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52.친구
“『10서클 고딩의 귀환』 이거 진짜 재밌네.”
“정말?”
“어. 충분히 팔릴만한 글인데······.”
나와 찬규, 그리고 아리는 자리를 옮겨 2차로 생맥주집에 왔다.
그곳에서 나는 찬규가 쓴 ‘10서클 고딩의 귀환’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대략 귀환 후, 신파극을 한 번 찍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효도하고 마법으로 병도 치유해 주는 그런 힐링물이었다.
초반에 금괴 파는 걸 제외하면, 그닥 갈등도 없이 스토리가 무난히 흘러갔다.
‘그래서 연독률이 빨리 빠진 건가······?’
초반 2600대로 시작한 유료 조회수는 97화가 지나가는 시점 즈음엔 800이하로 빠져 있었다.
나는 충분히 재미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인지 금방금방 빠져나갔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나는 제임스 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임스 박. 저번에 k-투자 회사에서 웹소설 플랫폼 『달동네』를 인수했다고 했죠?”
“네, 마스터. 플랫폼 성작 속도가 높아서 저희 회사가 100% 지분 인수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아뇨, 문제는 없는데요. 다만······.”
나는 제임스 박이 인수한 달동네를 적극 이용해서 친구를 위해 기 좀 살려주고 싶었다.
“네, 거기 사장님 전화번호가 뭡니까?”
*
나는 달동네 CEO에게 전화해서 당장 가이젠의 작품을 모바일 메인 배너에 띄우고, 달동네 선물함과 함께 외부에 유통할 때도 무조건 ‘너만무’나 특별 이벤트를 주문했다.
K-투자 컴퍼니는 사실상 달동네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 하나밖에 없는 친구입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깐요.
달동네 CEO는 찬규 작품에 메인 배너 이벤트뿐만 아니라, 다달이 작가 지원금 200만 원과, 유명 작가들이 하는 ‘작가전’이벤트도 개최해준다고 했다.
작가전은 말 그대로 그 작가의 역대 작품들을 싸그리 모아, 할인 이벤트겸 홍보해주는 이벤트였다. 5-6작품 이상 쓴 작가들만 해주는 특혜인데, 이번에 찬규는 예외였다.
“고맙다, 준혁아.”
“뭘 이정도 가지고.”
나는 찬규의 빈잔에 맥주를 채워주면서 말을 이었다.
“너, 그냥 치킨집 때려치우고 아예 작품 집필에만 전념해라.”
“에이, 그건 무리지······.”
찬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난 안 돼. 그냥 취미로나 쓸래.”
“왜?”
“그냥······.”
찬규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하며 맥주만 들이켰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찬규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엄마 병원비가······.
-200만 원 지원도 준혁이 덕분인데, 더 바라는 건 욕심이지. 내가 못 써서 작품이 인기가 없는 건데······.
-아무튼 준혁이 덕분에 정말 한숨 트여서 다행이다······.
찬규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찬규네 어머니도 암이셨구나······.’
미리 알고 있었으면 술을 마실 게 아니라, 찬규네 어머님의 치료부터 했을 텐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찬규가 어색하게 맥주만 들이키자, 옆에서 듣고만 있던 아리가 끼어들었다.
“찬규 씨,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예······ 예에?!”
“여자친구요.”
“없는데요······.”
“······.”
나는 아리와 찬규가 하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눈을 번쩍 떴다.
“찬규 너도 설마 모태 솔로냐?”
“으···응······.”
“와, 진짜? 나돈데. 역시 우리는 통하는 데가 있다.”
“······뭐?”
찬규는 아리와 나를 번갈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리와 나는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기 뭐했다.
아리는 어리둥절해 하는 찬규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찬규 씨, 그럼 제가 괜찮은 사람 소개 시켜 드릴까요?”
“네???”
찬규는 과연 자신 같은 사람을 좋아할 여자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얼굴도 못 생기고 뚱뚱하고, 돈도 못 버는 자신을.
누가 좋아해 준단 말인가?
‘설마 그때 그 빨강 머리?’
아리와 처음 만났을 때, 나와 혜은이를 병원까지 데려다 준 아리네 쥬얼리 샵의 여자.
와인색 머리의 귀여운 얼굴이 번뜩 떠올랐다.
‘주아영이라고 했었나······?’
과연 그 여자 정도라면 찬규에게 어울릴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과분할 만큼.
“아리 씨. 설마 주아영 씨는 아니죠?”
“맞는데요?”
“그럼 아영 씨에게 일단 의사를 물어보라고 해야 되지 않나요?”
“가볍게 소개팅 하는 거니까, 아영 씨도 좋아하실 거에요.”
“······.”
글쎄······. 안 좋아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솔직히 찬규가 내 친구이긴 하지만,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이냐고 한다면, 자신감 있게 ‘그렇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바꿔주면 되잖아?’
사람들의 얼굴이 잘생기고 못 생기고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나와 친하냐 안 친하냐가 중요했지.
“찬규야, 아리 씨가 소개 시켜 주려는 분은 엄청 미인이거든.”
“···응. 역시 난 안 되겠지?”
“아니, 내 얘기 끝까지 들어봐.”
“어.”
“내가 마탑 다닌다고 했잖아.”
“그랬지.”
“너 마탑 성형외과 알지?”
“헉, 설마······!”
“그래, 임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박태진에게 전화했다.
뚜···, 뚜······.
그렇게 두 번의 신호음이 갔을까.
-여보세요?
“박태진 씨, 접니다. 이준혁.”
-아, 예.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요. 제 친구 일입니다.
-언제 어느 때에 전화하셔도 괜찮습니다.
”제 친구 중에 얼굴이랑 체형에 콤플렉스를 가진 친구가 있는데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죠?“
-당장 내일이라도 예약을 잡아 놓겠습니다. 창동건, 장우성, 연빈······ 아니 요즘엔 유하인, 송전기, 박부검인가······. 아무튼 원하는 얼굴형으로 말씀만 하라고 하십쇼.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뚝.
”들었지?“
”와, 준혁아. 너 마탑 제약 사장님과도 친한 사이였구나······. 증말 대단하다······.“
”같은 회사 사람인데, 이 정도 부탁이야 뭐 당연한 거지.“
박찬규는 나를 마치 신이라도 보는 것마냥 놀라워했다.
”그리고, 아까 우연히 들었는데 너네 어머님 아프시다며? 그래서 병원비도 많이 든다면서?“
”어······.“
”그것도 내일 박태진 선생님한테 말해서 약 받아가. 그것도 추가로 언질해 놓을 테니까.“
”고맙다, 준혁아······.“
녀석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소맷자락으로 그것을 닦았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어려울 때 돕는 게 진짜 친구지.“
나는 오늘 찬규네 어머니의 암을 낫게 할 알약 하나를 만들어서 박태진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아무튼, 과거 진짜 친하게 지내던 찬규에게 이렇게나마 도울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찬규도 기쁘겠지만,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도 많이 기뻤다.
”아무튼, 어머님 병 다 나으면, 진지하게 전업 작가 한 번 생각해봐. 내가 마탑 그룹에 전화해서 예술가 지원 정책금 후보에 너도 추천해볼게.“
”에이, 이 정도만 해줘도 엄청 도움 받은 건데 뭘. 됐어······.“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고 받는 거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크크크······.“
나와 찬규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흥겹게 맥주를 마셨다. 원래 아리가 주아영도 부를려고 했는데, 내일 찬규가 성형 다 끝나고 그때 서로 대면시키자고 했다.
일단 첫인상이 좋아야, 그 뒤도 좋은 거니까.
그리고 마탑 그룹에서 예술가 지원 정책을 한다는 건 구라였는데, 찬규 때문에 진짜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 천만 원 정도 지원해주면, 전업작가 하는데 충분하겠지······?’
나는 워낙 들어오는 돈이 많다 보니, 남들의 경우엔 얼마 정도가 적당한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무튼, 찬규는 200만 원만 지원해줘도 부담스러워하니까 그 5배인 천만 원 정도가 딱 맥시멈인 거 같았다.
”아무튼 ‘10서클 고딩의 귀환’ 그거 조기 종결하지 말고, 꼭 완결까지 열심히 써라. 두 번 써라.“
”크크크. 두 번까진······.“
*
나는 만취한 찬규를 집에 데려다주고, 아리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찬규네 집에 갔을 때, 늦은 시각 갑작스럽게 찾아갔음에도, 찬규네 어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말기 췌장암 때문이신지 몸이 많이 수척해 보이셔서, 나는 찬규 어머님 몰래 그 자리에서 암을 치유해줬다.
그리고, 젊음의 마법도 같이 더블로 걸어줬다. 내일 찬규가 박태진에게 성형받으러 가면서, 어머님 약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튼, 나는 찬규 어머님께 이것저것 과일도 받아먹고 억지로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꾸만 더 먹고 가라고 해서, 정말 밤새 붙잡혀 있을 뻔했다.
찬규 어머님은, 그동안 어디 있었느냐? 찬규가 너 많이 찾았다며 많이 반가워하셨다.
나도 철없던 어린 시절, 찬규네 집에 가서 찬규네 어머니가 깎아주는 과일 먹던 생각도 나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몰래 나오면서 찬규네 어머님 방에 현금 1억 원의 돈다발과 편지 한 장을 놓고 나왔다.
-예전부터 친절히 대해 주시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아주머님.
5만 원짜리 현금다발은 항상 아공간에 잔뜩 넣고 다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선물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원래 한 10억 정도 드리고 오고 싶었는데, 그러면 왠지 다시 돌려준다고 난리 피우실 거 같아서 그냥 1억 정도만 소소하게 지원해줬다.
‘나머지 금액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추가로 전달하면 되니까······.’
일단 찬규네 어머니가 어디 청소 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들었다. 나는 찬규 어머님을 우리 회사로 스카웃해서, 연봉을 최소 3억 정도 챙겨주고 싶었다.
지금은 월 200만 원도 못 받는다고 들었다.
”찬규 씨는 진짜 친구 하나 잘 둬서, 복 받았네요.“
아리는 내 옆자리에 올라타면서, 콧노래를 몇 번 흥얼거리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글쎄요. 찬규가 그런 걸 바라고 저하고 친해진 건 아니에요. 옛날엔 우리 둘 다 가난했거든요.“
”아······.“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찬규에게 더 애착이 가요. 서로 어려운 시절 때 같이 잘 지냈었으니까······.“
나는 찬규 말고도 다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하지만, 찬규처럼 일관성 있게 진실하고, 착한 친구는 없었다.
다들 처음엔 가식의 가면으로 친한 척하다가, 나중엔 조금만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면 바로 적으로 돌변했다.
진실을 터놓고 얘기하면, 나중엔 그걸 이용해서 협박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 앞에서 흉을 봤다.
나는 그런 놈들에게 학을 떼고, 거의 친구들을 멀리했었다.
하지만 찬규는 달랐다. 오히려 나와 비슷해서, 서로 공감대도 잘 형성되었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서로에게 대할 수 있었다.
*
아리를 먼저 집에 내려다 주고, 나는 혼자 차를 몰아 집으로 이동했다.
‘이제 동창회도 다 끝났고, 앞으로는 정말 일과 공부뿐이구나···.’
내가 과연 학교생활과 사업 두 가지에서 다 잘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말자······.’
사실 사업은 내가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거라곤, 그룹의 전체적인 방향 결정과 마법적 시스템 구축뿐이었다.
그 외엔 전부 CEO들이 알아서 했다.
‘잘 할 수 있다. 오히려 즐기면서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집 앞에 도착했는데······.
찰칵찰칵.
”이준혁 씨 되십니까!?“
”33살 최장수 불수능 만점자 이준혁 씨 맞으시죠?“
”이준혁 씨! 그 차 뭡니까? 혹시 롤스로이스 팬텀 아닙니까?“
웬 기자들이 우리집 아파트 앞에 진을 치고, 내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