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121화 (121/272)

# 121

61.K-Black

“회장님께서 요새 헛발질을 좀 하시네······.”

후······.

20대인지 30대인지 모를 미모의 여성.

그녀가 어두운 녹색 바탕에 금색 꽃무늬가 수놓아진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입에 문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그의 뒤에는 약간 어두운 회색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40대 초중반의 올빽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

쌍커풀 짙은 눈에 조폭다운 사나운 눈매가 그의 사나운 성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저번에도 말이지, 누구 납치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준혁? 걔도 그렇고 이번에 이 여자도 그렇고. 도대체 요즘 하는 일마다 왜 이러지?”

“······.”

상관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 그녀는 K-Black, 즉 흑천회 그룹의 엔터 계열사인 블랙엔터의 사장 진서윤이었다.

진서윤의 말에도, 뒤에 선 부하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녀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로얄 블루색 밍크 자켓을 입은 채 약간 어두침침한 사무실에서 홀로 중얼거렸다.

“아무튼 말이지, 나한테 불똥이나 안 튀면 좋겠다구. 우리 애덜 관리하는 것도 벅차 죽겠구만······.”

“최근 들어 마탑 그룹이 대동 그룹을 완전히 흡수·합병하면서 엔터를 대대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

뒤에 서 있던 부하, 김일곤은 일 얘기를 꺼내자 그때부터 다시 화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마탑엔터에서 밀어주는 여자 연예인들 중, 마탑그룹 이 실장의 동생이 껴 있단 소문이 있습니다.”

“이 실장의 동생? 이준혁의 동생을 말하는 건가?”

“예. 이름은 이혜은이고, 예명은 혜실버라고······.”

“혜실, 뭐? 푸하하핫!”

진서윤은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고 깔깔거리다가, 억지로 담배를 탁자 위의 재떨이에다 비벼 껐다.

“오빠 하나 디게 잘 만났나 보네. 그룹 전체가 그 애 하나 밀어주는 거 보면······.”

“아마 마탑 그룹과 대통령을 뒤에서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자가 바로 그자인 거 같습니다.”

김일곤의 말에 진서윤이 고개를 치켜들며 눈을 빛냈다.

“그래, 그 녀석 신상에 대해선 다른 정보는 뭐 없지?”

“예. 15년 전, 갑자기 실종됐다 복귀한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그 15년이 문제야. 15년 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 그게 문제지. 혹시 진짜 게임 속에서나 나오는 판타지 세상 같은 데 갔다 돌아온 거 아니야?”

“게임··· 말씀이십니까?”

“그래. 요즘 그 녀석보고 마법사다, 무슨무슨 능력자다 말이 많잖아. 마탑 그룹에서 생산해내는 제품들도 모두 녀석이 설계한 물건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냥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 마법은 무슨······.

김일곤은 그렇게 생각하며 진서윤의 눈치를 봤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마탑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끼익.

사장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진 사장님.”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그룹 차기 회장되실 장 이사님 아니신가?”

“하하, 누님 농담도······.”

“농담 아냐. 회장님이 널 제일 아끼신다는 소문이 그룹 내에 파다해. 너 나중에 잘 되면 나 모른 척하지 마라.”

“누님, 농담은 이따 하시구 지금 좀 급합니다.”

“뭔데 그래? 회장님이 오래?”

“네. 아마 누님 외에도 사장단들은 전원 소집인 거 같습니다.”

흑천회 회장 장천수의 셋째아들 장형락은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진서윤의 가슴골을 슬쩍 쳐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서윤은 그런 장형락이 귀엽다는 듯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회장님의 소환인데 당연히 가야지. 곧 뒤따라 갈 테니까 먼저 내려가 있어.”

“네, 누님.”

요즘 애들 답지않게, 스포츠머리로 깔끔하게 친 FM스타일의 장형락이 사장실을 나가자마자.

“저 새끼 진짜 재수 없어.”

“······.”

“깐깐한 척하면서, 능글거리는 게 진짜 밥맛이라니까.”

가느다랗게 미소짓던 진서윤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며,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아, 피곤하네. 또 꼰대한테 한 소리 들을 걸 생각하니.”

“먼저 내려가 있을까요?”

“그래.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나 옷 갈아입고 있을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예, 사장님.”

김일곤이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인사하고 나갔다. 진서윤도 흰색 셔츠에 검정색 정장 스커트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한쪽에 널브러진 살색 스타킹을 주워들었다.

“으휴, 정말~!”

평소 장천수가 스타킹 성애자였기 때문에 호출했을 시, 스타킹을 신고 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다행히, 사장 대우를 해준답시고 몸에 직접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중 되면 또 몰랐다.

“변태 같은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깔끔한 오피스룩으로 갈아 입은 진서윤이 사장실을 나와, 블랙 엔터의 긴 복도를 걸었다.

복도 양옆엔 각종 사무실과 함께, 노래나 춤 연습을 하는 연습실도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평소 바지 사장으로 이름만 걸쳐놓은 반달(반건달)이 아닌, 직접 소속사 연예인둘의 노래와 연기 등도 꼼꼼히 신경 쓰는 사장님이었다.

끼익.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조금만 더······.”

“여~ 유루유리~~~ 하지마 마시떼요!”

“헉! 사장님!”

진서윤이 연습실 문을 벌컥 열어 재끼자,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대본을 잡고 있던 여자 연습생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어디 외출하세요?”

“응. 잠깐 나갔다 오려구. 근데, 무슨 대본 연습하는 거야?”

“아하하······. 저 그게······.”

유리라 불린 여자는 170정도 돼 보이는 큰 키에, 하얀 피부와 귀여운 얼굴이 매력적인 소녀였다.

한눈에 봐도, 아이돌 센터쯤은 하나 꿰찰 것 같은 비쥬얼이었다. 실제로도 블랙 엔터가 내세우는 ‘핑크핑크’ 걸그룹의 메인 센터이기도 했다.

“음, 어디 보자······. 지순이의 열혈 성공기? 음······.”

진서윤은 바쁜 와중에도 유리의 대본을 검토해주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진서윤의 얼굴을 넋이 나간 듯이 멍하게 쳐다보는 유리. 그녀는 속으로, ‘사장님이 연예인을 했어야 했는데······.’라며 눈을 반짝였다.

연예인 뺨싸다구 후리는 외모로, 평소 소속사 여자 연예인들을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그녀의 외모는 이 업계에서 매우 유명했다.

-연예인보다 더 예쁜 사장님!

-블랙엔터 들어간 남자 연습생 曰 “사장님 얼굴 보고 싶어서 들어갔어요”

-블랙엔터 아이돌 핑크핑크 소속의 모 멤머 曰 “가끔 사장님이소속사 연예인들 서열정리 하고 싶을 때나 기죽이고 싶을 때 같이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자해요. 같이 사진 같이 찍으면 옆에 있는 사람 오징어 되는 거 잘 아시거든요~”

평소 블랙엔터 소속 연예인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사장님을 많이 팔아먹으며 썰팔이를 많이 했다.

요즘 소속사 사장 팔아먹는 게 예능에서 잘 먹히는 요소라, 진서윤도 소속 연예인들이 뭐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더 장려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K-Black 소속 간부로써, 본직은 천생 조폭이었다. 비록 그룹의 사정 때문에 소속사 사장직을 겸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부업일 뿐이었다.

지금도 젊었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부터 엘리트 출신으로 그룹 내에 요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해온 진서윤이었다.

인맥빨이 아닌, 오직 비즈니스적 실력만으로 그리고 평소 남다른 운동감각과 싸움 실력으로 당당히 1인자를 다투는 중간 보스들 중 하나를 꿰찬 것이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정신없이 유리의 대본을 읽던 진서윤이 퍼뜩 생각나는 게 있던지, 정장 주머니에서 선물용 박스 하나를 꺼냈다.

“자.”

그리곤, 그 선물 박스를 유리에게 건넸다.

“이게 모예요. 사장님?”

“일단 한 번 열어봐.”

딸칵!

유리가 선물 박스를 열자, 그 안엔 아기자기한 큐빅이 박힌 은색의 브레이슬릿이 담겨 있었다.

“우와, 사장님. 이거 저 주시는 거에요?”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예뻐요.”

“그거 어디 메이커인지 아니?”

“어, 음······.”

유리는 잠시 선물 뚜껑을 도로 닫고, 박스의 윗 부분과 밑 부분을 두루두루 살폈다.

“M?”

구띠, 헤르메스, 타파니, 꽈르띠에 등등······.

평소 억대를 호가하는 최고 브랜드가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보는 사장님이었기에 유리는 당연히 이것도 비싼 거로 생각했다.

“M이 무슨 브랜드인 줄 알겠어?”

“아니요. 저는 이런 브랜드 잘 몰라서······.”

“최근 전 세계에서 핫한 M브랜드를 몰라???”

“···네. 죄송해요.”

“이거 안 되겠네. 연예인하려면 실력뿐만 아니라 유행도 민감해야 하는데.”

“······.”

몇 번 장난식으로 유리를 꾸짖은 진서윤이 다시 활짝 웃으며 선물박스에 담긴 브레이슬릿을 유리의 손목에 채워줬다.

“이거 마탑에서 만든 거야.”

“헉! 마탑!!!”

마탑이라는 말에 그제야 유리는 입을 크게 벌리며 놀라워했다. 요즘 세상에 마탑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이 팔찌가 마탑에서 만든 거라면 당연히······.

“혹시 이거 마법 팔찌인가요?”

“후훗, 당연하지. 마탑에서 아무 효능도 없는 팔찌를 비싼 값에 팔겠어?”

“혹시 무슨 마법이 걸린 팔찌인가요?”

“이름이 되게 유치해. 한번 들어보면 무슨 마법인지 바로 알걸?”

진서윤은 이 팔찌의 이름이 ‘기억력 쏙쏙 팔찌’라고 조용히 언급해줬다.

“그럼 이것만 있으면 대본 외우는 것도 문제없겠네요?”

“암기력은 문제없지. 한데······.”

빵빵ㅡ!

진서윤이 유리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회사 창밖에서 크락션 울리는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아놔, 저 씨발 새끼 진짜 참을성 드럽게 없네······.”

아마 자신의 수하인 김일곤이 아니라, 회장 아들인 장형락이 그단새를 참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거 같았다.

“유리야. 대본은 이따 같이 봐줄게. 저녁에 나랑 같이 리딩 한 번 하자.”

“사장님 퇴근 안 하세요?”

“나 집에 가도 별로 할 일도 없어. 이럴 때 소속사 연예인 챙겨야지. 나중에 우리 유리 뜨면 다른 소속사 가거나 나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에이, 사장님도 참. 저 연예인 그만둘 때까지 여기 있겠다고 했잖아요. 오히려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그래, 그래~”

빵빵ㅡㅡㅡㅡ!

“아놔, 저 씨발 새끼가 진짜!”

“사장님. 얼른 가보세요. 전 괜찮아요.”

“그래, 미안하다 유리야.”

진서윤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져온 백을 어깨에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에쿠스에서 문이 열리며, 담배를 입에 물고 팔을 차문에 걸친 채 껄렁거리던 사내가 그녀를 향해 쏘아붙였다.

“누님~ 아까 빨리 가셔야 한다고 제가 몇 번 말씀드렸습니까?”

“옷 갈아입고, 화장하면 원래 이 정도 걸려. 넌 여자들 어디 갈 때 준비시간 필요한 것도 모르니?”

“알죠, 알죠. 다 알죠. 그런데 회장님이 부를 땐 화장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바로바로 달려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쾅!

장형락의 말에 진서윤은 아무런 대답없이 차 문을 거세게 닫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장형락이 미끌거리는 눈빛으로, 정장 스커트 아래에 드러난 진서윤의 맵시 있는 다리를 훑었다.

“누님 요새 스쿼트 하세요? 요즘 갈수록 다리가 튼······.”

“바쁜데, 본론이나 이야기하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중간에 자신의 말이 끊긴 장형락은 잠시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꿈틀거렸으나 곧바로 포커페이스를 되찾았다.

“그거야 가 봐야 알죠.”

“너도 모른다 이거네?”

“······.”

진서윤의 비아냥거림에 장형락이 이번엔 표정관리도 못하고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진서윤은 자신의 한마디에 오락가락하는 녀석의 행태가 웃겨서 계속해서 피식피식거렸다.

사실 아까 전에 ‘차기 회장님~ 회장님~’ 하며 띄어준 건 순전히 다 말장난이었다. 지금 장형락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위험하고 험난한 조폭 그룹의 보스를 꿰찰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뺑뺑이 돌다가, 아버지가 재껴지면 같이 사라질 녀석······.’

진서윤은 창문을 열어 팔걸이를 한 채, 창밖을 내다보다가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아마 이준혁 때문이겠지······.’

몇 번 마탑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마탑의 핵심 인물인 이준혁의 주변 인물들의 납치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준혁이 무슨 날고기는 재주가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흑천회의 견제를 가볍게 쳐낸 걸 보면 정말 보통 내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한 번 보고 싶긴 하네. 어떻게 생겼을지······.’

진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싱긋,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분 좋은 웃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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