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87.폰팔이(2)
“후후후······.”
나는 이지연이 뽑아온 이통 3사의 주가를 확인하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새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포만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이놈들이 드디어 폭삭 망했군.”
-SC텔레콤 1350(30%↓)
-KC텔레콤 220((30%↓)
-LC텔레콤 130(30%↓)
적게는 수십만 원(액면가 수백만 원)에서 수만 원 이상 널뛰기를 하던 3대 이동통신사 주식.
하지만, 지금은 거의 휴지조각··· 아니, 핵폐기물 조각으로 가치가 하락해 소규모 세력에게도 놀아나는 쓰레기 주식이 됐다.
“내가 초토화시켜 버린다고 경고했지?”
녀석들은 감히 내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통신사 회장들은 모두 감방에 갔고······ 이제 준비한 대로 진행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우리에게 주식을 빌려준 연기금이나 기타 사모펀드를 파산시킬 생각이 없었다.
개중엔 국민들이 노후를 위해 넣는 국민연금에다, 공매도 이득분을 청구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자비롭게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식을 대여해줬던 세력들은 통신사 주식으로 갚아라.
나는 이미 녀석들에게 빌린 통신사들 주식에 플러스해서 세력들이 가지고 있던 통신사들 주식까지 싸그리 쓸어모았다.
‘아직 3대 통신사들이 마탑 통신으로 완벽히 대체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게다가 통신과 전자기기가 긴밀하게 협조되어 있다 보니, 아직까지 홀로그램 스마트폰이 아닌 구형(?)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앞으로 최소 5년간은 기존의 통신망도 살려는 놔야겠지······.’
게다가, 나는 SC그룹으로부터 SC텔레콤 지분 10%를 대여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가치가 4조가량이었고, 지금은 수십억 단위로 떨어졌다.
때문에 그 차익을 SC그룹이 나에게 변상을 해야 했다. 나는 1300원짜리 주식이 되버린 SC텔레콤 주식을 몇 푼 안들이고 다시 매입해서 31만 6,500원으로 되돌려받으면 그만이었다.
‘자그마치 243배 이득을 본 셈이지.’
거의 풋옵션을 갈긴 것만큼이나 엄청난 금액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셈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돈을 노린 게 아니라, 그룹을 노린 것이었으니까.’
어차피 최기민 회장이 가진 SC그룹의 지분은 2조 원이 채 안 됐다. 그러니 나에게 3조 원가량의 빚을 다 갚으려면, 그 자신의 지분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지분까지 다 끌어모아야 하는데, 그래도 사실상 갚기 힘들었다.
‘결국 SC그룹 자체가 내 손아귀에 떨어지는 거지.’
녀석들은 애초에 ‘절대 지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나에게 승부를 걸었고, 나는 녀석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연하다는 듯이 승리했다.
‘당연하니까 미리 준비했지.’
이미 공매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제임스 박과 긴밀하게 모의를 한 끝에 정유·화학·통신·건설 분야의 모든 계열사들을 싸그리 흡수해버렸다.
‘결국 주식을 매개체로 쌓은 모래성이니, 주가가 붕괴되면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수순이었지.’
게다가 KC나 LC통신사들도 손쉽게 흡수하는 바람에, 전국의 90%이상의 인터넷·전화·이동전화의 고객들을 내가 싸그리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10%는 원래 알뜰폰 회사들이 나눠 먹고 있었으니까······.’
통신 3사들은 그 10%도 아까워서, 자기네들 자회사를 진출시켜 알뜰폰 생태계를 교란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
나는 알뜰폰 시장이 고작 10%가 아니라, 20%, 30%이상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국민들이 통신료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알뜰폰이 싸다는 인식이 점점 늘어나면, 사람들은 점점 그쪽으로 몰릴 것이고 그럼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더 커질 수 있었다.
‘어차피 마탑은 통신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많으니까, 알뜰폰 시장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지.’
나는 아무리 돈이 급해도, 마탑이 절대 알뜰폰 시장에는 진출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대기업이 한번 그런 쪽으로 손을 뻗치기 시작하면, 서민들은 답이 없으니까······.’
치킨 게임이라고나 할까?
치킨 게임은 반도체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대형 마트가 동네에 들어서면, 그 동네에서 장사하던 모든 상인들이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일반 직장인들이나, 사업을 안 하는 사람들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당연히 환영한다.
왜냐?
일단 외형부터가 멋들어지게 크고, 깨끗하다.
게다가, 직원들도 모두 친절하고 서비스 질도 최상이다.
구매한 물건이 잘못되거나, 이상해서 환불해달라고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환불해준다.
그리고, 물건의 다양성과 제품 품질적인 면에서 길거리 시장 바닥의 제품을 가볍게 압도한다.
그런데, 시장 장사꾼들이 그러한 공룡기업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는가?
‘없지.’
잔인한 이야기겠지만, 재래시장은 앞으로 미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순이었다.
‘대기업에서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절대 대기업을 상대할 수가 없지.’
만약 개인적으로 장사를 하겠다면, 대기업과는 다른 무언가 차별점이 있어야 했다.
가령, 대형 마트에는 전혀 없는 특별한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판다던가, 아니면 연구를 많이 해서 맛이 끝내주는 음식점을 차린다던가······.
무언가 특출난 게 있어야 했다.
‘아무튼 이번에 통신 회사들과 다양한 SC그룹의 계열사들도 흡수했으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찬규와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일어나려는 그때.
끼익.
“저, 실장님.”
이지연이 내 개인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이번에도 친구분이 찾아왔는데요······.”
“또요?”
나는 친구가 찾아왔다는 이지연의 말에,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름이 뭔데요?”
그냥 돌려보내려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권기성이라고 하더라고요. 풍천 권씨라고 하면 알 거라고······.”
“권기성? 풍천 권씨?”
그게 도대체 누구야?
내가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자, 이지연이 급하게 덧붙였다.
“이번엔 실장님이 아니라 찬규 씨를 만나러 왔다더군요.”
“찬규요? 아아~!”
나는 그제야 권기성이 누군지를 알아냈다.
‘옛날에 찬규한테 맨날 시비걸던 [걔] 아닌가?’
내가 1학년 때, 웬 복학생처럼 피부가 시커멓게 생긴 덩치 큰 녀석이 하나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덩치를 믿고, 자기보다 키가 작은 애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힘없는 학생들에게 매점 심부름을 시키던 질 나쁜 X끼였다.
‘그런 놈이 왜 찬규를 찾아왔지?’
찬규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찬규도 뭐 요새 잘나가고 있긴 하지.’
원래 하루 한편도 제대로 쓰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자, 찬규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다.
‘첫달 정산 수익으로 900만 원을 넘게 가져갔으니까······.’
정확히는 9,265,476원이었다.
하루 3편씩 거의 매일 쉬지 않고 꼬박꼬박 올리니, 상위권 작가들만큼 수익이 많이 났고, 100편도 일찍 넘어서 외부유통도 빨리 들어갔다.
게다가 찬규의 전작인 ‘내 성장속도 10000배’도 한달 동안 50만 원 정도 추가소득을 안겨주었다.
찬규는 결국 달동네에서 6,632,354원을, 외부 유통에서 8일 동안 깔짝 2,633,122원을 벌어갔다.
‘그리고 4개월 차에 유료전환 수익을 받았다고 치면, 달에 2,316,369원을 버는 데다, 다음 달 달동네 수익과 외부 수익을 합하면 1000만 원을 넘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찬규의 평균 월 수익이 대략 380만 원 정도로 껑충 뛴다.
게다가, 마탑그룹에서 창작지원이다 뭐다 해서, 달마다 찬규에게 1000만 원 이상씩 추가로 예술비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찬규 정도면, 같은 공고 동기들 중에서 꽤나 많이 버는 축에 속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건 다 개소리고, 나 때문에 찾아온 거겠지.’
찬규가 나랑 친하다는 소문을 어디서 주워듣고, 나를 공략하긴 어려우니까 찬규를 찾는 것 같았다.
‘찬규는 녀석에게 당한 게 많아서 권기성을 만나기 싫어할 것 같은데······.’
키가 큰 권기성은 수업 시간에 늘 뒷자리에 앉아서 지우개 가루를 잔뜩 뭉쳐서 찬규의 뒤통수에 던지거나, 아니면 이동수업마다 책을 대신 갖다 놔 달라거나, 매점 심부름을 시켰던 적도 많았다.
‘그 당시에는 찬규가 워낙 순진해서 어버버하다가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찬규가 성인이고 또 안정된 수익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한테 꿀릴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연 씨. 찬규 좀 이리로 불러주세요.”
일단 찬규를 불러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다.
끼익.
얼마 후, 정신없이 타이핑을 두드리던 찬규가 내 방으로 끌려왔다.
“어, 준혁아. 왜 불렀어?”
찬규는 글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던지, 혼자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내게 그렇게 물었다.
“어. 이번에 또 우리 동창이 사무실로 찾아왔다던데?”
“응? 또 누가?”
예전에 나를 찾아왔던 용팔이 ‘임상문’에 대해선 이미 설명해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찾아온 녀석인 임상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너 권기성이라고 알지?”
“뭐 권기성?”
그놈의 이름이 나오자, 찬규 또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씩씩거렸다.
“내가 옛날에 그놈이랑 맞짱 한번 뜰려고 했었는데, 놈이 2학년 때부터 쫄아서 나를 안 건드리길래 나도 참았지.”
“······?”
2학년 때는 내가 학교에 없었기 때문에, 저 말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알아내려면 알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무튼 권기성 그놈이 너에게 무슨 부탁할 게 있는가 봐. 직접 우리 회사까지 찾아왔네.”
“뭐? 그놈이 나한테 뭐 부탁할 게 있다고?”
찬규는 약간 흥분했던지, 오른쪽 다리를 덜덜 떨며 그렇게 말했다.
“몰라. 네가 만나기 싫다면 그냥 돌려보내고. 어떻게 할래?”
“하···함 만나지 뭐. 내가 녀석에게 꿀릴 게 뭐 있나?”
찬규는 약간 버벅거리면서도, 당찬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사무실로 그 녀석 부른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출벨을 눌렀다.
-네, 실장님.
“지연 씨. 아까 말했던 풍선 권씨인가 뭔가 하는 그 녀석 올려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권기성을 올려보내라고 한 후, 흥분한 찬규를 중앙 쇼파에 앉혔다.
“찬규야, 내가 옆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해.”
“내가 걱정할 게 뭐 있나? 녀석이 뭐 된다고.”
찬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혼자 여유 있는 척 룰루랄라 휘파람까지 불었다.
하지만, 탁자 아래로 찬규의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