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55.인민들의 초인 각성(3)
”잘 하고 있군······.“
나는 200미터 상공에서 팔짱을 낀 채, 두 꼬맹이들을 내려다봤다. 입가엔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두 녀석들. 처음엔 어리버리 타더니, 지금은 서로 포지션을 잘 맞추며 적들을 썰어가고 있었다.
”초장부터 너무 강력한 힘을 쥐어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뭐, 주인공 보정으로 커버가 되려나?“
사실상 낙후된 소총화기로 수용소를 지키고 있는 간수들 따위. ’검성‘의 특성과 ’버퍼 힐러‘의 특성을 개화한 아이들에겐 한 끼 식사 거리도 안 됐다.
일단 총기가 한국 국군처럼 정상이라면 몰라도, 하물며 허울뿐인 녹슨 총기나 몽둥이 따위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도주로는 마법으로 다 막아놨고, 전파 송수신도 모두 다 차단해놨으니··· 이젠 살육의 시간만 남은 건가······.‘
처음엔 살인에 대해 우물쭈물하던 리한봉도, 점차 자신의 무기인 ’적혈검‘의 성향을 닮아가는지 공격이 무자비해졌다.
더 이상 살인 앞에서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냥 되는 대로 썰어버렸다. 어차피 죽어야 할 녀석들이다.
나는 리한봉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죽여야 할 놈들에게 코인을 심어뒀다.
물론 내가 만든 가상의 홀로그램이고, 한낱 숫자놀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효능만큼은 확실했다.
’시스템‘이라는 외형을 빌려서 북한 주민들을 각성시키는 셈이다.
’누리네 아버지도 마법사로 각성시켜놨으니, 알아서 잘 활약을 하겠지.‘
청진 수용소에 끌려온 북한 주민들 중에, 어디 사연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만은, 내가 제일 먼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리한봉과 김누리, 그리고 김누리의 부모들이었다.
물론, 월북 후 잠깐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예외였다.
’북한을 뒤엎는 시작은 이곳 청진 수용소에서······.‘
나는 나 혼자서 다 엎어버리자는 마인드에서, 북한 주민들의 손을 빌어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야 뭔가 혁명에 대한 당위성과 명분도 서고, 차후 국정 운영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당장 내 힘으로 북한 수뇌부를 쓸어버린다 해도, 남한에서 북한을 흡수하는 것도 문제야······.‘
일단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견제는 고사하고, 경제적으로도 한국이 북한을 떠안을 여력이 없었다.
’되도록이면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서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게 베스트지.‘
북한 주민들도 사람인 이상, 내부의 본질적인 면에서 스스로 잘살아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발전하고 싶은 마음,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마음. 비록 공산주의··· 아니, 김씨 삼부자의 독재하에서 아무런 배움도, 지원도 없이 살아왔지만 이젠 다르다.
내가 그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아예 북한 지역을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아주 색다른 국가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좋겠어······.‘
북한 주민의 손으로 반란에 성공하게 하기 위해 마력의 힘을 개방시켜 주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반란이 성공해버린다면? 그 이후 마력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처리해야 되나, 그런 문제도 남는다.
그 힘을 줬다 다시 뺏는 것도 이상하다. 이미 줬던 걸 뺏는다는 뜻은 내가 밸런스 조절을 못 했다고 시인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절대로 내가 부여한 힘을 도로 뺏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다만 그 힘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다시 회수하고 없애야 할 것이고.
’북한을 마도 공학의 성지··· 아니, 아예 마도 공화국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어떨까?‘
과거 이계에서도 그런 나라들이 있었다.
마법사들만 사는 나라인 길리라스 국이 있었고, 나도 마탑 주변으로 나만의 마법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니, 지구에서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수뇌부를 갈아버리고,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다면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을 하겠지.‘
나는 북한 주민들에게 수뇌부에 대항할 힘을 넘어, 아예 중국과 1대1로 맞다이 뜰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줄 심산이었다.
총알과 대포의 포탄이 통하지 않는 육신. 그것들을 모두 튕겨 내버리는 아이템.
그리고 아예 공격 자체를 원천 차단하고, 오히려 더 강한 보복으로 광역 마법을 시전하는 북한 마법사들.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봤던 히어로들의 CG이펙트를 북한 주민들이 현실에서 구현해낸다면 엄청난 화제가 되겠지······.‘
지금 남한에서도 마탑그룹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인데, 북한 주민들 전체가 마력을 각성했다고 생각해봐라.
그 파급력이 얼마나 지대하겠는가?
물론 그 힘은 자위적인 차원에서 사용해야지, 절대 아무 이유 없이 타국에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주는 적대적 힘이 되어서는 안 됐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기 전부터, 그렇게 선을 그었다.
내가 통제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이었고.
’최초의 각성 지점인 이곳의 사람들이 앞으로 정국을 주도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뇌부를 갈아치울지 그건 그들의 생각에 달렸다.‘
그리고, 수뇌부가 갈린 후에 그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또 다시 제 2의 김씨 부자들이 탄생할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 실패를 인정하고, 내 손으로 그들을 무너뜨려야 할 지도 몰랐다.
’어찌됐든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이다. 미래야 많은 경우의 수들 중에 한가지일 뿐이니까······.‘
일단 독재의 탄압에 허우적거리던 북한 주민들이 뛰어놀 자리는 말끔히 깔아놨다.
북한 수뇌부가 보유한 대량 살상무기는 이미 내가 원자단위로 해체해서 우주 밖으로 날려버렸다.
우주에 쓰잘데기없는 쓰레기가 조금 늘어났지만, 지구가 피해받는 것보단 나았다.
이곳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었고, 그것은 세세토록 보전되어야 했으니까.
’여기서 얻은 코인으로 어떤 길을 걷는지 두고 보겠다. 리한봉.‘
*
”하아, 하······.“
리한봉은 멋드러진 갑옷과, 핏빛의 적혈검을 들고 망나니처럼 날뛰었다.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진 피의 살육.
적들은 그와 전면전을 한 후,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곧바로 사분오열하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갈 길은 없었다.
-으아아, 살려줘어ㅡ!
푸욱!
-제바아아아알ㅡ!
푸욱!
리한봉은 최초의 살인 이후, 거침없이 검을 내질렀다. 간악한 적을 죽일 시 보정되는 [정확도 30퍼센트 증가] 효과로 인해, 지르는 족족 심장이나 명치를 꿰뚫었다.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동안 같은 인민들을 탄압하고,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인 원흉들······.‘
어차피 이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진작 죽었어야 할 놈들인데, 김정은의 위세에 빌붙어 과거 100년 전, 친일파 놈들 같이 인민들을 억압하고 고문해서 죽였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더러운 간나 새끼들······.‘
만약 지옥에 신이 있다면, 이 녀석들을 가만히 놔두진 않을 것이다.
사후 세계.
그것이 존재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생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인간성마저 내다 버린 녀석들이 북한에서 간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수뇌부의 뒷구녕이나 햝으면서.
’누리는 잘하고 있겠지······.‘
리한봉이 쓸고 지나간 자리엔, 누리가 뒤에 남아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누리도 그동안 포인트를 많이 쌓아서 근력과 체력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웬만한 성인 장정은 물론이고, 체육 선수, 심지어 수톤의 힘을 내는 기계보다도 더 큰 힘을 냈다.
아직까진 마음씨가 여려, 그 힘을 살인하는 데 쓰고 있진 않고 사람을 구출하는 데 쓰고 있었다.
살인은 온전히 리한봉의 몫이었다.
아니, 이제는 그를 돕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감옥에 갇혀 다 굶어 죽어가던 사람들도, 완전히 180도 달라졌지.‘
누리의 회복을 받고, 배후성의 후원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각성했다.
그들은 특별한 힘을 얻었고, 그것은 재래식 화기에 맞설 용기를 주었다.
-인민들을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게 한 저 간악한 김돼지의 앞잡이를 처단하라우!
리한봉은 자신의 적혈검을 번쩍 치켜들며, 먼저 앞장서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다들 수용소의 간부들에게 모질게 당해왔던 터라, 적극성이 없었다.
수갑을 풀어주면 돕기는커녕, 그대로 내빼려고만 했다.
-코인을 얻으면 그들에게 대항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다 같이 합심해서 코인을 얻자! 김돼지의 목을 치자!
그러면서 직접 코인을 얻고, 강해지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우와, 저게 진짜야?
-완전 하늘 위를 붕붕 날아다니는데?
-시라소니보다 더 쩐다야······.
리한봉이 검을 들고, 영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날뛰는 것을 보고 인민들이 서서히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리한봉과 같은 힘을 얻기를 누구나 소원했다. 무서워서 몸을 움츠렸을 뿐이지, 간부들이 리한봉 하나를 대적하지 못해서 죽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보곤 용기가 났다.
-나도 각성했다!
-나도 코인을 얻었다!
-내 배후성은 ’심연을 관장하는 자‘다! 나도 이제 돼지 앞잡이들을 죽이고 힘을 얻겠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리한봉은 고사하고, 평소 심성이 고운 김누리까지 엄청나게 강해지는 모습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씻어버렸다.
게다가, 누리의 아버지 김한빛이 자신의 손으로 부인을 구하곤 사람들 앞에서 새로운 힘을 선보였다.
-이게 바로 내게 주어진 권능, 마법이라는 힘이요!
-오오, 마법······.
-신기하다, 신기해······.
북한 주민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힘의 매력에 홀딱 빠져 빙두(메스암페타민 : 북한의 마약)에 빠지듯 새로운 힘을 탐닉했다.
이젠,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저절로 수용소 간부들을 찾기 위해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돌아다녔다.
*
”이젠 상황이 다 정리된 거 같아요.“
”간부들 중 빠져나간 사람은 없을까?“
”없을··· 아니, 없습니다. 제가 다 확인했습니다.“
리한봉과 김한빛은 수용소 내부의 간부 회의실에 마주 앉아 현 상황에 대해 토의했다.
현재 리한봉의 계급은 2단계나 올라서 작대기 3개의 상급병사가 됐다. 동시에, 분대장이라는 직책까지 내려졌다.
분대장은 자신의 휘하로 30명 가량 직속 부하를 둘 수 있는 시스템적 직위였다.
다 이준혁이 안배하고 만든 가상의 시스템.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가상이되, 가상이 아닌.
어쩌면, 가상과 현실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픽션과 팩트. 그리고 물질계와 비물질계.
사람들은 그 구분이 명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신의 힘을 가진 이준혁이 보기엔, 그 구분은 손바닥 뒤집듯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구분이었다.
”제가 지휘관의 직책을 얻으면서 생겨난 새로운 알람이 있습니다.“
-청진 수용소 내에 간부진 현황
*사망 30/30
*남은 인원 0명.
리한봉은 자신의 눈앞에 뜬 홀로그램을 그대로 이면지에 적어서 김한빛에게 건넸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인 김한빛.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탄압을 벗겨내기 위해 힘을 썼던 김한빛. 하지만, 그것이 최종적으로 실패로 돌아갈 뻔했지만, 말 그대로 ’뻔‘했을 뿐 진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군. 그저 꿈속이나 아니면, 도깨비 노릇을 하고 있는 거 같으이······.“
”받아들이십시오. 정 못 믿겠다면 볼을 꼬집으세요.“
”확실히 통증은 그대로더라.“
”그럼 현실입니다. 비록 어떠한 초월자에 의해 이 판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겠지.“
”그렇습니다. 그는 어떤 목적에서건, 결국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이러한 일을 벌인 것입니다. 저희는 그가 설계한 대로 우리가 염워하던 반란을 성공하면 되는 것이라요.“
”우리 손으로······.“
”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할 것이고요.“
리한봉은 회의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소총을 한손으로 틀어쥐더니, 그것을 그대로 우그러뜨렸다.
어떠한 마술이나, 묘기가 아니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잡고 약간의 힘을 줬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약간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합금으로 된 총기는 손쉽게 우그러졌다.
”앞으로 정은이 놈의 모가지도 이렇게 될 것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