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87.폰팔이(3)
끼익.
“야, 찬규야, 오랜만이다.”
문을 열고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준혁이 너도 오랜만이고.”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권기성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나는 녀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고, 찬규는 녀석의 인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노려보기만 했다.
‘솔직히 나는 저 녀석에게 별로 큰 원한은 없었으니까······.’
학기 초엔 많이 다퉜었는데, 내가 만만치 않았다고 생각했던지 나를 피해 다른 녀석들을 괴롭히고 다녔다.
그래서 나중엔 녀석과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찬규야. 이게 몇 년 만이냐? 한 16년만인가?”
사실 찬규는 내가 참가한 작년 동창회를 제외하고, 한 번도 동창회에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찬규는 원래 은둔형 성격이니까······.’
히키코모리라고나 할까?
내가 지구로 귀환하기 전에는, 거의 친구도 없이 매일 혼자 다녔다고 했다.
밥도 혼자 먹고, 게임도 혼자 하고, 글도 혼자 쓰고······.
아무튼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늘 혼자서만 지내다가 작년 동창회 때는 나 때문에 참가한 것이다.
권기성이 시커먼 손을 내밀면서 찬규에게 인사를 건네자.
“난 별로 안 반가운데?”
찬규가 녀석이 내민 손을 멀뚱히 쳐다보며 그렇게 내뱉었다.
“아··· 그래? 하하하. 알았다.”
그러면서 녀석은 뻘쭘한지, 악수를 거두고 찬규의 어깨를 한번 툭툭 두드렸다.
“야, 그래도 친구끼리 오랜만에 보는 건데, 뭘 그러냐? 혹시 나한테 예전에 안 좋은 감정 있었으면 다 풀어라. 옛날엔 내가 미안했다.”
“친구?”
찬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묻더니 다시.
“뭐가 미안했는데?”
라며 되물었다.
“······.”
찬규가 꼬박꼬박 따지고 들자, 녀석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약간 띠꺼운 표정으로 변했다.
“큭큭큭······.”
나는 멀리서 두 사람의 신경전을 쳐다보며, 혼자 팝콘을 뜯었다.
“그냥 내가 예전에 너한테 장난친 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고 싶어서.”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사과해.”
“······.”
찬규는 녀석이 가볍게 뱉어낸 단어에서, 공격할 점을 쏙쏙 찾아대며 맹공을 퍼부었다.
“······.”
권기성은 한 대 패고 싶은 표정으로 찬규를 노려보았지만, 차마 주먹을 날리진 못했다.
우리 세 사람은 이제 나이든 성인이었고, 성인이 남에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지도 다들 아는 나이였다.
‘옛날처럼 친구끼리 주먹다짐으로 해결을 보는 나이는 지났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함부로 주먹을 휘둘렀다간, 경찰서에 가는 건 물론이고, 전과 기록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녀서 취업도 못했다.
그건 거의 단순노무직을 전전하는 권기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휴······.”
결국 권기성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찬규에게 고개를 수그렸다.
“네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진심으로 미안하다.”
권기성은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자존심을 죽여가며, 사과하는듯했다.
나는 등이 많이 굽어 보이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옛날 그의 모습과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옛날엔 안 저랬는데······.’
옛날 같았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주먹부터 날아갔을 것이다.
한데, 찬규의 사과 요구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화를 참아가며 사과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흥.”
찬규는 녀석의 사과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지, 대꾸도 하지 않고 콧방귀를 꼈다.
‘찬규가 녀석에게 쌓인 게 많았는가 보네······.’
원래 괴롭힌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한 사람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법이다.
‘기성이 녀석도 이렇게 상황이 180도 역전될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학교 다닐 땐 찬규나 나나 둘 다 가난했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의 표적이 되었다.
특히나 찬규는 성격도 내성적이고 착해서, 애들이 특히나 더 많은 시비를 걸었다.
‘권기성도 그중 하나였지···.’
녀석은 찬규가 MP3를 학교에 가져오자, 아침에 빌려 가놓고는 수업 끝날 때 잊어버린 척하며 찬규의 MP3를 뺏은 적도 있었다.
-아 잃어버린 걸 어쩌라고, 이 돼지X끼야! 꼬우면 고소하던가!
-얼만데 X끼야? 친구끼리 고작 쪼잔하게 X랄하지 말고 꺼져!!
그때는 모두 같은 학생이고, 또 10대다 보니 법이랄 게 따로 없었다.
남의 물건을 가져가서 몰래 숨겨도 고소할 수도 없었고, 선생님한테 이르는 건 더더욱 안 됐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날도 온단 말이지······.’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다.
언제나 반전이 있는 법이니까.
지금 못 나가는 사람이라고, 나중에라도 못 나간다는 보장이 절대 없는 것이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그렇게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지.’
나는 창조주의 영역에 가장 근접한 존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욱더 많은 세상의 비밀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표현만 안 할 뿐.
아무튼, 찬규가 인사를 받든, 안 받든 권기성은 찬규에게 계속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찬규야. 너네 마탑그룹이 이번에 통신 산업에 진출했다면서? 축하한다.”
권기성의 말에 찬규는 여전히 불퉁스러운 얼굴로 녀석을 비꼴 뿐이었다.
“마탑 통신이 출범하는데 갑자기 왜 나한테 축하를 해줘? 마탑 회장한테나 가서 그 소릴 해!”
찬규는 마탑 회장 유진광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유진광을 들먹거렸다.
“······.”
찬규의 그런 모습을 보고, 권기성도 무언가를 느끼는 게 있었던지 좀 더 적극적으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찬규야. 요즘 마탑 통신이 다른 통신사들을 흡수하면서, 그 밑에 있던 대리점과 판매점들이 모두 죽어 나가고 있다······.”
녀석은 찬규에게 말하고 있었으나, 내가 옆에 있으니 대놓고 나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풉······.’
나는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찬규가 어떻게 나올지 유심히 지켜봤다.
“흥!”
역시나, 찬규는 녀석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권기성의 목적은 찬규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에 나 보고 들으라는 식으로 열심히 설명을 계속했다.
나는 절실해 보이는 권기성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기존 통신 3사 대리에겐 매직망이 아닌, 기존의 망만 사용해서 개통하게끔 하고 있으니까······.’
이제 통신 3사는 내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발로 운영하든 손으로 운영하든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나는 통신 3사를 키워볼 마음이 없어.’
그저 통신 3사를 이용해, 다양한 알뜰폰 회사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기존의 망을 살려두는 땜빵 역할만 시킬 뿐이었다.
한데, 권기성 녀석의 설명을 들어보니, 녀석은 직영점도 대리점도 아닌 통신사 피라미드의 최하위 계급인 ‘판매점’이었다.
‘판매점은 따로 이통사 전산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통에 대한 권한도 없고, 변경, 해지 등의 업무도 볼 수 없지.’
그저 단말기 판매에 대한 마진만 받아갈 뿐이었다.
반면, 대리점은 이통사로부터 가입자 요금제에 따른 4~7%의 수수료를 받는다.
예컨데, A대리점 밑에 있는 A1판매점이 신규가입자에게 핸드폰을 팔 때 4만 원짜리 요금제를 쓰게 하면, 판매점이 아닌 대리점에게 2800원 정도가 매달 꼬박꼬박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1명이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가입자가 10만 명, 20만 명을 보유한 대리점은 다달이 2억8천만 원에서 5억6천만 원씩 돈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거지······.’
자기 밑에 판매점을 많이 두고 있는 대리점이 결국 ‘갑’이기 때문에 판매점은 대리점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했다.
한데.
‘이제는 갑이고 을이고 없이, 마탑이 갑 오브 슈퍼갑이 됐지.’
본사, 직영점, 대리점, 판매자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아예 그 판을 뒤엎고 새로운 판을 짰다.
바로 ‘마탑’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평등한 세계였다.
‘이제 더 이상 누가 우위인 것도 없고, 몇몇이 담합해서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는 일도 없어.’
그런 놈들에겐 내가 통신망을 빌려주지 않을 셈이었다. 그래서 현재 매직망을 빌려 가는 녀석들은 공평한 환경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통신 3사의 판매·대리점들에겐 국물도 없지······.’
그들에게까지 매직망을 빌려줘 버리면, 알뜰폰 회사들이 너무 불리해져 버린다.
나는 일단 기존에 있던 알뜰폰 회사들부터 챙기고, 통신 3사의 대리점들은 고객들에게 잘한 우수 지점들을 제외하곤, 나중에 챙길 생각이었다.
한데.
‘저 녀석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이렇게 찾아왔겠지······.’
아마 목 좋은 곳에 대책 없이, 빚을 잔뜩 내서 차린 후 장밋빛 미래를 꿈꿔왔겠으나······.
녀석의 바램대로 되지 않고, 결국 우리가 등장해버렸다.
‘망을 빌려줄지 말지는 찬규의 선택에 맡겨야겠다.’
사실 대리점 하나 챙겨주는 건, 나로서는 손바닥 뒤집는 거보다··· 아니, 숨 쉬는 거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어차피, 마탑은 처음부터 내가 설계해서, 내가 90%이상 만든 그룹이었다.
유진광과 박태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도우긴 했지만 결국 내 마법적 능력이 우리 그룹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죽어가면 뭐 어쩌라고? 그럼 그냥 죽으면 될 거 아니야?”
“······.”
찬규는 시커먼 얼굴로 간절히 사정하는 권기성을 향해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맨날 어? 손님들 오면 바가지나 씌우고, 장애인·부모뻘 가릴 것없이 기기값·요금제 바가지 씌우고 말이야! 어? 내 말 틀렸어?”
“······.”
권기성이 들어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대리점들에 대해 정보를 검색해봤던지 찬규는 유창한 말솜씨로 권기성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하니까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매직 망도 맨 후순위로 밀린 거 아니야! 내 말 틀렸어? 틀렸으면 어디 말을 해 봐.”
“찬규야······.”
“자꾸 친한 척 내 이름 부르지 마라. 열불나니까.”
찬규는 원래 처음 당하는 일에는 순발력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착실하게 준비해서 적을 상대할 때는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권기성을 어떻게 박살 낼지 많이 궁리한 모습이야······.’
나는 그 둘의 뒤에서, 찬규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승기를 다 잡은··· 아니, 처음부터 승기를 쥐고 있던 찬규가 주도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쏴 갈겼다.
“그리고, 니가 나랑 이렇게 서로 부탁하고 그럴 사이냐?”
“······.”
찬규는 작두라도 타는 것처럼 신들린 목소리로 예전에 녀석에게 당했던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너 옛날에 내 뒷자리에 앉았다고, 안 보인다고 몰래몰래 내 뒤통수 건들고, 지우개 가루 던지고, 볼펜으로 등 찌른 건 기억 안 나냐???”
“미안하다······.”
권기성의 사과에.
“뭐가 미안한데? 아까처럼 뭘 잘못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미안한 거냐? 아니면 나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하나로 찝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거냐?”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줘.”
털썩.
그리고 권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찬규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사정했다.
“제발 예전 일은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얼마든지 네가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때려도 좋아. 하지만······.”
녀석은 무릎을 꿇고 찬규에게 애걸복걸하면서, 끝까지 여기 온 목적을 잃지 않았다.
“제발 내 대리점에도 매직통신망을 개통할 수 있도록 허가 좀 내주면 안 되겠냐?”
“이 개X끼가······!”
결국 성질이 뻗친 찬규가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놈이 진짜 미쳤나? 그걸 왜 자꾸 나한테 얘기하냐고!”
퍼억!
결국 찬규는 준비해뒀던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녀석의 면상에 집어 던졌다.
“으악!”
찬규가 던진 물체를 얻어맞은 권기성이, 얼굴을 감싸 쥐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찬규가 집어던진 그것(?)의 잔해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저런 건 또 언제 다 준비해뒀데?’
찬규가 권기성을 향해 집어 던진 것은, 바로 지우개 가루 뭉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