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34.신약개발(3)
“건강기능식품은 식약처에서 미리 ‘이런이런 물질을 건기식으로 쓸 수 있다’고 정해놓기 때문에 판매 등록하기 매우 수월합니다.”
“그렇군요.”
나 대신 아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박태진의 설명에 맞장구를 쳐줬다. 박태진은 아리의 그런 순진무구한 태도에 홀딱 빠져 진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영양소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등 28가지의 성분을 자유롭게 배합할 수 있고, 기능성 원료는 인삼, 홍삼 등 60가지의 식품을 자유자재로 배합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먹어서 탈만 안 나면 금방 판매 허가가 나요. 의약품이 아니라, 식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렇죠.”
“와. 그런데, 준혁 씨가 만들 제품이 저기에 포함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럼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검토를 해야죠. 만약 의약으로 분류되는 물질이라면 식약청의 엄밀한 심사과정을 거쳐야······”
“제가 만들 약은 식약청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한 88가지 성분으로 모두 만들 수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박태준이 가져온 건강기능식품 관련 사항들을 읽어본 후, 성분들을 꼼꼼히 체크했다.
‘사실 성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법이 중요한 거니까.’
성분은 뭘 집어넣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건 어차피 껍데기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에 내 마력이 깃드느냐 안 깃드느냐의 차이였다.
‘마탑제약의 의약을 제조할 공장을 하나 설립해서, 거기다 마법회로를 새긴 수정탑을 박아놔야지. 그래서 제조 기계와 일일이 링크시켜서 특수한 약을 제조하는 거지.’
성분은 똑같다. 대신 약품에 스며든 마력을 볼 수 있는 자는 마법사일 뿐이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없었다.
그 흐름을 보려면, ‘각성’을 해야 한다.
각성은 대기 중에 떠도는 마력을 느끼기 위해, 오랜 기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야 했으며, 그것도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평생 가도 못 느꼈다.
‘이계에서도 그럴 진데,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지.’
장담하는데, 내가 의약에 새겨넣은 마력을 읽어낼 수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비법이고,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다 달라붙어서 내가 만든 약품을 분석한답시고 해체하고 현미경을 들이대 봐야 나오는 건 없을 거다.
오히려 다른 건강식품과 동일한 재료로 이런 결과를 낸다는 것에 경악하고, 황당해하겠지.
‘그동안 돌팔이들한테 고통받았던 국민들을 해방시킬 때다.’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바꿨고, 앞으론 우리나라와 국민 전체를 바꿀 것이며, 나아가 세계를 바꿀 것이다.
“저기 준혁 님. 근데, 약품 제조는 어디서 하실 생각이십니까? 혹시 마땅히 생각해놓은 OEM회사가 있습니까?”
“OEM이 뭡니까?”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여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 납품하는 위탁생산 업체입니다. 쉽게 말해서 준혁 님이 개발하신 의약을 대신 만들어주는 회사를 말하는 겁니다.”
“대신 만들어준다?”
“네. OEM회사가 가지고 있는 공장에다 이런이런 약을 만들고 싶다고 발주를 넣으면, 그들이 주문받은 대로 의약을 제조해서 저희한테 넘기는 거죠. 물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냥 직접 만들면 안 됩니까?”
“······가지고 계신 공장이 있습니까?”
“하나 사면 되죠.”
“······.”
내 말에 박태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얼마 정도 준비되어 있으십니까?”
“1조까진 넉넉히 여유가 있으니 돈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뭐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 비싼 공장은 필요 없잖아요?”
“1조요?”
박태진의 표정이 급격히 썩었다가.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준혁 님의 스케일을 잠시 몰라봤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됐죠.”
-미친 새끼.
박태진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괜히 그런 모습을 몰래 관음하는 거 같아서 꿀잼이었다.
“보통 공장부지가 싼 곳은 평당 몇천 원에서 몇만 원도 안 하는 곳이 있고, 비싼 곳은 평당 몇천만 원, 그리고 억 단위로 껑충 뛰는 경우도 많죠.”
“그럼 짓고 나서 생산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최소 1-2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제품 설계하고 생산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4-5년은 돼야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지 않을······”
“뭐요?”
“······아니면 기존에 있던 공장을 인수해서 바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요...”
“그게 좋겠네요. 돈이 좀 더 들더라도 그렇게 갑시다.”
“예.”
내가 뭐 일일이 디테일한 가격까지 다 따져가며, 잇속을 챙기고 싶진 않았다. 일단 잠깐 손해를 좀 보더라도, 판매가 시작되면 금방 만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잠시 호구가 되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어차피 시간이 곧 돈인데, 당장 몇 푼 더 나간다고 손해날 거 없다.’
박태진의 말을 들어보니, 100평 규모만 되어도 하루에 수만 개는 약을 찍어낼 수 있다 하니, 돈만 있으면 스피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장을 인수한다 하면, 일단 매물로 나온 것들을 싸게 구입해서 설비만 약간 교체하면 바로 제품생산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은 허가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이러한 성분으로 건기식을 만들겠다 하면 바로 생산이 가능합니다.”
“공장은 얼마에 살 수 있습니까?”
“아마 50억에서 100억 안팎으로 꽤 괜찮은 공장을 사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일단 한 개만 사서 찍어보고, 나중에 모자라면 하나씩 더 추가하도록 하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박태진에게 괜찮은 제약 공장이 나온 게 있으면, 매의 눈으로 봐뒀다가 대동그룹 회장인 유필준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이참에 대동그룹이 제약 업계에도 한발 걸치는 거지.’
내 명의로 제약회사를 차려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유필준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서 나는 편하게 뒤에서 제약 개발만 하기로 결심했다.
‘귀찮은 일은 다른 놈들에게 떠넘기자. 어차피 그런 일 해줄 사람은 널렸으니까.’
나는 남들이 못 하는 일만 하면 됐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나까지 시간 들여가며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마법사였으니까. 내 본분에 맞게 마법 구축에만 잘 신경 써서, 내가 계획한 대로 결과가 나오게 하면 그만이었다.
‘이럴 때 보면, 내가 만화나 영화에서 봤던 흑막인 것 같네....’
사실 좋은 일을 하는 거였지만, 왠지 내가 흑막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박태진 씨.”
“예.”
“거기 병원 언제까지 다니실 거에요?”
“예?”
“얼마 받아요? 거기서.”
“연봉 말씀하시는 겁니까? 세후 1억5천 받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3억 준다 하면, 제 밑에서 일하시겠습니까?”
“3억이요?”
“왜요? 적어요?”
“아니요. 당장 내일이라도 병원을 때려치우겠습니다.”
“하하하. 화끈하시네요.”
“정말 제 연봉의 2배를 주시는 겁니까?”
“내일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대신 선불로 줬다고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동료 의사, 약사들 중에 같이 나올 사람 있으면 다 데리고 와요. 연봉 2배씩 쳐주고, 근무조건도 업계 최고로 맞춰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박태진의 머릿속엔, ‘무슨 건기식 하나 만드는데 그런 엘리트들을 다 모으려고 하나?’하는 생각이 역력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인건비로 연간 100억씩 써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몇십 원짜리 원료를 그 1000배인 몇만 원씩 받으면 1000배의 이득이 남지 않겠는가?
그 제품이 앞으로 최소 100억 개 이상은 팔릴 텐데, 단순 계산만 해도 30조 이상씩 버는 사업이었다.
물론 그만큼 팔려야겠지만, 안 팔려도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었다.
‘어차피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없을 테니까. 전부 대동그룹 돈을 끌어다 써야겠다.’
대동그룹의 그룹 전체 매출이 연간 2조 원이 넘는다. 그동안 쌓아 놓은 회사 유보금도 몇백억 있어서, 당장 자금이 쪼달릴 문제는 없었다.
‘대동그룹에서 버는 돈을 죄다 제약회사에 투자해야겠다. 어차피 회사 유보금은 오너들 사리사욕으로 쓰이던데 내가 더 좋은 곳에 써도 무방하겠지.’
다 세상을 이롭고, 아름답게 바꾸기 위한 일이었다.
대동그룹 회장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모든 일을 박태진과 유필준, 그리고 제임스 박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럼 이만 가보세요. 바쁘실 텐데.”
“예, 알겠습니다.”
박태진은 떠나는 게 아쉽던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아리를 힐끔거렸다. 나와 같이 있었다면, 얼른 자리를 내빼도 백 번은 내뺐을 텐데, 역시나 아리의 힘은 위대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것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잘 가세요.”
“네, 아리 씨도 안녕히 계십시오.”
순간, 방안이 밝아지는 듯한 아리의 환한 인사에 박태진은 정말 가기 싫다는 표정으로 억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와, 준혁 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뭐가요?”
“저런 분은 언제 미리 초빙해 두신 거예요?”
“걍 운이 좋았죠.”
“에이, 겸손은.”
“진짠데.”
나는 진짜 억울했다. 박태진 저놈이 뭐가 예뻐서 내가 먼저 나서서 애걸복걸해가며 초빙을 한단 말인가?
그냥 집안의 산적해 있는 일을 해치우다 보니, 발에 걸그쳐서 짓밟아줬을 뿐이다. 그 후엔, 죗값으로 나에게 복종되어 겸사겸사 이런 곳에라도 써먹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박태진은 그렇게 써먹다 버려도 할 말이 없는 놈이었다.
‘첫인상부터가 아주 더러운 놈이었지.’
생각해보면, 정말 더러운 악연인데 어찌어찌 잘 풀렸을 뿐.
‘만약에 나에게 정말 도움되는 일을 열심히 해준다면, 패러사이트를 해제해 줄 수도 있지.’
나는 아량 있는 사람이다. 만약,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칠 줄 알고, 반성하고 바뀔 의지가 있는 녀석이라면 한 번의 실수 쯤은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아리 씨.”
“네?”
나를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는 아리를 향해, 나는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다.
“······.”
탁자 위에 얹힌, 하얗고 앙증맞은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으니, 마치 보드라운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저 대학 한 번 가볼까 해요.”
“대학요?”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던 아리가,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한테 들었어요. 추석 때 친척들하고 내기를 하셨다고요?”
“네. 이번 수능에서 전국 1등 하는 거로 내기를 걸었습니다.”
“이제 수능이 2달도 채 안 남았는데, 전국 1등이 가능할까요?”
“아리 씨 저 못 믿어요?”
나는 장난스럽게 아리의 손을 잡아당겨 입으로 ‘앙’하고 살짝 깨물었다.
“아얏!”
아리는 깜짝 놀라서 손을 잽싸게 빼내며, 눈을 흘겼다.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피식 웃었다.
“물론 믿죠. 우리 회장님이신데. 하지만, 그래도··· 음······”
아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준혁 씨. 그럼 제가 과외 해드릴까요?”
“과외요?”
“네. 제가 이래뵈도 한국대 출신이거든요. 과는 재료공학부고요.”
“제가 약대 지망하고 공부할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이과인데 괜찮죠.”
“아리 주얼리샵은 어떻게 하고요?”
“저 말고 일할 사람 많아요.”
“그렇군요.”
나는 아리가 과외를 해준다는 말에, 약간 음심이 발동했다.
과거 동갑내기 과외하기 영화같이, 그런 멜랑꼴리한 상황이 나오진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
“그럼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학생, 앞으로 잘해. 수업시간에 졸면 혼나~”
“하하하.”
아리는 내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그렇게 훈계를 했다. 나는 그녀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대동그룹에서 아리 주얼리샵에 투자할 겁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아리는 방긋 웃던 얼굴에서, 급속도로 표정이 차갑게 식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자신과 대동그룹에 대해 잘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대동그룹에서 전에 우리를 납치하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쪽 회장을 만나서 담판을 짓고 왔습니다.”
“무슨 담판이요?”
“치타 대부 때와 똑같았습니다. 제가 그 녀석을 혼내주고 회사를 빼앗았죠. 그래서 이제 대동그룹은 제 회사입니다. 명의만 유필준이고, 그 녀석은 바지사장일 뿐이에요.”
“네???”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동안 대동그룹은 아리 주얼리샵에 년간 100억씩 투자를 할 겁니다. 아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