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153화 (153/272)

# 153

72.혹시 부들부들 중이세요?

“저··· 저 새끼가···!”

“민용 선생님. 선생님이 좀 참아요.”

“아니, 참을 게 따로 있지, 저놈이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

군포 하이텍고에서 영어 수업을 맡고 있는 교사 지창현은, 강필용 선생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필용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화가 난 듯 시벌시벌했다.

“내가 예전에 저놈을 얼마나 아끼고 이뻐했었는데, 저놈은 은혜를 갚기는커녕, 되려 원수로 갚고 있지 않습니까?”

“은혜요?”

“예. 제가 저 녀석을 얼마나 성심성의껏 가르쳤는데요.”

“···.”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열불이 뻗쳐서 살 수가 없습니다.”

“하······.”

지창현 교사는 숫제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홱 돌아섰다.

‘예전에 이준혁을 그렇게 못살게 굴고,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더니 인제 와서 왜 갑자기 저런 헛소리를 하는 거지?’

지창현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래 저런 인간이니까, 뭐······.’

이미 십몇 년 넘게 강필용을 봐온 지창현이었기에, 그의 저런 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겪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괜히 강필용에게 바른말, 쓴소리를 했다가 앙심이라도 품으면 교직 생활이 매우 곤란해졌다.

그래서 지창현은 그저 다른 교사들처럼 일에 집중했다.

“두고 보자 이준혁···.”

하지만 강필용은 여전히 아까 당했던 개무시를 떠올리며 일도 안 하고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다른 선생들은 모두 강필용을 힐끔거리며 그동안 고구마만 먹다가 이준혁 덕분에 오랜만에 탄산 가득한 사이다를 마시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

“갑자기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실종된 지 17년 만에 갑자기 전국 1등이라니?”

“그렇게 됐어요, 선생님.”

나는 임창용 선생님과 함께 한적한 학교 공원 벤치에 앉아서 티타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곳도 많이 변했네요.”

나는 급식소 뒤에 지어진 야외 휴게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예전엔 다 산이었는데······.’

어느새 학교 옆엔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원래 벽으로 막혀 있던 급식소 주변도 벽을 허물고 그늘막이 있는 야외 휴게실로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이니까, 당연히 변하지.”

“한데, 강필용 선생님은 아직도 여기 계시네요.”

“뭐··· 그렇지.”

강필용이란 이름이 나오자, 임창용 선생님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역시나 요즘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고 다니나 보네······.’

나는 강필용을 선생이라고 칭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임창용 선생님이 바로 앞에 있어서 존칭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 때도 기간제 교사로, 능력도 없으면서 2년마다 겨우겨우 턱걸이로 연명하던 인간이었는데···.’

그 능력으로 지금까지 20년 넘게 버텼으니, 그 양반도 어느 면에선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한번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조금만 읽어볼까······.’

임창용 선생님의 기억을 읽을 필요도 없이, 곧바로 바람의 흔적을 읽어 강필용에 대한 기억을 수집해나갔다.

-강필용 선생 이번에도 또 사고 쳤다면서요? 몽둥이로 애를 잘못 패서 고막이 터졌다던데?

-강필용 선생 뒷담화가 너무 심해요. 선생들 안 보는 데서 다른 선생 욕하는 게, 어후···. 교장·교감한테 후빨해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거 보면 진짜 역겹습니다.

-그 양반 왜 계속 교직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요. 수업 내용도 개판이고, 학생들도 잘 못 가르치고, 다른 선생들한테도 업무적으로 매번 피해만 끼치고. 사람이 능력이 없으면 착하기라도 해야지, 에휴······.

‘음······.’

몇 개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담배 피고, 학생들이 공부도 안 하는 꼴통 학교여도 그렇지 어찌 저런 선생이 교직에서 저렇게 오래 해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 교육 시스템이 이해가 안 갔다.

말이 안 됐다.

‘이 부분도 어쩌면 시정해야 될 부분이다.’

내 회사, 그리고 북한 관련 일만 잘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내부에 산적한 고질적인 교육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무튼 준혁아. 네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

“다 선생님 덕분이죠. 뭐.”

“내 밑에서 1년도 안 있다 갔으면서, 아부는.”

“정말이에요. 이번에 수능 준비할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러냐? 허허허······.”

선생님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많이 기뻐하며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사실, 내 말도 거짓말이 아닌게, 임창용 선생님이 가르쳐준 공부 방법이 이계에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사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무튼, 오늘 내가 가르치는 애들의 졸업식인데 네가 마침 타이밍 좋게 잘 왔다.”

“졸업식요?”

“그래. 비록 제대로 된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네가 이 학교 선배로서 이번에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말 한마디 해주면 좋지 않겠냐?”

“흠······.”

설마 나보고 졸업식 강단에 서서 연설을 하라고?

‘그런 건 왠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남 앞에서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격이라, 그런 자리는 최대한이면 지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부탁이니까 한번 얘기라도 해볼까······.’

만약 앞으로 사회에 나갈, 그리고 새로 대학교에 입학할 학생들에게 그리 거창한 미래 비전에 대한 얘기보다는, 사회의 냉혹한 현실 부분들을 많이 얘기하고 싶었다.

“뭐, 오늘 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하죠. 뭐.”

“고맙다, 임마.”

선생님은 자신의 기를 살려주는 내가 기꺼웠던지 어깨를 툭툭치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그렇게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해줄 덕담 등을 준비했다.

*

“오늘 졸업하는 제 60회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앞으로 무궁무진한······.”

학생들이 등교하고, 오전 11시가 되자 군포 하이텍고의 졸업식이 시작됐다.

교장·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과 함께, 졸업을 축하하는 후배들의 각종 행사 등이 줄을 이었다.

“하아암ㅡ!”

대체로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연신 졸린 듯이 하품을 해대며, 자기네들끼리 시시닥거렸다.

“우리 학교는 졸업 기념으로 연예인 행사 초빙 안 하나?”

“야이 새꺄, 우리 학교에 그럴 돈이 어딨냐? 그리고 이제 손절하는 3학년 애들한테 뭣하러 그런 돈을 써.”

“그건 인정.”

“어차피 졸업하면 저 사람들이나 우리나 서로 남남이야. 그냥 아저씨 되는 거지. 지금은 법으로 서로 선생·학생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거라도 해주는 거지. 안 그럼 국물도 없어.”

“후······.”

학생들의 날카로운 팩트폭행을 멀리서 들으며 나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지만, 저렇게 다 알고 있구나.’

솔직히 별로 진심이 안 담겨 있는 졸업식 행사이니, 학생들 또한 덩달아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간에 생각의 차이가 중요한데 말이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생각은 생각으로 끝날 뿐,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자세히, 곰곰이 들여다보면 생각이 정녕 우리 현실과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게 된다.

‘대충 살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충 살게 되고, 열심히 살겠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살게 되고 뭐 그런 거지.’

마인드 컨트롤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생각을 어느 쪽으로 유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현실과 미래가 바뀌는 법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갖고 꿈과 이상을 실현하게끔 이끌어 주지 못한 학교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모가, 그리고 선생들이 떠먹여 줘야 한단 말인가?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누가 책임져주지 않는다.’

아무리 쓰레기 소굴이라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변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그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소굴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세상을 그저 냉소적으로만 바라보면 결국 자신도 그런 부류와 똑같이 하찮은 인생을 살게 될 뿐이었다.

‘결국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성공하는 법이니까?’

재능?

재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신의 경지에 오른 내가 보기엔 결국 최종적인 승부는 그 사람의 의지와 꾸준함에 달렸다.

당장은 크게 보이는 재능이, 나중에 뒤돌아보면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얄팍한 재능이라는 걸 저 녀석들은 알까?

“자, 이번에 졸업하시는 학생들. 마지막까지 꼰대가 잔소리해서 많이 지겨웠죠?”

“···.”

“네!”

장난기 많은 몇몇 친구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지막이다 싶었던지 자신의 속마음을 크게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꼰대의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교장은 그렇게 운을 띄운 후, 곧바로 내가 앉은 자리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졸업하는 3학년 후배들을 위해 모교에 특별한 선배 한 분이 오셨습니다. 요즘 최장수 전국 1등으로 가장 화제가 되신 분이시죠. 누군지 다들 아시죠?”

“이준혁!!!”

“이준혁 선배님!”

“선배님 사랑합니다!”

공업 관련 학교가 최근에 인기를 얻고 급부상하자, 여학생들도 우리 학교에 많이 입학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남학생들의 함성과 함께, 여학생들의 함성도 간간이 섞여 나왔다.

‘아, 창피해 죽겠네···.’

나는 미리 사전진행을 듣고 왔었음에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뚜벅뚜벅.

나는 맨 앞 좌석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아, 전국 수석!”

“선배님, 완전 사랑해요! 저랑 결혼해주세요!”

“야, 미쳤니. 무슨 그런 소릴 해.”

역시나 아직 고등학생인 여자애들이라 과감하게 고백 신청을 하는 애들도 많았다.

물론 다 장난이겠지만.

똑똑.

“아아ㅡ!”

나는 마이크를 두 번 두드려서 테스트를 한 후, 곧바로 연설을 시작해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군포 하이텍 고등학교 자퇴생 이준혁입니다.”

“와아아··· 엥?”

“자퇴생?”

“졸업생 아니셨어? 왠 자퇴생?”

자퇴생이란 말에 함성을 지르던 학생들이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고, 교직원 의자에 앉은 선생들도 전원 멘붕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저는 지금껏 살면서 제가 이 학교 졸업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

“저는 1학년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학생들은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몇몇 학생들은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전국 수석까지 하시다니, 선배님 진짜 대단해.”

몇몇 학생은 갑자기 행복회로까지 돌려가며 나에 대한 이상한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향해.

“그런데, 제가 검정고시를 따서 수능에서 전국 1등을 하니까 갑자기 제가 이 학교 졸업생으로 둔갑되어 있더라고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이 학교 졸업생인 줄.”

“푸하하, 뭐야.”

“그럼 학교에서 선배님을 자퇴 처리했다가 갑자기 17년 만에 수능 만점 받고 전국 수석이 되니까 갑자기 학교에서 숟가락 얹었다는 말 아니야?”

“빨대 오지게 꽂은 거 같은데? 준혁 선배 팩트 폭행 지려따리······.”

“모른 척 넘어갔어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선배님 성격 완전 유쾌하시다. 짱 멋지시다.”

학생들은 내 폭탄 선언에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강필용 선생?”

“······면몫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번에 전국 1등 이준혁에게 빨대를 꽂자고, 플랜카드까지 걸어가며 적극적으로 이번 일을 추진했던 강필용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어버버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