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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52화 (52/272)

# 52

32.추석, 그리고 콩가루(2)

“어이구, 오랜만······”

이강수의 친척들이, 이강수네 동생인 이강춘의 집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래 장남이었던 이강수가 집을 물려받아야 하지만, 주워온 형제들이 집과 재산을 홀라당 다 가져갔다.

“오셨어요, 형님?”

이강춘의 인사에, 그의 넷째 형 이주훈이 들어왔다. 이들은 거둬서 키워주고 재산까지 물려준 양부모 제사는 소홀히 하고, 자신들을 버린 부모 제사를 집중적으로 지냈다.

아주 이 시대의 호로새끼들인 것이다.

본래 족보도 없는 개쌍놈들이었으나, 지들끼리 샤뱌샤뱌해서 친부모의 행방을 찾고, 양반들이 하던 허례허식을 이어받아 자식들에게까지 강요하고 있었다.

얼마후.

이강춘과 같은 동네인, 충주에 사는 이들이 제일 빠르게 도착했고, 그 다음은 타지에 있는 사람 순서였다.

이강수네 가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강수네 가족은 검머자 형제들에게 집을 뺏긴 후에, 고향에 남아 있지 않고 타지인 군포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타향 사람인 이준혁의 엄마는, 친척들에게 개무시를 당했다.

특히나 예전엔 imf 터지고 돈도 없을 때라 더더욱 무시가 심했다.

“강수네는 아직도 안 왔어?”

이강수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 이문수가 두리번거리며 이강수를 찾았다.

이강수의 동생인 이강춘은 형의 질문에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 집안, 원래 아시잖아요. 매번 늦는 거.”

“늦기만 하면 다행이지. 그놈의 집안은 여편네부터 시작해서 자식새끼들이 왜 코빼기도 안 비쳐?”

“준혁이 사라지고 나서 형수님은 완전히 발길을 끊었죠. 그 집안 장남이 사라졌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저만 참 난처하네요. 허허허.”

이강춘이 사람 좋은 미소로 그렇게 말하자, 이문수는 혀를 쯧쯧 찼다.

“조상들의 제사를 제대로 안 지내니까, 그 집안이 천벌 받은 거야. 그러게 제사를 지내려면 다른 형제들 부모 제사까지 지내야지. 아무리 부모가 달라도 그렇지, 우린 호적상 형제인데 말이다. 아무튼 아주 꼬라지 참 잘 됐다, 잘 됐어.”

“뭐, 어쩌겠습니까? 저야 뭐 형님네가 그렇게 됐으니 안타까울 뿐이죠.”

첫째 형의 말에 이강춘은 전혀 안타깝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안타깝기는커녕 오히려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형님의 집안이 망해서 아주 고소해 한 것이다.

하지만, 이강수는 따로 친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지냈고 검머자들의 부모님 제사까지 지내는 걸 꺼려했다.

솔직히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형님 말이 맞아. 그 집안이 아주 막돼먹었지.”

“준혁이는 그렇다 치고, 혜은이 걔는 요새 뭐하냐?”

제사에 참여한 이강춘의 형제는 총 4명이었는데, 다들 망해버린 이강수네 집안을 헐뜯으며 아주 육포처럼 찰지게 씹어 제끼고 있었다.

이강춘 또한 처음엔 대답을 회피하는 척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어디 지방 전문대 들어갔다고 하던데, 영 시원찮은가 봐요. 우리 지연이는 이번에 인나대에 합격했는데.”

“쯧쯧쯧. 그 집안은 돈도 없으면서, 전문대 같은 델 뭐하러 보내? 차라리 어디 중소기업 경리나 시키지.”

“얼굴이 못생겨서 어디 경리라도 뽑아줄지 의문인데요? 그냥 공순이 같은 거나 해야죠.”

사촌 형제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강수네를 계속 물고 씹고 뜯었다. 사업으로 망해버린 집안, 실종된 아들, 공부도 지지지도 못하는 딸, 노점상 뛰는 부인.

아주 물어뜯기 딱 좋은 소재였다.

뜯고 뜯어도 계속 솟아나는 잡초 같은 소재였다. 그들은 제사 시작하기 전부터, 아주 열을 올리며 ‘아주, 잘 망했다’고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한담을 나누었다.

“이번에 혹시라도 강수가 돈 빌려달라고 하면, 냉큼 거절해라. 저번에 우리 집에 와서도 기웃거리던데, 내가 빗자루 가지고 쫓아냈다.”

“우리 여편네는 아주 소금을 뿌리더라고. 벌써 한 20년이 넘었나.”

“20년 전엔 몇백만 원이라도 빌려보려고, 굽신굽신하더니 이젠 아예 아르바이트 4탕 5탕 뛰면서 혼자 번다던데? 살판났어~”

그들은 이강수가 자신들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애처롭게 구걸해야 기분이 나는데, 그러지 않아서 아주 괘씸해 하는 모습이었다. 거러지면 거러지답게, 주제를 알고 기었으면 하는 마음 심보였다.

“혹시 또 모르죠. 저희 집이 이번에 티비랑 냉장고 같은 걸 싹 다 바꿨거든요. 차도 SUV로 큰 거 한 대 뽑아서 그거 보고 또 저한테 돈 빌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긴 하네요.”

비록 입양 형제이지만, 이강수는 자신의 동생인 이강춘을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학비를 벌었다.

그래서 이강춘은 형 덕분에 전문대나마 졸업할 수 있었고.

근데, 이강춘은 그런 형을 실드쳐도 모자란 판국에, 다른 형제보다 오히려 앞장서서 더 형을 헐뜯었다.

사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형제들은 거의 다 청주에 살았고, 이강수만 외따로 떨어져 살고 있던 것도 따돌림에 한몫했다.

과거 이강춘과 이강수는 집안 유산 문제를 놓고, 많이 다퉜기 때문에 앙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친형제라도 유산 앞에선 장사 없는데, 게다가 이강춘은 입양 형제에다, 아주 욕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여러 유산들 중, 물려받은 작은 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닌, 얼마 안 있다 팔아서 빚을 내더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빚은 갚지 않고 계속해서 전자제품을 바꾸고, 차를 바꾸고 하면서 사치를 부렸다.

그래서 빚은 고대로에, 오히려 더 늘어났다. 거의, 오늘만 살자는 마인드였다. 그런데도 제사는 꾸역꾸역 다 지냈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제사에 목숨 건 사람들이었다.

“아휴, 이제 10분 후면 제사인데 형님이 많이 늦으시네···”

“그 새끼 안 오면, 그냥 호적에서 빼 버려. 불효막심한 새끼. 부모 제사에 늦는 새끼가 이 세상에 어디 있어?”

첫째 형 이문수가 버럭 성질을 내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본래 성질이 괄괄해서, 평소에 자기 주장대로 안 하면 돌아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가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피 한 방울 안 섞인 조상들의 스까국밥 선산도 결국 시행하게 된 것이다.

30여 년 동안 모은 곗돈을 모두 꼬라박은 결과였다.

그런데.

빵빵ㅡ!

“아, 이거 근데 차를 누가 이렇게 대 놨어?”

한창 이강수네 뒷담화에 열을 올리던 형제들이 일제히 바깥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차 뭐야?”

이강수의 동생인 이강춘이 제일 먼저 놀랐고.

“지금 저 차에서 내리는 사람, 실종됐다는 이준혁 아냐?”

“설마요. 다른 사람이겠죠. 벌써 실종된지 15년이 지났는데···.”

“아냐, 맞아. 고등학생 때 얼굴 그대로네. 근데 저놈이 타고 온 차 뭐냐? 외제 차 아냐?”

다들 어안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개중에 대리운전 하는 셋째 형이 그 차를 알아보고, 할 말을 잊어버렸다.

“저거 롤스로이스 팬텀이야. 5억짜리 하는 거.”

“뭐? 5억?”

“헉······.”

형제들은 5억이라는 말에 그대로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말이 5억이지, 차 한 값으로 그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아무도 없었다.

*

“주차를 진짜 개판으로 해 놨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집 앞 골목길에다 주차를 하고, 차 문을 잠궜다. 훔쳐갈 만한 물건은 없었지만, 형제랍시고 웬 벌레 같은 놈들이 차에 얼씬거릴까 봐 해놓은 조치였다.

녀석들에게 보여줄 것은 차의 외관뿐. 내관은 전혀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법으로 녀석들의 뒷담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들으면서 왔다.

마치, MP3로 노래를 듣는 것처럼.

녀석들의 뒷담화를 디스랩처럼 들으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차를 몰고 달려왔다.

그래서, 놈들에게 좋은 감정이 단 1%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래도 체면치레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저 새끼들은 그냥 개새끼들이었다.

인간 대접도 해 줄 필요가 없는, 그냥 핵폐기물 인간쓰레기들이었다.

드르륵.

“아.. 안녕하세요.”

혜은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오면, 개무시를 해주려고 입에 잔뜩 총알을 장전하고 있었는데, 5억짜리 외제 차에 압도되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저놈들의 총알은 그저 BB탄총의 플라스틱 총알일 뿐이었다.

반면, 우리 가족은 부티나는 옷차림을 갖춘 귀족처럼 우아했다. 저놈들은 고작 몇만 원짜리 싸구려 옷을 걸친 채였지만, 우리 가족은 기본이 몇백만 원, 비싼 건 몇억짜리를 호가하는 명품들을 몸에 걸치고 왔다.

아빠, 엄마, 혜은이, 나. 모두 제일 비싼 명품으로 치장한 채, 안으로 걸어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다들 표정엔 ‘이게 아닌데......’하는 엿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제사만 지내고 가려고 했는데, 이 쓰레기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도 참 재미있군.’

진짜 보면 볼수록 등신 같은 표정들이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면상이 부르터지도록 주먹으로 뎀프시롤을 갈겨주고 싶었다.

“강수야, 이게 다 뭐냐? 웬 돈으로 이렇게....”

아버지의 첫째 형 이문수의 질문에,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준혁이가 사준 거예요. 그동안 실종된 게 아니라,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사업? 무슨 사업?”

아버지의 설명에 이문수의 눈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고등학생 때 실종돼서, 아무것도 없이 15년 만에 돌아와서 갑자기 사업으로 떼부자가 돼서 돌아왔다고?

당연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사업해서 돈을 벌었다는 건, 나와 아버지가 입을 맞춘 것이었다. 배 타서 그렇게 많이 벌었다고 하면, 믿기 힘들 테니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은 것이다.

“준혁이가 해외에서 보석 사업을 해서 번 돈이에요. 유명 보석 경매에서 준혁이 이름만 대면 다 알아요.”

아버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영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네 아버지 말이 정녕 사실이냐?”

“네. 사실인데요?”

보석 팔아서 돈을 벌었으니, 보석 사업이라고 말해도 크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구에서 구한 게 아니다뿐이지, 결국 내 손으로 보석을 구해서 내다 판 거니까, 나는 떳떳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너네들끼리만 홀라당 다 쓰지 말고 곗돈이나 보태면 좀 좋냐?”

아버지의 첫째 형 이문수는 슬슬 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 전, 우리 가족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돈 얘기는 꺼내지도 말자고 지들끼리 담합 할 땐 언제고?

갑자기 우리 집안이 부자가 돼서 돌아오니까, 슬슬 뜯어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지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곗돈이야, 매년 아버지가 40만원 씩 냈잖아요? 추석때 20만 원, 설날 때 20만 원씩. 저희는 한번도 빠짐없이 다 냈어요. 그런 건 안 낸 사람에게 따져야죠? 월세 낼 돈 없을 때도 꾸역꾸역 내라고 우겨서 부모님이 빚내서 곗돈 낸 적도 있다던데, 염치가 있으시면 제대로 확인 좀 해보고 따지세요.”

“뭐야?”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너,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말 돌리지 말고, 곗돈 얘기나 하세요.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다 대출을 받을 것이지, 왜 우리한테 돈을 내놓으라 마라예요? 우리한테 뭐 돈 맡겨놨어요?”

“이 새끼가, 어른들 하는 일에 따박따박 따지네?”

“제사가 무슨 밥 먹여주나? 우리 가족이 IMF터져서 사업 부도로 힘들 때 돈 한 푼 안 보태준 양반들이, 이제 와서 무슨 ‘형제’를 언급합니까? 완전 남보다 더 못한 사이인데.”

나와 첫째 삼촌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자, 주변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버지와 엄마는 내가 하는 걸 그저 묵묵히 지켜보셨고, 혜은이는 아주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다.

그 반면, 우리 가족을 제외한 전 친척들이 모두 적대적인 눈빛으로 우리 가족과 나를 꼬나보고 있었다.

“삼촌~”

그때, 얍삽해 보이는 사촌 조카 하나가 내게 달려오더니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 용돈 줘.”

그는 첫째 삼촌의 아들인 이찬혁이 낳은 아들이었다. 이찬혁은 나와 함께 ‘혁’자 돌림의 이름으로 항렬이 같았다. 나보다 4살 더 많았는데, 3년 전 결혼해서 7살 아들이 바로 이놈이었다.

7살이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속 안에 야비한 능구렁이 하나가 똬리를 틀 시기였다. 게다가 나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볼 줄 안다. 지금 이 조카 놈이 속으로 무슨 시커먼 생각을 하는지 나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었다.

-이 새끼는 뭔데 갑자기 와서 잘난 척이야? 돈 많으면 용돈이나 많이 내놓을 것이지!

녀석은 머릿속으로 한 100만 원 이상 뜯을 기대를 하며, 시시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품속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그놈의 면상에 집어 던졌다.

“자, 용돈이다.”

“......”

녀석의 면상으로 천 원짜리 5장이 나풀거리며 흩날리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황당해하는 녀석의 면전에다 대고.

“나도 설날 때 매번 삼천 원, 오천 원씩 이렇게 받았거든. 추석 땐 아무것도 없었고. 그대로 돌려주는 거야. 그러니, 기분 더러우면 너네 할아버지들한테 가서 따져.”

그렇게 내뱉은 후, 곧바로 기분 잡치는 그 집안을 빠져나왔다. 제사상에 절할 마음도 뚝 떨어지고 사라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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