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113화 (113/272)

# 113

57.실프(Sylph)(2)

“흐흠~!”

“넌 이름이 뭐니?”

“실프(Sylph)!”

아리는 아버지를 위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던 중, 위기에 처했다. 그녀를 노리고 접근한 조폭들에게 납치될 뻔한 것이다.

정말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아버지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원래 대통령의 자녀들에겐 기본적으로 경호원이 상시 따라붙는다. 처음엔 아리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24시 밀착 경호를 받았으나 곧 그만뒀다.

그녀를 경호하던 남자 경호원이 그만 아리에게 빠져서, 그녀에게 집착 증세를 보인 것이다.

아리는 그것이 못내 당황스러워 아버지에게 말했고, 아버지는 그럼 여자 경호원이라고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아리가 거절했다.

-그런데 세금을 낭비하고 싶진 않아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2년을 지내왔다. 동생인 진우도 아리처럼 예민한 성격이라 곧 전담 경호원을 해지했다.

두 남매는 그렇게 일반 사람처럼 행동하며, 대통령 자녀라는 걸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게 지내도 별다른 일이 없었고,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시기 전까지 25년을 넘게 혼자서 잘 지내왔다. 그래서 아리는 경호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데, 이준혁과 엮이면서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위기가 터질 때가 되었을 때, 때마침 이준혁과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금괴를 매매하면서 비즈니스적으로 신경 써준 게 그런 식으로 인연이 됐다.

그리고, 우연히 유진광과 엮이게 되었고, 이준혁과 같이 블랙마켓의 경매에 참가하고, 사업을 같이 진행하고, 아버지도 이준혁이 만든 마탑 그룹의 도움을 받아 지지율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만약 아리가 그 시점에서 우연히 이준혁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미 대동그룹 회장 유필준에게 납치되어 그의 노리개가 되어 어두컴컴한 밀실에 갇혀 있다가, 비참하게 죽었을지도 몰랐다.

“음냠냠~!”

“······.”

아리는 자신과 함께 나란히 벤치 위에 앉은 하얀 원피스의 귀여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얼굴도 어린시절의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조폭들은 사지가 잘린 채, 이 실프라는 소녀가 바람 마법으로 어디론가 멀리 날려버린 상태였다.

소녀는 자신의 얼굴보다 더 큰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 먹으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마치 말괄량이었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소녀의 등장에 아리는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꼬맹이가 날 구해주다니······.’

아리는 저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준혁이 준 핑크 다이아 반지에서 금색 링만 남기고 다이아몬드가 사라졌다.

‘아까 납치당할 뻔하던 도중 깨져버린 건가······?’

아까 전, 우연히 본 분홍색 기류가 혹시 이 일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리는 고개를 홱 돌려 열심히 막대사탕을 먹고 있는 자신을 쏙 빼닮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실프. 너 혹시 반지에 잠들어 있었던 거니?”

“반지?”

“그래. 혹시 이 반지 알아?”

아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약지에 걸린 금색의 링.

원래 그 위에 얹어있어야 할 핑크 다이아몬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실프는 그런 골드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응, 맞아!”

“뭐가?”

“나 여기서 태어났어!”

“······.”

태어나다니, 이게 대체······!

아리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멍해졌다. 아무래도 혼자서 짱구를 굴려 봐야 더 나올 건 없어 보였다.

‘일단 준혁 씨를 만나서 이 일에 대해 물어봐야겠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황상 이 실프라는 소녀는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에서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입으로도 ‘이곳에서 태어났다’라고 했으니까.

반지를 선물해준 사람도 바로 이준혁이었다. 온갖 비밀투성이인 남자.

하지만, 자신은 이제 그의 비밀에 한 발자국 다가간 상태였다. 이준혁은 이제 자신에게만큼은 본인의 힘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으로 떠나기 전, 자신에게 고위 마법까지 선보이고 갔으니 말 다 했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응······?”

아리는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다가,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곤 깜짝 놀라 외쳤다. 그러자 옆에서 막대사탕을 빨고 있던 실프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리는 그런 실프를 향해 금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미소지었다.

“아빠에게 가기로 했거든.”

“아빠아~?”

“응. 내 아빠야.”

“내 아빠.”

“아니야, 내 아빠야.”

“아빠 보고 싶어!”

“······!”

실프의 외침에 아리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실프의 아빠는 도대체 누구일까?

아리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 없이 반지에서 뜬금없이 태어난 자신을 닮은 소녀.

이준혁을 만나 물어보기 전까진, 이 소녀의 정체성을 알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였다.

“아빠 곧 올 거야, 실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응!”

헤헤헤.

실프는 아리의 쓰다듬음이 좋은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아리의 다리에 머리를 기댔다.

아리는 처음엔 당황스럽고 많이 혼란스러웠으나, 마치 이 실프라는 소녀가 자신의 딸처럼 느껴져서 뭔가 아련하고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나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햇빛에 의해 잉태한 게 아닌, 반지에서 갑자기 뿅 하고 부화해버렸다.

아마, 이 핑크 다이아를 만든 주인과 모종의 연관 관계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뿐이었다.

‘얘를 어떻게 하면 좋담······.’

어느새 자신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코, 잠이든 소녀 실프를 내려다보며 아리는 다시 걱정에 빠졌다.

이 소녀는 정말 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태어나서 아무런 신분 호적이 없었다.

그러니, 어디 고아원 같은 데다 맞길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맞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키워?’

아리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분명 태어나자마자 자신에게 ‘엄마’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 딸 같은 소녀에게 이미 목숨을 한 번 구원받았다. 목숨 빚을 진 것이다.

그래서 아리는 이 소녀가 절대 짐 덩어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련하고,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실프야, 너 나랑 같이 살래?”

“푸······.”

실프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아리의 허벅지에다 침을 지질 흘리며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음냠냠, 엄마······.”

“그래, 그래···.”

아리는 순간 당혹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흐뭇한 표정으로 바뀌며 실프의 귀밑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이렇게 귀엽고 작은, 자신을 닮은 여자아이. 언젠가 아리가 꿈꾸던 버킷리스트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그와 함께 생명의 소중한 결실을 맺는 것. 단란한 가족을 꾸리는 것. 그녀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꿈이었다.

지금은 사업과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없이 치이며 살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후후······.”

양복 차림의 말끔한 중년 신사가 청와대 관저에 마련된 접객실에 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아리는 근데 왜 이렇게 늦는 거지?”

그는 정오에 도착하기로 한 딸이 2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조급함을 느꼈다.

“원래 항상 덤벙대서 약속 시간보다 늦긴 했었지만, 오늘은 좀 이상한데······.”

아리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표인 최종환 대통령. 그는 오랜만에 자신을 보러 찾아오는 딸 때문에 기분이 많이 업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부인의 모습을 쏙 빼닮은 귀엽고 예쁜 자신의 딸. 아주 어린 시절엔 더 귀엽고, 앙증맞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예뻤다. 어딜 가든, 딸과 함께 가는 자리엔 기가 살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팔불출이 되어버릴 정도로.

평소엔 많이 과묵했지만, 딸 앞에선 무장해제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최종환은 별다른 경호원도 없이 혼자 다니는 딸이 늘 걱정되고,마음이 무거웠다.

세금이 아니라, 자비를 써서라도 딸을 위해 경호원을 붙이고 싶었으나 딸은 한사코 거절했다.

자기 회사 매장에 상시 경호원이 있으니, 밀착 경호까진 필요 없다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워낙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딸이다 보니 누군가가 주변에서 지켜보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다.

게다가.

‘2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으니······.’

경호원을 붙여놨더니, 하라는 경호는 안 하고 꽃이나 선물하고 몰래 도촬하고······.

결국 그놈은 흠씬 두들겨 패 준 후에, 아리에게 얼씬도 못 하게 만들어줬으나 아직 분이 풀린 건 아니었다.

대통령의 신분만 아니었어도, 정말 제대로 혼내줬을 텐데.

최종환은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다 식어버린 음식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딸이 도시락까지 싸온다고 해서, 특별한 음식 대신 간단한 땅콩 요리로 입가심만 하며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아빠!”

그때, 녹지원 옆편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공주~!”

최종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곧바로 아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근데.

“할아버지?”

“넌 누구니?”

웬 금발 소녀가 아리의 옆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며 ‘할아버지’라고 하고 있었다.

아리는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손가락만 빨고 있는 실프와 최종환을 번갈아 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제 아는 친구의 조카에요. 이름은 실프라고······.”

“되게 귀엽게 생겼구나······.”

최종환은 오랜만에 보는 딸도 반가웠지만, 딸의 옆에 있는 소녀에게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곤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리 온!”

“응!”

실프는 최종환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가서 안겼다.

“할아버지!”

“그래, 그래······. 요녀석······.”

최종환은 조심스럽게 실프를 안아 들곤, 섬세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실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건너편의 아리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꼭 네 어린시절을 쏙 빼닮았어······.”

“아하하, 아버지두 참······.”

아리는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온도가 약간 올라간 것을 느끼며 손 부채질을 했다.

아는 친구의 조카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실프는 자신의 어린 시절 외관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아리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일단 들어가자. 너도 아직 식사 전이지?”

“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좀 늦어버렸어요. 죄송해요.”

“아니다, 아니야. 혹시 얘 때문이라면 더더욱.”

최종환은 자신의 품에 안긴 실프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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