
최종환의 푸념에, 박태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세계적으로 인구수는 계속 감소 추세입니다. 1~3차 산업혁명 동안 기계가 인간의 일을 일부 대신했듯, 인공지능 또한 일부분만 사람의 일을 대체할 뿐, 사람이 할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현재 마탑이 생산하는 안드로이드는 각 산업에 특화된 인공지능만 생산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 만능인 인공지능은 생산하지 않았다.
박태진은 마지막으로 유하은 교수를 돌아보며.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할 청·장년층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지가 관건이겠지요.”
박태진의 말에, 유하은 장관은 ‘갑자기 왜 나한테 지X이냐?’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최종환은 다시 유하은 교수를 쳐다보았다.
“박 사장님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소만, 유 장관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음···. 교육 말입니까?”
유하은은 대통령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힘찬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북한의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꽃제비처럼 당장 먹고사는 게 제일 바빴지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처럼 북한 어린이들에게 초중고, 대학, 석박사 학위까지 바라는 건 무리입니다.”
“그럼 어떻게?”
“북한 아이들에겐 기초 교육 실시와 함께, 곧바로 산학이 연계되는 전문기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우리 남한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소?”
“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선택이었습니다. 일부는 공업 기술을 배우는 대신, 엔터테이먼트나 다양한 분야의 선택지가 있었죠. 하지만.”
유하은은 냉정한 눈빛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어나갔다.
“지금 당장은 북한 아이들에겐 그러한 선택지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크흠···.”
유하은 장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한 최종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장 먹고 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겠지···.’
무슨 연예인이나 기타 예체능 직종, 또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직업은 당장 북한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과거 우리 남한의 70·80년대를 생각해야겠지.’
남한도 과거엔 다른 동남아보다 못 사는 국가였다.
그러다가, 경제개발 계획을 여러 차례 단행하면서 한강의 기적도 이루어내고, 세계에서 경쟁하는 우수한 기업들도 많이 배출해내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경유착이라든지 안 좋은 사건들이 많이 터지긴 했지만, 결국 한국 경제가 우상향했다는 데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교육 부문은 전적으로 유하은 교수에게 맡기겠습니다.”
“네. 지금 당장은 북한 아이들에게 시련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중을 보면 이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이준혁의 최측근들과 대통령의 밀담이 끝이 난 후, 최종환은 각 분야의 장관들을 모두 소집해서 최종적인 계획을 명령해나갔다.
*
“앞으로 통일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정치인들을 뽑고, 흡수 합병한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펼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최종환은 임시로 북한 지역에 파견될, 시장과 단체장들을 황급히 뽑아 올려서 급파했다.
그들은 북한의 실정에 맞춘 정책을 펼치기 위해 파견되어, 호구조사와 토지조사 등을 발 빠르게 실행했다.
“이번 일은 워낙 방대하고, 정해진 기간도 없기 때문에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일해야 합니다.”
“예, 각하.”
대통령의 말에 각 부처의 장관과 총리들은 고개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몇몇 공직자들은 괜히 통일이 이루어져서 너무 바빠졌다고 뒤에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최종환이 행정적인 부분에서 신경 썼다면, 마탑은 그에 보조하는 자금 지원이라던지, 안드로이드 로봇 등을 전담으로 지원했다.
그동안 공공기관 등 특정 분야에만 투입되었던 안드로이드 로봇이, 이제는 의료·건설·교육·복지 등의 전반적인 산업에 모두 투입되었다.
마탑의 안드로이드 로봇 공장은 정말 쉴 새 없이 돌아갔고, 계속해서 증설을 이어나갔다.
*
“어때요?”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 음식들 중에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으흥~! 거짓말!”
“진짠데!”
그 시각, 유진광은 대통령의 관저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곧바로 나와 아리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리는 집에 없었고, 안지민만이 김치찌개를 해놓은 채 유진광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 씨가 해준 건 뭐든 맛있어요.”
“어떻게 맛있는데요?”
“뭐랄까 이 김치찌개의 맛은 시큼하고, 고기도 쫄깃쫄깃하고 국물도 시원하고 예전에 김치찌개 명가에서 먹었던 거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보통은 우리 엄마가 해준 게 더 맛있다고 하지 않나요?”
“우리 엄마 요리 드럽게 못 합니다. 엄마 얘기 꺼내지도 마세요.”
“······.”
유진광이 진지한 어조로, 무겁게 중얼거리자 안지민까지 덩달아 스산한 느낌을 받았다.
“진광 씨는 부모님을 싫어하시나요?”
안지민의 말에.
“네, 솔직히 말하자면 싫어합니다.”
유진광이 당당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우리 부모가 저를 무시한 거 빼고는, 도대체 뭘 해줬는지 모르겠어요.”
“흠···.”
그동안 무시받고만 살았던 유진광이었기에 한이 많았다. 지금 이렇게 당당히 성공해서, 과거의 상처는 많이 잊었지만 그래도 흉터처럼 남아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부모님인데. 제가 다 이해해야죠.”
“맞아요. 과거의 원한 때문에 그렇게 앙심을 품는 건 나쁜 버릇이예요.”
“그렇죠···.”
안지민은 평소 불교 라디오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세상의 본질적인 지혜라던지 성찰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았다.
유진광은 그런 안지민의 말에는 무조건 수긍하며,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근데 최근에 남북한이 통일되면서, 정말 난리입니다. 지민 씨는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진광의 물음에 안지민은.
“사실 별생각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분단되어 있었기 때문일까요? 막상 통일이 되었는데도, 저는 무덤덤해요.”
“그렇죠. 사실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신났지, 일반 국민들은 한 3일 정도 관심 가지다가 금방 식겠죠.”
한국 사람들의 심리라는 게 원래, 한 번에 확 관심을 가졌다가 냄비처럼 금세 식어버리는 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았고, 늘 신선한 것을 원했다.
안지민은 아직 자신의 말이 다 안 끝났다는 듯이.
“근데, 남북한이 통일되었는데 진광 씨 무지 바쁘지 않아요? 저랑 같이 이런 거 하고 있어도 괜찮아요?”
유진광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유진광이.
“이게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진지한 눈빛으로 안지민을 쳐다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네? 이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니요?”
안지민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둘이 남녀가 오붓하게 요리를 나눠 먹는 게, 도대체 뭐가 제일 중요하단 말인가?
안지민의 물음에, 유진광은.
“앞으로 마탑의 차기 사업은 바로 ‘푸드 사업’이 될 테니까요.”
“네? 푸드 사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아···! 아리가 저번에 진광 씨랑, 푸드 사업 같이한다고 했었죠? 근데, 아리 얘는 갑자기 어딜 간 거람···?”
안지민이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덥석!
유진광이 안지민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러자.
“···!?”
안지민이 깜짝 놀란 눈으로 유진광을 바라보았다.
그런 안지민을 향해 유진광은.
“아리 씨는 사실 훼이크였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사업하기 위해 다리를 놓아주기 위한 연기였어요.”
안지민을 향해 폭탄선언을 했다.
“뭐라구요???”
결국 안지민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밥숟갈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