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81.프레젠테이션
“레포트를 벌써 다 작성하셨다고요?”
인공지능 수업이 끝난 후.
이준혁 곧바로, 유하은 교수를 찾아가서 레포트를 제출했다.
“네. 어제 밤을 꼬박 새워서 작성했습니다.”
사실 밤을 새운 건 다른 일 때문이었지만, 이준혁은 그렇게 포장을 했다.
“하루 만에 쓸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을 텐데요······.”
유하은 교수는 그가 직장인이고, 나이 차도 크게 안 나서 이준혁에게 존대를 했다.
“그냥 가볍게 한번 써 본 거니, 너무 부담가지지 마시고 읽어보세요.”
“네, 그럼 알겠어요.”
그녀는 이번이 실패하면, 학기 말까지 계속 도전이 가능하다고 덧붙이며 레포트를 읽어나갔다.
제목 : 현 시점의 인공지능과 강인공지능의 구현 가능성.
내용 : 현재 인공지능의 개발은 방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것을 모두 학습하는 방식의 토탈 러닝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써, 인간의 뇌를 어설프게 모방한 신경망의 한계로 인한 오류이다.
그래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
.
.
“오······.”
하루만에 제출한 레포트라, 별 기대감 없는 눈빛으로 그것을 읽어나가던 유하은.
그녀는 곧바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제 막 들어온 1학년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현재 과장되고 부풀려 있는 인공지능 개발의 핵심을 꼬집는 레포트.
게다가, 내놓은 해법도 매우 놀라운 내용이었다.
‘인간의 뇌지도를 완성해서 그것을 완벽히 모방하면 강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1000조 개의 시냅스를 이루는 인간의 신경망 네트워크.
그것 하나의 소우주로 불릴 만큼 방대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생체신경 알고리즘이었다.
‘그럴 수만 있었으면 진작했지······.’
유하은 교수가 생각하기에, 이 레포트의 핵심은 ‘어떻게 뇌지도를 완성하느냐?’였는데, 이준혁은 이미 다 만들어 놨다는 식으로 써놓았다.
“이준혁 학생. 뇌지도를 그려보거나, 완성해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없습니다.’를 예상하고 한 질문이었다.
한데.
“네. 만들어 본 적도 있고, 이미 완성까지 한 상태입니다.”
“헉······.”
레포트를 들고 있던 유하은 교수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뇌지도를 완성했다고요?”
그녀는 해부학적인 구조를 말하는 줄 알고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시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등의 뇌 그림을 가지고 뇌지도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죠?”
“1000조 개의 신경망을 모두 그려냈다는 뜻입니다.”
“천조······!”
그게 X발 사람이 할 짓이야?
유하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레포트를 읽어나갔다.
-인간의 뉴런을 완벽히 모방해서, 기존의 인공 신경망보다 월등히 우수한 판단·사고 능력을 가진 ‘강인공지능’ 양산.
“후······.”
이거 무슨 레포트가 아니라, 사업 계획서 같네요.
유하은 교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그럼 그 뇌지도라는 것도 같이 가지고 왔겠죠?”
*
나는 유하은 교수에게 레포트를 건네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이군.’
그리고 이제 유하은 교수의 수업은 출석하지 않아도 됐다.
모두 올 S를 맞을 테니까.
“오빠. 벌써 레포트 제출 끝내신 거예요?”
“응.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강의실 밖으로 나가자, 이지수와 차수연이 뻘줌히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차수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네···.’
어제도 같이 밥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날 사이인지는 의문이었다.
‘지수랑 친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밥이나 먹는 거겠지···.’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하고,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오빠!”
지수는 바로 내 옆에 찰싹 달라붙더니, 내게 팔짱을 꼈다.
얘가 왜 이럴까 하고 쳐다보니,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며 쫑알거렸다.
“레포트 통과됐죠? 교수님이 뭐래요? 통과라고 하던가요?”
“아니.”
“엥? 그럼 떨어진 거예요?”
이지수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놀라는 표정이 재밌어서 녀석을 놀려주고 싶어졌다.
“아니, 내일 결과 알려 준데.”
“우와, 십 년 감수했잖아요. 그럼 아직 떨어진 건 아니네요.”
“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
나는 속으로 100% 붙을 것을 장담하고 있었지만, 남들에게까지 그렇게 말하고 다니진 않았다.
-이게 진짜 뇌지도라는 건가요? 와, 복잡해라. 인공지능 전공 교수인 제가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유하은 교수는 내가 건넨 뇌지도를 쳐다보곤 입을 쩌억 벌렸다.
당연히 모를 만했다.
그건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그 뇌지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오늘 안에 판명이 날 겁니다.
-오늘이요?
-네.
그녀에게, 오늘 마탑 전자의 공식 출범을 알리곤 점심 후에 있을 유진광의 프레젠테이션 일정을 알려줬다.
-설마 이 뇌지도, 준혁 학생이 만든 건가요?
-마탑의 기술자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이걸 다 만들 생각을 했지? 너무 소름이네요.
시시각각 살아서 움직이는 마탑의 인공 신경망은 눈으로 본다고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게, 유하은 교수는 내가 제출한 레포트의 합격 여부를 프레젠테이션 시청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하고 나왔고.
“오빠. 그럼 H코스 전부 통과하면 이제 학교 안 나오시겠네요?”
옆에서 따라 걷던 차수연이 쭈뼛쭈뼛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사실 모든 대학생들이 그럴 것이다. 수업이나 과제, 시험을 모두 재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나 또한 평범한 대학생들 중 하나였다.
“아, 네······.”
한데 차수연이 약간 아쉽다는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얘가 왜 이래?’
벌써 나한테 정들었나?
나도 나에게 가까이 와서 살갑게 구는 차수연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겐 아리도 있고, 실프도 있었다
‘이제 다른 여자들에게 한눈팔 시기는 지났으니까······.’
차수연이 아무리 이쁘고 젊다고 해도, 내겐 아리뿐이었다.
다른 여자는 절대 안 됐다.
우리는 나란히 학교 내에 있는 감굴 식당으로 들어가 비벼 먹는 김치찌개와 계란 후라이밥을 시켰다.
‘역시나 점심은 얼큰한 김치찌개가 최고지.’
이지수 또한 나랑 입맛이 잘 맞아서, 서로 음식 때문에 싸울 일은 없었으나······.
“수연아. 넌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다른 거 시켜.”
“아니에요, 오빠.”
차수연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귀공녀 티 팍팍 나는데, 이런데서 김치찌개나 먹다니. 얘도 참 끈기 있네.’
이쯤 되면 친구고 뭐고 다 버리고, 혼자 다닐 거 같은데 레벨도 맞지 않은 이지수와 꾸역꾸역 같이 다니는 거 보면, 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근데 오늘 마탑에서 회장님이 공개 프레젠테이션 한다던데 진짜예요?”
이지수는 인터넷에서 마탑 전자와 관련한 기사를 봤던지, 내게 그렇게 물었다.
“어. 점심때쯤 조금 지나서 할 거 같아. 한 2시?”
“우와. 그럼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겠네요. 진짜 기대된다. 두근두근.”
이지수는 벌써 마탑인이 다 되어버렸는지, 마탑 관련 공식 행사는 꼬박꼬박 다 챙겨가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기대는 무슨.”
나는 이미 지겹게 봐 왔던 터라, 기대감 같은 게 1도 없었다.
‘그저 빨리 제품 출시나 했으면 좋겠네.’
프레젠테이션이니 뭐니, 유진광이 스테븐 밥스를 따라하고 싶어서 이상한 걸 하는 거 같았다.
‘그래도 홍보는 확실히 되겠네.’
나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으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유진광입니다.”
찰칵, 찰칵, 찰칵!
“오늘 역사적인 이 자리에 함께 참여해주신 많은 기자분들과, 참석자 여러분. 감사 말씀 올립니다.”
꿀꺽.
몰입감을 높이는 유진광의 화법에, 모든 관중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저는 오늘 이곳에서 중대발표를 하나 할까 합니다.”
그러면서, 유진광은 마탑 그룹 안에 마련된 대규모 강연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보통 사회자가 서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회자 그런 거 필요 없이, 스테븐 밥스처럼 유진광 또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나갔다.
“여러분. 오늘 우리 마탑 그룹에서 어느 계열사가 출범하는 지 다 아시죠?”
“전자!”
“마탑 전자!”
관중들뿐만 아니라, 타이핑을 하던 기자들까지도 그렇게 외쳤다.
“맞습니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우리 마탑그룹의 ‘전자’계열사가 출범하는 날입니다.”
“우우~!”
“박수~!”
사람들은 유진광의 호응 유도에 휘파람과 함께 박수 갈채를 보내며,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우리 마탑은 전자 계열사 출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반도체 부문부터 먼저 출범시킬지, 아니면 완제품으로 모두 완비해서 출범시킬지.
유진광은 마탑 전자의 비화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완제품 시장으로 가자. 그래서 우리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합쳐진 완벽한 제품을 내놓자! 그렇게 해서 다른 계열사보다 출범이 늦어졌던 것입니다.”
“와아~!”
“기대된다!”
사람들은 마탑의 계열사들이 하나씩 출범할 때마다, 어떠한 파란을 일으켰는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마탑 전자가 출범하면, 국내의 진성·헬디 전자뿐만 아니라 미국의 실리콘밸리까지 타격받을 거다.
-미국에 치이고, 중국에 먹히던 한국은 이제 없다! 마탑이 전 세계를 쓸어버릴 테니까.
-그럼 내가 다니는 진성 하청도 이제 망하는 건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그렇게 갑론을박을 벌이며, 마탑전자 출시를 기대했다.
과연, 이번엔 어떤 제품이 나올 것인가.
어떤 혁신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반도체 분야와 전자·가전, 인공지능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일류 기업들을 어떤 식으로 제칠 것인가?
사람들은 팝콘 뜯는 느낌으로,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마탑 전자의 출범을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오늘.
때가 왔다.
“서론이 너무 길었죠? 이제 형식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두둥!
“이것들이 바로 저희가 출시할 제품 목록입니다!”
유진광의 선언과 함께, 그의 등 뒤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영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오오······.”
웅장한 BGM과 함께, 역대 나온 마탑 계열사의 홍보 영상들이 우르르 지나갔다.
마탑 쥬얼리의 초반 흥행 실패와, 이지수를 통해 입소문을 탄 상황 재현.
그리고, 전 세계를 강타한 마탑 쥬얼리 열풍.
마탑 쥬얼리의 바통을 넘겨받아 전 세계 마탑 영양제 열풍을 몰고 온 마탑 제약.
그리고.
-WHO IS NEXT?
마지막 검은 화면 위에,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영어 3단어가 떠오르며, 사람들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했다.
두두두둥!
“안녕? 난 마탑전자에서 개발한 마드로이드, 여고생쟝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그와 함께, 처음 등장한 것은 한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