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63.눈에는 눈, 이에는 이(3)
“오빠가 마법사라고······?”
이혜은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오빠가 마법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멘붕’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원래 다른 사람들보다 제일 먼저 낌새를 눈치챘다.
하지만, 오빠가 부정을 했고 자신도 굳이 집요하게 그 문제를 파고들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확실히 그동안 이상하긴 했어······.’
배를 타고 넘어오고, 무수히 많은 금괴 다발을 보여줬을 때부터.
이혜은은 자신의 오빠가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너무 어릴 때봐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과거의 오빠는 다른 오빠들처럼 평범했다.
하지만, 15년 만에 돌아온 오빠는 달랐다.
성격과 장난스러움은 그때와 비슷하더라도, 내면에 감춰진 본질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마치, 겉 껍데기만 예전과 같고, 속은 완전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버린 것처럼.
‘아빠를 치료하고, 나를 성형시켜준 게 정말 오빠 덕분인가······?’
이혜은은 자신의 오빠가 마탑을 창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냥 취업이 잘 된 줄 알고 좋아했다.
나중에 대동그룹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며 흡수했다고 했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한데, 그게 다 오빠의 설계한 일이었다니······?
‘우리 가족을 바꾸고, 마법 아이템과 신약을 만든 사람이 정말 우리 오빠인가······?’
이혜은은 문득 매일 보던 오빠가 요즘은 통 안 보여서 답답했다. 하필 이런 중요한 때에 사라지다니?
정작 붙잡고 물어볼 사람은 오빠밖에 없는데······.
‘아차, 아리 언니가 있었지.’
이혜은은 평소 이준혁과 가까운 관계로 같이 다니는 아리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서로 비즈니스 관계라고 둘러대지만, 이혜은이 보기에 두 사람은 백퍼센트 사귀는 사이였다.
‘그래, 아리 언니한테 한번 전화를 해보자.’
이혜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
“장천수가 내일 러시아 마피아 갱단과 주요 업무 협약으로 서해에 있는 풍도(風島)로 출항할 예정이랍니다.”
“그래?”
첸니르는 팔성회가 운영하던 블랙시네마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팝콘을 뜯으며 관람하고 있었다.
“그때 너도 참석해라. 물론 나랑 가룬바도 데리고 가고.”
“예, 형님.”
첸니르는 자신에게 보고하러 온 팔성파 두목 이승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화에 집중했다.
그는 최신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역대 출시됐던 한·중·일·미 등등 전세계에서 나온 조폭 영화들까지 몰아보는 중이었다.
이곳엔 이지연도 없었기 때문에, 2배속으로 돌려 보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첸니르는 마음 편히 영화관 중앙에 홀로 앉아 앞 좌석에 다리를 턱 걸친 채 여유로운 자세로 영화를 관람했다.
“······.”
이승재는 그런 첸니르의 뒤통수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어이, 이승재.”
“예, 형님.”
갑작스러운 첸니르의 부름에, 뒤돌아서서 돌아가려던 이승재가 몸을 삐걱거리며 다시 원상 복구했다.
첸니르는 아까 전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빈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콜라가 부족하다. 리필 좀 해와라.”
“···예.”
탁.
이승재는 첸니르가 건네는 콜라를 조심스럽게 받아들곤, 영화관 로비로 향했다.
쾅!
그리고 영화관의 문이 닫히자마자.
“씨바알······.”
이승재는 욕설부터 내뱉었다.
그의 얼굴은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 얼굴 곳곳이 푸르댕댕했다. 터진 볼살은 바늘로 흉하게 꼬맸고, 고막은 터져서 수술까지 해야 했다.
‘장천수 이 개새끼······.’
왜 갑자기 마탑 그룹을 건드리자고 해서, 자신을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만든단 말인가?
그냥 조용히 자신을 부산에서 사업이나 하게 내버려 뒀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이승재는, 웬 귀두컷 머리가 자신에게 심은 벌레 때문에 밤에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거의 첸니르·가룬바의 하수인쯤 되어버린 자신의 인생도 괴로웠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정말 자신의 육신의 통제권을 그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대부가 되려는 욕심만 아니었어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대부(God Father).
조폭계에선 가장 큰 두목을 일컫는 마피아계의 용어였다.
과거 대부라는 영화가 유행할 때 이승재도 그 영화를 보고 조폭을 꿈꿨다.
학창시절 때부터 학교 통은 물론, 전국구 통이었던 이승재는 조폭계에 입문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20대 후반에 이미 팔성회의 중간보스를 차지했고, 30대 중후반이 되어서는 팔성회의 정점까지 올라갔다.
비록 장천수 때문에 전국구 보스까진 올라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산 내에서는 늘 최고라고 자부했다.
한데, 그런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웬 듣도보도 못한 샐러리맨 같이 생긴 놈들에게 쪽도 못 써보고 조직을 통째로 빼앗기다니?
게다가······.
‘내가 씨발 이 나이 처먹고 콜라 심부름까지 해야 돼???’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까라면 까는 수밖에.
“콜라 리필.”
“네, 사장님.”
오늘 첸니르가 영화관을 통으로 빌리는 바람에 알바는 여유작작하게 월급 루팡짓을 하고 있었다.
한데, 영화실 안에 홀로 들어갔던 사장이 찌푸려진 얼굴로 빈 콜라컵을 들고 오자, 알바는 대충 눈치를 까고 콜라를 리필해줬다.
‘영화실을 홀로 독차지한 저 사람이 흑천회의 고위 간부인 건가? 포스가 후덜덜 하던데······. 부산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팔성파 두목이 쩔쩔매는 걸 보면, 흠······.’
영화실에서 일하는 알바도 이곳이 팔성파가 운영하는 사업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바를 시작한 지도 벌써 3달째.
어느날 알바를 하다 보니, 조폭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며 수금해가는 걸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점장이 쉬쉬하며 몰래 알려준 것이다.
-이곳 블랙 시네마는 흑천회 소속의 회사인 k블랙의 사업체다. 흑천회 지부인 팔성파가 관리하고 있지. 팔성파 두목이 누군지는 뉴스 많이 봐서 알고 있지?
결국 알바가 리필해준 콜라를 받아든 이승재가, 이를 악물며 터덜터덜 걸어 영화실 안으로 사라졌다.
알바는 그런 이승재의 뒷모습을 멍하니, 그리고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
“엄마~! 삼촌들한텐 언제가?”
“삼촌들 요즘 바쁘데.”
아리는 심심해하는 실프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에 함께 왔다. 아직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었다.
보통 이 시간 때 실프 또래들은 유치원을 가거나 초등학교에 가 있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항상 실프와 놀아주는 사람은 아리뿐이었다.
‘실프가 많이 외로워하는 거 같아서 큰일이네······.’
덥석 자신이 키우겠다고 데리고 오긴 했지만, 육아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온종일 신경 써줘도 사랑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항상 옆에 있어 주려고 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는데도 그게 쉽지가 않았다.
‘사업은 이제 슬슬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나······?’
두 개 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오산이었다.
사람은 역시 하나의 일에 집중할 때 성과가 가장 잘 나오는 법이었다.
육아도 그러했다.
아리는 결국 주아영에게 대부분의 사업 운영을 양도고, 실프를 키우는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바쁠 때, 준혁 씨는 도대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람······.’
아리는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덩그러니 새끼만 안겨놓고 자신은 북한 일을 해결한답시고, 홀라당 가버린 후 감감무소식이라니?
‘그래도 텔레파시 한 번 정도는 보내줄 수 있잖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남자가 바깥일 하다 보면, 바쁠 수도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얘도 있는데······.’
아리는 미끄럼틀 위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드는 실프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마주 웃어줬다.
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과연 실프는 누구누구의 자식일까?’
아리는 실프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준혁은 또 몰랐다.
사실 이 모든 원흉은 이준혁 때문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이준혁도 반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아리였다.
‘이상한 반지를 줘 가지곤······.’
선물해준 반지에서 아이가 생겨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연히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준혁은 알고 있었을까? 그것도 정말 궁금했다.
뚜우우우ㅡ!
그때 아리의 전화기로 수신음이 들려왔다.
“응? 누구지?”
아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번호를 들여다보다가, 아차 했다.
“혜은 씨가 갑자기 왜?”
전화를 건 사람은 이준혁의 동생 이혜은이었다.
사실 이혜은과는 별다른 교류가 없던 아리였다. 금괴 팔 때 한 번 보고, 이준혁이 수능 칠 때 한번 본 게 마지막이었다.
말 그대로 평소 친근하게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는 절대 아니란 소리였다.
아리는 3초 정도 고민하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리 언니. 저 이혜은이에요.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혜은 씨는요?”
-저도 뭐 그럭저럭······.
“혜은 씨 유튜브에서 많이 봤어요. 백설이도 아주 귀엽던데요. 구독도 누르고 추천도 매번 누르고 있습니다.”
-호호호, 고마워요. 언니.
이혜은은 아리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애청자라고 하자 정말 기뻐하며 화통하게 웃어 재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잠깐 이야기가 딴 데로 샜었네요. 사실은 말이죠······.
아리는 이혜은이 자신과 만나자는 말에, 약간 뜨끔한 마음으로 알겠다고 했다.
뭐 때문에 만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고, 그저 오빠도 없는데 서로 만나서 가볍게 뒷담화나 하자는 얘기였다.
아리도 기꺼이 ‘콜’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혜은의 정확한 속내를 몰라서 마냥 가볍게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혜은 씨가 혹시 실프에 대해 얘기를 들은 건 아닐까······?’
아리는 문득 얼굴이 화끈 달아오는 것을 느끼며 손 부채질을 했다. 아직 이준혁과 사귀거나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그런 얘기가 먼저 나오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프는 절대 숨기고 싶거나 창피한 아이가 아니야. 오히려 남들 앞에 더 자랑하고 싶은 아이인 걸······.’
아리는 저 멀리서 해맑게 뛰놀고 있는 실프를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호적도 뭣도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서류상 불분명한 아이.
하지만, 아리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이준혁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상, 이미 이상한 세계에 반쯤은 발을 담가 놓은 걸지도 몰랐다.
“엄마ㅡㅡㅡ!”
“실프! 잘 놀았어?”
“응!”
아리는 달려와서 폴짝 뛰어 안기는 실프를 품속에 안으며 볼을 부비적부비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