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109.공무원(3)
“어서 오십시오. 정 대표님. 이 대표님. 차 대표님. 양 대표님······.”
최종환 대통령은 이준혁이 다녀간 후, 발 빠르게 움직여 여·야 4당 대표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회동을 가졌다.
상춘재에서 만난 그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가, 최종환 대통령과 나란히 마주했다.
“요즘 나라 안이 많이 뒤숭숭하지요?”
최종환은 그렇게 운을 떼며, 당 대표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뒤숭숭하다 뿐일까요? 나라가 아주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입니다.”
대한당 대표 이규태가 엄살을 떨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규태는 본래 대통령과 반대되는 세력이었지만, 이준혁의 패러사이트로 인해 친 대통령파로 돌아섰다.
“그동안 마탑 그룹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많은 변화들이 있어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이 있을 예정이라 저도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기쁘고 그렇습니다.”
최종환은 약간 허탈한 웃음을 내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마탑의 행보가 혁신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과격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동안 많은 충돌이 있어왔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마탑의 뜻대로 모든 일이 흘러갔지······.’
아무리 적들이 방해해도, 결국 이준혁은 무슨 짓을 해서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갔다.
자신 스스로 확고한 신념이 있지 않은 한, 쉽게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기술력이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이준혁에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할 힘도 있었지만, 굳이 그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기술력으로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었다.
“아무튼 최근 유진광 회장도 그렇고, 국민들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문제에 대한, 무언가 특별한 조처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종환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유진광이 자기계발 강연 프로그램에 나와, 공무원에 매달리는 청년들을 향해 심하게 꾸짖은 후, 언론들과 국민들은 그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난리였다.
“그래서 우리 정치인들도, 마탑이나 국민들이 먼저 얘기하기 전에 그에 필요한 정책들을 빠르게 입안해서 나라가 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마탑 이전에도 많이 나왔던 말이니, 당연히 고칠 부분이 있으면 뜯어고쳐야겠지요.”
최종환의 의견에, 다른 당 대표들도 두 번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찬성했다.
여당 대표인 정사열 의원은 물론이고, 패러사이트에 걸린 다른 의원들 또한 반대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우리 청년들이 죄다 공무원 시험에만 목매는 관행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중립당 정사열 대표가 먼저 그렇게 의견을 냈다.
정사열의 의견은 이준혁이 냈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환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너무 심각하니까, 죄다 도피하듯 공무원으로 몰리고 있지요.”
취업 경쟁률도 장난이 아니고, 취업한다 해도 처음부터 다시 일을 배우려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힘든 일자리 말고 편해 보이는 공무원으로 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습니다.”
최종환 대통령은 굳은 어조로 입을 열며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 공무원을 17만 명이나 늘리면서, 연금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지······.’
공무원 17만 명 증원에 월급이 327조, 연금 92조나 들어갔다.
좌파나 우파나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건 동일했지만, 아무래도 표심을 의식한 각 정권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생긴 결과였다.
‘최저시급도 매년 10% 이상씩 올리고, 주휴 수당에다가, 갖가지 노동자들에 대한 법들까지······.’
물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최대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취지는 매우 좋은 취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실정엔 안 맞는 정책이었어.’
경제성장률이 1% 이하로 지지부진한데, 갑자기 너무 많은 시급을 올려버리면 영세업자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매출 대비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 오히려 적자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명 알바 쪼개기를 하며 주휴수당 지급이나 갖가지 노동 수당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최하위층에 있는 노동자들만 죽어 나갔다.
하위층 노동자들은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차츰차츰 대체되는 자동화 기계로 인해 실업자가 되어갔다.
‘그러고 보니, 공무원·공기업 문제뿐만 아니라 최저시급 문제도 다시 손 봐야 되겠군.’
그동안 손 놓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번 손대기 시작하니 고쳐야 할 부분이 한도 끝도 없었다.
“일단 공무원 증원을 최대한 줄이고, 뽑는 인원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공무원으로 몰리는 청년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종환은 그렇게 말하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옳소.”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동안 뽑아도 너무 많이 뽑았지요.”
“그게 다 표심을 의식해서 그래요. 공무원 증원한다고 하면 공시생들이 죄다 그 후보만 뽑거든요.”
“맞아요, 맞아. 표심 때문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면 안 되죠. 최 대통령께서 큰 결단을 하셨습니다.”
당 대표들은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외쳤다.
예전 같았으면, 최종환 대통령의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했겠으나.
‘당 대표들의 행동이 많이 바뀌었군.’
지금은 최종환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그들은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었다.
최종환이 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옳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공기업 관련해서도 재정 건전성이나 업무 효율 대비 수익성을 철저히 따져서 국민들이 눈살찌푸려지는 막무가내식 성과급 잔치를 못 하도록 나라와 국민들이 나서서 철저히 감시해야 합니다.”
최종환은 공무원에 대해 칼을 뽑아 들면서 동시에, 공기업도 건드렸다.
거의 둘 다 원 플러스 원 상품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옳소이다.”
“그놈들 지금까지 매년 십수조 원씩 적자를 내면서, 매년 받아 처먹는 성과급만 해도 대기업 성과급 저리가라입니다. 누가 보면 매년 수십조 영업이익을 올린 그룹인 줄 알겠습니다.”
“영업이익은커녕, 영업적자만 계속 쌓여가고 있지요. 성과급도 성과급이지만, 그들의 방만한 운영 또한 철저히 감시해야 합니다.”
“나중에 적자가 계속 쌓여 파산하면 그게 다 국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될 빚이 아닙니까? 대통령의 말대로 공기업들의 만성적자를 줄여야 합니다.”
“공기업 임원과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공기업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최종환의 편을 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한 번 뇌가 그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과거의 적이 지금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왕 말 나온 김에 최저시급 문제도······.”
최종환은 자신의 의견에 무조건 OK하는 의원들이 기꺼워서, 자기도 모르게 방금 떠올린 생각을 입으로 뱉어냈다.
*
-청와대에서 최 대통령과 4당 대표들의 비밀 회동!
-회동 자리에선 과연 무슨 얘기가? ‘공무원’ ‘공기업’ ‘최저시급’문제 도마 위에 올라······.
-올해부터 공무원 증원 최소화. 대한당 대표 曰, “그동안 공무원들 너무 많이 뽑았다. 필요도 없는데 세금 낭비한 셈. 나라가 공시 대란을 부추겼다.”
-결국 유진광과 마탑의 뜻대로? 청와대 曰, “앞으로 기업과 국가가 연합해서, 초·중·고 의무교육 때부터 철저하게 취업 인재를 키우겠다.” 선언! 대한민국에 부는 실용의 바람?
-공무원 노조 曰, “기존 공무원들에 대한 연금을 개편하면 좌시하지 않겠다.” 파업 예고.
-의무교육·공무원 준비 기간에 대한 낭비 논란 재점화. 청년들 曰, “갑자기 공무원 준비하기 싫어졌다. 기술 배우고 싶다.”
-공시생들, 노량진 고시촌 대거 이탈. 컵밥 주인 曰, “단가도 저렴한데 고객 수요까지 줄어드니까 장사할 맛 안 난다.”며 한탄.
-초·중·고 의무교육 때부터 기업이 관여하면, 예·체능은? 대통령 曰, “그에 대한 협력 방안도 모색해보겠다.”
-너무 기업 위주로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헤칠 가능성 높아··· 그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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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실용주의로 돌아서면서, 많은 정책들이 쏟아지고 기존의 시스템이 대거 개편되었다.
학교부터 시작해, 일자리 문제 등도 모조리 뒤바뀌면서 국민들은 혼란을 느낌과 동시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예전엔 그저 대학교 졸업장만 달랑 들고 취직 사이트에 공고 나온 곳에 이력서를 집어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이제 각 산업의 기업들이 필요한 기술이 전부 제각기 달라서 거기에 맞는 아카데미나 학교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과거에도 산학이 협력된 학교가 유리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곧 설날 명절이 코앞이라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당원들을 진두지휘하며 대통령과 토의한 법안들을 단숨에, 스트레이트로, 날치기하듯 입안하기로 다들 입을 모으고 있었다.
*
“우와아~! 떡국이당~!”
실프는 아리가 차려준 떡국 앞으로 달려가 군침을 쟈르륵 흘렸다.
“아직 안 돼.”
아리는 실프가 식탁으로 달려오자, 얼른 안아서 쇼파 위로 다시 롤백시켰다.
“으아앙, 배고파!”
실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칭얼대자.
“읏차~!”
나는 실프를 안아 들어서 내 무릎 맡에 앉혔다.
‘벌써 설날이네······.’
그동안 사업하느라고, 명절도 제때 못 챙기다가 최근엔 여유가 생겨서 조촐하게 부모님과 함께 명절도 세게 되었다.
“후···.”
아리는 우리 엄마와 혜은이와 함께 부산하게 전을 부치고, 요리를 나르고 있었고 나와 아버지, 실프는 느긋하게 홀로그램TV나 보며 식사를 기다렸다.
‘예전엔 꾸역꾸역 큰집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사실, 친척들끼리도 서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보고 싶고 하면, 아무리 멀리 살아도 찾아가고 싶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엔 절대 그렇지가 않지.’
되려 만날 때마다 안 좋은 소리만 나오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 진짜 배고프다······.”
실프는 입으로 계속 ‘배고프다’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쫑긋거렸다.
나는 그런 실프의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틀어쥐었다.
“먹보.”
“헤헤···.”
내가 실프에게 먹보라고 놀려도, 실프는 마냥 웃었다.
나도 오랜만에 실프를 보니 마음속이 정화되고,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해야 할 텐데···.’
사실 평생 먹고살 돈만 해결되면, 세상사 어떻게 돌아가든 그냥 조용히 우리 가족끼리 편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대통령이니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것저것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많이 사고,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자, 절하고 밥 먹자.”
음식상을 다 나른 후, 오전 9시가 되자 우리 가족은 제사상 앞에 모여 절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