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56화 (56/272)

# 56

34.신약개발(2)

딸랑ㅡ!

“워이!”

“······”

“죄송해요.”

입구로 들어가니, 아리가 나를 놀래키기 위해 문틈에 숨어 있었다.

“아뇨. 괜찮아요.”

“헤헤.”

아리가 머쓱하게 웃으며, 내 손을 이끌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아리가 밖을 많이 나돌게 되면서, 매장 안에 직원들이 두 배로 불어났다.

아무래도 나 때문에, 아리 주얼리샵의 인건비 지출이 더 늘어난 거 같아 마음이 조금 쓰렸다.

“준혁 씨. 녹차라떼 드시겠어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하얀색 세미정장을 입은 아리의 뒤태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리가 은근히 장난기가 좀 있네.’

나를 놀래키려고 몇십 분 동안 문틈에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가 보면 연인 사이인 줄 알겠다.

이번 경매를 위해 오랜 시간 단둘이 붙어 다니면서, ‘썸’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긴 했지만 엄연히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니다.

‘다 비즈니스의 연장선이지.’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상하고, 야릇한 감정을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 당장은 해치워야 할 과제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제약회사.

다른 사업은 내 자산관리사이자, 투자전문가인 제임스 박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나는 내가 자신 있는 분야를 뚝심 있게 파고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마법의 비약을 양산하는 것.

‘아직까지 관절, 인대, 암, 탈모 등등의 만성 질환과 희귀병 등의 치료제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약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나 아빠도 과거 만성질환으로 고통받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그런 상상을 많이 했다.

엄마의 무릎이 젊은 시절 때처럼 돌아가면 어떨까?

어깨를 다친 아버지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어떨까?

무수히 많은 염원을 담아 그렇게 소원했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족 중에 질병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마법으로 다 치유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돈도 벌고.

지금도 1조 8천억 원이 있지만, 스티븐 잡스나 구글처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서 1조가 100조가 되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도 마도공학으로 개선하고.’

서울에 마력으로 구동하는 플랜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전기세 걱정없이 일상생활에서 많은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마력석을 양산해서 기름값도 줄이고.

아무튼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돈으로 갈퀴로 쓸어 담을 방법이.

“차 나왔습니다. 갓 데운 따끈따끈한 녹. 차. 라. 떼.”

“고마워요.”

“뭘. 요.”

“?”

“이. 상. 한. 가. 요?”

“지금 뭐. 하. 는?”

“그냥 준혁 씨 얼굴을 보면 장난을 치고 싶어서요.”

“아하.”

이해한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최근엔 진짜 구구절절히 느꼈다. 내가 시비 걸고 싶게 생긴 얼굴이라는 걸.

어디 갈 때마다 이상한 사고가 터지고, 테러가 일어나고, 조폭들이 달라붙는다.

이건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내 존재 자체가 트러블 메이커란 소리였다.

나는 그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것들을 다 쳐낼 힘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무런 힘도 없이 이런 얼굴로 계속 살아갔다면 아마 진작에 비명횡사하고도 남았을 거다.

물론, 아리는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겠지만.

“진우나 제임스 박은 부르지 말라고 하셔서 안 불렀어요.”

“네. 오늘은 제약 관련한 얘기만 할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따로 불렀습니다.”

“전문가요?”

“네. 저희 아버지를 치료하셨던 명의(名醫)세요. 암 말기를 치료하신 분이죠.”

“우와, 대단한 분을 초빙하셨네요.”

“하하, 네. 그렇죠.”

나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박태진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사실 아버지의 암 말기를 고친 건 당연히 나였고, 박태진은 그저 숟가락만 얹었다.

아니, 숟가락으로 모래를 퍼서, 초를 칠 뻔했지만 다행히 내가 적절한 시점에 개입할 수 있어서 무사히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박태진 그놈이 너무 괘씸해서 패러사이트를 이용해 계속 괴롭혀줄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기로.

‘치타 대부부터 시작해서, 대동그룹까지. 녀석들 덕택에 내가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벌어 놓은 1조 8천억 원 중, 초기에 쓴 몇백만 원을 빼면 나머진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치타 대부에서 받은 법인카드와, 대동그룹에서 붙여주는 5억 원의 용돈도 다 못 써서 매달 남고 있다.

내가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돈은 전부 가족들에게 가거나 아니면 내 비밀 계좌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들 덕분에 내가 쓸 수 있는 차명이 많이 늘어나서 행동반경도 대폭 넓어졌다.

굳이 의심스럽게 내가 사회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나 대신 총알받이 할 사람이 널리고 널렸단 소리다.

처음엔 아무런 기대도 안 하고 응징했다. 미래를 예상하거나, 무언가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닌, 기분에 따라 온전히 즉흥적으로 한 것뿐이다.

녀석들이 먼저 시비를 걸기에 참교육을 해준 것뿐.

그런데 제압해놓고 보니, 쓸데가 너무나도 많았다. 무궁무진할 정도로. 기분 같았으면 많이 죽였을 수도 있는데, 죽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녀석들 입장에선 죽을 때까지 영원히 고통받는 느낌이겠으나, 다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대신, 내가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협조만 한다면 사생활은 별로 터치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2주가 지난 후부터는 자유롭게 예전에 하던 행동대로 돌아갔다.

평소 음흉한 성격인 박태진은 퇴근 후, 뻔질나게 자갈밭에 드나들었고 대동그룹 회장 유필준도 여자 때문에 그 사단이 나 놓고 여자를 끊지 못했다.

끼익.

“안녕하십니까.”

“오셨네요.”

“아, 저분이 이번에 오신 새로운 전문가이시군요.”

“맞습니다.”

박태진이 하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꺾어서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고, 아리에게 박태진에 대해 설명했다.

“아까 말한 ‘유능한’ 의사분이십니다.”

“······”

“와아, 그러시군요.”

유능한이란 말에 박태진은 잠시 인상을 굳혔고, 아리는 깜짝 놀라워하며 과도한 리액션을 했다.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아리가 빈자리를 가리키며 얘기하자, 박태진은 얌전히 가리킨 자리로 가서 살포시 주저앉았다.

기생충을 통해 박태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나는, 저 녀석이 지금쯤 아리에게 과도한 관심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음란마귀가 가득하군.’

-와, 얼굴도 존나 미인인데, 몸매도 진짜 개쩐다.

-존나 부럽다. 나도 저런 여자 한 번 사귀어 보고 싶다.

아무렇지 않은 척, 허공에다 시선을 두는 와중에도 박태진의 머릿속은 저렇게 정신없이 돌아갔다. 사실 패러사이트에서 벗어나려는 행동만 통증으로 제어해서 그런지, 내가 녀석의 생각까지 읽는 줄은 모르는 것 같았다.

명령은 전부 전화통화로만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아주 정교하게 프로그래밍이 된 제어 시스템으로 인해, 통제되는 줄 알고 있나 보다.

다 내가 일일이 확인하고, 또 기생충이 자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허튼 행동을 못 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아니, 패러사이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저 내가 하는 일에 열심히 협조만 해주면, 무슨 변태적인 망상을 하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실 흥미롭긴 했다. 평소엔 온갖 멋있는 척, 고상한 척 다하는 녀석들의 머리통이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

만약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소소한 재미도 느끼지 못했겠지.

“앞으로 제가 제약회사를 설립할 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박태진은 들고 온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온 서류들을 꺼낸 후,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행법상으로는 제약회사의 설립에 관하여 특별한 절차나 조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약회사 설립 자체에 대하여는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로이 설립을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제임스 박이 워낙 겁을 줘서, 제약회사를 설립하는데 아주 애로사항이 많을 줄 알았다. 근데, 설립하는 것 자체는 별로 거리낄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설립이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을 제조하여 공급하는 행위에 여러 가지 기준이나 제약이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서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식약청에서 여러 가지 기준을 마련하여 두고 있습니다.”

“무슨 기준이요?”

“준혁 님께서 조제하여 보급하고자 하는 의약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적시하여, 식약처에 문의를 해보시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문의는 당신이 해주면 되잖아요?”

“···네. 그렇죠. 제가 하겠습니다.”

“고맙군요. 근데 의약품을 제조하는 건 대충 어떤 기준이 있나요?”

회사 설립 자체는 다른 창업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사람을 치료하는 약의 제조에 대해선 깐깐한 기준선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신약개발과정은 크게 연구(Research) 단계와 개발(Development) 단계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연구단계(탐색)는 의약학적 개발목표(목적효능 및 작용기전 등)를 설정하고, 신물질의 설계, 합성 및 효능검색 연구를 반복하여 개발 대상 물질을 선정하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개발단계는 대상물질에 대한 대량제조 공정개발, 제제화 연구, 안전성평가, 생체 내 동태규명 및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을 개발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복잡하네요. 좀 쉽게 말할 수 없습니까?”

“······”

박태진은 내 말에 잠시 찔끔하더니, 생각을 정리하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개발할 의약물질을 정하면 4번의 임상시험과 함께 안전성과 유효성 검사가 모두 완료되면 시중에 내다 팔 수 있습니다.”

“임상을 4번이나 한다고요?”

나 대신 아리가 깜짝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박태진은 잠시 아리의 얼굴을 황홀한 표정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새로 개발한 신약후보물질을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동물에게 사용하여 부작용이나 독성, 효과 등을 알아보는 시험을 최초로 거치고, 그 다음은 사람에게 실험하는데요. 그 숫자를 점점 늘려서 총 3번 더 합니다. 그래서 효능이 성공적으로 입증이 되면 판매 허가가 떨어지는 거죠.”

“어렵네요······”

아리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한숨을 푹 내쉬자, 박태진이 어쩔 줄 몰라하며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루트로 판매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다른 루트요?”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하면 그 정도까지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박태진은 아리에게 홀딱 빠져서, 억지로 돕는 시늉이 아닌 진심으로 간이나 쓸개라도 빼줄 기세였다.

만약 아리가 ‘태진 씨, 저 돈이 좀 필요한데······’라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빌려줄 것처럼 보였다.

‘남자들은 다 똑같은 건가······’

나는 박태진의 하는 모양새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다, 쓴웃음을 내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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