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66.컨츄리 메이커(2)
“찾았다! 만년 설삼을 찾았다!”
리한봉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길목인 백사봉의 정상에서 신이 점지해주신 영약을 찾아냈다.
“한봉아, 축아한다이.”
리한봉의 뒤를 졸졸 따라온 김누리가 활짝 핀 얼굴로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다.
“고맙다.”
리한봉은 [지휘관의 갑주]를 걸친 채, 등을 돌려 김누리를 바라보았다.
김누리 또한 잘 때를 제외하곤, 활동할 때 늘 [성스러운 지팡이]와 [방어력이 매우 높은 야한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일반적인 의복보다 내구도도 높고, 또 특별한 이능력이 새겨진 아티팩트였기 때문이었다.
“이걸 먹으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야?”
김누리의 물음에 리한봉은 흙이 묻은 만년설삼을 가지고 온 목갑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원한다면 너도 반쪽 떼어 줄게.”
“에이, 난 싫다. 너나 많이 먹으라니~!”
청진수용소가 개방되면서, 서북 방향으로 진출한 마도 공화국은 북한 몰래 백두정간에 퍼진 뛰어난 효능의 영약들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국이 안정된 후, 사람들은 제각기 무기를 들고 스스로 산으로 둘러싸인 무인지경을 헤쳐나가며 열심히 개척을 시작했다.
개중엔, 리한봉처럼 이렇게 영약도 발견하고 마력으로 변이된 몬스터를 잡기도 했다.
“배선군 아저씨가 이번에 신민들을 이끌고 ‘가평추마묘’를 사냥했다 하던데.”
김누리는 리한봉과 함께 손을 잡고 본진으로 돌아오면서, 공화국 내에서 일어났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모두 전해줬다.
“그래? 가평추마묘면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이상한 요괴 아닌가?”
“응. 그거 잡아서 코인도 얻고, 마정석도 얻었다더라.”
“마정석······.”
다른 공화국 신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리한봉은 혼자서 솔플(솔로 플레이)해서 괴수들을 잡았고, 다른 신민들은 각료들이 정해준 조에 맞춰서 단체 사냥을 했다.
개중에 가평추마묘는 두류산이나 희사봉에 주로 출몰하는 괴수였다.
게다가 괴수를 잡으면 마정석이란 아이템도 얻을 수 있었다.
“마정석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신의 계시가 내려왔는데 정확히는 어떤 건지는 모르겠네······.”
리한봉은 이준혁으로부터, 괴수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채취해서 열심히 모아두라고 전했다.
마정석은 이준혁이 끌려갔던 데모스 행성에서 각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광받던 강력한 에너지원이었다.
인간을 비롯한 데모스의 모든 존재들은 마정석을 흡수하거나 활용해 마도공학을 극한으로 발전시켰다.
그 어떤 에너지보다 압도적인 효율과 출력을 자랑하는 마정석. 그 크기와 에너지 성질에 따라 효율이 천차만별이었지만, 하급 마정석만 해도 소규모 원자력 에너지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일단 신께서 점지해준 일이니 따라보자.”
김누리는 리한봉의 손을 잡고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남들 몰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며 부업으로 사냥과 채집을 열심히 했다.
북한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에 위치한 함경북도다 보니, 이곳은 인간들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자연산맥으로 가득했다.
거의 새로 길을 만들어야 할 만큼 험난했으나.
“하압ㅡ!”
촤악ㅡ!
콰과과과ㅡ!
리한봉이 [핏빛 심판의 검]을 들고 휘두르면, 마나 블레이드가 쏘아져 나가며 빽빽한 수림으로 막혔던 수림의 장막이 훤하게 넓혀졌다.
“우와, 대단하다.”
그러면 김누리는 검을 휘두르는 리한봉의 뒤에서, 양손을 마주 잡으며 감탄한 소리를 냈다.
“그동안 신체 능력이 많이 오르면서, 공격 기술도 더 강해진 거 같아.”
리한봉의 말대로, 그는 청진 수감소로 침입할 때에 비해 말도 안 되게 강력해져 버렸다.
수십 대를 오고 가던 스텟이 지금은 수백 대를 오르내렸다.
과거엔 뭣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각성해서 그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전용스킬
-중급 불꽃 마나 회로
-다크-브라이트 트레이닝
-검성의 중급 기본 검법
이준혁이 배후성 ‘불의 심판자’를 가장해, 리한봉에게 초월적인 힘과 스킬을 전수해줌으로써, 리한봉은 정말 초인 중에 초인이 됐다.
‘처음엔 이런 현실이 정말 어처구니없고, 많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괜찮아······.’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산림으로 둘러싸인 무인지경을 헤쳐나가며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괴수들을 무찌르고 더 강해진다.
그저 상상 속에서나 해봤을 법한 이상이, 이곳엔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식량 문제도 모조리 해결되었으니까······.’
본래 북한은 가난한 나라였다. 하루 세끼 먹는 게 죄가 될 정도로. 주식도 쌀밥이 아닌, 강냉밥이나 아니면 산에 지천으로 널린 쑥이나 나물들을 캐 먹었다.
소나 돼지고기라든지, 아니면 다른 여러 나라의 특별한 요리라든지······.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자들은 김정은을 위시한 조선노동당 간부들뿐······.’
일반 인민들은 그저 노동당에서 배급해주는 쓰레기 같은 음식들만 얻어먹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배급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북한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네들끼리 ‘장마당’이란 시장을 열어서 물물교환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자유로운 물물 거래를 막은 순간부터, 북한은 잘못된 시작을 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식량 문제뿐 아니라 북한 인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에 반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수용소로 끌고 와 고문해서 죽여버렸으니까.’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는커녕, 김씨 일가의 독재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억지 사설을 강요하고, 인민들의 자유와 의견토론을 강제로 억압하고 탄압했다.
그렇게 해놓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인민들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정말 더럽고 비열한 행태였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함경도 지역을 모조리 탈환하고, 신민들의 힘을 합심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이 처참한 북한의 실상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리한봉은 김누리의 손을 잡고 마도공화국의 본진인 ‘마성’으로 돌아 왔다.
마성은 본디 ‘청진 정치범 수용소’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이 모조리 자유를 되찾았고, 더 큰 힘을 얻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군!”
“칠산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농사는 잘 되고 계세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서, 잘 되고 안 되고란 말이 의미가 없어요.”
“잘 되고 있다는 뜻이군요.”
리한봉은 마성으로 돌아가기 전, 마성 주변에 개척한 논밭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논밭을 총책임지고 있는 농산부 장관 곽칠산.
그의 본가는 과거 조선시대 때부터 함경도에서 만석꾼이라 불리며, 많은 소작농을 거느렸던 농사꾼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그의 할아버지가 북한에 재산을 모조리 넘기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북한은 땡전 한 푼 보상 없이, 곽칠산네 땅과 재산을 몰수했고, 그 이후로 곽칠산네 가족들을 무참히 수탈했다.
남들과 똑같이 노동당의 노예로 전락하라는 게, 김일성의 요구였다.
-정녕 모두가 평등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겠소. 하지만 김일성 당신과 노동당 수뇌부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면 반대하겠소.
그렇게 소신 발언을 했던 곽칠산의 할아버지는 결국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결국 그 자식들과 손자인 곽칠산까지 북한 정부에 반동분자로 찍혀 그동안 아무런 땅뙈기도 없이 노예 같은 삶을 보냈다.
하지만.
-마도 공화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이 곽가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겠소.
곽칠산은 선조 대부터 이어져 온 만석꾼의 피를 강조하며 각료들 중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농림부 장관 자리를 자처했다.
‘그렇게 해서 곽칠산이 곡물과 과일 등을 체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지.’
리한봉 또한 곽칠산에게 농업 관련 일을 전임한 후, 정말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에선 역시 전문가를 써야 맞는 거라고 느낀 사례이기도 했다.
“곽 아저씨. 코인으로 산 대장간에서 농기구는 잘 만들어지고 있죠?”
“네, 여사님.”
“아이,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김누리의 질문에 곽칠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존대를 했다. 리한봉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마도 공화국의 신민들은 김누리를 여왕으로 생각하고 예우를 갖췄다.
“신의 배려 덕분에 코인으로 대장간도 짓고, 또 기술자들이 제련과 관련된 심성 모형도 전이 받아서 잘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참 다행이네요.”
김누리의 질문처럼, 현재 신민들이 획득한 코인은, 자체적인 내력 상승 외에도 국가의 기반 산업을 건설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리한봉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신민들에게 코인으로 세금을 거둬서 코인상점을 활용해 마성 내에 여러 가지 시설들을 만들었다.
가령, 아까 전에 김누리가 말한 대장간도 있었고, 또 신민들이 수련할 수련장이나 식당 등도 모두 코인으로 건설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술 습득에 필요한 시간과 경험도 모두 심성모형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정말 쉽고 편하네.’
리한봉은 한국인답게 ‘빨리, 빨리’의 습성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발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준혁이 마련한 안배는 그런 리한봉의 마음을 쏙 들게 했다.
‘앞으로 코인을 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청진수용소에서 갇혀 있던 인민들만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력이 지금보다 더 확장되면 더 많은 신민들이 각성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금으로 걷히는 코인도 더 늘어날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도 공화국을 지금보다 더 발전시킬 수 있어······.’
북한을 온전히 흡수하게 된다면, 그때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다른 국가에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만큼의 기술과 세력을 구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가 중요하지.’
리한봉은 마성 주변에 펼쳐진 논밭들을 지나쳐,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에는 각각 경비병들과 파수꾼들이 번을 나눠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경계를 선 병사들은 세금으로 거둔 코인을 급료로 받았다.
코인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세금을 더 내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적게 버는 사람은 거의 안 내고, 많이 버는 사람이 가장 많이 냈다.
그래서 공화국 내에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사람은 리한봉이었다.
“식당으로 바로 갈까?”
“응. 오늘 배선군 아저씨가 잡은 ‘가평추마묘’ 고기로 바비큐 파티를 한데! 우리도 같이 가서 먹자.”
“바베큐 파티라······.”
신민들은 각성을 하면서 이준혁으로부터 남한의 현대 지식까지 모두 공유받았기 때문에 바비큐 파티가 무엇인지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고기를 통째로 꼬챙이에 끼워서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불에서 올라오는 연기로 훈제해서 먹는 바비큐······.’
리한봉은 벌써 입가에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괴수 고기는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좋은 영양분이기도 했지만, 맛도 일반 지구에서 나는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르게 맛있었다.
“스읍, 배고프다 누리야. 빨리 가서 먹자.”
“그래.”
그렇게 김누리가 이끄는 대로 식당으로 이동하던 리한봉.
“각하. 말씀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그런 리한봉의 앞을 갑작스럽게 막아선 이가 있었다.
“감찰부 장관께서 어인 일로?”
“저번에 말씀하셨던 사안에 대해서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사안이오?”
“회령에 있던 각하의 부모님을 온전히 모셔오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