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104화 (104/272)

# 104

54.월북(2)

-새해 공동사설을 받든 우리의 노동계급과 인민들은, 지금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정일 동지의 유훈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이시며······.

“여기가 바로 북한인가······.”

상공에서 보던 북한과 직접 걸어 다니는 북한은 그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조선 노동당 국방 위원회 제1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의 령도를 받들어 주체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하고야 말 것이라는 의지와······.

아나운서의 앙칼진 목소리가 건물 곳곳에 걸린 스피커에서 쩌렁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나도 수능 준비를 하면서 세상의 언어도 모두 마스터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북한 말을 알아듣고, 쓸 수 있었다.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

“역시나 미개하군······.”

2022년의 마지막 달이 지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북한에선 정은이에 대한 찬양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나는 하얗게 눈 내린 평양 시내의 거리를 걸었다. 70·80년대에나 보던 차량들이 거리에 드문드문 보였다.

덜커덕, 덜커덕.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전차가 아직도 운용되고 있는, 같은 한반도 내의 국가라고 보기 힘든 국가가 이곳에 있었다.

‘체코에서 버린 50년 된 궤도전차라지······.’

6·25 전쟁 이후, 일제에서 만들어진 전차 도로 시설과 차량이 파괴되었다.

남한은 복구를 거쳐 그대로 운행하다, 80년대 이후 지하철로 전환된 서울, 부산의 전차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6·25 전후 인구 증가와 더불어 교통난이 극심해졌고 평양 지하철은 연장선의 하저 터널 공사가 계속 실패하여 연장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기에, 이에 도로 위를 그대로 달리는 노면전차의 건설을 시작하여 1991년 개통하였다.

나는 북한으로 넘어오기 전, 마력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했다.

모란봉 클럽,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모두 머릿속에 저장시킨 상태였다.

그래서 북한의 최근 정세까지 많이 알고 있었다.

‘패션이 10년 전보다 많이 변했어······.’

땡빼바지(스키니진)에 달린 옷(원피스), 빼또구두(하이힐), 짧은 치마(미니스커트) 등등······.’

한국의 서울처럼, 아니 북한 내에서는 서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높은 평양.

역시나 그곳의 주민들은 유행에 민감하든지, 남자나 여자나 한국 청년들 패션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녔다.

대신, 너무 튀는 옷 말고 색과 모양은 무난하되, 확실히 유행을 아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럴 줄 알고 이번엔 옷도 미리 준비해왔지······.’

나는 과거 처음 한국에 귀환해 얼타던 그때가 아닌, 학습능력을 발휘해 북한에 오기 전 철저히 준비해서 왔다.

그래서 요즘 북한 청년들이 입는 땡빼바지(스키니진)와 모자달린 웃옷(후드티)를 입고 평양 거리를 걸었다.

사실 내가 자주 입던 옷이라, 별로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데.

"어이 동무! 동무!"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질서 유지’라고 새겨진 붉은 완장을 찬 아저씨 두 명.

그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여 동무! 싸가지없이 주마니에 손 넣고 다니는 그게 무슨 짓이라이?“

”와이라요?“

나는 그들을 쳐다보며, 자연스럽게 북한 억양으로 말을 내뱉었다.

‘질서유지대인가······.’

평양의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비롯한 범죄행위가 증가하자,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질서유지대’가 생겨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평양의 운송수단인 궤도전차 정류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모집된 인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적으로 주민들을 검열한다거나 단속할 권리나 의무 따위는 없었다.

"아저씨들 뭔데 날 검열합네까? 할 일 없으면 가서 쓰리꾼이나 잡으라요."

내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는지 비쩍 마르고 얼굴이 거뭇거뭇한 아저씨 한 명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동무. 우리가 누군지 알아? 오늘 단련대가서 좀 고생 좀 하가서?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흐흐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누구를 통제하거나 감시할수 있는 권한이 생기면 마치 큰 벼슬에라도 오른 듯 살기가 등등했다.

아마 이 사람들도 서평양 화력발전소의 노동자들처럼 보였지만 팔에 찬 그 완장 하나 때문에 오늘은 여기 모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움직여 그들에게로 바짝 다가갔다.

"아~ 왜들 이래요. 추운데... 자자 담배나 하나씩 태우고 일들 보시라요."

내 주머니에서 양담배인 말보루 레드가 튀어나오자, 녀석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담배 한 개피에 달라지는 저들의 표정도 웃기지만, 이것도 무슨 권력이라고 아부해야 하는 당장 내 처지도 참 가련해 보였다.

"거 말이야. 나이도 어린 동무가 말두 잘 듣구 그래야지 말이야. 그럼 쓰가서?"

”담부터 조심하가쓰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는데, 담부턴 조심하라우. 알가서?“

”알아쓰요.“

나는 그들에게 대충 담배 한 개씩을 나눠주고, 다시 길을 걸었다.

사실 당장에 마법으로 이 위기를 넘어가도 되겠지만, 그래도 좀 더 북한을 직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나는 최대한 마법사용을 자제하고 직접 부딪혀 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평양 시민 중 하나로 스며들기로 한 이상, 최대한 그들처럼 말하고 생각하며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는 게 좋았다.

”여어~ 비켜 이 간나이~“

좀 더 걸어가, 궤도 전차의 정류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개떼같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런 아귀다툼에 끼어들어야 하나······.’

아무리 오늘 하루는 평양 시민이라지만, 저긴 너무 난장판이었다. 일단 궤도전차에 타지도 않고 일부러 작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좀도둑들은 여사였다.

나는 그게 너무 훤히 들여다보여서, 결국 눈치를 보다 맨 마지막에 탔다.

전차는 충성의 다리 입구를 지나쳐, 평양·원산 고속도로 입구를 지나쳐갔다.

‘저게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인가······?’

통일도 안 했는데, 쓰잘데기없는 것도 많이 만들어놨다.

나는 그렇게 혀를 차며 여유롭게 북한 관광을 했다. 사실 오늘 당장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일단 평양을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내일부터는 좀 더 반경을 넓혀볼 생각이었다.

‘일단 당장 수뇌부를 치기보단, 북한의 밑바닥의 실정부터 훑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윗대가리들은 김정은만 제압하면, 한 번에 다 소환해서 목을 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언가 그들을 조종해 정책을 꾸려가기가 어려웠다.

물론 인터넷이나 서적, 논문 자료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오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간접적인 공부일 뿐.

실전은 정말 처음이었다.

‘저기서부터는 안산 거리인가······.’

충성의 다리를 조금 지나치니, 커다란 건물과 집, 그리고 논밭이 아무렇게나 난립한 도시가 보였다.

평양 중심지로 들어가기 전 거치는, 그런 거리였다.

‘평양 바로 주변도 이러할 진데, 다른 곳은 아예 허허벌판이겠지······.’

공장도 별로 없고, 거의 농사만 짓는데 그마저 짓고 있는 농사도 아주 개판이었다.

제대로 된 종자도 없고, 게다가 비료나 기타 여건들도 모두 부실했다.

‘대부분 옥수수만 먹는다고 하니까······.’

강냉이 밥, 강냉이 국수, 강냉이 뭐시기······.

옥수수가 아무래도 금방 자라고, 한알 한알 톨이 굵고 양도 많다지만 입이 많으니 한계가 있었다.

옛날 우리 남한도 가난한 시절엔 ‘강냉이, 강냉이’하며 강냉이만 먹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환경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무리 못 먹고 죽어도, 나라에서 죽지 않을 만큼 지원도 해줬고, 여기저기 도와주는 시설도 많았다.

하지만 북한은 아니었다.

‘정치범 수용소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북한의 실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치범 수용소였다.

거기엔 남한의 노래 테이프나, 방송을 청취하는 것만으로도 붙잡혀가서 몇 년을 살다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재수 없으면, 거기서 신체 부위를 잘못 얻어맞아 죽어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북한은 의료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김정은을 비롯한 초고위층 간부를 제외하곤 제대로 된 의료복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정신 나간 곳에서 하루 빨리 인민들을 구해내야겠다. 같은 민족인데 이렇게 고통받는다는 게 말이 안 돼······.’

아무리, 21세기고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가 찾아왔다고 해도 북한만은 예외였다.

북한엔 ‘자유’도 없었고 ‘민주주의’도 없었다. 그저 허울뿐인 공산주의, 김정은을 찬양하기 위한 공산주의만 있을 뿐이었다.

‘더러운 돼지 새끼······.’

욕심만 처 많아 가지고, 자기 고모부까지 쏴죽인 천하의 미친 새끼가 바로 김정은이었다.

고모부뿐만 아니라, 형도 독살했다.

그놈은 그냥 미치광이 살인마 새끼였다. 언론에서 포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놈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김씨 삼부자가 저지른 만행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잘 사는 공산주의를 표방해놓고, 김씨 일가를 비롯한 일부의 소수만 잘 사는 나라로 바꿔놓고 나라도 개판을 쳐놨다.

본래 6·25 때도 전쟁에서 선방을 때려, 남한보다 더 잘 살았던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한의 GDP(1인당 국민 총 생산량)의 80분이 1밖에 안 됐다.

수출입도 남한의 일개 시 단위의 예산보다 못한 개 쓰레기 같은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경제도 망쳐놓았지만, 그건 의도적인 것이었다.

‘일부로 나라를 못살게 만들어서 감히 반기를 들 자금조차 못 몽게 하는 속셈······.’

배부르고, 등 따시면 반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던지, 김씨 놈들은 북한 인민들이 아예 반란 생각을 못 하도록, 눈앞의 밥걱정만 하도록 가난하게 만들어 방치하고 구석탱이로 몰아넣었다.

나라의 수입을 대부분 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하고, 무기를 사들이는 데 다 써버린 것이다.

그 무기로 남한도 겨누지만, 정작 김씨 놈들이 제일 견제하는 건 북한 주민 그 자체였다.

말로는 ‘동지, 동무’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노예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노예들이 감히 반란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게 바로 김씨 일가의 최종 목표였다.

‘그렇게 살면 죽어서 그 업보를 어찌 갚으려고 그러나······.’

거의 뭐 ‘오늘만 살자’도 아니고, ‘이번 생만 살자’인가?

하지만, 그것도 이젠 틀려먹었다.

왜냐하면, 내가 왔으니까.

‘진작 한 번 왔었어야 했는데······, 조금 늦었나?’

그동안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았을 걸 생각하니 내가 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젠 정말 통일할 때가 됐어······.’

내가 고등학생 땐 통일이라는 단어가 정말 막연했다. 우리에게 과연 그런 힘이 있는지, 통일이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일지.

솔직히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들었는데, 통일이고 나발이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그럴만한 힘이 생긴 이상, 철저히 계획하고 행동해야 했다.

이제 내가 움직인 이상 통일이 눈앞까지 다가온 게 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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