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97.세계화
“하······.”
나는 마탑 그룹 경영진들을 모두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
“···.”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내 한숨 소리에, 각 계열사의 CEO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짓했다.
-오늘은 또 왜 저래?
-설마 찬규 씨 게임 때문인가?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 우리보고 뭐 어쩌라고?
-그래도 어떻게든 살렸어야······.
-아니, 이건 신이 와도 안 돼······ 신이 왔는데도 안 됐잖아.
그들은 서로 눈빛 교환으로 그렇게 대화하며, 입은 꾹 다문 채 침묵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들이 눈빛 대화를 들으며, 깊은 고심에 빠졌다.
‘내가 실패를 하다니······.’
진짜 지구로 귀환한 후에, 처음으로 맛본 실패였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다 해냈는데, 친구 작품 하나 띄우는 것도 못 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저 멀리서 찬규가 고개를 숙인 채, 무안하게 서 있었다.
‘어떻게든 띄워야 한다.’
10서클 고딩의 귀환은 사실상 어쩔 수 없더라도, 차기작이라도······.
‘일단 찬규의 신작 준비를 도와주면서, VR게임도 같이 개발해야겠다.’
찬규의 작품을 내가 대필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찬규도 그것을 원하진 않을 것이었다.
‘신작 시작과 함께, 원 소스 멀티 유즈 형식으로 밀어주면, 새로 쓰는 작품은 대박나겠지.’
일단 찬규 자체가, 본인 스스로 어느 정도 발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찬규야. 너 지금 작품 몇 편까지 쓴다고 했지?”
내 물음에 찬규가 잠시 고민하더니.
“한 500편 정도?”
라고 대답했다.
“500편······.”
어마무시한 양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에 대해 할 얘기가 그렇게나 많나···?’
500편이면 권수로 대략 20권쯤 된다.
그러면, 편당 글자 수가 5,000자라고 치면 매일매일 종이책 30페이지 분량의 글을 7~8달 정도 쓴 셈이었다.
‘찬규도 그러고 보면, 이쪽 방면으론 나보다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나는 글쓰기나 만화 그리기 같은 창작 소질엔 서툴러서, 매일매일 30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라고 하면 못 쓸 거 같았다.
‘그것도 다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
비록 찬규가 다른 유명 웹소설 작가들보단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근성과 끈기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대박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찬규는 스스로 발전하려는 마음(向上心)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 부분은 재미없다고 하면, 바로바로 고치고 누가 좋은 팁을 가르쳐주면 항상 귀담아들어서 어떻게든 작품에 적용해 나가는 찬규였다.
나처럼, 찬규도 포기란 없었다.
“정남룡 씨.”
“네. 실장님.”
내 부름에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정남룡 사장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도 이번 프로젝트의 실패에 책임감을 느꼈던지, 표정이 어두웠다.
“내년 초에 공개하려고 했던 VR프로젝트 있잖습니까?”
“예.”
“그거, 올해 말로 앞당깁시다.”
나는 찬규의 10서클이 완결 날 즈음해서, VR기기들을 사람들에게 대중화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럼 컨텐츠는······?”
“지금부터 만들어 봐야죠.”
나는 찬규의 신작 구상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찬규와 함께 게임개발을 동시에 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공장은 이미 다 완성되었고, 협력업체들은 언제쯤 부품 생산 공정이 완비될까요?”
내 질문에 정남룡이 퍼뜩 대답했다.
“이달 말부터 생산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최대한 VR생산 시기를 앞당기기로 최종 결정하고, 대책회의를 파했다.
*
“휴······. 준혁아, 미안하당······.”
찬규는 내게 녹차라떼를 하나 건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안하긴 뭘. 내 잘못도 있는데 뭐.”
나도 찬규 작품을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야 한다고 강력주장했던 사람이고, 또 영화와 게임 둘 다 내가 거의 만들었다.
“그래도······.”
“괜찮데두.”
찬규가 풀이 죽은 얼굴로 쭈뼛거리자, 나는 찬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임마, 내 친구야. 근데 친구한테 미안하단 말 하는 게 어딨 되냐?”
“······.”
“미안하단 말 하는 게 더 미안한 거야. 임마. 그리고, 사람이 실패할 때도 있으면 성공할 때도 있는 거지.”
이건 찬규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자만했지······.’
매번 성공 가도만 달리며, 우리 사회의 공고한 카르텔을 구성하던 기득권들을 손쉽게 깨부수다 보니, 무슨 일을 벌여도 다 잘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돌아가면, 사실 재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위기도 있어야, 우리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DNA가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것이다.
‘예전의 치열함을 잠시 잃어버리고, 나태해졌으니 이제 다시 채찍질을 해야겠다.’
잘 나가던 사람이 밑바닥으로 추락할 때를 보면, 항상 그 사람의 마음속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뭘 해도 될 사람이다, 그런 반면 너희들은 하찮은 놈들이다······.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알량한 성공에 취해 자만하거나 남을 무시하는 행동은, 자멸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하자.’
나는 사업에 도움 되는 기술 지식들뿐만 아니라, 찬규에게 도움 될만한 글쓰기 지식들까지 모두 흡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
마탑 방송국 사장 이혜은은, 새로 출범한 마탑방송 개국 후 최초로 BJ들을 불러모았다.
본래는 VOD관련 사업자들과는 활발히 만났지만, 최근 마탑의 생방송 진출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잠시 BJ들에 대한 만남은 자제하였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지······.’
오빠가 국회의원들을 화끈하게 참교육시켜준 덕분에, 이혜은은 다시 마탑 방송을 TV에서도 생중계할 수 있게 됐다.
“반가워요, 혜실버 사장님.”
마탑 엔터테이먼트 사장 진서윤이 방긋 미소지으며 이혜은에게 마주 인사했다.
진서윤은 마탑 계열사인 ‘마탑 캅스’의 대표이기도 했고, 원래 K-BLACK 때부터 맡고 있던 엔터의 사장이기도 했다.
“오랜만이네요, 진 사장님.”
이혜은은 진서윤과 인사한 후, 그녀의 옆에 있는 예쁘장한 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진서윤이.
“아하, 얘는 우리 마탑 엔터가 메인으로 밀고 있는 걸그룹 ‘핑크핑크’의 메인 센터 유리에요. 유루유리. 어서 이 사장님께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이 사장님. 핑크핑크에 소속된 유리라고 합니다.”
유리의 인사에 이혜은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워요.”
이혜은은 사장의 위치에서 남들의 존경을 받게 되자, 최근엔 기분이 많이 업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무섭고 떨렸던 대표직이, 이제는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했다.
‘오빠가 요새 죽 쑤고 있으니, 나라도 나서서 마탑 그룹을 캐리해야지······.’
이혜은은 오빠가 요즘 감정에 휘둘려서, 친구 때문에 그룹을 다 말아먹고 있다며 훈계하곤, 직접 마탑 방송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마탑의 연예인과 새로 유입된 유명 BJ들, 그리고 크리에이터들을 하나로 융합해서 초대형 생방송TV 생태계를 만드는 거지······.’
이혜은은 남들이 생각하는 거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며 구상을 이어나갔다.
‘별풍선이나 재방송 영상 광고 수입으로만 만족하기엔 그릇이 너무 작아 보이잖아?’
그녀는 오빠가 했던 것처럼, 각 크리에이터들의 IP를 활용해서 드라마나 영화·예능·그리고 각종 행사와 월드투어, 굿즈(Goods) 등도 만들어서 전국 할인매장에 파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래야 세계적으로 돈이 들어오지······.’
이미 마탑 전자가 진출한 동남아 지역과 중동 지역에선 마탑TV로 BJ들의 생방송들 지켜보며 막대한 금액의 별풍선을 선물했다.
‘첫날에만 동시 접속자수가 1119만 명에, 매출액이 무려 2조 원이 넘었으니까······.’
인방을 대표하는 혈구나, 진태희 등은 둘이서 그날 90억 넘게 벌어갔다. 그것도 ‘하루’만에.
물론 오픈빨이 있기는 했지만, 별풍선을 쓸어 담는 기계인 여캠들은 명당 백억 이상 벌어간 여캠들도 많았다.
“우리 마탑방송은 더 커져야 합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이혜은은 세계적으로 놀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오는지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에 BJ들에게 ‘세계화’를 외쳤다.
“저, 이 사장님. 혹시 따로 생각하고 계신 구상이 있으신가요?”
진서윤은 그런 이혜은의 포부에, 바로 맥락을 짚으며 그렇게 물었다.
“구상이요?”
이혜은은 잠시 고민하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생각해봐야죠.”
그러자.
“······.”
진서윤은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일단 생방송TV와 VOD는 문제없이 유통이 되고 있는데, 역시나 중국이나 유럽, 미국 쪽이 문제죠······.”
현재 한국은 많은 나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었다.
대놓고는 못 하지만, 너무나도 앞선 기술력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강대국들이 마탑전자의 진출이나 확장을 막고 있었다.
“음, 그것도 참 문제네요······.”
진서윤이 낸 의견을 이혜은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럽이나 중국 쪽, 그리고 미국 쪽은 한국 대통령의 영향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었다.
‘결국 우리 스스로 그러한 시장을 뚫어야 한단 소린데······.’
이미 한국과 동남아·중동 쪽은 마탑 열풍으로 난리였다.
미개한 문명이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며 환호하는 것처럼, 동남아인들은 현재 한 세대를 뛰어넘은 앞서나간 문명을 빠르게 보급받고 있었다.
반면.
‘다른 강대국들은, 과거 조선의 쇄국정책처럼 문호를 걸어 잠그고 마탑을 거부하고 있지······.’
어쩔 수 없는 파도 앞에, 강대국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부정하며, 자신들이 쥐고 있는 알량한 힘을 통해 마탑의 성장을 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 위로 솟구칠 뿐이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눌려 있다지만, 결국 다른 나라 국민들도 마탑 제품을 쓰고 싶어서 멀리서 원정 구매까지 오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마탑그룹의 진출을 막을 시 마탑 제약의 수출도 없다고 못박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탑과 강대국들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국만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어도,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질 텐데······.’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일명 ‘내가 내다’하는 강대국들도 감히 미국이 뭐라하면 찍소리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최근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려다가, 오히려 박살이 나며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아차차······.’
이혜은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언젠가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다고 했지, 아마······?’
이혜은은 며칠 전, 집에서 오빠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심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