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44.압도적인 힘으로(2)
”이게 대체······.“
안비제약 회장 배석호는 부하직원의 보고에 tv를 켰다가 경악했다.
-속보입니다. 최근 엄청난 효능을 내는 영양제를 양산하던 마탑제약. 그 공장이 어젯밤 괴한들의 침입을 습격을 받아 화제를 입었는데요. 그런데, 그것을 사주한 이가 충격스럽게도 경쟁업체인 안비제약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불은 다 질렀어? 확실히 전부 태운 거 맞지?
-그래. 꼬리 안 붙잡히게 뒤처리 잘하라고. 절대 우리가 불을 질렀다는 걸 남들이 알게 하면 안 돼. 그래, 불 지를 때 직접 동참한 녀석들은 어디 동남아 오지로 1년간 잠수시켜. 어. 자금은 내가 다 준비해놨으니까.
-으하하하. 마탑 제약. 네까짓 것들이, 고작 영양제나 팔 수준밖에 안 되면 분수를 알아야지 감히, 내 인수 제안을 거절해? 꼴 좋다, 마탑 제약. 정말 꼴좋아. 하하하하.
”······.“
tv에선 어제 자신이 부하들에게 화제 습격 지시를 내리는 화면이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휙, 휙.
배석호는 얼른 자신이 있는 사무실 내부를 샅샅이 쳐다보며, 몰래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럴 리가 없어······.“
분명 카메라 같은 건 없었다. 자신 외에는 비서조차 이곳에 발을 못 디디게 해놨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미연에 철저히 대비하고 또 조심했는데.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으아아아악ㅡ!“
배석호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투당탕탕탕!
그렇게 몇 분을 울부짖었을까.
배석호는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벅벅 닦으며, 긴급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 3년 잠적하고 돌아오면, 개돼지들도 냄비처럼 꺼지겠지······.’
일단 회장인 자신이 자리를 피하는 게 중요했다. 해외 출장 갔다가 질병에 걸려서 드러누웠다고 하면, 동정여론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배석호는 그렇게 생각을 마친 후, 곧바로 금고문을 열어 중요한 채권서류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금이나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서화 된 수천억 대의 재산 증빙 서류들이 제일 중요했다.
”어이, 김 비서. 내가 지시할 때까지 아무도 회장실로 못 올라오게 하고, 기자 같은 건 다 틀어막아. 그리고 나 당장 출국해야 하니까, 비행기······ 아니다, 배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표도 준비해놔. 저번처럼.“
뚝.
배석호는 비서실에다 그렇게 전화를 한 후,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짐을 싸 들고, 회장실에서 곧바로 비상구로 통하는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어???“
”······.“
그러자, 한 청년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넌 뭐야???“
배석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황급히 지우며, 성난 얼굴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나? 마탑제약 만든 사람.“
”뭐???“
*
”후······.“
나는 배석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바람의 잔상을 통해 녀석의 얼굴을 미리 확인하긴 했지만, 직접보니 더 재수없게 생겼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곰보 얼굴.
게다가 키도 165정도에 떡두꺼비 같이 생겼다.
녀석은 내가 마탑 제약 사장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더니 뒷걸음질 쳤다.
”어디 가냐?“
”뭐, 뭐뭐뭐뭐!“
배석호는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연신 뒷걸음질 치더니, 다시 비상구 문을 쾅 닫고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철컥, 철컥.
거기에 문까지 걸어 잠궜다.
-클레일보이언스(clairvoyance)
나는 투시마법을 걸어 녀석이 뭐하고 있는지 구경했다.
녀석은 비상구 문을 잠근 후, 그대로 문에 기대어 귀까지 문에 바짝대고 나의 동정을 살피는 듯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쾅!
”으악!“
콰지지직.
그대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50평 규모의 개인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지도 않고 먼지만 쌓인 의학책들이 책장에 가득 쌓여 있었고, 쓰지도 않는 이상한 실험 도구들이 방 곳곳에 인테리어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가 네 사무실이냐?“
”······.“
나는 평소 배석호가 앉는 회장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후, 녀석에게 손을 까딱했다.
”이리 와서 내 말 좀 들어라.“
”으으으······.“
녀석은 항거하지 못하는 마력의 힘에 의해, 내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털썩.
그리고,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네가 왜 그랬는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니까.“
”······.“
나는 배석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마치 뜯어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적절한 보상까지 안 받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아 물론 응징도 해야겠지.“
”저······ 저······.“
”내 말 끝나기 전까지, 그 입 다물라.“
쾅!
”으아아아악!“
녀석은 저도 모르게 몸의 통제력을 잃고, 내 언령에 의해 대가리를 맨땅에 헤딩했다.
내 말에 토를 단 벌이었다.
지나간 일을 잊는다고 했지, 그에 대한 피해보상과 형벌까지 그냥 넘어간다는 소린 절대 아니었다.
잊는다는 것도, 내가 그냥 짜증나서 생각하기 싫다는 것뿐, 화가 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짜증 나고, 그것 때문에 당장 눈앞에 녀석을 찢어 죽여버릴까 봐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뿐이다.
저 녀석이 이뻐서 봐주는 게 절대 아니었다.
”너도 뉴스를 봐서 알 거다. 네가 한 짓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됐다는 걸.“
”······으.“
”네 덕택에 우리 마탑 제약의 생산 공정 라인에 차질을 빚게 됐어. 우리야 매출 조금 떨어지고 말겠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병을 치료하지 못해 우리 약을 절실히 기다리는 환자들은 뭔 죄냐?“
”제가 충분히 보상을······.“
”아가리 닥쳐!“
쾅!
”끄아아아악!“
녀석의 대가리가 다시 한번 맨땅에 헤딩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땅에서 불덩이가 올라와 녀석의 얼굴을 태워버렸다.
”으어어어억!“
녀석은 불에 의해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뜨거운 불길에 데인 피부가 그대로 녹아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변형 리커버리!
나는 대충 불을 끄고, 화상을 입은 녀석의 얼굴도 대충 치료해줬다.
배석호의 얼굴이 문둥병 환자처럼 처참하게 복구되었다.
”으으으······.“
”3번째 경고 땐 더 화끈한 거로 응징해줄게.“
”······.“
배석호는 결국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계속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나는 내 방식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니가 제약 업계에서 끝발을 날리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는 얘기고.“
”···예.“
”일단 내 방식은 이래. 나를 건드리는 놈들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무조건 치른다.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전부 다를 빼앗는 거지. 회사면 회사, 돈이면 돈.“
”······.“
”너는 제약회사하고 꿍쳐둔 돈을 다 뱉어내라. 보니까 금고에서 이것저것 챙겨서 가방에 꾸겨 넣던데, 그것도 도로 다 뱉어놓고.“
”······.“
”그리고 기자회견도 열자. 마탑 제약에 저지른 죄를 충분히 반성하고 보상하는 의미로 안비제약을 마탑제약에게 넘기는 거로. 그럼 동정여론이 일 거야. 너처럼 외국으로 튄 후에 아픈 척한다고 국민들이 동정할 리가 없잖아.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그런 쌍팔년도 얕은 수법을 쓰냐? 이 유치한 새끼야.“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아무튼 기자회견에서 마탑 제약에 회사 넘기는 거로 그 자리에서 양도 각서 작성하고, 진짜 제대로 반성하는 의미로 깜방에 들어가서 평생 자숙하도록 하자. 요새 사형제도도 없어져서 너 같은 놈은 진짜 복받았다. 아주 축복받았어.“
”···.“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배석호에게는 역시나, 정복의 의미로 벌레 한 마리를 심어주었다.
”박태진 씨.“
나는 텔레포트를 준비하면서 박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실장님.“
”방금 제가 안비제약 회장하고 독대하고 왔습니다.“
”···벌써 다 해결하신 겁니까?“
역시나 박태진은 한 번 데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 말을 빠르게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설명하기가 편했다.
”네. 벌레 한 마리 심어주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왠지 수화기 너머에서 박태진의 쿡쿡, 웃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동지가 한명 더 늘어나서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처음엔 벌레 때문에 미친 듯이 괴로워하더니, 이젠 훈장처럼 여기는 박태진이었다.
유진광처럼 나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인물 중 하나로 변모했다.
”그래서 안비 제약을 마탑 제약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흡수합병할 수 있도록 최진우랑 잘 얘기해서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실장님.“
뚝.
나는 아리 동생인 최진우와 박태진을 연결해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최진우에겐 최근 킴앤장을 능가하는 변호인단을 꾸리도록, 수백억 원의 자금을 지원해줬다.
최진우는 대동그룹 본사 6, 7, 8층을 통째로 빌려 최&이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다.
최는 물론 최진우의 성이고, 이는 내가 뒤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내 성을 갖다 붙여 놨다.
사실 나는 최진우에게 법률적으로 별로 도와줄 게 없어서 이렇게 일감이 생기면, 대기업들이 하는 일감 몰아주기 식으로 최진우 사무실에 모두 몰빵시켜줬다.
”아무튼, 재벌이란 놈들은 왜 이렇게 서민들을 못살게 굴어서 안달인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일개 서민 중 하나로서, 나는 이놈들의 생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손에 쥔게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데, 도대체 무슨 욕심이 그렇게나 많은지.
그냥 자신이 쥐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적당히 즐기는 삶을 산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한데, 이놈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괴롭힌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약자들이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막대한 화를 느낀다.
굴복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무릎 꿇리고 싶고, 어떻게든 힘을 동원해서 찍어누르거나 줘패고 싶어 한다.
자신이 중세시대 왕이라도 된 것마냥,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 같은 임자를 만나면,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나는 것이고.
모든 것을 뺏기고, 감빵에 들어가는 신세.
‘내가 이렇게 응징하지 않았다면, 범죄가 걸려도 어디 해외에서 몇 년 도피하다 오거나 하루 형량을 몇억씩 까면서 감옥에서 편하게 무위도식했겠지.’
하지만, 이 녀석도 유필준처럼 땡전 한 푼 없이 모든 것을 잃었다.
아니, 오히려 유필준보다 더 심했다. 유필준은 그래도 껍데기 회장이나마 대동그룹 회장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배석호는 회장 자리는커녕, 이제 평생 깜방에 썩어야 될지도 몰랐다.
최진우가 초호화 변호인단을 짜서, 녀석을 조지고 판사 앞에서 배석호를 발작시켜서 형량을 아주 세게 받도록 할 것이다.
*
찰칵, 찰칵!
전화조차 받지 않고 드문 불식하던 배석호가, 갑자기 그룹 차원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유수의 언론사들이 죄다 몰려와서 안비제약의 로비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배석호 회장님, 이번 화제 사태를 직접 사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자들 또한 배석호가 나오는 동영상을 직접 봤기 때문에, 애매하게 질문하지 않았다.
곧바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세워서 찌르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배석호는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칼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고, 더더 날카로워졌다.
”지금까지 경쟁업체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