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66.망명정부(3)
촤악, 촥ㅡ!
“허헛, 이것 참 신기하구먼 기래.”
김정은은 로동당 수뇌부들과의 만찬이 끝난 후, 집무실에서 보위성 당 간부가 가져온 동영상을 감상하며 입가에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기렇지요? 이 정도면 수령님의 새해 업적을 축복하는 홍보 도구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참 좋은 아이디어요. 물용뿐만 아니라 다른 신령스러운 동물이 나타나면 그것도 얼른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라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수령님.”
김정은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칭찬을 해주자, 당 간부는 몸 둘 바를 몰라 허리를 넙죽넙죽 숙이며 열심히 아부했다.
북한의 피라미드 계에선 오직 김정은의 신임만이 진정한 금 동아줄이었다.
아무리 북한 내에 높은 직위를 가진 수뇌부라 해도 김정은의 눈 밖으로 벗어나면 곧바로 장사정포에 몸이 구겨져 들어간 채, 포탄 세례를 얻어맞아야 했다.
김정은 외에는 오래 가는 절대권력도 없었고, 군사·정치·언론에 있어서 김정은이 모든 총지휘관 자리에 이름을 올려놨기 때문에, 조선 시대 왕정처럼 모든 통제가 김정은의 명령 하에 이루어졌다.
‘일단 핵무기가 사라진 이상, 기존에 내게 충성을 맹세하던 고인물들이 내게서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여야지. 그게 바로 살아남는 방식이니까······.’
김정은은 핵무기가 사라진 후, 벌써 3차례나 간부진들을 물갈이했다. 죽인 놈들도 있었고, 살려놨지만 거의 반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놈들도 있었다.
김정은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조금이라도 포착되면, 증거고 나발이고 곧바로 소환해서 녀석들을 조졌다.
사실과 달라도 조졌고, 사실이라고 말해도 조졌다. 생사람을 잡아도 이미 모진 고문을 가한 후이기 때문에, 녀석이 앙심을 품고 나중에 자신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앙금을 남겨놓으면 언젠가는 비수가 되어 내게 돌아오는 법이니까.’
김정은은 재밌는 영상을 가져온 보위성 간부를 칭찬한 후, 돌려보낸 다음 고심에 빠졌다.
‘내가 살아날 방법은 허장성세밖에 없다. 하필이면 이런 혼란한 시기에 남한에게 도발을 걸어버렸으니, 운이 좀 안 맞긴 하지만 다시 남한과 잘해보는 수밖에······.’
김정은은 일이 이렇게 돌아갈지도 모르고, 남한의 서해에 있는 백령도에다 포탄을 갈겨버렸다.
그동안 중국의 압박 때문에 북한 내 경제 사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내린 극단적인 결정이었다.
‘돈줄은 말라가지, 중국과 미국에선 계속해서 압박하지······.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선,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남한에 도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도발하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였기 때문에, 만만한 남한을 공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남한과 협상을 해야 되는 시기에 그런 짓을 저질러버렸으니······.’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남한에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야 할지 고심했다.
‘철모(하이바)라도 쓰고 청와대에 평양냉면이라도 날라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남조선 동포들의 화를 풀 수 있을지 고심했다.
‘일단 금광산 관광부터 재개하고, 이참에 남조선 회사들과 토의해서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황해도나 함경도 쪽에도 공단 건설을 추진해보는 거지······.’
1990년대부터 있어 온 남북 교류로 인해 북한은 어떤 조건을 제시하면 남한이 좋아하는지 잘 알았다.
대개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설치 같은 게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는 주요 카드였고, 김정은은 거기서 더 나아가 많은 관광단지와 개성 외 타 지역에도 공장 설립을 추진할 심산이었다.
‘핵무기가 사라진 이상, 어쩔 수 없이 중국처럼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김정은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중국을 롤모델로 나라의 비전을 다시 재정립하고자 했다.
‘어차피 인민들에게 계속 강냉밥이나 처먹여 봐야 10년 이상 유지되긴 힘들었다.’
현재 북한이라는 파이를 놓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미·일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핵무기가 없어도, 감히 중국이 군사를 밀고 내려와 북한을 점거하는 사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인민들이 신문물에 눈을 뜨고, 현 체계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공산당처럼, 로동당 수뇌부와 똘똘 뭉쳐서 힘을 합치면 반도의 반쪽짜리 땅덩어리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북한 사회 내부에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자유롭게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 문화는 억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끔 평양 시내를 지나다 보면, 아예 대놓고 남한 노래를 틀어놓는 가게도 있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남한의 문물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미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했다.
‘막을 수 없다면 어느 정도 수출입을 장려하고 그것을 내 치적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김정은은 오히려 안 좋은 시국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생각했다.
그동안 억압되어 왔던 인민들에게 조금씩 제재를 풀어주면, 그동안 쌓여왔던 자신에 대한 악감정을 조금은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좋아. 개방정책으로 선회한다. 대신 돈은 확실히 들어오게끔······’
김정은은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가 야기한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추진해나갈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그 자리에서 빠르게 결정했다.
*
“북한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해 왔다고요?”
최종환 대통령은 최고 수석비서진들과 함께, 북한에서 제의한 회담 문제에 대해 비밀리에 토의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하······. 이놈들이 진짜 누구를 바보로 아나······?”
최종환은 담배가 피고 싶은 얼굴로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의 영토에 장사정포로 도발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회담제의라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래도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는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석 비서관의 의견에 최종환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들어볼 것도 없소이다. 뭐 뻔한 소리나 하겠지. 개성공단을 재개하자거나 금광산 관광 재개 같은 거···.”
최종환은 부처님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알겠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김정은은 최종환의 예상대로 그렇게 제의했으나, 이번엔 조금은 달랐다.
“이번엔 그것을 넘어, 좀 더 개방된 제의를 해왔습니다.”
“좀 더 개방된 제의라면 어떤······?”
수석 비서관은 눈을 동그랗게 뜬 대통령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북한 내에서 핵무기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예에?”
남북 정상회담 얘기를 하던 도중, 수석 비서관이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릴 하자 최종환 대통령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아직 정확한 확인을 더 해봐야겠지만, 북한 내 심어 놓은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거의 90% 확실하다고 봅니다.”
“허허······.”
최종환은 지금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나온 사안이긴 해도, 결국 핵과 이번 정상회담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캐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정은이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군요.”
“그렇습니다.”
남한 측에서 북한에 심어 놓은 세작들은 90년대 후반 대거 숙청당해서 많이 남아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남한을 동경해서 먼저 접선해온 수뇌부들도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 탈북할 그날을 기다리며,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세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북한 내부에서 장성들이 물갈이 되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도 그런 세작들 덕택이었다.
“그래서 정은이가 제안한 것들이 뭡니까? 어디 들어나 봅시다.”
듣지도 않고 야멸차게 뻥 차버리려 했던 최종환은, 수석 비서관의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애초에 들을 가치도 없다에서, 일단 들어나 보자로 변경된 것이다.
“일단 개성공단 외에 함경도와 강원도, 황해도의 몇몇 지역을 더 개방해서 한국 기업들의 진출을 적극 장려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왔습니다.”
“그동안 평양 내에 꽁꽁 틀어박혀서 강냉이만 처먹다가, 갑자기 또 다른 것이 먹고 싶어진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핵을 비롯한 기타 대량살상무기가 갑자기 실종된 게 김정은의 심경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핵 없는 북한이라······. 최근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미래였소.”
최종환은 북한의 내부 사정도 알고, 또 핵이 왜 사라진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해하거나 걱정해하는 기색이 단 1%도 없었다.
‘이게 다 내 사위가 한 일이라고!’
최종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명동 길거리에 나가서 크게 외치고 싶었다.
마치 신라 시대의 48대 왕인 경문왕의 시종이, 왕의 귀가 긴 것을 혼자만 알고 끙끙 앓고 있다가, 죽기 직전 도림사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과 비슷했다.
‘아마 마법의 힘으로 핵무기를 없앴겠지······.’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몇 주 사이에 북한이 80년 동안 만들어 온 대량살상무기가 모조리 증발했다?
길가던 사람을 붙잡고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바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현재 북한 내에 이상한 생명체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상한 생명체요?”
수석 비서관은 갑자기 흐뭇한 표정을 짓고서 딴 생각에 빠져 있던 대통령에게 또 다른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네. 현재 백두산에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수룡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 아닌가요?”
백두산 천지에 이상한 괴물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최종환도 인터넷 짤방에서 몇 번 본적이 있었다.
과거 중국 상공에서 찍힌 구름 속을 떠다니는 용이라던가, 아니면 괌 앞바다에 나타난 고래만 한 올챙이라던가······.
하지만 전부 합성으로 판명 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수석 비서관이 그것을 언급하자 최종환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단순한 소문이 아닙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영상이 있는데 아나콘다보다 더 굵고 커다란데, 생긴 것이 정말 용처럼 생겼습니다.”
“영상이요?”
최종환이 놀란 표정을 짓자, 다른 비서관들도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석비서관은 주머니에서 자랑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어제 네이브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백두산 용을 검색했다.
그러자 유튜브에 그와 관련된 영상이 검색됐다.
-백두산 천지에 출몰한 정체불명의 수룡!
조회수 457,995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조회수가 45만을 돌파했습니다.”
“엄청나군요.”
최종환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영상을 관람했다.
거기엔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하늘, 구름과 맞닿은 산지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들.
나무, 꽃, 풀들이 아름답게 만개한 그곳엔 맑고 거대한 호수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촤악, 촤악ㅡ!
그리고 그 호수엔 수석 비서관이 말한 대로, 은빛의 살결을 지닌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길게 빼며 헤엄치고 있었다.
“용!!!”
최종환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