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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67화 (67/272)

# 67

39.너무 쉬운데?

국어시험 후, 20분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수학시험이 이어졌다.

수학은 수학I, 수학II가 공통과목이고, 선택 과목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I-II, 기하와 벡터 이 세 가지 중에서 고르는 거였다.

수학도 수리 가-나 구분이 없어졌다.

나는 의대에 입학 후, 약대에 편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적분1-2]와 [기하와 벡터] 중에 미적분 1-2를 선택했다.

‘문제는 총 30문제에 단답형 9문제인가···.’

시험 시간은 10:30~12:10까지. 총 100분. 1시간 40분 동안 시험이 치러졌다.

‘쉽네, 쉬워.’

혜은이의 ‘했네, 했어.‘의 라임으로 나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학생들이 고3 내내 잠을 줄여가며 배워도 어려워하는 걸, 나는 정말 0.5초 단위로 풀어냈다.

그냥, 슥 보고 바로 답안지 체크.

시험지에는 아무런 필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어려운 계산식도, 그냥 슈퍼컴퓨터 전산처럼. 0.001초 단위로 바로바로 계산되어 답이 튀어나왔다.

‘마법에 올인했기 때문에, 수식 계산 같은 건 진짜 자신 있지.’

솔직히 이번 수능시험 중에서, 수학이 가장 쉽고 재밌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내가 바로 즐기는 자였다. 수학 자체가 너무 재밌고, 진짜 밥도 안 먹고 마법 수식만 계산한 적도 정말 많았다.

그야말로 수학은 내 인생에서 제일 흥미 있어 하는 공부였다.

예전엔 역사가 제일 좋았다면, 지금은 수학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단답형 유형까지 1분 컷으로 답안지를 다 작성하고, 제출 후에 곧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초 단위로 풀되, 한 번에 3-4개씩 푼 문제도 많았기 때문에 30문제를 30초도 채 안 걸려서 다 풀어버렸다.

마지막에 답안지를 한 번 검토하고, 수험번호를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느라 조금 늦어졌다.

‘불수능이라더니, 이 정도면 물수능도 아니고 그냥 껌수능인데?’

껌 하나 씹고, 단물 다 빠지기 전에 만점 채우고 나올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시험 시간이 너무 길어서 지겨웠다.

빨리 푸는 사람은, 다음 시험지까지 미리미리 시험지를 줘서 빨리빨리 보내야 하는데, 너무 시험 방식이 올드했다.

그렇게 1시간 40분이 지나고 12시 10분이 됐다.

“아아ㅡㅡ!”

나는 엎드려서 자다가, 시험이 끝나자마자 기지개를 크게 키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잠깐 졸았다. 그랬더니, 시간이 아주 잘 갔다.

‘점심 먹고 탐구과목 1시간 42분에, 한국사 30분, 게다가 5시에 치는 제2외국어까지 보려면 어후······.’

진짜 시험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험 시간이 너무 길어서 스트레스였다. 그깟 하루 참는 게 뭐가 어렵다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빨리 이 수능이라는 건 해치워야 했다.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이런 얕은 허들에 시간 낭비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아리 씨!”

공원 벤치 쪽으로 다가가니,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아리의 모습이 보였다.

“준혁 씨!”

아리가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내며,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송이 화사한 핑크 플라워처럼, 그녀는 오늘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거의 게임으로 치면 거의 공격력 +999짜리 풀셋을 착용하고 전장에 등장한 여전사같았다.

그만큼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소리였다. 얼굴도 풀메이크업을 받고 왔는지, 원래 예쁜 얼굴 위에 새로운 아름다움이 입혀졌다.

“우리 밥 먹어요.”

아리는 한 손에 들고 온 5단 도시락통을 들어 보이며, 생긋 웃었다. 나도 아리처럼 같이 따라 웃으며, 그녀의 도시락통을 대신 받아서 들어줬다.

“안 들어줘도 되는데······.”

“무거우니까, 안 돼요.”

“히힛~”

아리는 기분이 좋은지 생긋 웃으며,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러자, 주변에서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내 쪽으로 팍팍 꽂혔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깔았다. 준비성이 철저한 아리가, 돗자리까지 챙겨서 왔다.

우리는 단둘이서 피크닉 분위기를 내며, 오붓하게 서로 음식을 먹여주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시험은 잘 봤어요?”

“글세요. 잘 모르겠네요.”

“잘 보셔야죠. 차 한 대 날아가게 생겼는데~”

“······.”

그녀의 은근한 디스에 나는 잠시 몸을 움찔했다. 아리는 괜히 무리한 내기를 했다고 나를 힐책하며,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나를 타일렀다.

다음은 없는데.

“만약 시험 잘 쳐서, 대학까지 붙게 되면 앞으론 어쩌실 거에요?”

아리가 작은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공부해야죠.”

“대학 들어가면, 신입생 OT다 동아리다 뭐다 해서 바쁘실 텐데요?”

“그런가요? 전 대학교 한 번도 안 가봐서······.”

“1학년 새내기 애들이 준혁 오빠, 좋아요~ 밥 사주세요~ 하면요?”

“흐흐흐······.”

“······!?”

내가 의미심장은 미소로 웃자, 아리가 표정을 찡그렸다.

“왜 웃어요?”

“그냥요. 오랜만에 학교 간다고 하니까 설레서요.”

“예쁜고 어린 신입 여학생들 볼 생각에 입이 귀에 걸린 건 아니고요?”

“······.”

아리의 팩폭에 나는 잠시 침묵하며, 열심히 음식들을 주워 먹었다. 아리가 싸온 5단 도시락엔 아주 풍성한 반찬들이 가득가득했다.

각종 야채와 다진 고기를 함께 볶아 넣은 유부초밥, 그리고 새우를 비롯한 각종 튀김류들, 그리고 꼬치류와 신선한 과일들도 가득가득했다.

둘이서 먹기엔 조금 과분한 분량.

게다가 요리 솜씨도 끝내줘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매일 아침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껏 요리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리의 토라진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작은 토끼처럼 입을 쫑긋거리며 뭐라고 궁시렁궁시렁하고 있었다.

“농담이에요, 아리 씨. 다른 여자에겐 관심없어요.”

“······.”

“오늘 이렇게 와서 응원해주고, 도시락까지 싸줘서 고마워요, 아리 씨.”

“아니에요.”

아리는 금세 삐쳤던 표정을 풀며, 다시 생글생글 웃었다. 나의 말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을 캐치해서인가?

아리의 표정이 아까 밥 먹을 때보다 더욱 밝아져 있었다.

*

아리와 함께 오붓한 피크닉 데이트를 끝내고, 나는 영어 시험을 봤다.

영어는 영어I-II가 공통으로 다른 선택 과목 없이 통합으로 치뤄졌다. 문항은 총 45문제.

처음 듣기문제 17개 치고, 그 이후론 자율풀이 시간이었다.

“하암~”

“······.”

“···.”

듣기평가 시간에 내가 길게 하품을 하자, 학생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팍팍 꽂혔다. 듣기 빼고, 나머지 28문제를 이미 다 풀어버려서 나는 정말 할 게 없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나오는 남녀 간의 원어민 대화도 너무나 느려터져서 하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최대한 하품을 자제했다.

‘아예 슬럼가 슬랭으로 대화해도 다 알아먹을 수 있을 텐데······.’

이번에 수능 공부를 하면서, 영어는 거의 원어민 수준을 넘어 원주민 수준으로 공부했다.

그곳에 사는 토박이도 나보다 어휘력은 더 달리리라. 나는 영어뿐만 아니라, 제2 외국어도 공부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다양한 언어에 대해 공부했다.

언어의 변천사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수메르 문명의 쐐기 문자나, 다키아어, 흉노어 등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싸그리 마스터해 버렸다.

지금 당장 그 시대로 돌아가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너무 심심해서 톨킨이 만든 요정 언어(퀘냐, 신다린)와 바랏두르의 암흑언어까지 공부해버렸다.

거의 언어에 대해서는 박사 수준을 넘어, 오탁후 수준으로 공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런 느려터진 듣기평가 같은 건 정말 내 입장에선 한숨밖에 안 나오는 수준이었다.

영어 시험이 끝난 후에는, 탐구영역이었다.

본래 제2외국어만 선택하지 않았어도, 이것만 치고 집으로 가는 건데.

‘가산점 때문이 아니라, 언어 공부 자체가 재밌었으니까······. 재밌었으면 됐지.’

나는 그렇게 자위하며, 탐구과목 시험도 재밌게 풀었다.

탐구영역은 이과, 문과 계열이 통합되면서 사탐 9과목, 과탐 8과목 등등.

총 17과목 중에서 2개를 취사선택해서 치면 됐다.

사탐 9개 과목은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지리,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세계사, 법과 정치,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였고.

과탐 8개 과목은 물리Ⅰ, 물리Ⅱ, 화학Ⅰ, 화학Ⅱ, 생명과학Ⅰ,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Ⅰ, 지구과학Ⅱ이었다.

나는 사탐은 모두 재끼고, 과탐으로 2과목을 채웠다.

‘생명과학 1-2’

어차피 의대를 진학할 예정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쪽으로 과목을 정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공부하면서 물리와 화학, 지구과학도 싸그리 다 공부해버렸다.

서로 연관되는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해서였다. 과연, 과탐으로 묶이는 과목들답게 연관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만약 생명과학 1, 2만 공부했으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2-3문제는 틀렸을 정도였다.

‘후후······. 쉽네, 쉬워.’

몇몇 계산 문제가 나왔지만, 그래도 1분 컷을 넘지 않았다.

특이하게 4교시는 한국사도 같이 쳐서, 추가로 20문제를 더 풀었다.

그래서 총 1시간 52분 동안 시험을 치뤘다.

한국사가 필수 영역으로 바뀌면서, 모든 학생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필수적으로 공부했다.

탐구영역이 끝난 후, 오후 5시에 제2외국어까지 모두 치르고 나니 오후 5시 20분이 되었다.

제2 외국어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한문 등이 있었는데 나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중국어로 시험을 쳤다.

아무튼, 그것도 모두 다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리 씨!”

“준혁 씨!”

나는 사람들 틈에서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는 아기새를 찾아, 큰 소리를 내어 불렀다.

그녀는 사람들의 신경도 쓰지 않고, 곧바로 내게 달려와서 안겼다.

“수고하셨어요, 준혁 씨.”

“흐흐흐. 뭘요.”

사실 지루해서 정말 힘들긴 했는데. 이렇게 보들보들하고 귀여운 여자가 나를 한 번 안아주니, 힘들었던 게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뭇 남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아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이만 갈까요?”

“응···. 아니, 네······.”

아리는 저도 모르게 반말로 대답했다가, 쑥스러운 듯 곧바로 정정했다.

나는 그런 아리의 볼을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그녀의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시험지는 이미 수업시간 끝날 때마다 쓰레기 통에 하나씩 처박아서 들고나올 거도 없었다.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도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분질러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부우웅~

아리는 오늘 나를 위해 근사한 곳을 데리러 가겠다며, 저 혼자 신이 나서 방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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