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84.3대 통신사(3)
“족쇄···. 족쇄라······.”
최종환이 표정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말이 기분 나쁘기보다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현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런 최종환을 향해.
“빚이 꼭 나쁜 건 아닙니다.”
빚의 장점에 대해서도 얘기해줬다.
“신용거래가 생겨난 이래, 은행이나 대출도 생겨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한국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
나는 빚의 장점에 대해 말하면서, 동시에 단점도 같이 이야기했다.
“빚이라는 건 곧 리스크(Risk:위험)를 항상 짊어지고 간단 뜻입니다.”
“물론 그렇겠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위해 레버리지(Leverage:빚)를 사용하는 거니까.”
최종환 또한 상식적으로 빚이 나쁘다는 것도 알고,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빚의 위험성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빚의 위험성이 고작 그것뿐일까?
“경기가 호황일 땐 아무리 빚을 져도 망할 일이 없습니다. 일해서 갚으면 그만이거든요.”
경기가 좋으면 망하기도 어렵지만, 망한다 해도 도처에 일자리가 널려 있었다.
그래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면 짧으면 몇 개월, 길면 3~4년 안에 빚을 다 갚는다.
그러면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버는 돈은 무조건 플러스가 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떻죠?”
“······.”
“경기가 좋은가요?”
“······.”
내 질문에 최종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내가 묻는 바를 깨달은 것이다.
“조만간 폭탄··· 아니, 핵폭탄이 터질 겁니다.”
“핵··· 폭탄······.”
진짜 핵폭탄(nuclear)을 말하는 게 아니라, 1998년 IMF급 경제적 파탄이 온다는 뜻이었다.
“지금 현재 수천만 원, 수억 원 단위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 위기가 오면 단순히 파산으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빚을 다 갚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
굳이 뒷부분까지 다 설명하지 않아도, 최종환도 알 것이다.
국민이 갚지 못하면, 결국 나라가 다 떠안게 된다는 것을.
“저는 본인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욕하는 건 싫어하지만, 지금 이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습니까?”
“······.”
나도 정치 이야기하는 걸 정말 질색한다.
누군가 내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말을 돌리거나 아예 상종을 안 했다.
왜냐? 정치인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내야 했다. 결국 우파가 정권을 잡든, 좌파가 정권을 잡든 우리 개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다.
‘영향을 미친다면 정부의 정책에 직접 연관이 된 사람들이나, 아니면 맨날 정치 얘기나 하며 자기계발은 소홀히 하는 사람들······.’
정말 스스로 매일 자신의 노력을 갱신하는 사람이라면 정치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정치를 아주 외면할 수 없지.’
나뿐만 아니라 워낙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서, 투표를 행사할 때 말고는 나는 정치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최종환과 깊게 엮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최선의 방향을 찾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진짜 나라를 위한다기보단, 당장 눈앞에 보이는 권력의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진짜 나라를 바꾸기 위해 정치에 뛰어드는 사람은 이제 없죠.”
“······.”
최종환은 물론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바라는 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었다.
순수하게 진짜 나라를 위한다면, 지금 당장 매달 챙겨가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의전 특혜부터 내려놔야 했다.
‘국회의원 1명에게 지급되는 연봉이 연간 (상여금을 포함) 1억3796만1920원(월평균 1149만6820원)이라지?’
여기에는 기본급 개념의 일반수당(월 646만4000원) 외에 입법활동비, 관리업무 수당, 정액급식비, 정근수당과 함께 설과 추석에 지급되는 명절휴가비(총 775만 6800원)도 포함됐다.
‘게다가 의정활동 경비로 지급되는 금액은 연간 9천251만8천690원(월평균 770만9천870원)이지’
사무실 운영비(월 50만 원), 차량 유지비(월 35만8천 원), 차량 유류대(월 110만 원), 정책홍보물 유인비 및 정책자료발간비(한해 최대 1천300만 원)와 공무 수행 출장비,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의원실 사무용품 비용 등이 포함된다.
‘게다가 의원 1명에게만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지.’
의원 1명은 보좌직원으로 4급 상당 보좌관 2명, 5급 상당 비서관 2명, 6·7·9급 상당 비서 각 1명 등 총 7명을 채용할 수 있다.
게다가 국회 인턴은 1년에 22개월 이내로 2명씩 채용할 수 있다.
‘보좌진들 보수만 해도 최소 3천만 원 이상, 인턴은 1700만 원이상이니까.’
이들 보좌진의 한해 보수는
4급 7750만 9960원
5급 6805만 5840원
6급 4721만 7440원
7급 475만 9960원
9급 3140만 5800원
인턴 1761만 7원
순이었다.
이같이 본인 수령액과 보좌진 보수를 모두 더하면, 의원 1명당 연간 지급액이 최소 6억 7600여만 원이었다.
‘입으로만 ‘국민, 국민’할 게 아니라, 진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자신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비용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라 치면, 연간 총 202,800,000,000(2천 28억)의 세금이 들어간다는 소리였다.
결국 지금도 이렇게 줄줄 세금이 세어나가는데······.
‘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줄일 생각이 없겠지.’
아무튼, 이런 비용은 녀석들이 해먹는 돈 중에서 아주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더 중요한 건···.
‘아무런 효용성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사업에 나랏돈을 왕창 깨먹는다는 거지······.’
사업 타당성이나 효율성, 수익성 이런 건 개나 주라는 식으로, 주먹구구식 개판으로 조사해 놓고, 결국 국민들은 아무도 이용 안 하는 이상한 시설에다 수백·수천억을 때려 붓는 미친놈들이 바로 정치인들이었다.
‘그럴 돈들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사용해서 누수가 없게 만들면, 과연 이상적인 나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너무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최종환도 내 마음을 느꼈던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겠네. 하지만 당장 바꿀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으니, 일단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말해보게.”
최종환도 내 이상을 지지했지만, 대통령으로서 중심을 지키며 현실적인 부분을 먼저 거론했다.
나는 그런 최종환을 향해.
“이번에 저희 마탑에서 통신 사업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통신?”
최종환으로서도 약간 놀랍긴 했지만, 표정이 다시 여상하게 돌아오는 걸 보니, 우리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거 같았다.
‘통신 3사가 우리 마탑 휴대폰을 개통 안 시켜 준다는 걸 알고 있겠지.’
거의 전 국민이 알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놈들에게 리베이트나 하면서 비굴하게 우회하는 판단보다는, 정면으로 깨부수는 방법을 선택했다.
“통신 3사의 견제 때문에 자네들이 많이 애를 먹고 있군.”
최종환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였다.
‘정부에서 공시하는 대부분의 주파수는 모두 통신 3사가 가져가니까······.’
통칭 이동통신 3대장이라 불리는 SC·KC·LC는 90년도부터 정치권과 밀착해 민영화된 한국통신을 헐값에 매입하거나, 대통령의 특혜로 이동통신 사업권자를 손쉽게 따냈다.
‘진성이나 흉대, 랏데 같은 기업은 눈치가 보여서 못 뛰어들고 있지만······.’
모든 재벌들이 다 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경쟁이 나름 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 사업의 파이를 놓고 한 그룹이 비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정부였다.
그래서 각 대통령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재벌들을 각각 키워줬다.
최종환 대통령도 그러한 점을 인식했던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2018년도부터 기간통신사업 진입규제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했다네. 그래서 설비를 보유하지 않아도등록은 할 수 있지. 하지만······.”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압니다.”
현재 정부에서 공시하는 대부분의 주파수는 조 단위의 가격으로 팔린다. 거의 ‘준조세’라고 불리는 주파수 가격은 많게는 7~8조 단위까지 거래된다.
10년 동안 나눠 낸다 해도, 이통사들의 주파수 할당 비용이 연간 2조 원 이상이라는 무시무시한 금액이었다(전파 사용료 포함).
결국, SC나 KC·LC같은 재벌 통신사들이 아니면, 소규모 통신사들은 입찰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5G 시대에 접어들면서 연간 기지국 설치 비용도 10조 원을 돌파했다.
매넌 7~8조 원 이상 꾸준히 기지국 설치에 투자해온 3대 통신사의 손을 빌리지 않고, 통신업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건 최종환도 알고 있었고,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 그게 무엇인가?”
최종환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그것은 블록체인처럼 기기와 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매직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매직 통신망!”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핵심 사업으로 거론되는 블록체인 시스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는 점만 빼고, 블록체인의 장점을 가져와서 구축한 것이 바로 매직 통신망입니다.”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꾸준히 구축해왔던 새로운 통신망에 대해 설명했다.
“전국에 자연을 훼손하며 기지국을 설치하고 케이블 관로와 선로 훼손을 걱정할 필요 없고, 주파수의 전파도 필요 없이 모든 것이 각 기기별로 무선으로 연결됩니다. 게다가 속도는 지금의 100배 이상으로 더 빨라지고요.”
“하······.”
내 말에 최종환은 못 믿겠다는 듯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동안 5G시대라고 해서, 최대 20Gbps(1초당 2.5GB 전송)의 데이터 전송속도도 정말 과학의 이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보다 100배 더 빠른 5G를 뛰어넘은 7G라니?
‘사실 그보다 더 빠르게 할 수도 있는데, 컬쳐쇼크 올까 봐 더 빠른 건 천천히 공개하는 거지.’
나는 마력으로 구축한 매직 통신망의 속도 제한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미, 마탑 쥬얼리에서 생산한 아이템들은 모두 내가 만든 마력 수정탑과 연결해서, 각기 마법의 효능을 발휘하도록 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수정탑을 부숴버리면 전 세계에 퍼진 마법 아티팩트들은 효능이 전부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미 구현하고 있는 걸 통신이라고 못 구현할 것도 없지.’
좀 더 복잡한 계산과 공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세상의 모든 공부를 끝마친 나였다.
게다가.
‘사람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들이 빈틈없이 전산 처리를 해주고 있으니, 정부의 허락만 떨어지면 바로 서비스 시작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조금 미안한 소리지만, 솔직히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일을 더 잘하는 건 팩트였다.
그들은 밥줄 필요도, 쉬는 시간을 줄 필요도, 새로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기존이 지식을 인식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싶어하는 사업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자동화 기기였다.
무인 자동 가판대, 무인 자동 공정 기계, 무인 자동화··· 무인 뭐시기······.
아무튼 사람을 ‘안’쓰고 사업을 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릴 정도로, 오너들은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람은 다루기 복잡하고, 효율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감정적이니까······.’
키워 놓으면 언제 통수치고 다른 경쟁회사로 갈지도 모르고, 아무튼 예전에야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았다지만 지금은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나와버린 이상, 대부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최종환은 내 대답에 잠시 고민하더니, 침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만약 자네 뜻대로 하게 된다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주파수 판매 수익과 기타 여러 가지 통신 수익을 정부에서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최종환의 질문에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속도만 올라갈 뿐, 거두는 세수는 지금과 똑같이 걷힐 겁니다. 아마두요.”
“어떻게?”
“제가 만드려는 매직 통신망을 공영화해서 저를 포함한 모든 통신사들이 주파수를 할당받으면 되지요.”
사실 매직 통신망은 각 기기별로 연결되기 때문에 주파수라는 용어가 애초에 없지만,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었다.
‘각 사업자별로 매직통신망의 중간 연결 중계망을 나눠주고 그것을 다시 소비자들에게 연결해주는 방식도 있으니까.’
마법으로 불가능이란 없었다.
“그렇군. 그렇게 하면 되겠어.”
최종환은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최종환을 향해.
“하지만, 3대 통신사는 매직 통신망 주파수 입찰에서 빼주십시오.”
“······?”
통신 3대장에 대한 뒤끝을 보여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